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0년~1800년대🌺 |
✿1654년 5월 4일..중국 청나라 2대 황제 강희제 출생
중국 청나라 2대 황제 강희제 | |
✿1899년 5월 4일 국내 최초로 전차 개통
1899년 최초의 전차
국내 최초로 동대문-흥화문 간 전차가 개통식을 가졌다.
시속 8km로 달리는 전차는 40인승 두 칸으로 연결되어 밖을 볼 수 있게 유리창을 달았고 내부는 방과 마루로 구성됐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거장이 따로 없이 승객이 손을 들면 전차를 세워 타고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대중교통의 혁명을 몰고 온 이 전차는 5월 26일 파고다 공원 앞을 지나다가 다섯 살 난 아이를 치어 죽였고 흥분한 군중들이 차를 부수고 불태워 버린 사건도 있었다.
▶1899년 국내최초로 동대문-흥화문 간 전차 개통
1899년 5월 4일 오후 3시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된 전차의 개통식을 구경하기 위해 동대문에 구름처럼 모인 당시 한성 백성들.
1899년 5월 4일 서울 장안이 온통 술렁였다. 이날 오후 3시 동대문과 흥화문 사이로 전기를 먹는 수레가 기어가기 시작했다. 전차가 첫 선을 보인 것이다. 정부의 고관귀족들이 멋을 한껏 부린 채 시승했고, 갑남을녀들이 홀린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철로 주변에는 군인 3백명과 순경 2백50명이 행여 발생할 사고에 대비해 경계를 서는 풍경이 펼쳐졌다. 전차의 등장으로 대중교통에 새로운 혁명이 불었다. | |
| 🌱1900년대🌱 | |
🌿04년 파나마 운하 착공 🌿06년 최초의 공개 축구경기 열림 | |
🌿19년 중국 5.4 운동 (May Fourth Movement)
1840년 아편전쟁 이래로 중국 국민들은 제국주의 침략과 봉건주의 압박에 반대하여 70여 년 동안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태평천국봉기, 의화단운동, 신해혁명 등을 비롯한 그들의 민족운동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사실은 반식민지, 반봉건 상황에 처해 있던 중국의 농민계급이나 자산계급의 영도 하에서는 혁명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
| 🌿46년 식목일 제정 | |
🌿49년 육탄 10용사 사건
파주시 통일공원 내 육탄 10용사 충용탑
6.25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전면전을 예고하는 소규모 전투가 38선 일대에서 수시로 일어났고, 특히 6.25가 일어나기 1년 전인 1949년에는 그 횟수가 잦았다. 1949년 4월 남천점(南川店)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은 인민군 1사단 제3연대 병력 1천여 명을 개성 송악산 후방에 집결시켰다가 5월 3일 새벽 송악산 능선을 따라 기습 남침, 38선 남방 일대의 고지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1949년 5월 4일, 한국군은 빼앗긴 송악산 고지의 재탈환을 수십 차례 시도했으나 수적열세와 적의 토치카(tochka, 지하 참호)에서 쏘아대는 기관총 공격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군의 피해만 늘어갔다. 결국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는 송악산 능선에 버티고 있는 북한군의 토치카 10개소를 파괴하는 것만이 38선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적진에 폭탄을 안고 뛰어들 용사를 모집했다. 적진에 폭탄을 안고 뛰어든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목숨과 직접 맞바꿔야 하는 작전이었으므로, 공격대원을 지정할 수가 없는 문제였기에 지원자를 받기로 한 것이다.
이에 서부덕 이등상사를 공격대장으로 하는 9명의 군인들이 용감하게 자원하여, 목숨을 걸고 박격포탄과 폭약을 안고 스스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하늘을 뒤덮는 폭음과 함께 적의 토치카는 박살났고, 한국군은 송악산의 주요 고지를 무사히 탈환할 수 있었다.
이에 앞서 낮 12시경 중화기 소대 분대장 박창근 하사가 토치카를 파괴하기 위해 단신으로 수류탄 7개를 몸에 지니고 돌진하다가, 적의 집중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한편 이 와중에 장병 3백여명이 표무원 소령의 거짓 정보에 의해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표 소령은 장병들에게 "적에게 포위됐다. 투항 만이 살길이다"며 월북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아홉명의 용사에 박하사를 포함한 열명의 용사를 '육탄 10용사'로 명명하고 이들의 조국애와 희생정신을 기려, 서부덕 상사는 소위로, 다른 9명은 상사로 특진시키는 동시에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고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지난 2001년에는 전투부대 중, 상급 모범 부사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육탄 10용사상'을 제정해 참모총장 상장과 기념패를 전달하며 이들의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 |
🌿49년 육군 300여 명이 38선을 넘어 월북. 🌿49년 개성에서 남한측에 의한 남북총격전 발생 | |
🌿51년 전시 연합대학 설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해방 후 우후죽순처럼 번창하던 국내 고등교육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6·25 전쟁으로 받은 고등교육계의 인적· 물적 피해는 초·중등교육에 비해 훨씬 심각했으며 고등교육 인구 대다수가 군대에 소속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1951년 5월 4일 문교부령 제19호로 공포된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 특별 조치령’(이하 조치령)은 세계 교육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학 운영에 관한 특별한 사례를 남기며 전시연합대학 체제를 출범시켰다. | |
🌿58년 제4대 민의원 총선거(자유당 126, 민주당 79, 무소속 27)
1958년 5월 4일.. 제4대 민의원 총선거(자유당 126, 민주당 79, 무소속 27) | |
🌿60년 정부, 일본인 기자의 무제한 입국 허용 🌿68년 덕수궁에 세종대왕 동상 세움 | |
🌿70년 미국 주 방위군, 반전운동 시위 벌이던 켄트대 학생들에 발포
1970년 5월 4일 미국 오하이오주 방위군이 월남전 반대 시위를 벌이던 켄트대학(Kent State University in Ohio) 학생들에게 13초 동안 61발의 사격을 가해 4명의 학생이 숨지고 9명의 학생들이 크게 다쳤다.
당시 켄트대를 비롯한 미국 전역 250개 대학에서는 격렬한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미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하는 등 베트남전이 점차 확대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대학마다 들불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 |
🌿77년 문공부, 일본 요미우리 서울지국 폐쇄코 국내배포 금지(80년1월 재개 허용) 🌿79년 발트하임 유엔사무총장 내한, 5일 박정희 대통령과 남북대화 등 논의 🌿80년 네팔 관광부, 동국대 산악회의 세계 5번째 마나슬루봉 정복(4월28일)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