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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명.信天함석헌
나는 설교를 준비해 가지고는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어째서 날더러 여기서 말씀하라 나하고 참 마음에 많이 짐이 됐습니다. 그런대 지금 앉아 상황보고 하는 것을 들으면서 느낌은 설교는 그것으로 이미 다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본래 설교 준비 안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마지막에 나오도록 하셨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맹자의 말과 경기병대 애기
나왔으니까 한두 마디 앉아서 들으면서 느낀 것을 말씀을 하렵니다.
하나는 이걸 들으면서 생각난 것이 맹자(孟子)에 있는 말입니다. 맹자시대에 등(滕)나라라는 조그만 나라가 있었는데, 그 등나라의 임금이 젊었지만 그래도 착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이쪽은 큰 제(濟)나라이고 저쪽은 초(楚)나라이어서 그 두 나라를 세력 다툼 사이에 끼어서 아주 곤란한 지경에 있었습니다. 우리 형편으로 말하면, 한편에는 공산주의 나라 있고 한편에는 자본주의 나라 있어서 그 두 틈에 끼어 있어서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자보고 묻기를 「事楚乎이까 事齊乎이까」선생님, 우리나라가 제나라와 초나라 두 경쟁하는 세력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제나라 섬기랍니까? 초나라를 섬기랍니까?」그리고 아주 그 난처한 문제를 물었습니다. 보동사람 같으면 대답 아주 곤란한 문젭니다. 그런데 맹자가 아주 명대답을 했어요.
첫마디는「시모(是謨) 비오지소능급(非吾之所能及)이라」그것은 제 재주로는 모르겠습니다, 했습니다. 그것도 용한 대답입니다. 보동 속된 선비 같으면 우물 주물 자신도 없는 소리로 얼버무리지 그렇게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고 서슴지 않고 대답 못합니다.
맹자는 자기의 할 일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성현의 진리를 전할 뿐이지 그런 폭력으로 하는 정치는 알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끄럼 없이 확신을 가지고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정말 할 수 없거든 한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하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을 쌓을 수 있는데까지 높이 쌓고, 못을 팔 수 있는데까지 깊이 파고, 백성과 함께 죽기를 결심하고 지켜서 그래도 백성이 도망가지 않는다면 그것을 한번 해볼 만합니다 했습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맹자의 성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는 길 내놓고는 사는 길 없습니다.
또 하나 생각난 거는 그것은 시인데, 역사적 사실이 있어서 된 시입니다. 유명한 테니슨의 라이트부리게이드 경기병대(輕騎兵隊)라고 하는 건대 크리미아전쟁 때에 있었던 비장한 사실을 읊은 시입니다. 600명으로 되는 경기병대가 있었는데, 그들을 보고 장교가 무슨 실수를 하여서 그 경기병대를 보고 적의 대포진을 향해 “돌격!”하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600밖에 아니 되는 기병 보고 포진에 돌격을 하라니 미친 소리입니다. 그래 그 시에도 누군가가 바보짓을 했다고 했습니다. 필시 잘못해서 한 명령이겠지요. 앞에도 대포, 바른편에도 대포, 왼편에도 대포인 그 포진에 대해 기병보고 돌격! 그랬으니까 미친놈이 아니고는 그런 명령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래도 그 기병대들이 그 소리를 듣고 한 사람도 반대도 아니 하고, 묻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냥 돌진해 나갔다는 겁니다. 왜요? 군인의 할 일은 오직 복종뿐인 것을 그들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테니슨은 그것을 놀라운 두 줄의 명구로 표시했습니다.
그들의 할 일은 이유 따짐이 아니었다.
그들의 할 일은 다만 하고 죽음뿐이었다.
Theirs not to reason why
Theirs but to do and die
그 600명은 아무도 반항 하나 안하고 달려 죽음의 이빨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대포는 갈 때도 올 때도 쉬지 않고 불을 퍼부었습니다. 돌아올 때는 600명이 못되고 많이 죽고 일부만 돌아왔습니다. 죽기는 그렇게 죽었지만 그 600명의 이름은 영원히 역사상에 남을거다, 그러는 게 그 유명한 시입니다.
보고를 들으며 앉아있는 동안 나는 마치 5천여 년 전 조그만 등나라 사람이나 크리미아 전쟁 때 영국 기병이 아주 죽는 것이 목적이기나 한 듯이 싸우는 그 전장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예배를 오늘 이렇게 받고 싶을까? 한마디로 요대로 오늘 저녁의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카데미란 어떤 곳이냐? 난 사실은 이 순간까지 아카데미를 잘 몰라요. 그건 내가 물론 잘못이지만, 성의가 없어서 그랬지만, 뭘 하는지 잘 몰랐어요. 또 어째 그런 사건이 생겼냐? 그것도 몰랐어요. 또 농민들 얘기 아노라 그랬어도 실지 그렇게 농민이 농촌에서 살아가는, 혹은 죽어가는 실정을 몰랐습니다. 또 지도자가 나가 하는 걸 실지 당해보고 그렇게 하고 와서 그렇게 사실 대로 보고하는 것 이때까지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나만 아니라 여러분도 많이 그리할 줄 압니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면? 아카데미사건 왜 그런거 났나? 적어도 이 우주에 하나님이 안계시담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신 이상에 어찌 그런 사건이 났을까? 그건 차차 얘기합시다마는 물론 그 사건만이 아니지요. 왜 그런 거 났느냐? 그런다면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없어요. 요대로 이 현실에 벌어진 사살을 요대로 좀 우리 눈으로 보라고, 아마 오늘 저녁에 여기 왔다가 어려분이 돌아가시면 마음이 좀 다를 꺼야요. 이걸 보고도 달라지는 것 없이 그대로 있다면 사시나 마시나 한 분들이지요. 살아는 뭘 하겠어요!(웃옴)
가브리엘과 에반젤린의 사랑
그담 또 하나는 그것도 역사의 사실이 좀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좋아서 늘 하는 얘기인데, 이제는 나이 늙었으니까 새건 못되고 옛날 있던 거 다시 팔아먹고 다시 팔아먹고 그러는 거지요. (웃음)
또 이 이야기는 퀘이커 이야기인데 내가 퀘이커니까 그래서 또 퀘이커를 내세우자는 생각도 아닙니다만, 하여간 퀘이커니까 퀘이커라고 해야지. 에반젤린 얘기인대.
신대륙이 발견된 후 불란서 사람이 신대륙에 건너가서 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평화롭게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치 관계로 그 땅이 영국으로 건너가게 됐어. 그런데 그 부락에서 40년 동안을 그 사람들을 신앙으로 지도해온 늙은 신부가 있어요. 늘 하나님한테 순종해서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 그이를 예수님 모시듯이 모시고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영국병정이 달려들더니 모두 나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모든 농민은 죽어도 못나간다, 했습니다. 그래 반항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럴 때 아까 맹자 모양으로 그럴꺼 아니야요? 죽던지 살던지 이런 부당한 일에 대해 항의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굴하게 항복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 모두 일어섰어요. 그러는데 그러는걸 보고 늙은 신부가 일어나더니「내가 40년 동안 너희에게 가르쳐준 것이 뭣이냐? 불의에 대해서 항거하지 말고 사랑으로 가만히 참아야 한다고 그러지 않았느냐?」그래 마지막 그 설교를 듣고 그 사람들이 감동이 돼서 항거하기를 그만두고 뿔뿔이 헤어져서 살 곳을 찾아 나가요. 그런데 그건 물론 비참했던 사실이겠지만, 그런 억울한 고난 중에서도 낙심도 비굴해지지도 않고 사랑과 평화로 이겨가는 그 의미를 표시하기로 한 젊은 에반젤린을 내세워서 표시하는데, 그는 그 촌중에서 아주 인물이 잘났고 마음도 이쁘게 생긴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처녀입니다. 많은 젊은이가 서로서로 아내로 삼겠다고 그러는 중에서 아주 고르고 골라서 택한 대장장이 아들 가브리엘과 약혼이 돼서 이제 결혼식을 며칠 있다 할텐데 그 사건이 터졌어. 그러니 어떻게요? 갑자기 늙은 아버지는 충격에 못이겨 서로 헤어져 흩어지는 바닷가에서 죽고, 혼란 중에서 어떻게 되서 그만 둘이 갈라졌어. 그대 이제 둘이 서로 찾는거야요. 가브리엘은 에반젤린을 찾고 에반젤린은 가브리엘을 찾고 미대륙에 여기저기 찾아다녀, 오늘 여기 가서 물으면 아 며칠 전에 여기 왔었는데, 또 거기 따라가면‘아이구 한 달 전에 왔었는데’ 그래 이리 올꺼라고 해 기다리노라면 오지도 않고 그러다가, 줄여서 간편하게 말하면, 마지막에 그러다 그러다 일 다 되지 않고 에반젤린은 어디 가서 의탁할 데가 없으니까 친절하다는 퀘이커들한테 가서 의탁을 해. 퀘이커 사람들 거짓말 안하고 사랑하고 참되고 그렇다고해서 거기 가서 있는데 그때 마침 그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어. 사람이 자꾸 죽어 들어와요. 거기서 자기 마지막에 남편은 못 찾았으니까 안되고, 이제는 사랑이 점점 순화가 돼서 남녀 사랑에서 아니라 아주 높은 봉사의 사랑으로 변화했어. 병원에 죽어가서 봉사하는 간호원 노릇을 해요. 간호원 노릇을 하는데 날마다 날마다 사랑으로 정성껏 하니까 그 환자들이 천사같이 대접을 해. 좋아서 좋아서 그런데 하루아침, 꽃을 한 아름 따가지고 병실로 들어가는데, 아침 햇빛에 보니 그중에 어떤 환자가 방금 이제 숨을 넘을라고 하는데 그 얼굴을 보니까 일생에 찾다 못찾았던 가브리엘이 아닌가? 그래 마지막 순간에 키스해 드리고 하나님 앞에「다 이루었습니다, 고맙습니다」그리고 끝나는 거야요.
이 세상의 불의와 싸와가는 역사에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억울이란 그런 억울이 어디 있어요? 수십 년 동안 자기네가 충실하게 농사해 먹던거를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정부끼리의 흥정 때문에 불란서는 물리서고 영국병이 와서 다 나가라 그러니까 영국군으로서는 당당하다고 하는 일이겠지만 농민들로 하면 억울하기가 짝이 없지. 그럼 대항을 해 죽으면 되느냐? 인생의 목적이 어느 순간에「죽어도 좋다!」하고 그럴 때는 그렇지요. 죽어 마땅하지요. 만일 이렇게 말하는 나라도, 아주 겁이 많은 이 사람이라도, 6.25 때는 살아남았지만, 나는 그럽니다.「이제 전쟁나면 나는 도망 안갈꺼다!」그럽니다. 그래 생각이 모자라 도망을 갔지 가긴 뭘 가. 그때 부산이라도 한구석에 남았다가 반격을 해올 수 있었으니 그렇지. 그렇지도 못한다면 어쨌을 거냐? 나도 나가서 조약들이라도 던지다가, 나는 비폭적주의자입니다마는, 손톱이 있으면 손톱으로 할퀴고 이빨이 있으면 이빨로라도 물어 뜯다가라도 그러다가 죽지 비겁하게「살려주셔요」공산주의할께요 그러겠어요? 그러지는 않율꺼예요. 하지만 사람의 생이라는 건 그거로만 다 되는 건 또 아니야요. 그러니까 6백명이 포대를 향해서 들어가는 그것도 용감은 하지만 아마 테니슨이 지금 살아있다면 그 시를 그렇게는 안 만들꺼야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그때는 권위주의적인 정치 밑에 있을 때는 그걸로 아주 참 노불한, 아주 고상한, 아주 영광스러운 일로 인생으로서 보람을 느끼고 그럴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마 그렇지는 않을꺼에요.
그래 늙은 신부가 가르쳤던 그런 가르침을 들을 필요 있지 않을까? 그래 오늘은 그런 진상보고를, 나 혼자서도 그랬어. 내가 말하기 전에 누가 나와서 진상을 죽 보고를 해주는 사람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실지 이것을 체험한 사람이 보고하는 그것이 설교라면 제일 좋은 설교라고 그러면 좋겠는데 그랬는데, 잘 준비하여서 아주 잘 됐는데 가족들이 못 오셨다니까 그거 좀 안됐어.
고소하는 말은 안하겠다
이렇게 될 줄은 모르고도 한 말이지만 정부에 대해서 고소하는 말은 안하겠어요. 이렇게 모인 다음에는 할 일이 둘 있잖아요? 첫째 잘못을 규탄하는 거, 확실히 규탄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일수록 우리 하나님이니까 정의의 하나님 믿는다고 그러면서, 내속에 정의가 없기에 불의를 보고 규탄할 생각이 없지. 내속에 정의가 있다면 불의를 보고 어떻게 규탄 안할 수가 있어요? 규탄 안하는 사람은 이 썩어질 이 육신이 아까워서 안하는 거지. 변명이 여러 가지로 있을 수 있어도 결국은 이 모가지가 아까워서 못하는 겁니다. 내가 내속에 그런 거 있으니까 솔직히 고백하는 말입니다. 내가 그러니까 남도 그럴꺼라 그 말씀입니다.
또 한편으로 다른 면이 있어. 우리는 우리의 가해자, 해를 우리에게 가해준 그 사람도 우리가 상대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상대하는 건 정말은 하나님인데, 하나님한데 대해서는 우리가 고소도 하고 그러긴 그러지만 마지막에 할 거는 아마 그거 아닐꺼야요. 그래 옛날에는 제사지낼 때에는 다 이렇게 제물을 갖다놓고는 자기의 분한 일 모든 감정의 일 모두 다 풀지 않아요. 다 해놓고는 마지막에는 그 제물에다 불을 켜대서 살라서 향기로운 제사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도록 하는 거 아니야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모였으면 불의에 대해서 규탄할 수 있는 대로 하지만, 거짓말을 해서는 못써요. 없는 걸 추측을 해서 아마 이놈들이 이랬을 거야 하는 그런 말도 해서는 못써요. 아무리 그럴듯이 보여도 우리는 그거는 하지 맙시다. 확실한 것 분명한 것이 있기 전에는 저놈들이 아마 그랬을 거야 하는 건 그 사람을 위해서 아까와서 못하는거 아니라 나 자신이 아까와서 못하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내가 거짓말하러 나온 사람은 아닌데, 하나님 앞에 참을 하자, 조그맣더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기 위해 나온 사람이지 그런 건 아니니까, 내가 나를 아껴서 그런 건 차마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또 미운 생각에서 할 수도 없구요. 하나님 믿지 않으면 몰라요. 예수 믿지 않으면 몰라요. 아까「Do and Die」라고 했습니다만 모르긴 몰라도 그 군인들도 믿음이 없다면 그렇게 못했을줄 압니다마는, 기독교 도덕에 있어서 아주 완전한 지경이라 하지는 못해도 상당히 놀라운 도덕인데,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건 역시 믿음이 있어서 하는줄 압니다마는, 참 믿음이 있어서 한다면 그 보다는 우리가 윗지경을 목적해야 합니다. 그대도 그때가서 우리에게 어떤 것이 허락이 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마음에 바라기는 그걸 바라야 할꺼예요. 가장 완전한 지경을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려고 할 때에는 먼저 네 이웃 친구가 네게 대해서 언짢게 생각하는 것이 있거든 먼저 가서 화해하고 오너라” 그랬으니까 거기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 마음에 그걸 기억해두고 그 미운 생각 억울한 생각 안타까운 생각을 둬두고는 하나님 대하는 것은 아마 안될꺼야요.
그러니까 아주 어렵지만 그 두 면이 다 있어야 우리 예배 모임이 의미가 있다고 그럴 겁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에요. 어려운 일을 우리에게 교육시키자는 것 하나님의 일이니까 우리 마음에 생각되는 건 “하나님 그거 못 견디겠습니다” 앙탈할 수 없고, 예배드린다면 하나님 주시는 거 그대로 받는다하는 그런 생각이 있어야 할 텐데,마지막에 나는 솔직히 말합니다마는 저 사람들은 내 마음에 아주 끊어버린 정도는 아닙니다. 어느 때 가다가는 아주 기독교적인 신앙에 서서 최후까지 사람이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는 아무리 악독해도 아주 단안을 내려서 “저놈은 아주 소망이 없는 놈” 그럴 수는 없으니까 아주 정신 이상이 생겨서, 늘 많이 비유를 듭니다마는, 자동차 운전을 하는 놈이 미쳐버렸다면 그건 나라도 피스톨을 쏠거야. 내가 그때 어쩔 수 없이 한 차에 탔노라면 판단이 저놈 확실히 미쳤다 한다면, 미워서가 아니지만, 쏘기라도 할 겁니다. 그것도 못하겠다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판단내리우기 참 어려운 거거든. 참 어려워. 어떻게 누가?
연전에 보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무의식 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 시킨다고 그 부모가 의사에게 몇 번을 청했어도 의사가 안락사 결국은 못시킨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런걸 보면 사람의 목숨이란 그렇게 아까운거니까 아주 마지막 금을 그어서 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그래도 그래도 그 사람들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있지요.
보동 정도의 생각을 하면 나도 그 사람들에게 이제는 거의 말할 생각이 없어졌어. 그러나 아주 없어진 건 아니야. 왜그러냐 그러면, 자기네가 잘못이 있다는 말 한마디도 안해. 이날까지 정치에 잘못했단 말 국민 앞에 공적으로 한 일 없어요.
그러고 또 그보다도 더 나쁜건 비판하지 말래요. 법을 만드는데 비판을 해도 잘못이다, 그건 못할 소리요. 하나님이 용서 안할꺼요. (박수)
사람은 사람이니까, 잘못 아니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해도 잘못을 솔직히 인정을 하고 고쳐야 하겠다고 하는 그 생각, 완전히는 고치지 못해도 고치기 위해 노력을 하는게 사람인데, 그건 용서할 수가 없어. 하나님이 반드시 노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사람을 하나님이면 건져요? 건질 수 없어. 어떻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것만은 단안을 내리울 수가 있지요. 그건 나도 서슴지 않고 말하겠어.
그러기 때문에 자꾸 말하는 건데 말할 때마다 나는 반성을 합니다. 잘못이라고 지적은 하면서도 내 성의가 모자라나? 내가 아직 감정을 면하지 못했기 매문에 저 사람이 듣지 못하나? 나는 반성해요. 반성 하긴 해도 오늘날까지 해도 나만은 아니니까 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다른 분은 어드러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나는 적어도 마음에 그 반성은 하면서 하는데 어느날 가면 아무리 개인이라도 정말 참 마음이 참되게 그러면 들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예수님이 십자가 서 열둘 중에 있는 유다에게서 보여 주신걸 보면 인생의 일이 반드시 그렇게 또 말할 수도 없어. 그건 예수님으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필시 세상에 있어서 부족한 우리들의 메기 어려운 점을 건지셔서 나갈 구멍을 가르켜 주시기 위해서 그런 사실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있고 열둘 중에 하나가 배반을 했고 하지만, 그거는 우리가 할 수 없어서 마지막에 당하는 경우고 될수 있다면 그래도 아까 말씀대로 내가 나를 위해서 어떻게든지 전부를 하나님에게 맡기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하는데, 어제, 이제 또 말이 길어졌습니다마는 이왕 나왔으니까 내속에 있는 걸 풀고 들어가야지 안풀고 들어가면 내가 안돼.(웃음).
天也라 非人也라
어제 밤 우리가 莊子공부를 했어요. 장자에 그런 말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다리가 하나 없어. 옛날 다리가 없다면 대개 무슨 죄를 졌다가 형벌 당했어. 지금은 아주 잘라버리는 형벌은 없어요. 어느 나라에서는 안하는 척하면서 더러 그런 따위짓을 합니다마는 적어도 문명했다는 나라에서는 신체의 어느 부분을 자른다든지 악형을 하다가 잘라져 나간다든지 그런 일 없는데, 옛날에는 그러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시원치 못한 사람일 것 아니예요. 그런데 이 사람 보니까 얼굴에 어딘지 보동사람이 아니야. 어떤 빛이 있어. 그래 공문원이란 사람이 보고 “어떻게 된 거요?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한 다리를 잘리운거요? 그게 天乎아 人乎아 하늘입니까? 사람입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 대답이 뭔고하니 “天也라 非人也라” 하나님이 그럭한거지 사람이 한거 아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 중에 하나예요. 아주 뻔뻔해서 그러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이 정말 아주 깨달은 지경 에 있는 사람이 돼서 그러든지. 그러면서 말하는게 뭔고 하니 “봐 하나님이 날 내시는데 한 다리가 없게 이렇게 하지 않았어. 그런데 사람이란 하나님이 사람을 내는데 누구든지 다 제모양은 제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고 하늘에서 주는 법인데 제가 미인으로 나고 싶다고 되는 법도 없고 제가 불구되고 싶다고 되는 법도 없고 하늘이 주는 건데, 사람이란 다 두 다리 가지는데 나만이 하나니까 天也라 非人也라, 하나님이 그랬지 사람이 그랬겠냐?” 그렇게 대답했다는거야요. 그러면서 그 아래 켠에 비유를 들기를 꿩이란 놈이 저 숲에서 살 때에 하나 얻어먹으려면 열 발걸음이나 나가야 얻어먹는다.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려면 스무 발걸음이나 나가야 물 한 모금 얻어 마신다. 살기가 그렇게 어렵지만 그놈을 잡아다가 농속에 두겠다면 가나? 안간다, 농속에 가면 잘 얻어먹고 원기 아주 왕성해서 요새 우리나라 사람들 아주 잘 살아서 보약 들입다 먹고 정력제 먹습니다마는, 요새말로 정력이 아주 넘친다 해도, 不善也라, 좋아 아니한다, 왜? 그 새장 속에 들어가서 정력이 아무리 넘친다 해도 이 자유하는 세계에서 남고 싶으면 남고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는 그걸 바라지. 살아가려면 어렵기야 어렵지만 그걸 원하냐? 그렇다고 해서 사람도 그런 거 아니냐? 天也라 非人也라, 하늘로 되는거지 어찌 사람으로 되는거냐? 그걸 보면서 놀란 거는 왜 이 말 길게하냐 그러면 기독교 신자 아니면서 어떻게 저런 신앙에 왔지 해서 하는 말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보통 말하기를 우리 그거는 기독교 신자만이 가지는 하나님이 전부를 주장하신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서 나왔다, 그거는 신앙인데, 그거 예수님이 가리켜줘서만 아는 줄 알지만, 장자도 그러고 노자도 그러는걸 보고 놀랬어.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와서 가르쳐줬으니까 알지만 이 사람들 그러지도 않았는데 놀라운게 있어.
그래 속이 좁은 기독교인들은 우리 예수님만 하지 그 사람들이 하냐? 그것은 거짓이다, 그렇다고 그러지만 그거는 아주 비열한 소리고 우리 예수님 하신 소리 불교에도 있고 회교에도 있다, 좋다, 정말 우리 예수님이 잘나신 분이다,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진리, 전념하면 그뿐이지, 나는 더 기쁘지 손상되는 것 없습니다. 그렇게 좁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면서 잘못을 하고 그러잖아요.
선과 악을 몰아서 선 되게 하신다
그러니까 내 지금 말씀드리자는 건 그겁니다. 그래 내가 하는 것 보담 산전수전 겪고 했던 바울의 입을 빌어서 할꺼예요.
형제 여러분 내가 당하고 있는 이 일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갇혀 있다는 사실을 경비대와 그밖에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갇힌 일 때문에 많은 교우들이 주님을 더욱 확고히 믿게 되었고, 이게는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용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뙜습니다.
이게 정말 산전수전 겪은 바울의 말인데 바울 같으면 그 자식을 복음 반대하는 놉들 모두 죽여버려라. 그럴것 같은데 도리어 그러지 않고 자기가 자신 있게 그렇게 싸우면서도 내 이일로 인해서 내가 이런 고통당하게 됐으니까 그 일이 차라리 좋다 그려요. 그리고 그 만이 아니예요.‘
“어떤 사람들은 시기와 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하지만 선의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는 이걸 읽으면서 아카데미 생각을 해 봤어요. 아카데미에서도 어쨌을까? 그건 난 몰라요. 순전한 선의로 했을까. 혹은 또 다른 무슨 경쟁심에서 했을까.
“선의로 전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수호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이기적인 동기에서 전하는 자들은 성신한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나를 괴롭힐 생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 내게 있습니까. 가식으로 하든지 진실로 하든지 결국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일이니 나에게는 기쁜 일입니다. 또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갇혀있지만 그것이 마침내는 여러분의 기도와 예수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에게 구원을 가져오게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 환란 중에 있으면서도 바울이 보여 주신 것은 자기가 고난을 당해도 도리어 나는 고난을 당하지만 그걸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니 좋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성실한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이 섞였어. 명예심도 섞이고 영웅심도 섞이고 당파심도 섞이고 그런 마음에서 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서 내가 그때문에 더 욕을 당한다.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에 말이야. 이 자식아 너희들 농민운동 했다는데 공산주의자들처럼 그런 거 아니냐, 그러고 냅다대는 모양으로 공산주의를 위해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무엇이 순전치 못한 것이 있으면 우리가 혹 그런 비난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그런지만 바울은 그래도 좋다, 그래도 좋다, 왜 그러냐 하면 어쨌거나 예수의 이름이 전파 된다,그것은 무슨 소리냐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그 인격을, 예수라는 그 인격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다 돌아서 선이 되게 하시는, 설혹 동기가 아무리 불완전하게 했어도 그 자체가 위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것까지도 마침내 하나님의 진리가 전파되게 하실꺼다, 하는 그런 믿음, 그 믿음이 어디서 오나? 그 믿음이 자기의 지식에 호소하고 요럭하면 될까 저리 하면 될까 하고, 일을 하려고 할 때 무슨 약책부터 꾸밀려고 하고, 무슨 수단으로 하려고 하고. 어떻게 교묘하게 할까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그런 신앙에 갈수가 없었어. 나는 여기서 할 말이 있어. 지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없어요. 말 안듣겠다는 사람한데 어느 때가면 이제 하나님이 허락을 하시면 그것도 죽으면서 최후로 한번이냐 하게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지금 생각으로 한다면 안듣겠다는 사람을 그거는 하면 뭘해. 예수님도 개에게는 거룩한 물건 주지 마라, 돼지에게 진주 주지 마라, 그것은 받을 만한 사람한데 받을만한 자격 있는데 주는 것이지 받을 자격 없는데 주는 것은 네가 도리어 그 진리를 더럽히는 일이다, 그건 왜? 네가 괜히 쓸데없는 욕심 대문에 전도했다고 하는 말들을려고 네 성적을 거둘려고 그런 거 있어서 그러지, 그렇지 않다면 목이 마른 사람에게 물주지 목마르지도 않은 사람에게 먹어라 먹어라, 그건 필요없지 않으냐? 그런다고 그 사람이 먹겠냐, 지금은 무슨 까닭에서 그랬든지 필시 하나님이 무슨 쓰실 데가 있어 그럴꺼예요. 그건 내가 감히 판단해 말할 자격 없지만 하나님이 가다가 적당한 곳에 쓰세요. 미친 개 때릴 때는 가시 돋은 나무 쓰는 모양으로 어떤 무슨 어려운 일을 해결하려고 할 때에는 인간에게서 이미 스스로 제행동으로 지옥으로 가기로. 자기가 결정하는 걸로 쓰실꺼에요.
농촌문제 본래 잘못
하지만 그런 일에 대해서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해야 할텐데 이 자식 잘됐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자식이 못돼. 제발 그러질 말자. 이 사건 왜 나타났나? 분명히 우리, 들어보건대 농민운동 했는데 공산주의로 모느냐? 세세한 건 모릅니다. 나는 그전의 지식 아무 것도 없이 와서 오늘저녁 듣고 판단을 해도 “그거 만드는 구나!” 열이면 열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만드는 수작이지 그럴 수가 어디 없잖아? 증거가 뭔고 하니 사실을 조사하는 사람 같으면 왜 그렇게 음폐하려고 그래. 사실을 공포하지도 않고 몰래가서 그럴 수가 없어요. 또 그거 만 아니라 나도 경험을 해 많이 알아요. 거짓말 많이해! 거짓말 하는 것은 속에 실력이 없기 때문에 그래. 돈으로 자꾸 쓸라고 그래. 농촌문제 본래 잘못한거요. 잘못해서 본래 이렇게 된건데 농촌정치 옳게 했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아요.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자식도 있고 내 사위 놈들도 있고 해서, 농사하겠다고 해서 지금도 해요, 그때 내가 예언해 준거야요. 과거에 지난 걸로 봐서도 가망이 전연 없다고 그럴 수는 없지만 말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건 어느 때 가면 하게 될 런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은 지금 여기 오신 분 우리 자체를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왜 그 예수 그렇게 팔아먹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경륜에서 나오지 사람으로 되는 것 아니다, 그러니까 아카데미사건은 왜났나? 날리가 없어. 그것은 왜그러냐?
그것을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해석을 하자느냐? 당국을 잘못이라 한다면 그거는 간단해요.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내가 구원이 못되는 걸 어떻게 해! 내가 구원이 안되고 그다음 뭣이 있냐? 이점은 나는 토론을 하자면 많이 토론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아는 것만큼 밖에 말씀 못드리겠고 이담에 더 깨달은 것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지금은 여러분 우리를 아끼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사건이 난 것은 아카데미를 단련을 하시기 위해 그런다. 그것이 좋은 일을 위해 있는거니까 그것을 아끼기 때문에 오늘 그 사건 만든거다. 이 세상에서 그걸 하는 놈은 나쁜 놈이니까 제죄로 그걸 맡아서 그랬겠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그걸 불러다 내는 것 “너는 이거나 해봐!” 그럭하노라면 너도 아마 회개가 돼서 옳게 될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고 또 이일 같은 거 네가 맡음직하지 않냐? 아마 그렇게 뽑은 걸꺼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는 그 이상으로 합리적으로 해석을 할 수가 없어. 내 믿는 논리에서,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그렇지만 하여간 우리가 알고 싶은 거는 아카데미를 아끼시기 때문에 아카데미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가족들이 돼서 우리 남편 걱정났다고 그러지 마세요. 하나님이 정말 특별히 하실 일이 있어서 시키실 일이 있어서 그를 통해서 시키실 일이 있어서. 그러다가 죽으면 어떡합니까? 뭐 살았을 때만 일하나? 살았을 때 못한 일 죽어서 합니다. 그걸 못 믿겠거든 여기 오지 마시오!(박수) 죽으면서도 일 한다는 걸 못믿겠거든 예수의 이름 부르지 마세요! 괜히 예수 가져다가 우리 싸우는데 이용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나도 저사람들 보다 못지않게 나서 싸울꺼야. 왜 그 예 수를 그렇게 팔아먹어!
원수를 사랑하라, 그러다가 십자가에 못을 박힌 이를 왜그래! 그런 이를 팔아서 어떻게 내 이득을 얻겠다고 그래! 우리가 만일 그를 위해서, 정말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시간에 나는 이러다가 악형에 죽어도 좋습니다, 그럼 그릴수록 그리스도의 이름이 빛날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된다면 우리 속에 뭘로도 막아낼 수 있는 힘이 반드시 여기서 날꺼예요. 내가 죽은 후에도 그걸로 이길꺼에요.
나는 오늘날까지 충분히 믿는 사람은 못되지만 그것을 믿으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들을 미워하고 상대를 하고, 같은 싸움을 하려고 하기에는 내속에 있는 믿는 믿음이 너무 커서 그것과 바꿀 수가 없어. 그와 상대를 하고 그러다가 내가 우리 예수를 잃어버리면, 나 그러고 싶지 않아요.
세상이 온통 다 그런 국가가 된다고 그러더라도 나 마지막에 죽으면서까지도 나 예수의 진리는 옳다! 믿을꺼요.
지금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요. 나도 또 무슨 죄 때문에 그걸 못 믿고 말런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시면 반드시 우리에게 크신 것을 주신다 그말입니다.
아카데미는 또 왜그랬는지. 아카데미 뭐겠어요. 우리에게 진정한 문제는 아카데미가 아니고 기독교가 연합되는 거야. 교파가 한 교파가 된다는 말 아니요. 자기네 맘대로 해도 좋지만 적어도 이 나라의 이 지금 인권문제로 인해서 이 자유를 위해서 손을 잡아야 하겠는데 뭣이 각각 갈라져가지고 무슨 파요 무슨 파요 그러는가. 그렇게 해볼 하나 되는 하나의 운동으로 아카데미를 때려보시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여기서 이때까지 아카데미 소리 말이나 끄집어냈어요. 그렇게 되는 일은 일이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아카데미사람들도 여기 안올 수가 없어졌어. 우리도 아카데미를 불러다놓고 얘기를 안할 수가 없어졌어. 그렇게 한 건 여러분이 잘나서 미리 생각해 하신거요? 사건이 이렇게 벌어지니까 그랬지. 그러니까 이 정부 고마와. 좋다, 너가 잘했다. (웃음박수)
이제부터 우리 할 일 있다
그러면 뭘 할라고 그 기독교는 그러는거요? 이 나라 무슨 그 교회 때문에? 하나님이 정말 보시는 것은 이 민족이지. 이 민족,이민족이라고 나는 이날까지 고난을 위한 고생하기 위한, 고생은 무슨 덮어놓고 고생하라는 말이요? 고생을 시킬려는 그거는 할일이 있어서 그러 는 겁니다, 다른거는 몰라요. 적어도 우리 믿는 논리에서 볼 때에는 인간의 생각으로 턱없는 억울한 일 당했을 때는 하나님, 나는 미처 생각도 못한, 시킬 것 분명히 있나보다, 이담에 이몸이 나가 하겠는지 또 이 몸이 나가 하겠는지 거 몰라요. 하지만 누가 나가셔도 할일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그런다, 우리도 서로 대신하는 수도 있지 않소? 대신이 뭐야. 칼릴 지브란의 말만 들어도 저 사람이란건 뭐냐? “나의 또 다른 한 몸이다” 기독교신자 아니어 도, 그 사람도 기독교신앙 있기도 하지요. 한지만 그래도 우리와 꼭 같지는 않더라도 그런 말하지 않아요. 이웃 사랑한다고 말로만 그러지 말고 저 사람은 과연 나의 또 한 몸의 표현이다, 가령 그런다면 내가 있어서 반드시 그 영광을 내가 얻어야 하는거요? 나 믿기만 하고 죽으면 씨를 심은 다음에는 어느 싹이 나는 모양으로, 그 다음 누가 오늘 여기서 내 기도한 기도의 값이, 그때의 나같이, 나는 기도하는 힘이 부족합니다마는, 부족한 사람입니다마는 내가 기도해서 반드시 내가 받으리라고 반드시 그렇게 생각만은 안해요. 될 수 있으면 내게 주시면 좋지만 말이야. 이담에 어디 가서라도 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나입니다.
그래 시간도 다 된 모양이니까(웃음) 더 말씀해도 그거야요. 그래 그 억울한 것을 많이 보고 그래야. 우리 속에 빠지지 못했던 응어리가 아마 빠질꺼야요. 사실 힘은 속에서 응어리가 빠져야 그때 정말 참 힘이 나는 건데, 나는 저기와 앉은 고은선생 참 좋아요. 왜? 미칠라고 그러기 때문에 좋아요. 제발 술로만 미치지 말고 술로 미칠려면 그렇게 크게 못미쳐(웃음) 아주 정말 정말 이 속에서 치솟는 진리 때문에 미쳐야 하겠는데 그렇게 미치면 당할 놈이 없을 꺼야요. 정신이 똑똑하기 때문에 타산을 요렇게 해가면서 하기 때문에 말이야 자동차 타고 다니면서 뭐 어쩌고 어쩌고 그거 안되는거요. 왜 농민운동 할려면, 나도 이날까지 생각만하고 못했습니다마는 그러니까 겁이 나서 못하기나 하고 있습니다만, 자동차를 타고 가서 농민운동이 순전히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까 조금 더 우리가 깊이 내려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만 밟아보시나 봐. 어디 이 자식아, 어디까지나 견디나 보자 하나님의 자손인 다음에는 얍복강에서 야곱이 씨름했던 모양으로 허리가 부러져도 안놓는다 하는 악이 있 어아 하지 않아요. 그런 거 우리가 배운 거 있어. 유대민족에게 배운 거 있는데, 유대 민족에서는 그건 다 써 먹었어. 이스라엘 이젠 암만 그래도 제할 일 이제 없을꺼요. 구약시대에 있어서 그 땐 백성이라고 해서 났던 거 이센 거의 다 써먹지 않았는가 나는 그래요. 이제 부터는 우리할 일이 있습니다. 이 죽어가는 문명에서 세계를 건져내는 일이 있어야 압니다. 아카데미를 아카데미로만 보지 마시고 우리나라 일을 우리나라 일로만 보지 맞고 세계의 일 우주의 일로 보도록 하기 위해서 이 사건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넓고 큰마음, 끈질기고 한 없이 기다리는 마음, 내가 죽으면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받은 진리를 증거하도록 힘씁시다.
1979. 5. 25 금요기도회에서 하신 말씀
씨알의소리 1979년 월호 86호
저작집30; 14- 127
전집20; 14- 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