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링 / 이남옥
20년 전이었나 보다. 방학이 되어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그전에는 승용차를 가지고 갔는데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다 얼마나 발이 힘들었던지 운동화를 새로 사서 신고 다녔던 기억이 나서 그다음에는 편안한 옷차림에 배낭을 메고 전철을 이용했다. 주차하는 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훨씬 홀가분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63빌딩 전망대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중첩된 빌딩 숲은 촌뜨기에게 놀랍기만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 건지 가늠해 보기도 어려웠다. 산에서 자라는 나무만큼 많은 건물 하나하나마다 주인이 있고 그들이 우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것에 엄청난 거리감이 느껴졌다. 서울이라는 산만 보았지 그 속에 사는 나무를 헤아리지 못했는데 갑자기 아주아주 낯선 이미지로 다가왔다. 고즈넉하고 널널한 궁궐과 박물관을 구경할 때와는 다르게 서울과 지방의 차이점이 크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곳 아쿠아리움에서 고래 쇼를 보고 나서 교보문고로 향했다. 전철에서 내려 종로역을 지나는데 광장에서 젊은 애들이 저글링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로 보였는데 동호회 모임인 것 같았다. 한 팀은 공연하고 또 한 팀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받기는커녕 던지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아 서로 애쓰는 게 눈에 띄었다. 그때까지 저글링은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것이었는데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계속 맴도는 게 신기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느라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점 때문에 서커스에서 빼놓지 않는 놀이인가 보다. 재미있게 지켜보노라니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콩주머니가 생각났다. 던지고 놀다가 터지면 꿰매느라 저절로 바느질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저글링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양손에서 차례로 공을 공중으로 던져 올린 다음 받고 다시 올리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하는지 구경하다 자리를 떴다. 서울을 떠올리면 그 장면이 늘 기억이 났다. 각박해 보이는 그곳에서 여유를 발견하니 기뻤다. 숲에서 아름다운 나무를 발견한 것 같았다.
취미는 삶을 윤택하게 한다. 내 일이 아닌데 자꾸 기분이 좋아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보면서 전자오르간으로 건반을 짚어 본다고 했다.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는데 악보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 결정했다고 한다. 피아노 연습 교재인 <바이엘>을 치며 음을 확인하는데 제대로 배우려면 학원에 등록해야겠다고 했다. 40대 후반이니 매일 연습하게 된다면 내 나이가 되어서는 멋지게 연주할 수 있겠다. 배우는 일로 활기찬 그녀를 보니 저절로 뭔가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게 어디 있으랴. 나도 취미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옛날에 서울에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 저글링을 선택했다. 유튜브에는 여러 동영상이 실려 있다. 그 중 가장 차분하고 쉽게 가르쳐 주는 동영상을 선택했다. 선생님이 알려 주는 대로 조금씩 차근차근 해보았다. 처음에는 공 없이 맨손으로 리듬감을 익히는 것부터 했다. 오른 손 왼 손, 오른 손 왼 손, 하나 둘 하나 둘, 그것도 잘 되지 않아 어색하기만 했다. 다음으로 공을 들고 연습했다. 잘되지 않아 수도 없이 떨어뜨리고 줍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거실에서는 하도 쿵쿵 소리가 나서 아래층에 민폐를 될까 봐 침대로 옮겼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했던가. 조금씩 조금씩 연습하다 보니 공 두 개는 어느 순간에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 개로 늘렸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연습이 약인지 수없이 던지고 받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세 개짜리도 두세 번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성취감을 처음 느껴 보는 것같이 신선했다. 눈과 손이 협응하여 공간 지각 능력과 집중력을 기를 수 있어 나이 들어서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니 내년에는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하려고만 든다면 안 되는 나이란 없을 것이다. 저글링이 노래라면 공은 음표라고 했다.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