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화장,
조선의 플로리스트
나그네가 말했다.
"저는 비단을 오려서 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주인이 재주를 보여 달라 하니 나그네는 가위로 흰 비단을 오렸다.
철사를 구부리고 밀랍으로 꾸며 꽃잎과 꽃술, 꽃받침과 씨방을 만들었다.
마침내 하나하나 가지에 붙여 나란히 세워 놓았다.
나그네가 말했다.
"제가 어찌 제주를 부리려고 했겠습니까?
하루라도 꽃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김윤식, [조화 만드는 사람이야기]
호텔 결혼식은 비싸다.
음식값도 비싸고 대관료도 비싸다.
무엇보다 비싼 것은 꽃값이다.
수백만원은 보통이고 1000만 원이 넘는 곳도 드물지 않다.
끼워 팔기로 이득을 보려는 상술 탓이다.
그래도 화사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꽃이 제일이다.
꽃 없는 결혼식은 상상하기 힘들다.
옛날 궁중 행사에서도 꽃 장식은 필수였다.
행사에 쓰인 물품과 비용을 기록한 의궤를 보면 한 차례 행사의 꽃 수천 송이를 썼다.
국화, 모란, 장미, 복분자, 연꽃 등 종류도 여러 가지다.
큰 것은 9척 5촌에 달했다.
이 초대형 화환의 가격은 스무 냥.
쌀 한 가마니가 두석 냥 하던 시절이었으니 엄청난 고가다.
꽃 장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전체 행사 비용의 10%를 넘었다.
하지만 비싼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옛날에는 생화를 장식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처럼 사시사철 생화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원예 기술 부족으로 품종과 수량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조화다.
비단과 철사, 종이, 밀랍 따위로 만들었다.
채화 또는 가화라고도 한다.
왕비와 궁녀의 머리를 장식하는 잠화, 장원급제자의 사모에 꽂은 어사화, 궁중 행사의 꽃 장식은 모두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예술품이었다.
조화를 만드는 장인을 화장이라고 한다.
꽃의 장인이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점에서 화장은 장인의 꽃이기도 하다.
화장은 고려시대부터 관청 소속이었다.
국가에서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들을 소집하여 조화를 만들게 했다.
큰 행사에는 수십 명이 동원되었다.
화장이 만든 조화는 대충 꽃 모양만 흉내 낸 것이 아니었다.
꽃잎과 꽃술, 꽃받침과 씨방, 심지어 꽃가루까지 정교하게 재현했다.
고된 노동이었지만 대접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
조선 시대 장인이 대개 그랬듯이 화장 게는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행사가 없으면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화장은 민간에서 활로를 찾았다.
화장의 새로운 고객은 왕실 문화를 선망하는 사대부였다.
공중을 드나들던 사대부들이 유행을 선도했다.
그들은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낸 조화의 넋을 빼앗겼다.
퇴계 선생도 밀랍 매화, 종이 대나무, 비단 복숭아꽃을 보고 시를 지었다.
조선 후기에 오면 조화는 지금의 꽃다발과 화환 처럼 보편화되었다.
혼례상의 필수품이었다는 사화봉도 조화의 일종이다.
요즘은 조화를 하도 잘 만들어서 만져 보기 전에는 조화인지 생화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조화보다는 생기 넘치고 향기로운 생활을 선호한다.
하지만 금방 시들어 버리는 탓에 돈을 쓰기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꽃은 딱히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꽃의 쓸모는 그 존재 자체에 있다.
우리는 인생의 한 순간을 빛내기 위해 그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 한순간을 위해 화훼 농가는 비닐하우스에서 몇 달 동안 땀을 흘린다.
그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꽃값이 마냥 비싸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선잡사 중에서
첫댓글 잠깐씩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