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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목사님께서 쓰신 칼럼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십시오.
『일본에서 나온 책 중에 "기업에는 수명이 있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내용인즉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에 등장하여 한 때는 최 상위권을 달리던 기업들 500기업을 대상으로 수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수명이 30년이었다는 내용이다. 한때는 난다 긴다던 기업들이었지만 그 수명이 30년 안팎으로 사라져 간 것이다.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짐작된다. 평균 수명 30년을 넘어서 100년 가까이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그런 기업들이 그렇게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분석하였더니, 호경기에서 오히려 체중을 줄이고 다가 올 불경기를 예비한 기업들이었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잘 나갈 때에 오히려 이노베이션을 실시하여 체중을 줄이고 다가 올 불경기에 대처한 기업들이었다.
그리고 불경기를 왔을때 위축되지 않고 호경기를 대비하여 인재를 기르고 기업의 근육을 튼튼히 한 기업들이 기업 평균수명 30년을 넘어 백년이 지나도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이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서양 속담에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실로 웃는 자다"는 속담이 있다. 인생은 한 평생을 길게 보아야 한다. 한 때의 실패에 좌절하고 포기하여서도 아니 될 것이고, 한 때의 성공에 우쭐하여 방심하거나 교만하여서도 안 된다. 인생을 길게 보고 실패하였을 때에 성공의 날을 꿈꾸고, 성공하였을 때에 다음에 닥칠 실패를 대비하여야 한다. 나는 30세에 목회를 시작하여 올 해로 42년째 목회를 하고 있다. 다른 동료 목회자들은 70에 목회를 끝내고 한가한 은퇴목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지난날에 실패를 많이 겪었기에 이제부터나마 제대로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80세까지 목회를 하려 한다. 지금이 72세이니 앞으로 8년이란 기간이 남아 있다. 지난 42년간의 경험을 거름으로 삼아 이제나마 제대로 하여, 8년 뒤인 80세에 은퇴할 때는 명예롭고 행복하고 멋있는 은퇴를 하여야지 다짐하고 있다. 그렇게 되려면 건강하여야하기에 오늘도 두레수도원 둘레길 7Km를 걷고 왔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실로 웃는 자다"는 격언을 좋아한다. 80세에 가서 웃는 날을 맞아야지 다짐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마지막이 될 때 우리가 어떤 인생으로 살았는 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정도 분명 좋아야하지만 실제적으로 모든 것이 마지막에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가실 때에도 사실 모든 과정은 최종의 마지막 날에 결정나도록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인류의 역사와 우리 주님의 구속사의 완성은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완전히 완성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구약의 인물들보다 나은 복을 얻었고 우리보다 이전에 살았던 신앙인물보다 우리가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학문명이나 생활속의 도구들을 보면 우리는 분명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좋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이 아니더라도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우리가 이전에 살았던 신앙인물들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면에 있어서 이전의 신앙인물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지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그 복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앞에서 더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의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보다 우리가 나은 이유 첫 번째는 구약의 인물은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 39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본문에서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증거를 받은 사람들이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증거는 뭐고 약속된 것은 뭘까요? 증거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분명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천국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들입니다. 이 증거들은 우리가 받을 것에 대한 추측이 가능하고 그 증거들을 통해 우리가 어렴풋이 우리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증거물들입니다. 우리가 퍼즐조각을 맞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합니다. 그럴 때 퍼즐조각하나하나는 증거이고 완성된 그림전체는 약속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의 신앙인물들은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추측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내주하지는 않지만 놀라운 역사로 인간에게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반복하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성령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렴풋이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느끼며 죽은 후에 완전히 살게 될 천국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예언을 받았지만 완전히 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백성들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증거나 추측이 아닌 실제로 이 땅에 오셔서 임하신 예수님을 경험했고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 성령님께서 이 땅의 믿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36절입니다.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는 대속제물이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말씀의 의미를 알려주시고 모든 증거들을 끼워맞춰서 완전한 약속의 증표를 우리에게 주시니 정말 신약시대 예수님이후의 신앙인들은 구약의 신앙인들과는 다른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신약이나 구약이나 놀라운 역사는 동일하게 일어났습니다. 구약의 역사속에서도 도무지 불가능했던 일들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에 따라 성취된 일들로 가득합니다.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신약에서는 처녀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구약에서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지고 태양이 지지 않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신약에서는 물이 포도주가 되고 큰 파도가 치던 바다가 잔잔해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은 분명히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올 것인가? 과연 그 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가 죄사함을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며 누가 그 분인지를 모르고 항상 기대하며 살아갔던 구약의 인물들이었지만 우리는 그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 분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에 대해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님께서 그 약속하신 메시야라는 알 수밖에 없는데도 구약만 믿는 유대인들은 아직도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며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실을 보면 분명히 과거의 이야기했던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 수 있는데 현실을 보면서도 그 사실을 부정하다보니 약속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왜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12세기 영국의 헴프사이즈라는 한 마을에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는 여인이 살았습니다. 그녀가 가졌던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는 사랑의 정신은 그녀가 죽은 후 800여 년의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남긴 많은 유산 때문에 헴프사이즈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어른들은 매일 6파운드씩, 아이들은 매일 3파운드씩 밀가루를 배급받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밀가루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까요? 그녀가 살고 있던 12세기경 그녀의 남편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신앙심이 깊었기 때문에 평소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인색한 사람이어서 아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병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죽기 전에 남편에게 아내를 기억하는 의미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년 상당한 액수의 돈을 기부하도록 부탁했고 남편은 마음속으로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부탁을 야박하게 거절할 수가 없어서 땅의 일부분에 불을 지른 후, 불이 꺼지기 전까지 병든 아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땅에서 생산되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병약한 아내는 불이 꺼지기 전까지 걸어갈 수 있는 데까지는 걸어서 가고 나중에는 지쳐서 기어가다시피하여 23에이커의 땅을 확보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아내의 사랑에 감동을 받은 남편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 여인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800년이 지난 지금의 그 사람들은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로 자세히 모를 것입니다. 어떤 계기로 지금 이들이 이런 혜택을 보는 지도 잘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밀가루를 보면서 그들은 그 여인의 삶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 여인이 약속했던 그 약속이 이뤄진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쩌면 신앙생활을 하기위해 구약의 신앙인물들보다 더 나은 형편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구약의 인물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하는 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지 어떻게 천국에 가는 지도 제대로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단지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체험하며 하나님에 대해 알아갔던 사람들입니다. 성경도 제대로 없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실제적으로 체험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기록을 보며 약속하신 성령님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약속하신 것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을 제대로 가르쳐주었음에도 제대로 믿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 복을 저주로 만들어버리며 굴러온 복을 차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받은 약속을 잘 간직하며 복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의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보다 우리가 나은 이유 둘째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예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0절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씀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천국을 예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회복시키실 계획을 가졌을 것이고 그 회복은 바로 처음에 아담과 하와, 즉 최초의 인간에게 허락하셨던 영원한 낙원의 회복을 말씀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온 우주를 만드시고 실제로 지구땅에 영원한 낙원을 만드셨지만 인간을 영원한 낙원을 포기했고 죄악으로 영원한 형벌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의 죄성을 도말하시고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새로운 인간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께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전한 천국, 영원한 낙원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구약에 말씀하여주셨고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확연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땅을 찾아가서 안식하는 과정을 보여줬고 신약의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천국을 찾아서 안식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은 제사를 통해 인간의 죄가 사함을 받는 불완전한 용서가 매번 진행되었지만 신약은 예수그리도의 죽으심을 통해 완전히 단번에 죄사함을 받는 완전한 용서가 이뤄졌습니다. 구약의 모든 사건들은 신약의 예수님을 증거하고 결국 우리가 찾아가야할 천국에 대해 희미하게 보여주는 예시적 사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예시가 아닌 완전히 해석된 신앙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길을 찾아갈 때는 뭔가 부담도 있고 헤메어돌기도 하고 혹시나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닌 지 걱정스럽습니다. 요즘은 네비게이션이라는 기계가 나와서 모르는 길도 지정해놓으면 안 가본 길도 잘 찾아갑니다. 하지만, 이 네비게이션도 가끔 먹통이 되기도 하고 우리가 잘 아는 샛길을 인식하지 못하여 빙빙돌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가 알고 있으면 그 길을 다시 찾는 것은 마음이 편합니다. 네비게이션을 켜지 않아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라면 정말 마음 편히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구약의 신앙인물과 우리가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구약의 인물은 천국을 찾아가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신앙인들은 천국에 대해 구원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천국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음이 다가와도 조금도 겁나지 않습니다. 천국을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그 앞 절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 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14장 1절을 찾아서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는 예수님께서 천국을 예비하러 가셔서 믿는 사람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것을 믿기에 근심하지 말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힙입어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다가 죽어도 걱정이 없는 것은 죽음 저 건너편에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천국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곳은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하나님의 평안과 사랑과 축복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진정 성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천국을 예비하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천국에 들어갔는 지 안 들어갔는 지 명확한 기준을 잡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을 완전히 모를 뿐 아니라 예수님오시기 전의 인간이기 때문에 단번의 죄사함을 받을 수 없기에 죄용서의 과정이 제대로 이뤄졌는 지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천국을 예비하셨고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죄사함을 얻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천국을 준비하신 예수님을 믿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의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보다 우리가 나은 이유 마지막 셋째는 우리로 온전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0절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구약의 신앙인물보다 나은 이유는 우리가 아니었으면 신앙을 완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경인물들은 위대한 일을 많이 이뤄내었지만 불완전한 달성을 만든 것입니다. 구약의 인물들이 경험한 신앙의 놀라운 역사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을 상속했고 받았고 획득했고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그들의 믿음을 특징짓는 것은 주로 평생을 기대하며 예상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약속받은 모든 것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성취를 보지 못했으나 끝까지 인내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약속을 받고 그 축복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다른 약속들을 믿고 그 성취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옛 언약 아래있던 성도들이 경험하기를 고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인물이 기대하고 고대했던 것을 온전케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고생을 해서 자녀와 손자가 복을 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옛 성도들은 다만 약속만을 가졌으나 우리는 약속된 것을 신적 실체를 경험하며 구약 성도들이 장차 올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우리가 온전히 이루어 받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왜 별로 다른 목사님들보다 더 뜨겁게 더 열심히 목회하는 것 같지도 않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것 같지도 않고 더 똑똑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평안이 찾아오고 후원하는 사람들이나 여러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지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 예전에 생각할 때는 내가 예전에 처음 예수님믿고 그래도 남들보다 정말 뜨겁게 정말 기도도 열심히 했던 때가 있어서 최근에는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지 못하지만 그 때 그 기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주셔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희 어머니와 전화를 하는데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고모님이 예전에 계셨답니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제일 큰 고모님이 첫째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큰 고모님이 계셨는데 학교교사를 하시던 고모님이 계셨답니다. 그 고모님은 예수님믿고 온가족복음화를 위해 신앙의 첫 단추가 되신 고모님이시랍니다. 그 고모님의 영향을 받아 둘째, 넷째 고모님이 교회도 다니시고 미션스쿨 진학도 하시고 그렇게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고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저희 아버지가 교회에 대한 불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제가 이렇게 목회생활가운데 어려움도 많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신기한 도우심의 체험과 은혜가운데 평안함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고모님의 기도와 순교때문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뜨겁게 기도했겠습니까? 신앙좋으신 분이 예전에 그렇게 기도하는 것처럼 가정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 가족중에도 목회자하나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뜨겁게 기도했습니까? 분명 그런 기도를 했을거라고 저는 생각이 들면서 그 고모님의 희생이 나에게 와서 열매를 맺는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 나서 뭔가 열매는 맺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누군가 씨앗을 뿌리고 누군가 물을 주면서 키웠기 때문에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구약의 성경역사를 온전함으로 체험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완성된 시대의 신앙인입니다. 구약에서는 잘 알지 못했던 일들을 예수님을 통해서 그리고 흘러간 시대를 통해서 이제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 완전함을 보여주는 시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제 신앙의 온전함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인물인지 완전함으로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구약의 인물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보다 더 복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알려진 구원의 길을 걸어가며 이미 구원을 받는 구체적인 방법을 깨닫게 된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구원의 방법을 알기에 그 길만 걸어간다면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받게 되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며 그 분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담대히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미 우리를 위해 수많은 피를 흘리시고 노력하신 믿음의 선진들의 헌신을 통해 정말 복음의 큰 열매를 인생가운데 맺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