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봄호
수필은 인생이다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누가 인간을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야만적 폭력의 들판에 내던져진 한 마리 순한 사슴과 같은 존재라 했는가. 모든 문학이 다 그러하듯이 수필문학 또한 ‘문명의 얼굴을 한 야만의 시대, 인간성 상실 시대에 우리들 인간다운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것은 수필문학을 비롯한 모든 문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다. 특히 수필문학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가식없이 구체적으로 표출한다. 그러면서 그 속에 깃들어 있는 비인간적인 삶이나 부조리한 삶, 모순되거나 가식적인 현실 등을 진솔하게 밝혀낸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각성과 시정을 촉구한다. 때문에 수필문학은 삶의 풍경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요, 우리들 현실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인간적 행위이며, 또 이런 이유로 우리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에 물질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것은 ‘근대화’가 세계적 차원에서 확산된 20세기에 발생된 가치 전환기 인식이다. 이후 돈이나 집, 좋은 물건이나 자가용 등과 같은 것들이 거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이런 것들도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신앙이나 문학과도 같은 인간정신을 아름답고도 풍요롭게 해주는 정신적 행위도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현대기술문명이 ‘정합적 이성’에만 빠질 경우, 인류의 행복에 과학과 기술이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성을 파괴하고 영혼이나 마음 등 모든 비과학적 영역을 삶으로부터 추방시키며 자연과 생명의 질서를 파괴한다. 만일 이런 것들을 배제시킨 채 물질적인 것들만 추구된다면 그런 인간 사회는 손상된 악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윤연옥의 <며느리와 파김치>는 시대 변화에 따른 신세대와 기성세대의 세대차를 다룬 작품이다.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시어머니의 자격을 갖게 된 작가는 이 수필을 통해 모두가 과거의 룰이나 가치관 또는 관습에서 탈피하여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융통성을 갖자고 주장한다. 작가는 아들을 장가 보내고 난 후 들리는 갖가지 고리타분한 제보 자료를 통해 우리 사회의 편견을 지적하면서 바람직한 고부관계 설정을 위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고정화된 사고방식이 얼마나 많은 편견을 낳고 관계나 사이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데 있다. 부모가 묵은 김치 맛이라면, 요즘 젊은이들은 살아있는 겉절이 맛이므로 융화하려 애쓰기 전에 어우러짐이 먼저라는 게 작가가 던지는 문학적 메시지다. ‘묵은지는 묵은지 대로, 겉절이는 겉절이 대로, 파김치는 파김치 대로 한 밥상 위에 올려 져야 하는 시대이니, IT산업시대에서 옛것만 고집한다면 이치가 맞지 않는다’는 진술로 볼 때, 작가는 고부간의 관계에 대해 개별적 단선적 시각보다는 해체적 다각적 관점을 취한다. 세대간의 차이는 시대가 변한 만큼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한다는 진술에 녹아있는 작가의 유연하고 열린 사고방식이 돋보인다. 말하자면 그녀는 이 수필을 통해 각 개인의 존엄성 존중을 외치며 우리 기성세대의 각성을 촉구하는 문학적인 인간행위를 하고 있다고 하겠다. 타인을 먼저 인정하려는 유연한 작가의 자세에는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인문학적 사유가 묻어있다. 이런 열린 사유와 말과 글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은 지성적인 사유의 실천으로서 바람직하지만, 문장에 있어서 ‘~해야 한다’ 등의 서술어를 많이 쓰면, 주제 전달 의도가 문장에 투영되어 교시성이 강조되면서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은희의 <묘계질서>은 대단히 높은 창작적 열정과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하겠다. 수필은 문학이기 위해서 문학적이어야 하고, 예술에 속하기 때문에 예술적이어야 한다면, 이 수필은 이런 조건에 부합한다고 보면 된다. 작가는 때로는 머리로도 수필을 쓰고, 때로는 가슴으로도 쓴다. 아마도 이런 작품이 우리가 지향하는 정신적 감동을 위주로 하는 지성 수필이 아닐까. 묘계질서妙契疾書란 ‘섬광 같은 깨달음이 흔적 없이 날아가기 전에 잽싸게 적는 메모’를 말한다고 한다. 메모가 작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수필의 메시지는 제목인 ‘묘계질서’에 잘 함축되어 있다. 작가의 탁월한 인문적감성과 지성적 ‘사유’는 작가정신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진선미의 ‘진’을 나타내는 반면, 독자와의 공감 세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미’를 생성하기도 한다. ‘묘계’라는 제재는 이론적 인식에서 이성적 사고를 위한 감각적 소재를 제공하고, 예술적 생활에서는 상상력의 지배를 받을 소지를 마련하며, 미적 인식에서는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인간적 삶과 행위의 상징적 징표가 된다. 따라서 ‘묘계’를 통한 지성적 정서적 세계인식은 매우 소중한 심미적 계기를 독자에게 부여한다고 하겠다. 작가가 수필 창작을 통로로 이러한 지성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 점에서 필연적이고 장려할 만한 것이다. 이 수필의 우수성은 주제의 구체화를 위해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알게 된 다양한 지식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무의미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사물과 대상을 새롭게 만나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있다. 카파와 매터라면, 그 순간을 절대로 그냥 스치지 않으리라. 섬광처럼 빛나는 그것을 뇌 저장고에 아니 카메라의 셔터 위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기록하리라.’라는 문장은 문학가로서의 열정을 공감에 이르게 하는 장이다. 사진에 의존하게 됨은 결국 인간의 한계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큰 세계 속에서 작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황홀한 기록을 위해 어깨 통증이 일어도 이 작업을 포기할 수가 없다는 창작에의 의지와 열정이 먼 공감의 세계를 가까이로 이동시키고 있다. ‘메모’로 대체되는 ‘셔터’를 통해 실감을 확보하고, 집에 와서 실감의 유리와 보수를 통해 수필을 창조해내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박경빈의 <주대환의 진면목>은 남편의 술친구들이 살아오면서 만들어온 우정과 에피소드를 기술식으로 써내린 개인수필이다. 이웃사촌으로 인연을 맺고 한 번씩 모여 술을 마시며 우정을 나누는 주대환회에 얽인 이야기를 유머라는 양념에 버물어 재미있게 썼다. 글을 읽기 전에는 누구나 ‘주대환’을 사람 이름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런 사소한 반전이 이 수필의 묘미를 더해주는 데도 한 몫 한다. 주대환은 일명‘술을 대하면 환장한다’는 명목으로 남편들의 이름, 곽주태의 주와 이응대의 대와 이기환의 환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니, 그 기발한 작명 발상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술 한 잔 생각나는 날이면 수시로 번개모임을 하니, 이들 모임에는 술자리에 따른 에피소드가 많다. 부부 모임이라 주로 주석은 아내들이 남편의 주사 부리는 것을 서로 고사하는 자리다. 이 자리가 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 시간과 공간이 되니, 가정의 평화에도 기여해 왔던 것 같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겠지만 문학이라고 하는 것에 없어서는 안 될 정서가 있다면, 그 하나는 외로움이고, 또 하나는 사랑이 아닌가. 외롭고 삶에 지친 인간은 어디엔가 어깨를 기대고 피곤한 육신과 영혼을 위로해 줄 대상을 갈망하게 마련이다. 남편 친구들의 우정사를 무엇보다도 ‘우물을 파서 맑은 물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펌프질로 뻘건 황톳물을 쏟아내야 하듯이, 각자 부부의 정을 돈독하게 다져가기 위해 탁자 한가득 쌓이던 빈 술병과 비례해서 늘어놓던 허물들을, 성토할 장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의미 부여하는 작가의 진술은 주대환회의 순기능을 나타내는 것으로 독자와의 공감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고 하겠다. 60을 바라보는 나이다 보니 이제는 남편들의 허물을 들추기보다는 상대를 이해하고 내세우려 많이 애쓰는 모습들이라고 주대회의 변모된 모습을 전하면서, 육십대는 서로를 아끼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만 살아지는 나이라는 표현으로 수필에 손맛을 더한다.
시대의 추이를 통찰하고, 이웃한 인연들과 더불어 열린 가슴으로 현실에 부딪히는 일이 이 땅에 힘들게 살아가는 타자들을 위한 문학인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특히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수필이라는 문학행위를 통해 삶의 다양한 면을 펼쳐 보임으로써 문학이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결국 수필문학과 인간존재 및 인간의 삶은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공존의 관계가 되는 셈이다. 복권에 관한 이야기를 쓴 가기천의 <7241>, 색에 강한 집착을 보인 여러 사람의 예를 자신의 초록 광에 대한 이해의 근거로 내세우고, 초록에의 집착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강경애의 <초록 광>에도 인간 삶의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