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출산에 의한 부정
출산이란 고대 세계에서 신비 경이 그리고 위험으로 인식되었다. 출산의 과정이 새로운 생명의 시작과 동시에 산모에게는 피와 신체적 고통과 위험이 수반되는 것으로 본 장에서는 의식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신체적이고 의식적 부정에 대한 규정을 언급하고 있다. 이 정결법들은 산모를 보호하는, 노예처럼 취급당했던 고대 근통세계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적 규정이다.
산모의 정결규례
1- 2: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땡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출산 자체는 원래 하나님의 문화 명령, 즉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 명령의 일부분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다(창 1:28). 그러나 범 죄 후 출산에 수반하는 출혈과 산모의 고통과 허약 및 분비물 퉁으로 출산 현상을 의식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남아를 출산했을 때에는 철일간 부정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남자아이를 낳는 것은 모든 여인의 희망이었다. 메시아가 태어날 약속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신실한 여인들은 여인의 자손에서 태어날 메시아를 기다렸다(창 3:15).
경도는 월경을 의미한다. 여기서 부정한 기간은 철저하게 타인과 접촉이 금지된 절대적 부정기간이었다. 이것은 피를 흘리기 때문이었고 다른 측면에서는 신체가 허약한 기간 동안 감염의 위험을 줄이는 위생적 및 보건적 의미도 있었다. 건전성과 정상성을 벗어난 것은 다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출산 후 하혈이 있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
남아 출산시의 부정
3-4: 3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4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할례란 출생 후 8 일 만에 사내아이의 생식기 끝의 표피를 잘라내는 종교적 의식으로 오늘날의 포경 수술과 비슷하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의 표시였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약속의 성취에 대한 확실한 표로 제정되었고(창 17:12; 22:17), 이삭에게도 행하여 졌다(창 21:4). 하나님의 구원과 성별 그리고 인간이 악과 부패를 제거한다는 의미로 행해졌다.
이것을 통해 상징적으로 어린이를 언약 관계 하에 두게 되고 그 아이는 언약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언약 관계의 표가 인간의 몸에 새겨졌다는 의미이다.
33 일간의 부정한 기간은 남아를 낳은 산모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출산 후 칠일간의 절대 부정 기간을 합하면 40일간의 기간이 된다. 이 기간 동안 산모는 종교 집회에 참여하거나 성소 접근이 금지되었다. 이 40일간은 의식적으로 정결케 되기 위한 기간으로 근신의 기간이었다.
여아 출산시의 부정기간
5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 륙일을 지나야 하리라
여아의 출산에 따른 부정기간이 남아의 경우보다 두 배나 길게 나타나 있다. 이 조항에 대해서는 성경에 어떤 설명도 없다. 여성의 원죄에 대한 책임(딤전 2:14), 마귀에 의해 여성이 공격받을 가능성이 더 높은 점, 여아 출산시 피를 더 많이 흘린다는 설, 메시아 사상 등 몇 가지 이유들이 추측되었지만, 만족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고대근동의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여자보다는 남아를 선호했던 상황을 고려할 수 있다.
남자가 기득권을 독점했던 시대였다. 집 안팎의 대부분 일들이 여자들의 몫이었다. 출산했다는 사실도 아랑곳없이 산모는 고된 노역에 시달렸다. 더군다나 출산 시 여자아이를 낳은 것에 대한 산모의 심리적 및 사회적 냉대를 부정기간이라는 보호아래 쉬게 하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회복되는 기간이었다.
특히 80일을 부정기간으로 보내는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임신하는 것을 막음으로서 산모의 건강에 큰 유익을 주는 조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규정이다. 옛날 한국에서도 아이를 낳을 때 삼칠 기간을 정하고 출산 가정에는 고추 등을 새끼에 메어 달아 외부인의 접근올 삼가는 것도 감염 방지 및 유사한 사례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정결 예물
6: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년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 비둘기 새끼나 산비 둘기를 취하여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출산한 산모가 정결케 되기 위한 기간, 즉 남아의 경우에는 40일, 여아의 출산 시는 80일이 경과한 후 최종적 정결 예식으로 산모는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다. 여기서 드려진 번제와 속죄제는 초기의 일반적 제사 규정과는 약간 특이하게 되어있다.
정결 예물에서는 번제가 앞서고, 어린 양을 드렸다. 번제로 어린 양을 드리고 속죄제로 비둘기 새끼를 드렸다. 번제는 아이를 출산한 것에 대한 감사이며 생명에 대한 재헌신의 표로서 드렸다. 잘못을 했다거나 그에 대한 배상의 속건제에 대한 언급이 없이 여기서는 산모의 인간성의 죄악성에 대한 속죄제며, 피를 흘린 부정에 대한 속죄로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속죄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인간의 출생과 관련된 생래적 원죄로도 그래서 죄인의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절대적 필요성을 볼 수도 있다. 산모는 제물에 안수하거나 죄의 자복이 없이 제사장에게 드려졌다. 여기서는 남 . 녀의 구분 없이 비둘기를 속죄제로 바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 앞에 동등하게 죄인이라는 점과 속죄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극빈자의 예물
7-8: 7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8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하나는 속죄 제물로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제사장이 여인을 위해 속죄하고, 만약 형편이 여의치 못할 경우 어린 양 대신에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로 번제를 드릴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은 자애로운 하나님의 관심 표명이다. 후일 예수님의 봉헌 예식에서도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비둘기 두 마리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다(눅 2:22-24), 이 사실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의 형편이 가난했음을 보여 준다. 요셉과 마리아가 이 속죄 규정올 지킴으로써 그들은 비록 가난한 처지였지만전 율법을 지키려는 그들의 경건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은 후일 가난한 과부의 두 랩돈 헌금을 부자들의 많은 헌금보다도 더 높이 평가하셨다(막 12:41-44).
구속사관
여인이 아기를 출산하는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문화명령의 일부이다. 출산으로 인한 남녀 성별에 따른 부정기간은 여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관심의 표현이다. 고대 근동에서 여성이 출산과 함께 무거운 중노동으로 시달리던 환경에서 출혈로 인한 부정기간을 설정하고 외부와의 차단을 통해서 회복의 기간으로 설정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약에서 구원의 주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인류의 대표자로서 이 출산의 정결과정을 거치셨다. 예수님 부모님의 성경의 원칙을 준행하려는 경건을 보여준다: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바 첫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눅 2:21-24).
출산으로 인한 산모의 번제 및 속죄제의 제사는 출혈과 관련된 인간의 원죄성 및 죽음을 향한 탄생으로서 구세주를 통한 구원의 예표로도 보여진다. 번제에서 출산으로 인한 새 생명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정신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