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잡록-권달수
◈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통지이다. 우리 성종 때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성품이 강개하고 의기와 절조가 있어서, 연산군 때에 벼슬이 홍문관 교리에 이르렀는데, 갑자년에 간언했던 사람들을 추가로 벌줄 적에,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으나, 중종이 명하여 도승지를 증직하였다.
◈ 연산군이 윤서인(폐비 윤씨를 가리킴)의 사당을 세우는 일을 꾀하여 크게 말을 못하도록 위엄을 부리니, 임금이 하고자 하는 것을 감히 어기지 못하였다. 권통지가 그때 교리가 되어, 분개하며 선왕의 뜻이 아니라고 하니, 관중이 감히 이의를 못하자, 임금이 노하여 모두 매를 때리고 귀양보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노여움이 더욱 깊어서, 옥당과 대간 가운데 그 논의를 먼저 한 자를 극형하려 하였다. 때마침 옛일을 추가하여 치죄하는데 먼저 말하기 시작한 자를 적발하는 것이 날로 심하여 갔다. 대개 다 먼저 죽은 이에게 미루어 썩은 시체를 파내어 구차히 면하였으나, 통지만은 홀로 스스로 자복하여 죽은 동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스스로 살아날 도모를 하지 않았다. 대간에서 먼저 발의한 자들과 함께 쇠사슬로 이미 묶였는데, 옥리가 슬피 여겨,
“둘이 함께 죽겠으니, 차라리 한 군데로 돌리고서 한 사람을 살리시지요?”
하니, 대간이 옥리의 뜻을 받아들여, 옥당이 대간에 앞섰다고 고쳐 말하였다. 통지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면서,
“아무개야, 아무개야! 네가 과연 나보다 먼저 했다고 하느냐?”
하고, 곧 붓을 떨쳐 공사를 쓰기를,
“불초한 신 권달수가 감행하였습니다. 구차히 감추면서까지 살 수 없습니다.”
하였다. 공사를 마치고도 얼굴빛이 바뀌지 않고, 술을 주니 곧 다 마시고 평상시처럼 형벌을 받으니, 사람들이 한탄하고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처음에 통지가 용궁현에 귀양가 있다가 잡혀 돌아올 적에 영순리에 들려 집안 식구와 결별하였다. 내가 함창촌에 있었으므로, 술을 들고 가서 뵈었더니 통지가 가득히 부어 힘있게 마시고, 내 손을 잡으며,
“옛부터 참언하고 간사한 자가 쪼잘대고 악을 증가시켜서 사림을 죽여 해친 자가 어찌 끝내 보존될 수 있겠소. 나는 죽지만 눈을 도려내어서라도 그들을 보겠소.”
하고, 말하는 기운이 강개하더니, 이윽고 눈물을 떨어뜨리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시었다. 통지가 불행하게 되고 나서 그 미망인이 피눈물을 흘리며 먹지 않고 지내다가 죽었다. 성조가 통지에게 관작을 추증하고, 열부의 문을 정표하니 절의를 쌍으로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그 모습과 의기가 또렷이 눈에 선하게 남아 있는데, 생각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슬퍼지고 뼛속까지 아프다. 《용천담적기》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