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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팀의 계획에 따라 '분지리 -(접속: 2.2km)→ 사다리재 → 곰틀봉 → 이만봉 → 배너미재 → (배너미평전 → 시루봉) → 은티마을 갈림길 → 성터 → 희양산 갈림길 → (희양산 왕복) → 지름티재 → 구왕봉 → 주치봉 → 은티재 -(접속: 2.5km)→ 은티마을'의 15.38km, 7시간 30분 코스를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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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봉[二萬峰]
높이: 991m
위치: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이만봉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백화산과 희양산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이만봉은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서 충북 괴산과 경계를 이루며 백두대간길에 솟아 있다.
가은읍 원북리 홍문정 성골을 중간에 두고 희양산(999m)과 시루봉(914.5m), 이만봉(989m)이 정삼각형을 이루고, 백두대간이 백화산(1063.5m)을 지나면서 남쪽으로 뇌정산(991.4m)을 맺어놓고 이만봉과 시루봉을 지나 희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만봉이란 산 이름은 옛날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로 2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과 또 옛날 이만호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이 산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신빙성이 없고, 한문으로 산 이름을 적을 때 별 뜻이 없이 이만봉이라고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산행 시작은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 앞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괴산군 연풍면에서 시작할 수 있으나 보통 희양산과 백화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주 능선을 타고 지나가기 때문에 이만봉만 등산하여 이만봉의 묘미를 알기 어렵다. - 한국의 산하
시루봉
높이: 914m
위치: 충북 괴산군 연풍면
시루봉은 백두대간의 희양산과 이만봉 사이에서 이 두 산의 위엄에 눌려 북쪽으로 물러나 앉은 것 같은 산세로 그것이 오히려 정상에서의 조망이 더 시원함을 맛보게 해 주는 산이다.
시루봉 정상은 백두대간을 완전히 벗어나 있으나 산세는 당당하고 넓다. 시루봉은 희양산이나 이만봉을 오른 후 하산길로 이용되어서 정상을 찾는 등산객이 별로 없었다.
이것은 백두대간이 시루봉 밑에 와서 이만봉을 이어지는 길이 넓은 분지형을 하고 있어 길 찾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먼저 희양산 못미처 희양산성을 따라 있는 넓은 공터를 만나는데 이곳은 잡목으로 덮여 있어서 길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나 이곳은 야생화가 지천을 이루고 있으며 산나물도 아주 많다. 그것은 800m 고지부터 있는 개천이 항상 흘러 습지를 이루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배너미재를 찾든지 아니면 967m 고지를 찾아 올라서면 백두대간 길을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시루봉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희양산이나 구왕봉 산행 기점인 은티마을을 경유하지 않고 이화령 아래 주진리 진촌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이곳이 시루봉 산행을 위해 배너미재를 통과하더라도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오르내리는 등산로인데 주진리 진촌 마을에서 남쪽 절골을 거쳐 배너미재에 오른 후 배너미재 북쪽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른 다음 북쪽 능선을 따라 다시 진천으로 내려서는 길이 그것이다. - 한국의 산하
희양산[曦陽山]
높이: 996m
위치: 충북 괴산군 연풍면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는 희양산은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암봉이다. 희양산은 그 모습이 우뚝하고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는 데다 바위 낭떠러지들이 하얗게 드러나 있어 주변의 산에서뿐만 아니라 먼 산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산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장쾌하고 아름답다. 봉암사가 자리한 봉암용곡 너머로는 대야산, 속리산 줄기가 거센 파도인 듯 날카롭게 솟아있다. 봉암사 위의 백운곡은 무성한 숲속에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시원한 계류가 넓은 암반을 흐르고, 기암괴석, 폭포, 옥석대 바위에 있는 마애불좌상, 백운대 등이 절경이다.
산의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지증대사가 창건했다 하며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였다고 한다. 봉암사를 창건한 신라 헌강왕 때의 고승 지 중대사는 전국 명산을 둘러본 뒤 이곳에 와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 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라고 지세를 평하기도 했다고 한다.
봉암사에는 지증대사 적조탑비, 지증대사 적조탑, 원오 탑비, 정진대원 오탑, 삼층석탑, 함허당 득통지탑, 환적당 지경지탑, 상봉대선사비, 노주석, 백운대, 마애불좌상 등이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고 바위 낭떠러지들이 하얗게 드러나 있어 주변의 산에서뿐만 아니라 먼 산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기암괴석과 풍부한 수량이 어우러진 백운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마애본좌상 등 역사 유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 한국의 산하
8월 3주 차 정기 산행은 토요일인 20일 15번째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 사다리재에서 은티재까지 달릴 예정이다. 이번 연결 산행은 다른 연결 산행과는 달리, 그 구간에 충청권 산행의 하나로 계획하고 있던 이만봉, 시루봉이 있어, 연결에만 의미가 있는 산행이 아닌,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거양득의 산행이다. 다만, 은티재에서 성터까지는 2018년 8월 18일 등산방 동무들과 올랐던 구간이라, 이번에 다시 가면 중복으로, 주요 봉우리는 희양산, 구왕봉, 주치봉 등이 있다. 이번 산행에는 봉 감독이 부여한 임무가 있어, 상황을 봐서 희양산만 들렀다가 지름티재에서 하산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임무 완수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성터에서 내려갈 수도 있고, 그 반대라면 은티재까지 간다. 그럼 은티재는 2018년 8월[산행기], 2022년 6월[산행기] 이후, 3번째 방문이다. 물론 하산주를 위한 1시간의 여유 시간도 고려!
이번에 같이하는 그룹은 일산에서 출발하는 종주팀으로, 상황상 양재 출발팀보다 여건이 좋지 않아, 두 번 같이해 보고, 동행을 꺼려왔으나, 모든 조건이 완벽한 산행은 산신이 내리는 거고, 이런저런 이유로 질질 끌어 봐야 좋은 거 없다는 생각에 신청했다. 그런데 신청 당시 만석으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는데, 안내산악회를 이용한 100여 번이 넘는 산행 경험상, 막상 출발 직전에 취소자가 생각보다 많아, 자리가 없어 못 가는 일은 없었다. 이번도 마찬가지나, 수요일 해당 지역에 폭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많은 신청자가 취소해, 이러다가 성원 미달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다. 다행히 그 정도로 취소자가 많지는 않았으나, 좋은 자리를 차지할 정도의 취소자는 있어 기상청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막상 출발 사흘 전인 목요일 일기예보에는 이른 오전에만 잠깐 비가 내리고, 정오가 지나서는 햇볕이 쨍쨍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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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구내에서 김밥을 파는 양재역이 아닌 백석역으로 향하는 거라, 연신내에 24시간 김밥집에서 사라는 마누라의 권유에 따라, 아침을 먹은 후 배낭을 둘러메고 거의 3년 만에 연신내역까지 걸어갔다. 코로나 이전 가끔 산행에 가져갈 김밥을 사기 위해 새벽에 방문했던 집이라,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코로나 시작 몇 달 전부터 가지 않아, 여전히 영업 중인지 약간 의심스러웠으나, 그래도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역시 예상대로 간판은 변함이 없는데, 유리문에 '영업시간 07:00~21:00'이라 쓴 종이가 붙어 있고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아주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점심은 일찍 내려와 하산주와 같이? 아니면 휴게소에서 빵을 사? 이런 고민을 하며 시계를 보니, 6시 12분 연신내발 대화행 열차 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길 건너 연서 시장의 불빛이 빛나고 있는 게 보였다.
시간도 보낼 겸 해서 연서 시장으로 들어가지, 다른 가게는 다 영업 전인데, 김밥 라인은 세 집이나, 문을 열었다. 마약 김밥이라 불리는 걸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다. 구세주를 만난 거나 다름없어, 기쁜 마음으로 김밥 한 줄 샀는데, 3,000원이다. 가격으로 보면, 무언가 많이 들어간 거 같은데, 제발 참치는 아니길 빌며, 배낭에 넣고, 시장을 나와 역으로 향했다. 앞으로 백석으로 향할 때는 연서 시장이라는 해결책을 찾은 것에 감사하며. 예정대로 6시 12분에 도착한 대화행 열차를 탔는데, 의외로 승객이 많아 놀랐다. 그렇다고 빈자리가 없는 건 아니고. 자리에 앉아, 산악회 버스의 내 옆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가 출발한 산행은 희미하게 처리해 놓았다. 하다못해 별 대단해 보이지 않은 것도 등산객을 위해 시스템화했으니, 다른 안내산악회가 경쟁이 될 수 없다.
6시 37분경 백석역에 도착해, 버스가 출발하려면 아직 시간이 있어 주변에 이른 새벽부터 문을 여는 김밥집이 있는지 찾아봤다. 연서 시장 김밥도 좋으나, 김밥을 위해 연신내까지 걸어가는 게 불편해 다른 해결책이 있는지 확인차! 그런데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빌딩 1층 ‘김밥나라’가 문을 열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24시간 영업이다. 다만, 메뉴 중 마음에 드는 김밥이 없다. 어쨌든 백석 라인에 산행 중 점심을 위한 두 개의 해결책을 찾았다는 것에 만족해하며, 도로 난간에 앉아, 주변의 등산객을 구경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출발 예정 시각이 6시 50분이 되자, 저 멀리 신호 대기 중인 빨간 버스가 보인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자 등산객 아니, 대간꾼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와 정차하자, 옆자리가 비었으니, 당연히 배낭을 짊어진 그대로 버스에 탔다.
버스에 타서 자리로 가, 앉기 전 지난 뒷자리의 작은차갓재 산행을 같이하고 하산주도 같이했던, 산꾼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배낭을 통로 쪽 자리 앞에 두고 앉자, 통로 건너편에 앉아 있던 승객이 자기 배낭을 같이 놓아도 되냐고 묻는다. 안될 이유가 없어, "네!"라고 했다. 이후 책을 보며, 가끔 창밖으로 한강을 구경하다가, 한남대교를 지나, 고속도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을 확인했다. 7시 20분경이다. 7시에 양재에서 출발하는 버스보다 20분 늦다는 얘기다. 궁금했던 걸 확인하고 난 후 패드로 눈을 돌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 깨어 보니, 휴게소다. 최근에는 휴게소 들어가기 직전이 아니라 도착해서야, 아는 걸 보면 많이 피곤한가? 어쨌든, 시원한 공기가 필요해 버스에서 내려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확인하려 주위를 둘러보니, 전투기가 서 있는 작은 공원이 있어, 가보니, F-4 팬텀이다. 눈에 익은 비행긴데, 휴게소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딱히 볼일이 있는 건 아니나, 이 휴게소의 정체를 알기 위해 화장실에 들른 후 건물의 전면을 보니, 커다랗게 박힌 '여주 맛있는 휴게소'라는 명패가 있었다. 그걸 보고 아니, 여주에서 쉰다고?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목적지가 괴산이라, 여주가 중간이 맞는 거 같아, 이해됐다. 버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다시 패드를 들고 책을 읽고 있는데, 버스가 출발한다. 그리고 시작된 인솔 대장의 코스와 주의사항 설명. 특별히 주의할 건 없으나, 이번 백두대간 사다리재, 은티재 구간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두 주요 봉우리인 시루봉과 희양산이 있는데, 희양산은 꼭 왕복하라고 권했으나, 시루봉을 왕복하면 거리가 15km에서 18km로 늘어나, 마감 시간 맞추기 쉽지 않으니 빠른 사람만 다녀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정말 지치고 힘들면, 구왕봉 정상 20여 미터 아래에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니, 거기서 하산하라고 했다.
나야 애초 이만봉과 시루봉 방문과 백두대간 사다리재에서 성터까지 연결이 목적인 산행이라, 대간 상에 있는 이만봉이야 당연하고, 약간 벗어난 시루봉도 다녀올 예정이다. 시간에 쫓기면 희양산 직전 성터에서 하산하는 것도 고려 중이나, 현재는 지름티재에서 하산할 예정이다. 물론 여유가 있으면 은티재까지 달리고. 상황에 따라 하산 지점을 결정하기로 하고, 다시 책을 보다가, 버스가 익숙한 지역에 들어서는 걸 확인한 순간 슬리퍼를 벗고, 등산화로 갈아 신은 후, 미니 스패츠도 착용했다. 그리고 좀 있으니,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마감 시각을 17시 10분으로 한다고 공지했다. 그때가 9시 25분이 약간 지난 시각으로 들머리 도착 시각이 30분이 지나서라는 걸 참작했다. 다른 대장 같으면 17시로 했을 텐데, 철저하다. 이윽고 1차선의 좁은 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마을로 들어선다. 들머리인 '분지안말'이다. 분지리 안쪽 마을이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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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8분 분지안말에 도착해 다른 대간꾼이 등산 준비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이 마을도 2021년 5월 16일 우중 대간 상에 있는 천고지 백화산에 오르기 위해 이화령에서부터 사다리재까지 달리는 백두대간 종주 팀을 따라온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산행기]. 당시는 천고지 백화산이 목적이었으나, 현재는 백두대간 연결이 목적으로 1년 사이에 목적이 변했다. 산행 준비가 끝난 대간꾼의 뒤를 따라 뒤골을 건너 산행을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앞장서 가게 됐는데, 새벽에 내린 비를 머금은 풀숲을 통과하니, 차가운 비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순간 비에 대비를 못 한 등산객이 앞장서면 안 되는 이유를 깨닫고, 다시 뒤로 물러섰다.
곰틀봉에서 시작한 계곡인 뒤골을 따라 올라가자, 지난 산행 때 하산한 등산로가 보인다. 해서 이 팀 산꾼 중 선두가 먼저 급경사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고 내가 그 뒤를 따라 올라갔는데, 아래에서 인솔 대장이 그 길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게 들린다. 분명 2021년 5월 사다리재에서 내려온 길이 맞는데, 왜 아니라고 하는지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해서 그 자리에 멈춰서 대장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사이 앞선 산꾼은 벌써 숲으로 사라졌고,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날머리인 은티재로 가기 위해 차를 돌리고 있었다. 말하는 소리를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는 지점까지 대장이 도착해 그 길이 아니라 뒤골 즉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듣자,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등산객이 앞선 산꾼을 부르나, 이미 소리가 들리는 지역을 벗어난 상태라 소용이 없다. 그리고 2021년 5월에 내려왔던 길이라, 이 길로 올라간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도 없어, 나도 따라갈까 하다가, 대장의 지시에 복종하기로 하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마을에서 출발해 갈림길에서 한바탕 해프닝을 겪기도 하며, 뒤골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자 등산로는 계곡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급경사 너덜로 바뀐다. 그리고 밑에서 계곡이 아니라 능선으로 이어졌던 등산로와 합류해, 숲속으로 사라졌던 산꾼과도 만났다. 기온과 습도가 높은 가운데, 급경사의 너덜을 따라 위로 오르는 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이미 2021년 하산할 때 죽을 맛을 경험했던 지라, 대간 연결을 위한 산행 때 체력은 사다리재가 아니라 은티재에서 시작하는 산행을 원했으나, 하산주를 마실 수 있는 식당과 힘들면 중복 구간을 건너뛸 수 있어, 사다리재를 향해 올라가는 접속 구간이 얼마나 힘든지 뻔히 알면서도 사다리재에서 남진해 은티재로 향하는 팀을 따라나섰다. 사실 대간 연결 산행에서 접속구간이 다 힘들기는 마찬가지나, 그래도 약간의 차이는 있다!
분지안말을 떠난 급경사 너덜을 올라오는 동안, 아직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비에 맞은 생쥐 꼴이나, 앞선 등산객 위로 능선이 보여, 그나마, 없던 힘도 솟아났다. 사다리재다! 그리고 한 방울의 힘까지 쥐어짜며 남은 급경사 너덜을 올라 사다리재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36분으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다리재의 이정표에 의하면 분지안말까지 1.9km에 불과하나, 급경산 너덜의 등산로라는 걸 고려하면 생각보다 빠르다. 그리고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얘기했지만, 힘든 구간은 거의 다 왔다. 앞으로 가야 할 곰틀봉까지의 남은 구간만 올라가면 사실상 힘든 구간은 끝이다. 앞섰던 등산객도 고갯마루 돌 위에 앉아 쉬고 있어, 나도 배낭을 내려놓고 시원한 얼음물을 마음껏 마시며 3분가량 휴식 후 출발하는 대간꾼을 따라 10시 39분에 곰틀봉으로 향했다.
급경사는 아니나, 암릉에 가까운 능선을 따라 곰틀봉을 향해 올라가자 왼쪽 숲사이로 희양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의 다 올라왔다. 그리고 이만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도 보이고. 우회로 가 있음에도 부러 바위로 올라 주변의 전망을 감상하기도 하며, 계속 전진해 11시 4분에 곰틀봉에 도착했다. 구글링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곰틀봉에 관한 정보가 없는 만큼, 정상석 따위는 없고, '해밀산악회(산가인)'이 만들어 나무에 매단 "백두대간 곰틀봉" 명패만이 여기가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 직전 등산 앱도 음성으로 알려주기는 했다. 정상임은 분명하나, 울창한 숲에 싸여 있어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어, 명패만 사진으로 남기고 바로 다음 목표이자, 이번 산행의 목적 중 하나인 이만봉으로 향했다.
정상에서 벗어나 이만봉으로 향해 이름 모를 고개를 지나자 바위 전망대가 나타났다. 당연히 그 위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이번 산행에서 지나온 곰틀봉뿐만 아니라, 2021년 5월에 달렸던 대간도 한눈에 들어온다. 와중에 이름 모를 고개를 넘는 구름도 장관이고. 물론 뒤로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이만봉도 보인다. 유유자적 고개를 넘는 구름과 거대한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감상하고, 다시 뒤로 돌아 정상을 향해 오르고 얼마 있지 않아, 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고, 핸드폰의 등산 앱은 정상에 도착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이만봉이다. 그 시각이 11시 23분이다. 이만봉 또한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처 중 하나라, 인증꾼에게는 통신, 즉 GPS 수신 여부가 대단히 민감한 지역이나, 유감스럽게 통신 불량지역이다. 말인즉 '발도장'이라 부르는 인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밑에서 들은 말소리가 이에 관한 얘기였다. 어쨌든 GPS를 수신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인증꾼 대신, 인증꾼이 '발도장' 찍지 않냐고 물었을 때, 인증은 내 양심이 한다고 했던 대간꾼에게 부탁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물론 찍어 주기도 하고. 그 후 아직도 GPS 수신지를 찾아 헤매는 인증꾼을 뒤로하고, 대리석 기단에 정상석을 올리고, 그 기단에 다음 봉우리의 거리를 표기하는 괴산지역의 통일된 정상석에 표기된 2.1km 거리에 있는 시루봉으로 향했다. 물론 양심으로 인증하는 대간꾼이 시루봉으로 갈지는 모르지만. 이만봉을 지나자 본격적인 암릉이다. 군데군데 밧줄이 설치된 지역도 있고. 희양산에서 지름티재로 하산하는 구간의 전조다! 굳이 밧줄이 있을 필요가 있나, 생각하며 암봉에 올라서 보니, 전망대다. 뒤로 보이는 뾰족하게 솟은 게 곰틀봉이다.
암릉답게 곳곳이 전망대고, 희양산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 희양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계속 길을 가자, 앞에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타났다. 시루봉 갈림길이다. 시루봉까지는 1.8km. 그럼 이만봉에서 고작 300m 왔다는 얘기다. 이래서 과거에는 내가 이정표를 신뢰하지 못했는데, 도상 거리와 실제 거리의 차이일 수도 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산행 계획에 보면, 시루봉 왕복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삼거리에서 시루봉을 왕복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계획한 백두대간 산행보다 3.6km가 늘어는 거다. 해서 대장이 시루봉 왕복을 만류했던 거고. 이정표를 보며 나름 계산을 하고 있는데, 등산지팡이 소리가 들려 양심꾼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반바지 차림의 젊은 대간꾼이다. 그리고 내가 배낭을 내려놓는 걸 보더니, 자기도 시루봉으로 가겠다며, 내게 폰의 지도를 보여준다. 지도에 의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희양산으로 바로 가는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사실 산행 전 지도를 보고 고민했던 길이다. 왕복이 싫어 저 코스로 가게 되면, 빨간 부분만큼 백두대간을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아니면, 대장 말대로 삼거리로 돌아오든가. 그런데 그 젊은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굳이 돌아올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앞장서려는데, 그 친구는 점심을 먹고 가겠단다. 하긴 그나마 앉을 만한 공간이 있는 곳이 배너미재인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다. 그럼 먼저 가겠다고 얘기하고 시루봉을 향해 가며 생각해보니, 현재 시각 11시 55분이고, 남은 구간의 체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 점심을 먹는 게 옳았다. 해서 배낭에서 연서 시장 마약 김밥을 꺼내 먹으며 시루봉으로 향했다.
12시 5분에 삼거리에 도착해 이정표를 보니, 분지저수지 갈림길이다. 즉 분지안말 아래에 있는 마을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시루봉까지 남은 거리는 누군가 700m라고 수기로 적었다. 그럼 배너미재에서 1km를 왔다는 건데, 지도를 보면 앞으로 남은 거리가 배너미재에서 온 거리보다 2배 정도 길다. 지도와 현실이 안 맞는다. 달리 생각하면 수기가 틀렸다는 얘기다. 배너미재에 있는 이정표에 '이만봉 1.4km'라 표기되어 있는데, 이 이정표에는 '이만봉 1.8km'라 표기하고 있다. 고로 이걸로 유추해보면, 시루봉까지 700m가 아니라, 1.4km 남았다. 그럼 지도와 부합한다. 누가 오류를 당당히 적어 놓았을까? 옆에 있는 과거 이정표에는 거리가 아니라 시간으로 표기했는데, 이만봉까지는 50분, 시루봉까지는 15분이고, 분지리는 30분이다. 분지리의 반이니, 1.3km 정도다!
삼거리를 떠나, 시루봉 방향으로 가며 왜 이 지역이 배너미평전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논농사를 지어도 될 거 같은 평지다. 그리고 멀리 논처럼 보이는 게 있어, 깜짝 놀라 동영상을 찍으며 가까이 가 보니, 인공의 저수지는 아닌 거 같고, 자연의 늪지다. 평전이라는 명칭에는 부합하는 지역인데, 배너미? 배를 넘겼다는 건데, 방태산의 '배달은석'이나, 조계산과 여러 산에서 보이는 '배바위' 등과 같이 이 지명 역시 과거 대홍수 시대를 반영한 건가? 그런데, 배달은석이나 배바위는 배를 묶었던 바위란 얘긴데, 배너미 평전은 배가 넘어갔다는 얘기니, 완전히 물에 잠겼었다는 거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자, 평전이 끝나고 오르막이 시작된다. 다시 정상을 향해 5분 정도 오르자 시루봉에서 200m 거리에 있는 삼거리인, 진촌리 갈림길 나왔다.
갈림길에서 100여 미터를 가자,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이정표 따위는 없다. 그리고 대간꾼이 등산로에 서서 핸드폰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분명 길을 찾고 있는 건데, 우회전해 밑으로 내려가는 길목 나뭇가지에는 산악회 리본 서너 개가 달린 게 보였다. 해서 그 산꾼에게 '시루봉은?' 하고 묻자 직진하란다. 그가 아니었으면, 리본이 있는 아래로 가는 대형 실수를 할 뻔했다. 해서 직진하는 아래에 산악회 리본이 보이는데 뭘 찾고 있는지 물었다. 그도 당연히 희양산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거로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갔는데, 등산 앱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경고음을 날려, 어떻게 된 일인가 살펴보고 있었다고 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를 뒤로하고 계속 직진하자, 앞에 확 트인 전망대가 나타났다. 물론 시루봉이다. 해서 먼저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카메라를 돌 위에 놓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기록을 남기려고 주변을 둘러보니, 구름에 가려 찍어봐야 구름밖에 없어, 조망은 포기하고 갈림길로 돌아가기 전 정상석의 기단을 보니, 희양산은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직진하라고 음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길도 보이고, 그 순간 배너미재에서 만났던 반바지 차림의 젊은 친구가 도착했다. 해서 그 친구도 들을 수 있게 '응, 희양산 직진?'이라는 말을 남기고 봉우리에서 내려갔다. 당연히 따라오라는 신호다. 그리고 등산 앱의 지도를 수시로 확인했다. 다들 왕복하고 있는데, 혼자 직진하고, 그 젊은이도 따라오는 거 같지 않아서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길을 따라가자, 어느 순간 길이 우회전하다가, 너덜지대에서 사라져다. 분명 지도에는 길이 있는데, 그 방향으로 가면 희양산에서 멀어진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분명 희양산은 오른쪽에 있는데, 길은 왼쪽이다.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깨닫지는 못하고, 감각을 믿고 급경사 너덜에서 미끄러지기도 하며 오른쪽으로 향해 12시 38분경 그나마 길처럼 보이는 걸 발견했다.
제대로 된 길에 도착해, 뒤로 돌아 10여 미터를 가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등산 앱의 지도를 축소해 보고 뭐가 잘못됐는지 알았다. 그 길은 은티마을로 향하는 거로, 희양산으로 가려면 반대로 가야 했다. 내 감각이 정확했다. 즉 이 길은 은티마을에서 희양산으로 가는 여러 길 중 하나다. 그리고 정상석 기단에 있는 지도를 정확히 해석해야 했다. 그냥 슬쩍 보고 직진이라 생각한 게 은티마을로 하산할 뻔했다. 와중에 오지 탐험은 제대로 했지만. 정상석 기단의 지도도 삼거리로 돌아가 오른쪽으로 가라는 거였다.
그걸 깨닫고 희양산 방향으로 가자, 물소리가 요란한 계곡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계곡 건너편에는 빨간 리본도 보이고. 계곡으로 내려가 오지 탐험 중 더러워진 손을 씻은 후 계곡물을 떠서 마시고, 위로 올라가자, 잘 아는 사람이 깜짝 놀라서 쳐다본다. 지난 작은차갓재 때 동행했던 산꾼이다. 날 보자 반가운 목소리로 "왜 그렇게 빠르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가 쉬고 있는 곳이 등산로에 "길주의"라고 표기된 사거리다. 지도에 ‘길주의’라고 표기할 당시에는 이정표가 없었던 거 같다. 그리고 여기서 시루봉을 왕복해야 한다. 배너미재가 아니라. 그런데, 많은 대간꾼과 등산객, 산꾼이 혼동하고 있는 듯했다. 하긴 이만봉에서 희양산 방향으로 길을 재촉하면 먼저 만나는 게 배너미재의 이정표라!
사거리에서 구왕봉까지 2.8km니, 희양산까지는 2km 남짓. 해서 처음에는 이 사거리를 성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티마을로 향하는 길은 우리가 2018년 하산했던 길이고. 해서 주변에 성의 흔적을 찾아봤는데, 없다. 흔적은 없더라도 성터라 믿고, 여기서부터는 지난번에 왔던 길이라 중복구간이라 여기고, 뭐 이런 정도라면 은티재까지 달려도 시간이 남아돌겠다고 생각하며 남으로 향했다. 그런데, 기복이 심해, 꽤 힘들다. 분명 지난번에는 쉬운 길이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그렇게 몇 개의 봉우리를 넘고 나자 아까 그 사거리가 성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당연히 지금 가고 있는 길은 초행이고. 폭염 속에 땀을 삐질 거리며 몇 개의 기복을 넘는데, 앞에 가던 인솔 대장이 나를 보더니, "힘듭니다!"한다. 해서 "네!"라고 답해주고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그리고 뒤에서 따라오는 일행을 기다리던, 안면 있는 산꾼이, 일행을 인솔해 나를 추월해 가고 난 이후 당연히 내가 후미 끝에 있다고 생각하고 유유자적 그 뒤를 따라갔다.
앞선 팀 또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고갯마루에서 쉬고, 그럼 쉬는 걸 모르는 내가 추월하고, 다시 봉우리 정상쯤에서 그들이 나를 추월하는 걸 반복하기를 여러 차례, 마침내 울창한 숲사이로 구왕봉이 보이는 지역에 도착했다. 희양산이 코앞이다. 그리고 그 봉우리에서 내려가자 돌로 쌓은 성벽이 보인다. 성터다. 난 성터가 희양산으로부터 꽤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바로 아래다! 그리고 성벽 반대편에는 일 년에 딱 한 번 초파일에만 개방하는 봉암사에서 설치한 목책이 있다. 이제야 익숙한 광경이다. 여기서부터 은티재까지가 진정한 중복구간이다. 대간이 목적이라면 이 순간 늘재에서 연칠성령까지 연결됐으니, 2018년과 같이 여기서 은티마을로 내려가며 된다. 하지만, 난 지름티재가 궁금하다. 즉 지름티재에서 은티마을로 가는 코스가 궁금했다. 그리고 현재 시각 1시 36분으로 마감까지 3시간 30분가량 남았다.
분위기로 봐서는 여기서 하산할 거 같이, 지쳐 성벽에 주저앉아 있는 인솔 대장을 뒤로하고 위로 올라갔다. 한 500여 미터 올라가자, 그 산꾼이 일행과 함께 과일을 꺼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려 키위로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가, 봉우리 하나를 넘자, 저 아래로 쉬고 있는 일군의 대간꾼이 보인다. 희양산 갈림길이다. 좌로 내려가면 지름티재고, 직진해서 올라가면 희양산이다. 거리는 400m! 분위기로 봐서는 쉬고 있는 사람들은 희양산에 갈 생각이 없어 보여, 아무 소리 없이 배낭을 벗어 한쪽에 두고 카메라와 핸드폰만 들고 희양산을 향해 올라갔다. 폭염경보 하에 한 번 올랐던 봉우리라 굳이 가지 않아도 좋지만, 2018년 왔을 때 정상석 사진을 남기지 못해 기록용 사진이 필요했다. 희양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 곳곳의 전망대에서 주변의 절경을 사진으로 남기며 가자,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그 산꾼과 여성 대간꾼이다. 그리고 좀 있으니, 쉬고 있던 젊은 대간꾼도 따라왔다.
그렇게 넷이 이미 희양산에 들렸다가 내려오는 대간꾼과 인사를 나누며 위로 올라 2시 5분에 희양산 정상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희양산 정상석을 사진으로 찍고, 산꾼에게 부탁해 인증도 남겼다. 물론 찍어도 주고. 그렇게 상부상조 후 전망대로 가서 주위를 둘러보고, 저 멀리 월악산과 아래에 봉암사 등을 사진으로 남기고 제일 끝으로 희양산을 떠나, 2시 17분에 지름티재 갈림길에 도착했다. 1시 52분에 떠났으니, 희양산 왕복에 25분이 걸렸다. 역시 예상대로 쉬고 있던 대간꾼들은 떠나고 없었다. 오늘 같은 불볕더위 아래에서는 현명한 판단이다.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지름티재를 향해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물론 100여 미터에 이르는 직벽을 내려가야 한다. 내 뒤에는 성터에서 내려갔을 확률이 높은 인솔 대장 외에는 없는 상황이니, 한 명씩 밧줄을 잡고 모두 내려가야 내 차례가 돌아오는 상황이다. 즉, 세월아 네월아 차례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차례차례 밧줄을 잡고 내려가, 2시 27분경 직벽을 무사히 다 내려왔다. 이제 지름티재까지 가면 된다. 지름티재로 향하는 길목에는 언제 미끄러져 산사태를 일으킬 지 모를 넓적한 바위를 한 뿌리에서 나온 네 줄기 가는 가지가 막고 있는 걸 보고, 그 가는 나무의 무한한 힘에 감탄하며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봉암사에서 설치한 목책을 보자, 그 익숙한 모습에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유유자적 가다가 마치 미소 짓고 있는 거 같은 바위를 사진으로 남기자 뒤에서 따라오던 여성 산꾼 둘이 뭘 찍나 쳐다보다가, 그들도 사진을 찍으며 가오리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노닥거리며 길을 가 2시 56분에 삼거리에 도착했다. 그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은티마을까지는 3km, 구왕봉까지는 0.5km 거리다.
무언가 꽤 중요한 삼거리임은 틀림없는데, 현 위치에 관한 정보가 어디에도 없지만, 구왕봉에 오를 생각은 없어 내려가겠다고 하자, 그 산꾼이 구왕봉이 500m밖에 남지 않았는데, 같이 올라간 후 정상에서 하산하자고 권한다. 애초 목표가 지름티재라, 그럼 구왕봉은 몰라도 지름티재까지는 갈 생각으로 등산 앱을 확인해 보니, 여기가 지름티재다! 깜짝 놀라, "지름티재!"라고 외치고, (이미 은티재에서 성터까지 다녀왔다는 걸 몰라) 끈질기게 권하는 걸 사양하고, 은티마을을 향해 좌회전했다. 왜 그렇게 권하는지 당시에는 몰랐는데, 하산주 마실 때 다른 등산객이 나누는 얘기를 듣고 알았다. 인증 때문이다.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처가 구왕봉 정상과 은티재 이정표인데, 구왕봉에서 인증하고, 다음 대간 구간인 은티재~버리미기재 산행 때 은티재에서 인증하면 된다는 얘기다. 연결이라는 걸 놓고 보면 구왕봉과 은티재는 끊어져 있지만. 그래서 대장이 정 힘든 사람은 구왕봉 정상 20여 미터 아래에서 하산하라고 한 거였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나라면 구왕봉과 은티재를 연결하기 위해 다음에 또 왔겠지만!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지만, 어쨌든 다들 구왕봉으로 올라갔고, 내가 후미 끝이니, 지름티재 계곡으로 내려오는 대간꾼은 없을 거라는 믿음에, 알탕할 만한 소를 찾으며 내려갔다. 사실 구왕봉에 가자고 권하는 걸 끝까지 사양한 이유가 알탕 때문이기도 했다. 이미 더위는 먹었고, 더 갔다가는 열사병에 걸려 쓰러질 거 같았다. 계곡에서 배가 터지게 시원한 물도 마시며 내려가 3시 15분에 성터 갈림길에 도착했다. 거기 있는 이정표에 성터라는 걸 보자, 깜짝 놀랐다. 그럼 2018년 이 갈림길을 지나갔다는 얘기라. 어쨌든 성터 방향에서 요란한 물소리가 들리는 게 알탕할 만한 소가 있다는 얘기라 일단 그 방향으로 내려갔다. 퍽 만족스러운 건 아니나, 혼자서 알탕할 만했다. 해서 겉옷을 벗어 나무에 걸고, 속옷 차림으로 물에 들어갔다. 생명수 속에 잠긴 듯 새로운 삶을 얻은 듯했다. 생명수에 푹 잠겨, 간식으로 가져온 복숭아를 먹기도 하면 25분 정도를 보냈다.
그렇게 이번 산행에서 먹은 모든 더위를 계곡에 흘려버리고, 입고 들어간 속옷을 깨끗이 빨아 다시 입었다. 속옷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기서 은티마을까지 0.8km를 내려가는 동안 다시 더위 먹을 거 같아, 거기에 대비해서다. 물론 수건 두 장도 깨끗이 빨아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리고 모든 인적을 인멸한 후 계곡을 떠나 다시 지름티재 삼거리로 돌아가 마을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마을을 향해 갔다. 애초 이번에는 하산주는 집에서 할 생각이었으나, 물에 빠졌다 나오자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 활기차고 술도 끌렸다. 해서 가벼운 걸음으로 마을로 향해 4시 정각에 구왕봉에서 오는 갈림길을 지나,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 도로에 도착했다. 이에 대비해 계곡에서 잘 빤 수건 두 장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속옷 또한 젖어, 별다른 더위는 느끼지 못했다. 해서 유유자적 도로변의 이름 모를 열매와 과수원의 사과, 주변 경치를 사진으로 남기며 갔다.
와중에 잘 지은 걸로 보이나, 땡볕에 홀로 서 있는 이층집을 보자, 나라면 절대 저 집에서 안 산다고 중얼거리며 내려가며 보니, 그럼 그렇지, 펜션이다. 누가 저런 전원주택을 짓고 살겠나? 주위에 보이는 것에 별 쓸데없는 의미를 부여하며 내려가자 저 멀리 은티마을의 상징 남근상이 있는 서낭이 보인다. 그 도로 건너는 은티주막이다. 그런데, 그 주막 야외 테이블에는 간편한 복장의 예닐곱의 관광객? 이 술을 마시고 있다. 여성도 한 명 포함. 그리고 한 명의 등산객이 그들과 등을 돌리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시간상 그들 팀은 우리 일행일 수 없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막걸리를 마시는 등산객이야 안면은 없으나, 일행일 거라 생각하고, 먼저 서낭으로 가서 남근상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는 거로 이번 산행을 마감한 시각이 4시 18분이다. 산행 마감까지는 52분이 남아, 하산주 시간은 충분하다. 추가하자면, 성터 갈림길에서 은티주막까지 800m를 내려오는 동안 속옷과 수건이 바짝 말랐다. 사전에 조치하지 않았다면, 오는 중에 도로에 쓰러지지 않았을까?
3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주막 밖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로 갔다. 지난 5월 22일 버리미기재~은티재 구간 산행이 끝나고 주막에 들렀을 때 주인장으로 착각했던 할머니다. 당신의 말에 따르면 혼자 열심히 사는 주막 주인장이 안타까워 도와준다고. 물론 공짜는 아니고, 주막을 찾은 등산객을 상대로 농산물, 산나물, 기름 등을 판매한다. 어쨌든 주인장이 보이지 않아, 그 할머니에게 안주가 뭐가 있냐고 물었는데, 두부가 좋다고 해, 손두부와 이슬이를 주문하고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다. 그러자, 관광객이라 착각했던 팀이 혹시 '안내산악회'와 같이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반가워하며 자기들도 같은 산악회라는 거다. 해서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들은 시루봉에서, 바로 하산했다고. 그럼 모든 게 이해된다. 대간 팀이라기보다는 처음 보고 평가한 관광객이 맞다. 다만, 오늘 같은 폭염속에서는 그게 현명한 판단이라는 게 문제. 그 팀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먼저 밑반찬과 이슬이가 나와, 이런 불볕더위 아래 비록 은티재까지 달리지는 않았지만, 애초 계획에 맞게 남들은 지나친 시루봉과 희양산에 오른 후 지름티재로 하산한 걸 자축했다.
주문한 손두부가 나와 그걸 안주로 시루봉 팀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이슬이를 홀짝이는 동안, 계속해서 내가 내려온 길로 같은 안내산악회로 온 대간꾼이 내려온다. 그 길에서 내려오는 건 성터, 지름티재, 구왕봉에서 내려오는 거고, 은티재에서 하산하는 건 그 오른쪽 옆길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은티재 방향에서 내려오는 대간꾼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많아도 너무 많다. 지름티재에서 내려올 때 내가 후미 꼴찌, 즉 참여 인원 제일 끝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구왕봉까지 간 대간꾼에 비하면 내가 일찍 내려오는 건 당연한데, 그래도 너무 많았다. 그러다 대장이 한 무리의 대간꾼을 인솔하고 내려오는 걸 보고 놀랐다. 성터로 내려간 게 아니라, 뒤에 처진 무리를 인솔하고 내려온 거다. 대장의 투철한 책임감에 감탄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제일 마지막이 아니라, 최소 중간 이상이다.
그리고 조금 있자, 친숙한 산꾼이 그 일행과 같이 내려온다. 해서 같이 마시자고 그를 불렀다. 사양하지 않고 그와 몇 사람이 자리에 같이 앉아, 밑반찬과 두부로 배를 채우고, 추가로 라면을 주문했다. 그러는 동안, 주막의 수도로 당연히 옷을 입은 채 내려온 등산객이 흘린 땀을 씻었다. 그리고 대장이 폭염 때문에 하산이 늦은 등산객이 씻을 시간을 주기 위해 마감 시간을 5시 30분으로 20분 연장했다는 소식이다. 정확한 판단이다. 다만, 조금 일찍 내려온 시루봉 팀이나, 나는 한 병 더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세 병째 이슬이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시 은티주막에 올 일이 없을 거 같아, 할머니가 팔고 있는 들기름 한 병을 사서 배낭에 넣고, 5시 22분에 주막을 떠나,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갔다. 아, 그리고 그 자리의 술값은 그 친숙한 산꾼이 계산하는 바람에 다음에는 내가 사야 하는 상황이 됐다.
5시 26분에 주차장에 도착해, 바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언제 버스가 출발했는지 알 수 없고, 정신을 차려보니, 휴게소다. 물론 어딘지 몰라, 버스에서 내려 건물의 명패를 보고 '덕평'이라는 걸 알았다. 덕평? '다 왔잖아?'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시계를 보니, 6시 46분이다. 잘하면 9시 이전에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다. 7시간 50분 동안 산행하고도 9시 이전에 귀가할 수 있다는 건 괴산이 대단히 가깝다는 얘기다. 그리고 휴식이 끝난 버스가 휴게소를 떠나, 아침에 출발했던 백석역에는 8시 13분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빠르다. 해서 수고한 기사와 인솔 대장에게 인수 후 버스에 내려, 지하철로 백석역에서 연신내역으로 향하는 거로 이번 백두대간 사다리재, 은티재 산행을 마감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다리재에서 지름티재까지 달렸지만. 어쨌든 이번에 참가한 대간꾼 중 처음 계획대로 사다리재에서 은티재까지 달린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그만큼 힘든 산행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팀의 계획과 달리 '분지리 -(접속: 2.2km)→ 사다리재 → 곰틀봉 → 이만봉 → 시루봉 갈림길 → 배너미평전 → 시루봉 → 은티마을 갈림길 → 성터 → 희양산 갈림길 → 희양산 왕복 → 희양산 갈림길 → 지름티재 -(접속: 3km)→ 은티마을'의 14.08km(트랭글), 6시간 48분 동안 달렸다. 이동 6시간 19분, 휴식 29분! 휴식 대부분은 지름티골에서 알탕한 시간이다.
예상대로 분지안말에서 사다리재로 올라가는 급경사 1.9km에서 체력소모가 많아, 남은 산행이 힘들었다.
기상청에서 '폭염영향예보'를 발령했는데, 정확했다. 덕분에 21명의 대간꾼 중 처음 목표인 사다리재에서 은티재까지 완주자가 없었다. 만약 달렸다면, 열사병으로 쓰러지지 않았을까?
유감이지만, 봉 감독이 준 숙제를 위해 등산로 상에서 눈을 씻고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를 찾아봤지만, 빨간이든 파란이든 열매가 달린 나무를 못 봤다. 등산로에서 벗어난 숲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은티재까지 달리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희양산에 오르기 위해 2018년 은티재에서 성터까지 달려, 다시 갈 이유가 없었다. 이번 사다리재에서 성터까지 산행으로 백두대간 늘재에서 연칠성령까지 연결했다. 자름티재에서 하산한 건, 호기심과 알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