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전 당시 아버지 딕 호잇과 아들 릭의 사진 한장은 당시 전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아들 릭은 출생 때 목에 탯줄이 감겨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서 중증 장애를 안게 됐다. 혼자서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컴퓨터 장치 없이는 의사 표현을 할 수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아버지의 운동능력을 닮은 아들 릭은 어려서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릭은 15살 때 아버지에게 "장애가 있는 라크로스(라켓을 사용해서 하는 하키 비슷한 구기) 선수를 위한 자선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기꺼이 휠체어를 밀며 달리기로 결심했다.
참가번호 00번을 단 호잇 부자는 끝에서 2번째로 완주 테이프를 끊었지만, 이것이 '팀 호잇'의 시작이 됐다.
아들 릭은 "아버지, 달리고 있을 땐 아무 장애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라고 말했고, 호잇은 이런 아들을 위해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왜 그라고 힘들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아들의 장애가 바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이렇게 해야만이 아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라고 여겼고 그것을 평생 지켜 나갔다. 아버지와 아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 마라톤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영 연습과 자전거 훈련을 한 뒤 철인 3종 경기까지 도전했다. 그들 부자에게 닉네임이 붙여졌다. 바로 '팀 호잇'이라는 애칭이다.
팀 호잇은 1977년부터 2016년까지 40년간 마라톤 72차례, 트라이애슬론 257차례(철인코스 6차례), 듀애슬론 22차례 등 총 1천130개 대회를 완주했다. 보스턴 마라톤 에서만 32차례 완주했다. 1992년에는 45일에 걸쳐 자전거와 달리기로 미국 대륙을 횡단(총 6천10km)하기도 했다. 세계 철강의 사나이들이라는 사람들의 철인 경기가 그리 만만했겠는가. 혼자서도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엄청난 도전을 아버지 호잇은 아들 릭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세계 최강의 철인들 틈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실은 고무배를 허리에 묶은 채 바다 수영을 했고, 아들이 앉은 특수의자를 장착한 자전거를 탔다. 상상만해도 눈물겨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호잇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만일 아들 없이 출전한다면 놀라운 기록이 나올 거라는 주위 사람들 반응에도 아버지는 "릭이 아니라면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말 대단한 아버지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이 가면서 기록도 단축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완주에 16시간 14분이 걸렸던 마라톤 최고기록은 2시간 40분 47초까지, 철인3종 경기 기록은 13시간 43분 37초까지 각각 단축됐다. 하지만 호잇 부자는 기록은 관심밖이었다. 아들 릭이 조금이라도 즐거워한다면 그리고 삶의 의욕이 생긴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오케이였다.
처음엔 이런 부자의 행동에 다소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던 시선도 바뀌기 시작했다. 주위사람들이 이들의 진정한 부자애를 확인하고 큰 박수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자선재단 '팀 호잇'의 회원이 점점 늘었고, 2013년에는 보스턴 마라톤 출발선 인근에 호잇 부자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렇게 아들과 달리고 또 달렸던 호잇도 어느새 나이가 들고 주위에서 건강을 우려해 중단할 것을 요구해 왔다. 호잇은 만 73세이던 2013년 보스턴 마라톤을 끝으로 장거리 대회 출전은 자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폭탄테러 사건으로 대회가 중단됐다. 호잇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아들과 함께 달렸던 그 유서깊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테러로 인해 중단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결국 다음해인 2014년 다시 출전해서, 7시간 37분 33초 기록으로 완주하며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의 마지막 마라톤을 함께한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로 그의 오랜 아들과의 마라톤 여정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그렇게 자신의 40년을 아들과 함께 달리면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선사한 철인중의 철인인 딕 호잇이 며칠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80살이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호잇이 2021년 3월 17일 오전 매사츠세츠주 홀랜드 자택에서 자던 중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아버지와 함께 온갖 경기에 참가했던 아들 릭은 1993년 보스턴대학에서 컴퓨터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자신의 경험담을 나눌 때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 날개 아래를 받쳐주는 바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딕 호잇은 영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가 40년동안 아들과 함께 달렸던 그 세월 그 의지 그 아들사랑은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버지이자 가장 애정넘치는 아버지로 말이다. 딕 호잇의 명복을 빈다.
2021년 3월 1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
(이 글의 상당부분과 사진은 미국 시카고에서 근무하고 있는 연합뉴스의 김현 통신원의 기사를 인용해 왔음을 밝힌다. 김현 통신원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