1. 시작하는 말
언제 인생 처지가 바뀔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은 빈곤에서 풍부, 혹은 풍부에서 빈곤으로 바뀌는 것에서 비롯되는 특별한 종류의 시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빈곤에서 풍부로, 혹은 풍부에서 빈곤으로 바뀔 때에 대단히 중요한 믿음의 시험을 만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인생의 변화가 발생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진실성을 시험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주님을 믿든 안 믿든 간에 낮은 층에 속하는 사람은 열등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다른 좋은 가능성마저 사장시키고, 높은 층에 속하는 사람은 우월감과 자만심에 사로잡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할 때, 본문의 말씀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2. 낮은 형제의 자랑
먼저, 야고보 사도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낮은”은 타페이노스(ταπεινὸς)로서 대개 겸손한 마음을 표시하는데, 여기서는 ‘병든 자’, ‘환난을 당하는 자’, ‘가난한 자’, ‘신분이 낮은 자’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낮은 형제”란 일반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난하거나 병들었거나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대개 가난한 사람들은 멸시 천대를 받고, 또한 자기 모멸과 자학 가운데 살아가기도 합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심어 줍니다. 무레투스는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운명하신 한, 어떤 사람도 무가치하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그 어떤 교훈이나 사상도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미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신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까지 했을 정도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 이상 어떻게 더 인간의 가치를 평할 수 있겠습니까?
잘난 사람만이 주님께 소중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쓸모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저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소중한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도 위해서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믿는 우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 놀라운 은혜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을 무가치하게 취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온갖 죄악과 불의, 거짓과 위선, 자만과 교만, 아부와 아첨 등등으로 자신을 부패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토록 값진 자신을 재물과 권력과 명예 등의 노예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의 자신과 과거의 생활이 어떠하였든 간에 일단 주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적 지위나 부를 가진 사람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는 것, 혹은 그의 양자가 된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자랑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주의 창조주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복과 영광이란 얼마나 엄청난 것입니까? 바로 이것이 야고보 사도가 말한 높음의 의미인 것입니다.
“높음”의 또 하나의 의미는, 성령을 좇아 행하는 거룩한 생활입니다. 사실상,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중대한 평가 기준은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값지게 사용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남 위에 군림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겸손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높음을 자랑스러워하며 사는 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주실 것에 대한 보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5:6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인이 세상적으로는 낮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주님의 영을 모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사실과 장차 하늘 나라에 높이 들림 받을 것이 우리의 높음입니다. 이보다 더 큰 자랑이 우리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 6:4)라고 하였습니다.
3. 부한 형제의 자랑
다음으로, 야고보 사도는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라고 경계했습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의 욕망 가운데 가장 큰 욕망은 물욕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재물만 많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며, 마음의 소원들을 다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물을 얻기 위해서 우정이나 사랑을 저버리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팔거나 남의 목숨을 빼앗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공직자라고, 지도자라고, 도덕가라고, 종교가라고 점잖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돈 앞에서는 인격도 자존심도 없어지고 마는 것을 숱하게 보아 왔고, 또 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므로,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펄쩍 뛰겠지만, 돈의 노예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재물에 대한 욕심은 절대로 재물로 만족될 수 없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라고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습니까?
재물이면 안 될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다고 확신하여 재물의 노예가 되기까지 하지만, 인생의 값진 것들인 우정과 사랑, 의와 진리, 자유와 신령한 기쁨, 특히 영생을 얻는 데에는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얻는 데 커다란 장해 요인이 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적인 소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더 영적인 것들에 무관심해지고, 또한 영생을 얻으려는 열정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로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던 관원이며 부자인 청년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청년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가진 재물이 많아서 심히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막 10: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부한 형제들은 가진 부를 자랑하는 대신에 낮아짐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경고는 지위나 출생 혹은 다른 외적인 것들에 있어서 이웃보다 더 나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낮아짐”이란 겸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재물로 인한 자만과 세상적 소유를 영광으로 알던 교만한 마음이 세상 모든 소유의 헛됨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겸손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재물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만 한다는 겸손만이 부자들의 자랑거리가 되어야만 합니다.
부한 형제가 낮아짐을 자랑해야 할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는 모든 부란 풀의 꽃과 같이 없어져 버리는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이와 같이 세상 부의 영광은 태울 듯이 뜨거운 태양 아래 있는 사랑스런 꽃같이 덧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을 갖기 위해 전 생애를 투자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부란 결국 그 사람의 손에서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보화들뿐입니다.
재물의 헛됨에 대해 잠언 기자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 23:5).
4. 맺음말
우리가 낮아질 때는 열등감과 좌절감 그리고 자괴지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높음 곧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성령을 좇아 성결한 생활을 하는 것과 장차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높여 주실 것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해질 때는 자만과 교만 대신에 더욱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겸손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