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기 좋은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발함이 불어오니 뜨거웠던 여름도 어느덧 한풀 꺾인 듯하다. 초가을 문턱에서 남양주시와 양평군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이번 라아딩은 바이크 손대장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특별한 여정이었다. 오래전부터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과 벗고개, 그리고 한음 이덕형 묘소에 이르는 코스를 달려보고 싶었던 나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기회였다. 마침내 오랜 소원을 이루게 되었으니 바이크 손대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여정의 출발점은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이다.
이날 함께한 바이콜 전사는 모두 네 명이었다. 바이크 손대장은 기력이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라이딩을 잠시 쉬기로 했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가득했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북한강 철교 위를 달리니 마치 철로를 따라 힘차게 질주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페달링은 가볍고 마음은 한결 상쾌했다. 북한강 철교를 건너면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다. 양평은 곳곳에 이름난 관광지와 아름다운 강변 풍경이 자리하고 있고, 운치있는 카페와 맛집도 많아 언제 찾아도 여행의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북한강로를 따라 양서면을 지나 서종면 문호리로 들어섰다.
문호리삼거리에서 북한강로를 벗어나 무네미로와 중마산로를 따라 달렸다. 문호천 마지내교에 이르기 전 성 장하상 바오로 성당 입구가 나타났다. 성 장하상 바오르는 1795년 태어나 1839년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자다. 신유박해 때 순교한 정약종의 아들이며 정약용의 조카이기도 하다. 문호천과 서후천이 만나는 영암교 부근 공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쉐도우수가 이곳에서부터 벗고개까지 오르막길이라고 귀뜀한다. 달콤한 포도와 쫀득한 쑥떡으로 기운을 보충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목적지는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다.
수능1교를 지나 우회전하고 소나기마을길로 들어서면 황순원문학촌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전거를 정문에 세워두고 문학촌으로 들어섰다. 넓고 푸른 잔디밭 한가운데 놓인 수숫단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황순원의 대표작 <소나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소설 속 소년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소녀와 함께 수숫단 아래로 몸을 피한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았을 법한 <소나기>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로 걸어 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학관으로 향하는 길 옆에는 아담한 인공연못도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덱 다리 난간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있어 문학촌의 정취를 한층 더해주었다. 황순원문학관은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황순원 선생의 삶과 작품세계를 기리는 공간이다. 제1,2전시관과 영상실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관에는 선생의 유품과 육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어 작가의 문학세계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영상실에서는 <소나기>를 배경으로 한 에니메이션도 감상할 수 있었다. 문학관 가까이에는 황순원 선생 내외의 묘소도 자리하고 있었다. 작품으로만 만나던 작가의 삶을 돌아보며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학촌을 나와 서후천의 징검다리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인지 개울물이 불어나 징검다리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곳은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처음 만나는 장소이며, 갑작스러운 소나기로 개울물이 불어나자 소년이 소녀를 업고 건너는 장면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책 속에서 상상했던 장소를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묘하게 설렜다. 이제 말로만 듣던 벗고개를 향한다. 경사도가 가팔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인내심으로 힘겹게 올라왔다. 젊은 바이커들도 힘들어하는데 80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
터널을 지나 공터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숨을 골랐다. 호밀빵과 쑥떡, 초코파이로 기운을 보충하고 신나게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자 삼거리 부근에 이덕형 신도비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음 이덕형은 1561년에 태어나 1613년에 세상을 떠난 조산 중기의 문신이다. 1580년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602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예조참판으로 선조를 호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광해군 때 영창대군의 처형과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양평 양근으로 내려왔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묘소에는 부인 한산 이씨가 합장되어 있다. 한음 이덕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성 이항복이다.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재치와 기지가 넘치는 일화가 많아 오늘날 까지도 오성과 한음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콤비였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역사 속 인물들이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졌다. 목왕로를 따라 달리자 양수역이 나타났다. 양수는 두 물줄기가 만나느 곳이라는 뜻으로 , 우리말로는 두물머리를 의미한다. 유명한 두물머리도 이곳에서 약 2,5km 떨어져 있다. 다시 북한강철교를 지나 능내역으로 향했다.
지금은 폐역이 되었지만 능내역에는 옛 철길의 정취와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한 번쯤 쉬어가는곳이지만 우리 일행은 그냥 지나쳐 팔당ㅐ교로 향했다. 팔당대교는 덕소역으로 가는 마지막 쉼터와도 같은 곳이다. 바이크 손대장은 라아딩을 하지 못했지만 대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하고 싶다고 하여 덕소역 부근 덕소회관에서 오후 1시 30분에 만났다. 그리고 전종하 동문은 덕소에서 거주하고 있어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전종하 동문은 바이콜 전사들에게 여성용 선글라스를 선물해 주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모두 박수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숯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돼지갈비살을 안주 삼아 식사를 즐겼다. 라이딩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함께 달리고, 함께 먹고, 함께 웃는 시간이야말로 라이딩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오늘 우리는 황순원의 문학을 만나고, 이덕형의 역사를 돌아보았으며, 아름다운 북한강과 양평의 풍경을 마음껏 누렸다. 그리고 바이콜 전사들과 함께 달리며 우정이라는 소중한 보물 하나를 가슴에 담아 돌아왔다. 건강도 챙기고, 역사와 문학도 공부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우정까지 쌓았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하루가 또 있을 까. 황순원 문학촌의 <소나기>처럼 짦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