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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스도인의 삶
모든 사람은 끊임없는 욕망의 추구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아무런 욕구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온전치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인간의 욕구는 무엇일까?
첫째는 의식주의 추구일 것이요, 둘째는 신체적 정신적 안정의 욕구이며, 셋째는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인정의 욕구 등이 있다. 결국 사람들은 이런 욕구들이 모두 성취되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들은 육체에 필요한 욕구들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영에 속한 사람의 욕구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욕구는 영적인 욕구이며,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욕구다.
(1) 성도의 욕구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성도의 욕구는 '하나님이 나라와 그의 의'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성도는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것들과 같이 '먹을것, 입을것, 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전력하는 자들이다.
(2) 먼저 추구해야 할 것
성도나 이방인이나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의식주의 해결을 위한 필요조건들을 요구한다. 이러한 사실은 성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세상 물질이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단지 먹고 살아가는 문제나 육체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성도의 주목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도의 '최고선'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정확한 의미는 단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먼저' 구하라고 한다. 즉 그 일에 우선권을 두고 제일 먼저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의도로 이 말씀을 하셨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주께서 교훈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성도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그러므로 왕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백성의 당연한 의무다.
* 벧전 1: 9-11 –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3) 하나님의 나라
* 요 3: 3-5 –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을 의미한다.
* 눅 11: 20 -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그의 통치는 구원 사역으로 말미암는 성도의 영생과, 궁극적인 몸의 구속, 그리고 피조 세계의 구속을 포함합니다.
* 고후 5: 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롬 8: 23 -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 롬 8: 19-21 –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출발은 그리스도 예수를 받아들이는 성령에서 출발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능력과 만물이 하나님의 의로운 뜻대로 복종 되고 사용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만물 안에 충만할 뿐만 아니라 그의 나라가 점점 확장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의
* 고후 5: 21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의에 대해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 신 1: 16-17 – 16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 신 32: 4 -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 암 5: 15, 24 –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 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갖는 관계 속에서 의롭게 되는 것, 즉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을 찾고 이루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죄의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자는 아무도 없다.
* 롬 3: 23-24 –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롬 5: 12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모든 인간은 구세주 예수 안에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사람을 입을 때까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의를 이룰 자가 없다.
* 엡 4: 24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롬 1: 17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역 안에서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의'가 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입은 자들은 성결과 의로운 생활을 해야 하다. 이와 같은 삶은 곧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이라 할 수 있다.
* 마 5: 6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그리고 이 의는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에 계시되어 있고 구원함을 받은 자의 양심이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된다.
(5)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계속적으로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당연히 따르는 결과가 있다. 그것은 의식주에 관계된 욕구들 또는 육적인 온갖 욕구에 대한 염려로 인해 시달림을 받지 않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한 추구로 일관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의 물질적 부요를 누리기 때문이다.
마치 하나님의 뜻에 합한 지혜를 구한 솔로몬의 지혜 외에도 부와 명예, 권세의 축복까지도 받았듯이 말입니다.
* 왕상 3: 4-15 –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15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 때 덤으로 받아 누리는 물질적 부요의 축복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결국 성공적인 삶의 전체 조건이며 유일한 길이다.
마 6 : 34.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
주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족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날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 하루로 충분하다. 내일의 것을 오늘 염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루하루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 된다. 사람은 일을 할 때 조금 염려하기도 할 것이나,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면 된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고 내일 일을 오늘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염려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에이스 텐 아우리온) 염려하지 말라.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내일은 언제나 다시 다가오며 따라서 내일의 문제는 결코 오늘 다 처리할 수가 없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늘의 은혜는 오늘에 족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면 새로운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야 할 것임을 암시(hint)하셨다. 즉 내일의 염려는 내일의 새 은혜로 감당해야 한다.
2]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주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또다시 반복해 말씀하신 후, 그 이유를 한 가지 더 첨가하셨다.
그것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할 것이고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기 때문이다”는 이유이다.
인생은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날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 하루로 충분하다. 내일의 것을 오늘 염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루하루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 된다. 우리가 내일 일을 오늘 염려하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는 어리석은 불신앙에 불과할 것이다.
3] 한 날의 괴로움은
여기서 '괴로움'(*, 카키아)이란 말의 문자적 의미는 인간적 견지에서 본 '악'을 뜻하나 본문에서는 윤리적 측면의 '죄악'을 뜻하지 않고 인간이 감내(堪耐)하기 힘든 고초, 역경 등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가끔 우박으로 인해 수확물을 몽땅 잃어버리는 등의 절망적 재해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70인 역은 히브리어 '라아'(*)를 '카키아'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라아'는 '악한', '불운한', '곤고한'의 뜻이 있다.
결국 '한 날 괴로움'이란 우리의 현실에서 각 날(日)들에서 마주치는 온갖 어려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4] 그날에 족하니라.(*, 알케톤)
그 날에 주어진 것은 그 날의 고통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원리, 즉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야 하는 내일에 대한 원리는 결국 염려의 근원적 치유(healing)를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넘치는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실로 내일 일의 염려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기울여야 할 관심은 오늘로서 끝나야 할 것이며 내일의 불행과 고난(distress)은 오늘 앞당겨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B. Sanhedrin 100b;b. Berakoth 9a).
한편 본문의 교훈적 말씀을 살전 5: 16-18과 비교해 볼 때, 이는 단순한 권면과 위로의 메시지가 아니다. 염려 자체가 불신앙적 행동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진정 '내일'의 주인은 고뇌하는 '인간'이 아니라 은혜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살전 5: 16-18 -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결론적으로, 주께서는 본문에서 우리가 의식주 문제에 대한 염려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쓰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세상의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다. 우리는 세상의 염려를 버리고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 믿으면 누가 밥 먹여 주냐?’고 세상 사람들은 말하지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밥을 먹여주실 것을 확신한다. 오직 우리가 믿음과 순종으로 살면 그럴 것이다.
5]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은 오늘 우리의 행동을 규제하고, 내일 일에 대한 염려는 오늘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각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1) 평안의 유형
내일의 일을 염려하지 않는 사람에도 두 가지 형태의 사람들이 있다. 그 첫째는 아무런 생각 없이 흥분된 가운데 들떠 있거나 어떤 새로운 환상이나 즐거움에 몰두한 채 살아가는 부류인데 그들은 어떤 뚜렷한 목표나 계획 없이 쾌락을 즐기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둘째 유형은 그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날마다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며, 자신들의 능력도 닥쳐오는 모든 순간순간의 일도 하나님께 맡김으로 평안을 누린다.
즉 하나님께서 앞날의 모든 일까지도 준비하신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전자는 염려 자체를 회피하는 자들이라면, 후자는 염려를 정복하고 초월한 상태에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주께서는 성도들이 둘째 유형에 속한 자로서 살기를 원하신다.
(2) 염려에 대한 교훈
예수께서는 주로 가난한 무리를 대상으로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주님의 청중들은 항상 가난했기 때문에 일상적인 의식주로 끊임없이 염려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그러한 염려로부터 해방되는 귀한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것은 내일의 일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염려는 우리의 생활에 현존하는 명확한 실재다. 그러므로 평소에 신앙이 좋다고 자부하는 자들도 이 같은 염려의 세력이 밀어닥치면 신앙을 적용할 겨를도 없이 염려의 포로가 되어 깊은 근심과 좌절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장래 일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고 무익할 뿐이다. 왜냐하면 염려로서 어떤 일이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내일의 문제까지 오늘 끌어안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일 일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즉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모든 염려를 그에게 맡기고 사는 것이다.
(3) 무의미한 내일의 염려
만일 성도가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면 오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들이 구원을 이루는 그날까지 우리를 유혹하는 염려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내일의 일을 염려하는 '단편적인 시각'을 버려야 한다.
장래의 염려를 거부하고 이렇게 구하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오늘 하루를 범죄하지 않고 지내게 하옵소서' 이것이 불안과 두려움의 세력을 물리치는 현명한 방법이다.
(4) 염려하지 말아야 할 적극적 의미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내일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서 관여하지 말고 현재만을 위해서 살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역설적인 말 같지만 오히려 이 명령은 내일 일에 관한 준비와 대책을 요청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내일의 일을 염려하다가 오늘 실행할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내일로 미루고 그로 인해 염려하지 않았어도 될 내일까지도 걱정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오늘에 충실하고 현재의 삶에 성실함으로써 다가오는 미래를 복된 것으로 대비하라는 말이다.
성도 여러분! 쓸데없는 염려와 걱정으로 오늘의 삶을 소홀하다가 진정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될 미래를 맞지 말고 미래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고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순간들에 충실함으로 복된 내일을 자신 있게 맞이하는 성도가 되자. 주님은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하기 전에 오늘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함을 주의하자. 내일이 소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오늘에 대한 신앙 현재적 신앙을 가진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6]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 마 6: 31-34 )
잠언 기자의 유익한 기도가 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 7-9)
물질의 은사자로 충성하려면 의식주의 공급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더욱 넘치는 은혜를 말씀하고 있다. 한 마디로 큰 채움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다.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다. 물질을 맡은 청지기가 되고자 합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잘 기억하시기 바란다.
(1)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려면 먼저 성령이 임하여야 한다.
* 막 9: 1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 롬 14: 17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먼저 성령을 구하기를 바란다. 성령의 지배 아래 사업을 일으켜야지 사탄의 지배 아래서는 안 된다. 마귀는 훼방꾼이다. 마귀가 다스리면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밖에 없다.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느냐고 반문한다. 이 세상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아직도 부분적으로 마귀의 지배하에서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를 되돌이켜보라.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도 두려워서 옮기지 못하던 나라가 이만큼 산업이 발달하고 복을 받은 것도 우상과 미신을 타파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 복을 받으려면 더 변화되어야 한다. 진정 회개하면 통일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성령이 함께하실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복 받을 일을 하고서도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살펴보면 기도 생활이 부족하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하심이 없고 복을 가지고 내려온 천사들이 맘대로 활동할 수 없다. 다니엘서를 보면 응답을 가지고 내려오던 천사가 스므날 동안 지체하는 일이 있었다.
* 단 10: 12-21 – 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13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14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15 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16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17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와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하니 18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19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20 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 21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
군장 미가엘이 도와주어 응답이 임하였다. 강력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더 기도하시고 더 충만하시기 바란다. 사탄의 지배가 사라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한다. 그때 더하여 주시는 은혜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2) 그의 의를 구하라.
그의 의는 일반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다.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을 뿐 아니라, 예수 안의 생명의 성령으로 변화 받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신학적 명칭으로 칭의와 성결이라고 한다. 요약해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순탄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 엡 5: 5 -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죄악을 품고서 형통할 수 없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고통을 당했다.
* 눅 15: 16 -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하다 얼마나 사로잡힘과 재난으로 고통당했다.
* 왕상 8: 47 – 그들이 사로잡혀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 왕하 17: 23 -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드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 스 2: 1 -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뜻대로 살기 바란다.
* 슥 14: 2 -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눅 21: 24 -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뜻대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형통함을 주신다.
그의 의는 이런 면에도 해당이 된다. 복이 약속된 소득의 십분의 일이라든지, 혹은 현세에서도 백 배의 복이 약속된 영혼 구령(救靈) 사역, 기타 하나님께서 감동 주시거나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실 일에 힘쓰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부자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풍족하게 드린 과부의 헌금이 더 의롭게 인정받은 바로 그런 의를 말한다.
* 눅 21: 1-4 –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고후 9: 8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고 이어서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했다.
성경에는 바로 이런 의도 있다. 베푸는 자를 의인이라고 했다.
* 시 37: 25-26 –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우리가 귀한 일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더욱 풍성하게 더하여 주신다. 야곱의 아들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을 보라. 섬겼더니 한 지파로도 부족하여 두 지파로 나누어 복을 주셨다. 유다도 보라. 목숨 걸고 섬겼더니 가장 큰 땅을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면 또 생기고 봉사하면 또 생기는 기적을 경험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은 물론 의식주 모든 것에도 부족함이 없이 더하여 넘치게 하신다.
(3) 믿음에서 순종하라.
* 신 1: 36 -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 삼상 15: 22 -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여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또 나온다. 여기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접속사다. 즉 이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려면 절대 믿음에 서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냥 단순히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앞의 말씀과 연관해서 보라.
내일을 염려하는 불신앙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도 없거니와 여러 선한 일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일의 일을 염려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주저한다. 구제해 버리면 난 어떻게 살아? 헌금하면 난 어떻게 살아? 건축 헌금하면 난 어떻게? 다 하라 했나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일을 염려하며 주저한다. 단순한 일을 한 가지 하려고 해도 내일 일 때문에 할 수가 없다.
* 히 13: 17 -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공급하셔서 쓰시려는 귀한 일군 삼으려고 해도 하나님의 책임져 주심을 믿지 못하고 내일을 염려하고 두려워하면 결코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없다. 믿음이 부족하다면 작게라도 시작하기를 바란다. 채우시는 체험 속에서 믿음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면 더 순종해 보라. 옛날에 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일을 순종하고도 여전히 먹고살며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도리어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히 5: 7-10 –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 롬 5: 16-19 –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이런 절대 믿음 절대 신앙 없이 하나님의 일군이 될 수 없다. 믿음이 작아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절대 믿는 자만이 계속하여 더하여 받는 기적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큰일을 이루심과 같이 하나님의 귀하고 크게 쓰임 받는 청지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염려하지 않는 절대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여 더하여 넘치는 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도한다.
* 벧전 2: 12-17 –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 딤전 2: 11 -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 벧전 3: 1-7 –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