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피디아에서 4년 차 여행작가로 지금 글을 쓰면서 어쩌면 이보다 더 뭉클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을 것 같다. 얼마 전부터 꿈꾸어왔던 전시에 대한 부푼 기대. 사진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전시에 대한 꿈이 늘 있었다. 그런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이곳 심헌 갤러리에서.
나를 이야기하다
심헌갤러리
임하람 첫 개인 사진전 'ME'
2023.01.26-02.04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심헌갤러리'에서 나의 전시를 했다. 첫 개인전이니 만큼 떨린 마음으로 1년간 준비했고, 그 결실을 올해 1월 말 맺게 되었다. 수많은 나에 대한 감정을 담은 전시. 어쩌면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첫 발을 디딛는 순간이 형태로 찾아온 것 같다. 목요일부터 시작해 지금 월요일까지 전시가 진행된 상황. 나는 이 모든 것이 여전히 꿈만 같고 설렌다.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활동해온 이곳 두피디아에 글을 쓰게 되어 영광이고 기쁨으로 다가온다.
식탐과 자격지심
食貪: 식탐
식탐을 관통하는 말이 있다. '눈이 배보다 크다'라는 말. 내 눈은 배보다 3배는 큰 듯하다. 그릇 안에 담긴 음식들은 왜 이렇게 부족해 보일까. 음식 하나만 주문하자며 '배달의 민족' 앱을 키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여러 메뉴를 담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식탐은 좋지 못한 식습관도 만든다. 남기면 아깝다며. 음식을 버리는 건 옳지 못하다며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계속 음식을 섭취하게 만든다. 억지로 음식을 쑤셔 넣어 배가 찢어질 때까지 계속되는 식사. 옳지 못한 식습관은 즐거워야 할 식사 자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늘 욕심내고, 후회스럽게 만드는 식탐. 이는 내가 버리고 싶은 감정이자, 가장 고치기 어려운 감정이다.
暳秀 : 자격지심
누구나 '자격지심'은 있다. 깊이와 넓이가 다를 뿐.
이십 대 후반 나는 '나'를 혐오했다. 생긴 것부터 하는 행동과 말투, 모든 것을 경계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매일 몇 차례씩 절규했다. 자기를 비난하고, 실패자라며 내리깎는 일상은 점차 범위를 넓혀갔다. 나에 대한 혐오가 가족을 향해, 친구를 향해, 주변 모든 것을 향해 뻗어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자격지심'이 나를 옥죄고 있다는 것을.
자격지심을 극복하고 싶었다. 내 주변 사람에게까지 나의 나쁜 감정을 물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으로 나왔다. 상처로 얼룩진 모든 부분을 깨끗이 씻어냈다. 잘 지워지지 않아 때로는 울고, 때로는 절망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천천히 자격지심이라는 깊은 수렁을 빠져나왔다. 그때 나는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놀랍도록 반짝이고 있는 나 자신을.
자신을 차가운 쇠창살에 가두며 그곳에서 자신의 장점마저 잃어버리게 하는 자격지심. 모든 부정적으로 만들어 옥죄이는 이 감정을 우리는 경계해야한다. 나는 이 작품으로 그럴 필요가 없다 말하고 싶다. 굳이 자신에게만 기준이 높을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자. 그러면 놀랍게도 반짝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테니.
맨 아래 사진이 '고통'
고통에 관하여
苦痛: 고통
산다는 건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과 같다. 나는 고통과 늘 동행한다. 기쁘고 즐거울 때도, 미친 듯이 아프고 괴로울 때도 말이다.
고통은 가장 여린 부분을 파고들며 나타난다. 어떨 때는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몸이 아프기도, 어떨 때는 누군가가 쉽게 내뱉은 말로 상처를 받기도 하며 말이다. 그럴 때면, 고통은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와 나를 하루 종일 괴롭힌다.
그렇다고 고통이 불행할 때만 있냐. 내가 생각하는 고통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복합적이라 행복할 때마저도 문득 고통이 찾아온다. 너무나도 즐거운 자리에서도 문득 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고통스럽다. 맛있는 걸 먹는 와중에도 살이 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고통스럽다. 그렇다 행복과 불행은 동시에 찾아오듯 불행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 불행의 크기가 크지 않더라도 문득 찾아와 기분을 어지럽힌다.
고통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깨닫길 바란다. 반대로 말하면 행복도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맨 아래 사진이 '사랑' 위에서 두 번째 사진이 '동심'이다.
사랑과 동심에 대한 이야기
好時節: 동심
누가 봐도 특이했던 아이에게 특별하다 말했던 가족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아이에게 장롱 위는 놀이터이자, 미술관이었다. 형형색색 크레파스로 하얀 도화지 위에 가득 채웠던 그림들. 정형화라는 걸 몰라 하늘은 분홍색으로, 무지개는 거꾸로 칠하며 흡족해했던 그 시절. 모든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이를 호시절이라 말한다.
愛情: 사랑
사랑은 없는 거였다.
몽글한 감정의 씨앗이 마음대로 뿌리내려 꽃을 피운 뒤, 저버린다.
짙게 풍길수록 커다랗게 자리 잡아 끝내 상처로 남아버리는 향기
꽃내음은 금세 악취로 변해 괴롭히고, 또 괴롭힌다.
사랑이란 게 그렇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내어준 만큼 아프다.
몽상을 끝으로
夢想: 몽상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었고,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세상을 구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비웃었다.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 말하는 사람과 산 위에 배를 만드는 사람에게 조롱 섞인 놀림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을 바꾼 건 하늘을 날 수 있게 만든 라이트 형제였고, 세상을 구한 건 산꼭대기에 지은 방주였다.
나는 라이트 형제가, 노아가 되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세상에 유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상상했다. 그리고 꿈꿨다. 머릿속의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두 발로 뛰었다. 지금 보고 있는 사진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시를 하고 싶었고,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유명해지고 싶다. 누구보다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을 담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사진을 통해 세상이, 사회를 선하게 바꾸고 싶다.
어느 몽상가의 다짐
그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있지만, 다 소개하기엔 어려워 이만 글을 줄여본다. 지금도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전시. 전시가 끝날 때까지 많은 사랑을 받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줄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