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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문학 시평 2024. 5 여름호
볼거리가 많은 꽃시절의 회화시
시는 그림인가?
시화전의 원류는 시의도(詩意圖)에 있다. 시의 의미를 담아낸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림 속에 이백이나 도연명의 시구는 물론 풍자적인 글귀도 실어 당시의 사회적 현상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것이 남송 시대에 시작한 시화일치(詩畵一致)의 이론으로 발전하여 시와 그림이 하나의 예술이라는 사상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이후에 받아들여 조선적 화풍으로 발전했다. 시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적 감상을 그림으로 그린 후 그림에 어울리는 시를 낙관처럼 쓰는 방식이다. 시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크로스오버의 한 형태다. 그것이 요즈음의 시화전(詩畫展)으로 발전하여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결국 시화전의 원류는 시의도에 있기에 시와 그림의 상관성을 이해하려면 ‘시 속에 그림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말의 의미를 주목해야 한다.
남종화(南宗畵)의 시조로 추앙받는 왕유(王維)의 시를 읽고 소동파(蘇軾)는 “마힐(摩詰:왕유)의 시를 음미하면 그 가운데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면 그 가운데 시가 있다.”고 했다.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명문으로 시와 그림의 관계를 문인화의 성격으로 정의하여 동양의 인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명문이다.
『메타문학』 봄 호에 실린 시는 유독 시와 그림의 관계를 설정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눈에 띈다. 근대에 들어 음악성을 중시하는 시의 흐름에 회화성을 강조하는 주지주의 시가 강세를 보이던 시기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시제(詩題)부터 아예 그림이 강조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림의 대상으로서의 꽃과 관련한 풍경들이 봄이라는 계절적 특성에 맞게 회화성이 두드러졌다.
‘봄’은 ‘보다’에서 파생한 명사이기 때문에 봄은 볼거리가 많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꽃이 주류를 이룬다. 신달자 시인의 권두시 <헌화가>가 눈에 띄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랑하느냐고
한마디 던져 놓고
천길 벼랑을 기어오른다
오르면 오를수록
높아지는
아스라한 절벽 그 끝에
너의 응답이 숨어 핀다는
꽃
그 황홀을 찾아
목숨을 주어야
손이 닿는다는
도도한 성역
나 오로지 번뜩이는
소멸의 집중으로
다가가려 하네
육신을 풀어 풀어
한 올 회오리로 솟아올라
하늘도 아찔하여 눈감아버리는
깜깜한 순간
나 시퍼렇게 살아나는
눈 맞춤으로
그 꽃을 꺾어드린다
- <헌화가> 전문 (신달자)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헌화가>에서 시적 동기를 찾은 신달자 시인은 시를 쓰는 작업을 목숨을 걸고 꽃을 따 바치는 노인의 행위에 비유했다. 첫행에서 ‘사랑하느냐고’ 던진 질문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에 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자문(自問)이다. 그래서 거침없이 꽃을 꺾기 위해 절벽을 오른다. 절벽을 오르면 오를수록 위험이 가중되지만 시작(詩作) 활동을 통해 완성한 결정(結晶)으로서의 시는 꽃으로 피어난다. 그래서 그 꽃을 피우고 예쁘게 핀 꽃을 따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내한다. 그렇게 목숨을 다해 도달한 세계이기 때문에 신달자 시인은 자신의 시세계를 ‘도도한 성역’으로 정의했다.
몸을 풀어 한 올 회오리로 솟아오르는 상황의 아찔한 순간을 비켜 ‘시퍼렇게 살아나는/눈 맞춤으로’ 꽃을 꺾어야 하는 신성한 세계다.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시,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해낸 시인의 삶이 시세계로 나타나 가장 완벽한 시를 완성해낸다. 그것이 곧 목숨과도 같은 이유다. 한편 한편의 시에서 신내림의 접신(接神)과 같은 수준으로 목숨까지 담보로 한 작업도 ‘성역’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거룩한 행위다. 『메타문학』 독자와 후학들이 떨리는 자세로 읽고 시작 활동에 임해야 할 작품이기에 감상의 문을 열었다.
정강영 시인의 <보다, 봄>은 계절적 감각에 맞는 회화적 정감이 물씬 풍겨나는 작품이다. 더구나 신진다운 문장으로 신춘문예 당선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문성이 두드러져 시의 내용이 쉽게 그림으로 그려진다.
김우현 시인의 <섬초롱 꽃>에서 아이와 주고 받는 시적 영상으로 너와 나의 대칭적 구조를 이루며 점층적으로 전개한 시상을 한 폭의 수채화로 펼쳐낸다. 그러면서 ‘강나루 이야기 들려 주는/너의 종소리에 너의 귀를 대어 봐’라며 섬초롱꽃의 외형적 특징을 의식하게 하는 자의식의 고취와 함께 시적으로 승화해내는 고도의 은유적 기법을 전개했다. 꽃길을 걷는 풍경조차 궁금해지는 몽환적 시상이 독자의 시심을 유혹한다.
김경조 시인의 <길을 찾아가다>는 쉽게 변하는 주변의 환경과 소시민의 삶을 영사기 돌리듯 전개한 후 ‘오늘 길에선/어떤 마음이 가슴에 묻힐까’라는 열린 시상으로 시를 마무리하여 사유의 여유를 주는 감상의 맛을 더했다.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동양화적 여백으로 처리하여 여유로운 문인화를 보는 듯 마음이 시원하다.
이오례 시인의 <세탁소가 있는 골목>도 같은 계열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차이라면 사소한 일상을 다정하게 시적으로 승화해낸 장면이다. 서정적 자아로 ‘민들레 부부’를 상정했지만 실상 세탁소 부부로서 자신의 이형(異形)이다. ‘건조한 담벼락 틈에서도 포기는 없다’는 강인함은 민초들의 삶이자 ‘볕따라 스며든’ 양지지향의 건전한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1연에서 주체와 객체를 바꾸는 고도의 시적 기교를 보였다. ‘햇볕은 그림 몇 점 삐뚤삐뚤 놓고 간다’는 진술이다. 골목을 채운 사물들이 햇볕에 그림졌으면 산만하고 혼란하지만 햇볕이 놓고 갔으나 다정한 풍경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연결하는 골목은 오늘도 봄날’이라고 정감있게 선언한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굳건히 살아가는 민초들의 의지를 아름답게 그려낸 시라서 정겹다.
보름달 네 속에는
빨간 의자 들어있다
찾는 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그림자
이렇듯 설레는 꽃이
놀 빛 물고 서 있다
- <꽃 물> 전문 (김영숙)
우선 시조의 멋진 변신이 눈길을 끈다. 마치 모시 적삼을 입은 여인이 핸드백을 들고 산수화가 그려진 양산을 쓴 느낌이다. 틀에 박힌 3장 6구를 3연의 자유시와 같은 변화를 주어 신선한 느낌이 든다.
황혼이 짙게 내려앉은 서녘에 보름달같이 활짝 핀 꽃, ‘이렇듯 설레는 꽃이/놀 빛 물고 서 있다’고 했으니 접시꽃이나 작약처럼 큰 꽃을 시화한 듯하다. 그 꽃은 해가 지기 전에 누군가가 찾아와 자기를 봐주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꽃술을 의자 삼아 그림자를 살랑인다. 시적 자아와 서정적 자아의 일체감은 마지막 행의 ‘놀 빛 물고 서 있다’에서 드러난다. 의자를 펴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꽃은 곧 김영숙 시인 자신이다. 황혼녘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심을 그림처럼 그려냈으니 이 시대의 시의도(詩意圖)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시화전에 출품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띌 작품이다.
푸른 잎 스치는 바람이 떠나간 그대가 아니라
지나간 세월임을 이제야 알았어요
사계절 인생이라는 거 두려움 하늘빛에 걸어두고
봄을 사랑하여 싹은 움트고 꽃은 피는데
윤회의 빛으로 다시 올 순 없을까요
그대 손잡고 다시 온다는
미련 따윈 생각하지 않으리요
은빛 꽃 피고야 알았네요
그리운 것은 서녘 하늘에 붉게 타는 노을
바람 부는 꽃으로 피어난다는 걸…
- <그리운 것은> 전문 (신소미)
관형형 구(句)의 의문문으로 시제(詩題)를 잡은 것부터 독자의 관심을 끌기 좋은 제목이다. 시의 제목은 대부분 명사형을 사용하지만 요즈음에는 서술형 문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다 독자의 상상을 요구하는 의문형 제목이라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명상의 선시(禪詩)와 같은 분위기로 깊은 사색을 동반하는 흐름에 비해 한용운 풍의 문장으로 ‘그리운 것’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 사색의 깊이가 엷어졌다는 점이다. 시의 의도를 쉽게 드러내려는 자상함 때문에 독자는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편의성에 만족한다.
마지막 연에서 ‘은빛 꽃 피고야 알았네요’라는 소녀적 고백은 시상을 더 쉽게 맺는 결어(結語)의 역할을 한다. 한시의 기승전결에 맞는 전개로 3연에서 보인 전환의 발상을 ‘서녘 하늘에 붉게 타는 노을/바람 부는 꽃으로 피어난다’는 구체적 진술로 시상을 맺었다. 그리움의 대상을 ‘노을’ ‘꽃’ 등으로 은유하며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어서야 윤회의 의미를 깨닫는 철학적 사유가 시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래서 시는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은 것이다.
봉창으로 날아들었던 유년의 꿈은
몇 번이고 추락으로 흔들렸다
끝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엄마의 안타까움으로 박제되고 말았다
굴절된 생각은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 사이에서
희미한 안개를 헤치며
회색빛 나이테를 감고 있다
그 먼 곳에서도
어느 별로 떠서 바라보시는지
애잔한 정은 퇴색되지 않는다
앙가슴에 묻어도 병이 되지 않는
사랑을 가르쳐 준 진하디 진한 모정,
지우고 다시 쓸 수 없는 생의 시간들은
우주 어디쯤을 떠돌고 있을지
상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이 먹은 내가 어린 나에게 어렵게 말을 건넨다
오버랩 되어도 어긋나지만 내리 사랑만큼은 일치되는 유전자다
대물림되는 언어들을 퍼즐로 맞추며 벚꽃잎 날리는 무덤가에
시들지 않는 사랑 시 한 줄 심는다.
- <봄산에 갇힌 기억> 전문 (장충열)
짧은 시지만 긴 세월을 담아낸 서사적 구조를 지녀 삶의 이면에 숱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유년의 꿈이 깨지는 아픔과 그것을 지켜 보던 어머니의 안타까움 속에서 방황하던 아픔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다.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보인 두 갈래 길에서의 방황을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한 행위로 은유했다. 회색빛 나이테가 주는 암울한 상징과 나이 듦에 대한 회한이 ‘봉창으로 날아들었던 유년의 꿈’이 추락하는 아픔으로 대변하여 시화한 도치적(倒置的) 구성이 돋보인다.
인생은 그렇게 일화성이라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만큼 소중한 것이기에 퍼즐 맞추듯 회상하며 어머니의 대한 사랑을 회억(回憶)하는 행위를 아프게 묘사했다. ‘앙가슴에 묻어도 병이 되지 않는/사랑을 가르쳐 준 진하디 진한 모정’이다. 그래서 ‘나이 먹은 내가 어린 나에게 어렵게 말을 건넨다/오버랩 되어도 어긋나지만 내리 사랑만큼은 일치되는 유전자다’라는 고백으로 유년의 나와 어머니 나이가 된 나와의 화해를 모색한다. 세월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인정하여 하늘나라에 계실 어머니께 시를 바치는 헌시(獻詩)의 사모곡으로 모든 것이 녹아나고 인정되어 마음의 평정을 이룬다.
장충열 시인에게 <봄산에 갇힌 기억>은 자아와 어머니와의 조우를 통해 지난날을 포용하고 관조하여 원숙한 삶의 ‘시들지 않는 사랑 시 한 줄 심는’ 행위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신달자 시인의 ‘성역’과 같은 의미로 장충열 시인에게 시는 자신의 위안처이자 평화의 장소인 것이다. 이 시는 편안한 시어를 사용하고 운율의 호흡이 편안한 음보로 전개한 데다 낭송하기 좋게 추보적으로 시상을 전개한 것이 돋보인다. 이 시를 낭송하며 지난날을 회상하면 바둑판의 복기(復碁)처럼 정확하게 삶을 반추하며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것도 ‘봄산에 갇힌 기억’이니 아직 싱싱하고 푸른 아름다운 기억이리라.
봄호의 시 중에는 사회성을 지닌 시사적 작품과 험난한 사회 속에서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구도적 작품도 보여 다양한 주제를 읽을 수 있다. 하람 김경임 시인의 <우리는 공범>은 시인의 사회적 책무를 고백하듯 강조했고 정은율 시인은 <바람난 물고기>에서 삶의 애환을 반추하며 ‘남들이 씹다 남겨둔/뒷이야기까지’ 촘촘히 주워 아픔을 삭여내는 실존적 삶을 처절하게 그려냈다. 그것도 ‘묵은 세월 씹고 온 날’들을 그물 가득 그리움으로 쌓아가는 달관자로서의 삶이다. 고생을 모르는 이들에게 잠언과 같이 들리는 바람 소리다. 우연인지 김치환 시인은 <가난한 바닷가> <노랑 앞바다> 양남열 시인의 <흐르는 강물처럼> 정정례 시인의 <물위에 남긴 흔적> 현종길 시인의 <구곡폭포> 등 흐름의 정서를 소재로 한 시들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중 박숙희 시인은 <물고의 꿈>은 물의 개념을 초월한 구도자로서의 흐름을 차입했다.
죽어서야 바람에 흔들리며
푸른 하늘로 날아 가는가
물속만이 우주였던 그대는
줄에 매달려 말라가고 있어도
푸른 하늘 바라보며
구름 따라 여행하는 꿈을 꾸는가
생명을 잃어야만
닿을 수 있는 푸른 하늘 끝
바람 부는 허공에서
꿈을 찾아가는 물고기처럼
내 영혼도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푸른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본다
- <물고기의 꿈> 전문 (박숙희)
기승전결에 의한 완벽한 시상의 전개가 시의 맛을 더해준다. 물속만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물고기가 물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났을 때 하늘을 유영(遊泳)하며 구름 여행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이는 죽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경지이기에 누구나 새로운 세상을 얻으려면 고정관념의 자아를 벗어나야만 가능하다는 기르침이다. 이 역시 물의 흐름을 시상으로 차용한 선시(禪詩)와 같은 작품으로 ‘내 영혼도 천 개의 바람이 되어/푸른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본다’는 결어로 상승하는 자아를 발견하는 기쁨을 향유한다. 바람 부는 허공에서 꿈을 찾는 물고기, 우리는 세상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죽어야만 가능하기에 절집의 처마 밑에서 두 눈 부릅뜨고 도를 닦는 물고기처럼 우리도 끝없이 자신을 연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냈다.
김종대 시인은 가정의 달에 맞게 찔레꽃과 아버지를 등치한 사부곡(思父曲)으로 봄호의 흐름을 부드러운 서정 세계로 이끌었다. 대부분 어머니를 소재로 시를 쓰는 데 비해 아버지를 소재로 한 시는 여성이다. 김종대 시인은 아버지와의 남다른 추억을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소재를 동원하여 시의 서정성에 빠져들게 한다. 결국 아버지는 오감을 동원하여 묘사해도 부족한 절대적 점감의 대상임을 깨닫게 하는 시라서 남다른 의미로 읽힌다.
가정의 달에 돋보이는 작품으로 김한섭 시인의 <정현아 사랑해!>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목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가족 앞에
살며시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우리 가족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품을
하루빨리 없애라는 말을
주변에서 수 없이 듣지만
아내와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특별한 날에는
운동화 한 켤레 사서 아이 방에 놓곤 하지요.
때로 잊어버리기 위해
이사를 하자고 하면 아이 영혼이
집으로 찾아 올 수 없다고 하는
엄마의 애절한 심정을
그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요?
고단함이 밀려올 때면
아이가 영면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찾곤 합니다.
훌쩍 지나가 버린 20년의 시간을
추억해 봅니다.
-<정현아 사랑해!> 전문 (김한섭)
『월간 문학』에서 위 시를 내용으로 한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아들이 군대에 가기 전 같이 목욕탕에 가서 나눈 이야기를 실마리로 삼아 전개한 수필이었다. 군 생활 잘 마치고 돌아와 훌륭한 일꾼, 착한 아들이 되겠다는 아들의 등을 밀어주며 부자간의 정을 확인하며 군대에 보냈다. 그런데 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군대에서 사고사를 당했다. 수필에서 읽히는 아픔은 서술문장이라서 잔잔했지만 위 시에서 읽히는 아픔은 폭풍과 같다. 내용을 압축해야 하는 시로 썼기 때문이다. 그 후 아들의 보상금을 장학재단에 기증하여 아이의 생명을 의롭게 기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현아 사랑해!>는 죽은 아들을 기리는 실명의 시라서 아프게 다가온다.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품을 차마 정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운동화 한 켤레를 사서 아이의 방에 들여놓는 부모의 마음이 아프게 읽힌다. 그렇게라도 같이 있다는 느낌으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사하고 싶어도 아이의 영혼이 길을 잃어 돌아오지 못할까 염려하여 견딘 세월이 20년, 이백 년이 지난들 잊혀질 것인가. 대전 국립현충원에는 김현섭 시인의 마음이 머물러 있어 의미 있는 장소로 각인된다.
시의 회화성을 중시하는 주지주의가 문학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시의 음악성은 저급한 요소로 밀려난 적이 있다. 이제는 의미성과 함께 음악성, 회화성이 시의 3요소로 융합되어 시의 절대적 요소로 작용하지만 한 때 김기림, 김광균, 장만영과 같이 소리도 눈에 보이게 묘사한 회화시라야 좋은 시로 인정받았다. 김광균의 <외인촌>에서 보인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와 같이 청각적 이미지도 시각적 이미지로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는 유파다.
이제는 시화일치(詩畵一致) 이론이 완전히 복원되었다. 송나라 곽사(郭思)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 “시는 형상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형상이 있는 시”라는 시와 그림과의 관계 설정이 완전히 되살아 난 것이다. 그래서 전술한 대로 볼 것이 많은 봄의 의미에 맞게 회화성을 중심으로, 그리고 가정의 달에 맞는 작품을 중심으로 감상해 보았다. 차호에 더 좋은 작품이 실리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이렇게 회원들 간의 서평이 꼭 필요해요. 저도 20년 전까지는 작가들 서평을 많이 써드렸었는데 지금은 엄두가 안 나네요. ^^ 예전 서평이라도 가끔 간식 삼아 하나씩 올려볼개요. ㅋㅋㅋ 비평하시는 회원들은 운문, 산문에 대한 서평을 많이 하시면 좋겠어요.좋은 글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