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 오늘 죽을 수 없어
무식이 철철 넘쳐흘러도 난 명색이 작가다, 소설과 수필을 쓰는! 여태 열여덟 권의 졸저를 썼다. 문단 40년 경력 치곤 초라하나?
어지간히 살았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는 생각을 말하고자 함이다. 오늘도 마찬가지. 그제도 그런 항심으로 명동 성당엘 다녀왔다. 한데 사건이 생겼다, 이만저만하지 않은…엄청나게 크다는 뜻으로 누가 이해해 줬으면 한다.
전말을 똑똑히 적어 이 시원찮은 사회를 고발하려 한다. 죄인이 그러려니 심장이 떨리지만.
그제 명동성당에 가서는 제대로 안내를 받았다. 뇌사는 기대하기(?) 어려우니, 시신 기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왔다고 했다. 사무장이 사람이 좋았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제대로 자기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지하로 내려와서 한마음한몸 운동 본부에서 파견 나온 정희란 마리아 임상병리사를 소개받았다.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선종하시면, 여섯 시간 내에 안구 적출을 합니다. 각막 이식을 해야 기증받는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켜 줄 수 있지요."
"좋지요, 좋고말고요. 안구는 당연히 남에게 주고 싶습니다. 근데 시신을 꼭 기증하고 싶거든요. 여기 와서 문의하면 된다는 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아닙니다. 가톨릭 대학교 의과 대학 총무 팀에 문의해 보시는 게 맞습니다. 전화번호는 02)2258-7135입니다."
하루 쉬고 오늘 나는 전화를 넣었다. 받긴 한다. 한데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내 이름을 묻기에 이원우라고 했더니,
"지금 바빠서. 이원우 님이라? ….저희한테 등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
등록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바쁘다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치자. 내 나이가 일흔 다섯. 그 보다 마흔 살쯤 많은데, 나더러 '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얼토당토않다. 내가 그의 친구나 아랫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전직 교장이라 했으니 뭐라 불러야 할지는 자명해진다. 하다못해 형제님이라면 또 모르겠다. 근데 그게 존칭이라고 우겨댄다. 아래 예를 보자.(순간 떠올린 내 생각이다.) 신문에 이런 부고는 예사다.
견지로 학원 이사장 이원우 님이 2016년 5월 2일 밤 숙환으로 자택에서 선종하였기에 알려 드립니다.
2016년 5월 일
아들 이아무/ 이저무개
딸 이아무개
이런! 자기 아버지께 님이라 붙이다니, 만고의 불효자다. 이원우 견지로 학원 이사장님이 어쩌고저쩌고 하면 맞다. 어쨌든 가톨릭 신자의 사제 기증을 애들 장난처럼 여겨 불친절하기 짝없이 대답하는 그를 오늘 우선 고발(?)한다. 내일 취하하는 일이 있어도. 하지만 가톨릭 대학교 총무 팀을 경유, 학장까지 만난다는 결심을 바꿀 수는 없다. 나 같은 인간에게도 좋은 일 하나쯤은 할 기회를 주셨으니, 잘못된 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앉은 형제를 당연히 꾸짖어야 한다. 고속도로 터미널 역에서 내리면 되는 것쯤 이제 나도 안다, 바야흐로 지하철 모료로 타는 데 심취해 있으니까.
나시 워래 얘기. 난 씩씩거리며 귀가하여 지갑을 열었다. 거기 1906년 9월 27일 천주교부산교구사회복지과를 통해 약속한 장기기증 희망등록증이 있어서다. 등록번호 263303이다. 전화는 02)2626-3602/ 02)2627-3643과 3644. 다행이다! 전화를 당장에 넣을밖에. 아주 가까이에서 최고의 친절을 담은 목소리로 직접 대화하는 것 같이 친절하다. 지난 10년 동안의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상대는 다소곳이 듣는다. 번호를 말해 보라기에 난 대답했다.
"263303입니다."
한데 뜻밖에도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럴 수가! 충격을 받아 쓰러질 뻔했다. 오직 사체 기증을 통해 죄 사함을 조금이나마 받아 보고 싶어 안달복달하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이윽고 상대는 내 주민등록 번호 앞자리를 말한 게 맞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며 무릎을 쳤다. 그러면 그렇지!
"420607입니다. 그건 그렇고 26년이라면 아흔 한 살입니다. 그 연세에 이렇게 기운 좋은 목소리를 못 가지지요. 허허."
내 입이 귀에 걸리고, 뱃속 깊이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혀에 마르도록 칭찬할밖에. 이름도 예쁘다, 구미정. 2호선 당산역에 내리면 찾기 쉽다고 한다. 가야지 가야하고말고. 백 원짜리 봉지 커피 한 잔 얻어먹는 대신 만 원으로 케이트나 하나 사서 간다. 빠른 시일 내에. 4일부터 나흘 제주도에 가서 천주교 성지 등을 둘러보고 오면 바로 질병관리본부 장기 이식 센터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귀로에 가톨릭대학교 총무 팀을 찾는다. 주*호 님(혹은 형제님)을 만나 호통을 한 번 쳐 준다. 그 다음은? 나로 모르겠다. 앞 부고를 보고 이해를 한다면 그래 없었던 일로 하자,
하지만 억울하다. 오늘 당장 죽을 수 없어서. 그런다면 딸과 사위가 사체를 어떻게 할지 몰라 갈팡질팡할 테니까. 물론 동의를 그들이 전에 했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내 뜻대로 해 주겠지. 난 작심하고 등록증을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얹어 둔다.
덧붙임/ 국립국어원에도 전화를 내 보았다. '님'의 쓰임새에 대해. 얼버무린다. 한굴학회 부산지회장을 지냈던 류영남 교장선생님에게 물었다. 대부분을 동의해 주었다. 특히 '부고'를 예로 잘 들었다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류영남 박사는 나보다 한 살 아래지만 내가 감히 '님'이라 못 부르는 사이다.
오랜만에 이규정 스테파노 전 신라대 사범대학장님께 문의를 했다. 전화번호가 우리 수첩에도 틀리고, 부산가톨릭문인협회도 마찬가지. 겨우 알아서 오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이 교장님, 시원하게 잘했어요. 참 고약한 후배들이 있습니다. 오늘 상대는 한참 아래의 나이인데 이 교장님에게 '님'이라 했다니 호통을 치는 게 당연하지요."
이규정 학장님은 대단하신 분이다. 소설가로서도 한참이나 앞서 나가 있는 선배이고(나나 그분을 한국 최고의 소설가로 본다,), 부산평협 회장까지 지내신 어른이(시)다. 그분의 전화 번호는 010-8535-943*다. 소설을 창작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그분에게 문의하면 된다. 친절하다.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고말고!
내가 일기로는 부산에 현주소를 둔 중진 내지 원로 가톨릭문우로 이규정 스테파노 학장/ 박송죽 미카엘라 시인/ 선용 베드로 아동문학가는 오랜 문단 경력이 있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본 카페에다 좋은 글을 실어 주도록 전화라도 했으면 한다. 세 분에게 내가 심부름을 해도 괜찮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나는 어쭙잖은 작가다. 그러나 훌륭하고 문재가 뛰어난 가톨릭문인들이 많다. 사견이긴 하지만, 좋은 문학 작품이 이 공간을 통해 창작되어 선보여져야 한다고 본다.
거듭 사과한다. 참 부끄러운 글을 많이 썼다. 여기가 어떤 공간이라고 그러는지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