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의 유혹에 빠지고 싶었다. 쉽게 올라서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을 톺았다. 단연 덕유산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설국을 찾는 이들이 드물 터였다. 곤도라로 날아올라 향적봉을 찍고, 덕유평전의 설원에서 ‘러브 스토리’의 제니와 올리버처럼 눈싸움을 벌이다가, 동엽령 즈음에서 달달한 기분으로 돌아서는 그림, 나는 가슴이 부풀었다. 전화를 걸었다. 곤도라 첫차 시간을 물었다.
“아홉 시부터 탈 수 있는데, 한 시간 정도 줄을 서야 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한 시간씩 기다린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주는 별천지였다. 나도, 아내도, 별천지에 발을 들일 수 없는 몸이었다. 방향을 틀었다. 선자령으로 가자.
- 때: 2021년 1월 20일
- 곳: 선자령
- 구간: 대관령마을휴게소 - 국사성황당 – KT송신소 - 전망대 - 선자령 – 제궁골삼거리 – 풍해조림지 - 국사성황당 - 대관령마을휴게소
- 거리: 10킬로미터
- 시간: 5시간 40분
새벽길을 나섰다. 금촌 우리집에서는 신호등 세 개만 통과하면 문산-서울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텅 빈 도로를 질주한다. 어제까지 대관령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기대가 크다. 우리 부부가 2021년을 시작하는 첫산행이다. 안전 요소를 철저하게 점검했다. 아내는 최신 장비로 무장했다. 준비는 완벽하다. 횡계를 지날 무렵, 잠에 빠졌던 아내가 "햇빛이 참 맑다"면서 기지개를 켠다. ‘맑다’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이 순해 보였다. 맑은 기운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다. “날씨가 포근하니, ‘백여사’ 복이야!”, 화답하는 순간, 아차! 대관령 나들목을 놓치고 말았다.
“잘됐네. 강릉 시내 한바퀴 돌고오지 뭐.”
갑자기 치솟는 스트레스를 눈치챈 듯, 아내가 여유를 부린다. 그러자고 대꾸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한 시간 정도 늦어지겠지만, 일정의 큰 변화는 없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자.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자동차는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린 산자락을 감아돌더니, 이내 산줄기를 거슬러 오른다. 대관령자연휴양림 표지판을 지나고, 반정을 돌아서서, 대관령 마루터기로 올라선다.
대관령마을휴게소로 들어선다. 주차장은 텅 비었다. 몇몇 배낭을 멘 사람들이 총총걸음으로 주차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차에서 내리니 목덜미로 파고드는 바람이 써늘하다. 10시 30분, 신발 끈을 동여매고 배낭을 메었다.
아내는 화려한 외출이다. 아내와 함께 떠난 겨울 산행은 아스라한 기억으로 살아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새해 해맞이 백운대 산행이었다. 아내와 나는 선잠에서 깬 두 딸을 데리고 위문까지 올랐지만, 인파에 밀려 백운대 턱밑에서 돌아서고 말았다. 어린 어머니와 어린 아버지가 더 어린 두 딸을 걸려서 내려오는 산길에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그날 아내는 씩씩하고 싱싱했다.
국사성황당으로 오른다. 오늘도 눈이 내린 길이다. 눈은 적당히 쌓여서 스패츠를 착용할 정도는 아니다. 길은 솔숲 사이로 쭉 벋어서 앞을 내다보기가 좋았는데, 녹다 만 눈이 아스팔트 도로에 얼어붙어서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나는 아스팔트 가장자리의 흙을 골라 디뎠고, 아내는 내 발자국을 포개디디며 나를 따라왔다. 국사성황당이 먼 발치로 나타났을 때, 카니발 한대가 우리를 추월하더니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배낭객들을 부려놓는다. ‘아, 저렇게도 산으로 드는구나.’ 문명은 산속 허리춤까지 자동차를 불러들이는데, 나는 아스팔트가 끝나는 지점까지 두 발로 당당하게 걸었다.
성황당 갈림길에서 잠시 멈췄다.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서면 대간 마루금이고, 왼쪽 오솔길로 들어서면 숲속 내를 건너게 된다. 오른쪽 비탈길로 들어간다. 아직 아이젠을 착용할 정도는 아니다. 비탈길을 올라서니 다시 아스팔트 도로로 이어진다.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동해전망대를 목전에 두고 호흡을 가다듬는데 딱 두 사람이 기댈만한 바위가 우리를 기다린다. 배낭을 내린다.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찹쌀떡 두 개, 귤 두 개, 따뜻한 커피를 즐긴다. 조촐하지만 산중진미의 백미이다. 어느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대간 마루금의 눈속에서 바위에 기대어 점심을 먹는다. 발 아래 봉우리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다. 멀리 능경봉은 홀로 우뚝하다.
전망대에 올라섰다. 휴게소와 선자령의 딱 중간 지점이다. 동해 쪽 두둥한 안개 아래로 강릉 시내의 집들이 올망졸망하다. 전망대를 지나니 북향의 내리막길에 제법 눈이 쌓였다. 산에서는 배낭을 내리고 다시 메는 일에 게으르면 안 된다고 아내에게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아이젠을 꺼내는 번거로움이 싫어서 그냥 내려간다. 아내에겐 위험이고 나에겐 오만이다. 알면서도 위험과 오만의 지경을 넘나드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이다.
길은 언제나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버겁다. 오르막은 내리막을 연모하고, 내리막은 오르막을 경원한다. 그리워하면서도 꺼리는 길 위에서 삶은 엇박자로 출렁인다. 길에서 길을 찾는 인간은 고단하거나 위태롭거나, 담담하거나 허허롭거나, 희로애락이다. 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길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본시 길 위의 나그네이다. 누구라도 길에서 내려설 때까지 길의 신세를 입는 길손이다. 길손과 주인의 관계는 명확하다. 나그네는 주인의 호의로 잠시 다리쉼을 누릴 뿐이다. 나는 주인의 호의를 거스르는 행위의 대가를 잘 안다. 알면서도 나는 주인 행세를 하면서 길을 걷는다. 그래서 나는 모순 덩어리의 인간이다.
초원지대에 이르렀다. 나는 말을 타고 달리는 선남선녀들을 보았다. 그들은 조선의 사대부처럼 말을 달렸다. 바람이 눈을 몰아간 고원의 초원에서 선남선녀들은 한 줄로 달렸는데, 앞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정확하게 대열을 유지하면서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들은 말을 타고 달렸고, 나는 두 발로 걸었다. 그들은 말고삐를 쥐었고, 나는 스틱을 들었다. 나는 배낭을 메고, 스틱을 찍으면서 두 다리로 정확하게 걸었다. 오르막을 오를 때 숨이 찼지만, 나는 속도를 늦추고 허리를 곧추 세우되 어깨를 약간 앞으로 내밀며, 두 발을 번갈아 분명하게 내디뎠다. 앞발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뒷발을 당겼고, 뒷발이 앞발을 밀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우아하게 비탈을 걸어올랐다.
저승이 가까울수록 이승의 길은 두 발로, 평소의 두 배를 걸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두 발로 걷지 못할 때 저승의 길이 열린다. 저승의 길은 가마를 타든 말을 타든 무언가를 타고 갈 수밖에 없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지금까지 남보다 먼저 가려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때로는 자동차로 달리면서도 남에게 추월당해 씩씩거릴 때도 있었다. 산에 들면서도 앞사람을 따라가느라 힘들었고, 뒷사람에게 쫓기지 않으려고 헐떡여야 했다. 이제 나의 길을 간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길이다. 저승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아내와 나는 두 발로, 평소의 두 배를 걸을 것이다.
선자령에 도착했다. 아내와 내가 함께 표지석 앞에 섰다. 표지석 뒤로 풍력 발전기의 행렬이 늘어서 있다. 행렬은 곤신봉, 매봉, 황병산을 거쳐서 진고개로 떨어질 텐데, 나는 아직 이 길을 가보지 못했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꼭 가야 할 길이다. 두 발로 걸어서 길의 신세를 지면서 가야할 길인데, 길의 주인은 여태 호의를 베풀 생각이 없는 듯 하다.
내려서는 길이다. 선자령에서 임도로 내려서는 잠깐의 길을 아이젠을 차고 걸었다. 비탈이 심하고 눈까지 얼어서, 아이젠의 효과를 검증하기에 제격이었다. 올라오는 길은 능선 마루금이었고, 내려가는 길은 골짜기 산허리를 질러간다. 순한 길을 순하게 걷는다.
산행 5시간을 넘기면서 아내는 잠시 긴장이 풀렸던 것 같다. 국사성황당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아내는 잠시 잠깐, 무너졌다. 따뜻한 물로 속을 데우고, 귤로 입맛을 달랬다. 편안히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선자령을 넘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초코렛 한 조각을 더 나누어 먹었다. 아내는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길 위에 섰다. 길의 주인이 숲길을 열어 주었는데, 이내 국사성황당 삼거리에 도착했다.
바람이 여전히 펄럭였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아스팔트 가장자리의 흙길을 골라 디뎠고, 아내는 내 발자국을 따라 디디며 내려왔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스탠리 마스터 1.06의 물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우리는 컵라면을 끓이지 않았다. 다만, 대관령마을휴게소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면서, 아내는 어묵을 샀다. 나는 국물을 많이 달라고 말했다.
첫댓글 2017년 1월 단독산행으로 영하25의 선자령에 메트리스 빼먹고 가서 추위에 개고생한 아주 징글징글한 기억이 있습니다.
체력 회복하시면 저랑 백패킹산행 다니시죠?
소석!
유혹이 심하군요. 소석의 백패킹과 나의 백패킹은 차원이 달라요. 나는 '1+1'이에요. 나 한몸 건사하기 힘든 터에, 원 플러스 원까지 거느리기는 무리 아닐까요? 그러나 그대의 유혹에 나는 흥분했어요^*^
@신종균(파주마루) ㅍㅎㅎㅎ 형님! 몰래 지켜보는 관음증?에 지켜만 봐도 저도 흥분되요. ㅋㅋ
멋진 산행기 잘 감상했습니다.
인생에 가장 소중 한 친구분 과 좋은 산행 하셨네요.
코로나가 진정되어 형님 과 함께 산행하며 인생 이야기 할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산행 이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참기름장과 맛소금과 신선한 육사시미를 준비할게요.
부부가 함께 하는 산행....
저도 요즘은 아내와 함께 하는 행복이...
가장 큽니다....
한가로운 일정 함께 하는 그날을.....
저도 기다려 봅니다....
저는 지난해 2월에 아내와 야영을 다녀 왔네요...
같은 선자령 ...
같은 장소 입니다....
두 분이 표정을 공유하시는군요. 웃음처럼 아름다운 행복은 없지요. 그 길, 계속 즐기시기를 응원합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백두대간에서 만나던 서해누리길에서 만나던
야영장에서 불멍을 때리며 만나던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던
건강만 하시기 바랍니다.
건강 독립 만세!
걷고 있습니다.
걷다 보면, 만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