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장 24-31절.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설교. 요약설교
24절.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1. 세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이종사촌 동생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어머니 쪽으로 6촌 동생 관계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안드레를 비롯해서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2. 당시에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25절.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1.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기다렸는데, 많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을 모세처럼 로마제국에서 구원해줄 그리스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적당히 그리스도 대접을 받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밝힌 훌륭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2.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신발 끈도 풀기를 감당치 못할 비천한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신발 끈을 매고 푸는 것은 종이 주인에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기가 예수님의 종이 되기에도 부족하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26절.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1.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적으로 할례 받고 모세 율법을 지킨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란 혈통적으로는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전향해서 할례도 받고 모세 율법을 지키는 이방인으로서 유대교에 입교한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2. 이 구원의 말씀이란 세례 요한이 전했던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즉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자신이 신발끈도 풀지 못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한 복음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27절.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1. ‘안식일마다 외우는 선지자들의 말’이란 구약에서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한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의 말인 선지서들을 가리킵니다.
분명히 이사야 53장에는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돌아가실 것을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은 그 말씀을 외우면서도 메시아가 고난 당하지 않고, 모세처럼 로마제국을 무찌를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2.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분명히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을 불신했기 때문에, 나약한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였던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믿지 말고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28절.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1.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세 번이나 선언하면서도 예수님을 사형 판결에 넘겨주었습니다(눅 23:4, 15, 22).
공의를 제일로 생각하는 로마 총독이 죄 없는 예수님을 죽게 만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불신 로마 역사가도 역사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손에 처형되었다>고 했습니다 (Christus was crucified at the hands of our proculator Pontius Pilatus).
3.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죽은 것을 거짓 메시야인 증거라고 하지만,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이사야 53장 말씀대로 메시아가 죽으시리라고 예언한 성경이 성취된 것입니다.
4. 그러면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죽으신 사실과 우리와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조그마한 모독이나 물질적인 손상이나 신체적인 상해를 당해도 무섭게 싸우는데, 우리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서 대신 온갖 고난과 수모와 죽음을 대신 당하였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이 은혜에 감사하여 눈물을 흘려도 값을 길이 없습니다.
찬송가 143장. 웬 말인가 날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위해 큰 해 받으셨나--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29-30절.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1. 예수님의 부활은 고린도전서 15장에 말씀한 대로 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500명이 한꺼번에 목격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15:5-8.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2.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그가 쓴 글라우디오 황제(Claudius: 41-54년 재위) 사기 25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가 부활해서 살아있다 아니다라고 싸우므로,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떠나라고 공포했다> (행 18:2 참조)
31절.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1. 막달라 마리아에게 ( 요 20:1-9)
2.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눅 24:13-32)
3. 베드로에게 (눅 24:34)
4. 다락방의 열 제자에게 ( 요 20:19-25)
5. 갈릴리 바다 7제자( 요 21:1-23)
6. 갈릴리 산에서 11제자 (막 16:15-18)
7. 500여 형제 (고전 15:6)
8. 야고보에게 (고전 15:7)
9. 감란산에서 승천시에 (눅 24:44-49, 행1:3)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3절 말씀처럼 40일 동안 부활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바울 당시에도 대부분 살아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25년이 지난 때 바울이 AD 55년경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 15장을 쓸 당시까지도 태반이 살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10.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이 오늘날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네,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성령님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나를 중생하게 하시고, 날마다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장차 천국까지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은 바로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한순간도 모시지 않으면, 마귀와 죄와 사망의 세력에 짓밟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으시고, 성령님의 감동과 은혜 속에서 날마다 승리의 생활을 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시고, 우리에게 영생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좋으신 주님(성령님을) 날마다 순간마다 모시고, 죄와 사망을 이기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