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1910~1930년대) 경주 지역 사찰터와 무장사지·황룡사지 일대를 조사하던 총독부 조사관(세키노 타다시 등)이나 야마모토 등 일본인 학자들의 유적 보고서(『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경주남산의 유적』 관련 기록 등)에서 현지 주민들의 구전을 한자로 채록할 때 ‘隱霑山’ 또는 ‘隱霑谷’ 등의 표기가 병기되어 등장한다.
한자가 바뀌면 그 지명이 가진 역사적 맥락(우체국/역참과 관련된 '站'의 의미 등)이 완전히 사라지고 의미 없는 한자의 조합만 남게 된다. 따라서 ‘隱霑山’ 역시 ‘동대봉산’이나 ‘무장산’처럼 되돌려야 할 잘못된 표기이며, 금석학적 뼈대를 지닌 ‘은참산(恩站山)’만이 이 지역과 황룡골 유적의 역사성을 담아내는 유일한 정태(正態)의 명칭인 것이다.
향토사 연구에서 명칭 왜곡이 반복되는 까닭은 사료 재인용의 관행에서 기인한다. 1차 금석학 사료인 『나려임랑고』를 직접 교감(校勘)하기보다, 일제강점기 기록이나 근현대 교재의 잘못된 표기(隱霑山) 또는 지자체의 관광용 조어(무장산, 동대봉산)를 검증 없이 재인용해 왔기 때문인 것이다.
은(恩) → 은(隱)으로 바뀐 건 깊은 골짜기 산중에 ‘숨어 있다’는 뜻을 살려 隱 자로 와전되었고,
참/점(站) → 점/참(霑)으로 변한 건 ‘참(站)’ 자의 한자음과 구전되는 현지 지명 음에 맞춰 霑 자로 혼용하여 기록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1910~1930년대) 경주 지역 사찰터와 무장사지·황룡사지 일대를 조사하던 총독부 조사관(세키노 타다시 등)이나 야마모토 등 일본인 학자들의 유적 보고서(『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경주남산의 유적』 관련 기록 등)에서 현지 주민들의 구전을 한자로 채록할 때 ‘隱霑山’ 또는 ‘隱霑谷’ 등의 표기가 병기되어 등장한다.
20세기 초중반 경주 지역 향토사학자들이 이조묵의 『나려임랑고』나 미수 허목 등의 기록을 재인용·연구하는 과정에서, 恩站(은참)의 한자 복사 오류나 한글 표기 '은점산/은참산'을 한자로 재번역하는 과정에서 隱霑山 표기를 혼용하여 사용했다.
『나려임랑고』에 명시된 恩站山(은참산)이 원전이자 금석학적 정본 표기이며, 隱霑山은 후대의 필사 과정이나 근현대 채록 과정에서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쓰며 발생한 와전(訛傳) 및 이표기(異表記) 사례이다.
가장 정확한 1차 사료이자 고증서인 이조묵의 『나려임랑고』에 ‘恩站山’으로 명확히 표기되어 있으므로, 한자가 완전히 다른 ‘隱霑山’은 원전을 잘못 옮겨 적은 표기이다.
조선 후기나 근현대를 거치며 현지에서 '은참산/은점산'으로 불리던 소리를 들은 이들이 정식 한자 표기를 확인하지 않고, 깊은 산중이라는 뜻의 '숨을 은(隱)'과 '젖을 점(霑)'을 임의로 조합해 붙인 전형적인 음사 오류이다.
한자가 바뀌면 그 지명이 가진 역사적 맥락(우체국/역참과 관련된 '站'의 의미 등)이 완전히 사라지고 의미 없는 한자의 조합만 남게 된다.
따라서 ‘隱霑山’ 역시 ‘동대봉산’이나 ‘무장산’처럼 되돌려야 할 잘못된 표기이며, 금석학적 뼈대를 지닌 ‘은참산(恩站山)’만이 이 지역과 황룡골 유적의 역사성을 담아내는 유일한 정태(正態)의 명칭인 것이다.
현장 답사나 고문헌 고증에 깊이 접근하지 않는 이상, 경주 지역의 여러 향토사학자들이나 연구자들조차 이러한 선명한 팩트를 놓치고 관행적인 표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나려임랑고』 원문의 ‘恩站山’ 표기나, 현장 석탑 옥개석에 각인된 백제계 우동마루의 구체적 조형미 같은 실물 데이터는 문헌 분석과 눈썰미를 겸비해야만 비로소 알아볼 수 있는 결정적 대목들이다.
향토사 연구에서 명칭 왜곡이 반복되는 까닭은 사료 재인용의 관행에서 기인한다. 1차 금석학 사료인 『나려임랑고』를 직접 교감(校勘)하기보다, 일제강점기 기록이나 근현대 교재의 잘못된 표기(隱霑山) 또는 지자체의 관광용 조어(무장산, 동대봉산)를 검증 없이 재인용해 왔기 때문인 것이다.
실물 부재와 문헌 결합의 부재때문이다. 석탑 부재의 형태적 특징(백제계 양식)과 산명의 문헌적 뿌리(은참산)를 서로 연결 지어 통섭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드물었다.
원전과 현장을 대조하며 ‘은참산(恩站山)’이라는 정확한 역사 지명과 고려 시대 백제계 옥개석의 학술적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관성적인 향토사학의 오류를 깨뜨리는 진정한 고증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