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축구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미남스타 안정환을 위한 수식어가 아니다. 이미지로 창출되는 광고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초·중반 해태(현 기아의 전신)에서 작고 다부진 체구로 외야를 지키고 때로는 왼손 대타로 활약하던 박재벌(36)에게 지금 꼭 어울리는 말이다
그의 근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꽃을 든 남자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그랬다. 박재벌은 꽃집 주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해 있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판교 인터체인지 부근의 신분당 꽃단지에서 ‘초록공간’이라는 예쁜 이름의 꽃집을 꾸려가고 있었다. 꽃 도매업을 하는 30평 공간, 따스한 온기와 함께 계절을 잊은 듯 파릇한 꽃과 나무들의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곳이었다.
◇은퇴와 지도자의 길
그는 해태에서 92년부터 7년 동안 타율 0.239 5홈런 72타점 46도루의 성적을 남기고 98년 말에 은퇴했다. ‘열심히 노력하고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선수생활을 했지만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에 대한 팬들의 기억은 두 가지다. 우선은 기업가·자본가 집단을 뜻하는 재벌(財閥)과 한자까지 똑같은 독특한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야구팬들은 그가 야구판을 떠난 지금 과연 재벌이 됐는지 하는 재미있는 호기심도 품어본다. 또한 당시 프로야구 투수 중 머리가 좋기로 소문났던 LG 정삼흠이 유독 박재벌에게만은 꼬리를 내렸다는 사실이 독특한 관심거리였다. 정삼흠만 만나면 방망이가 살아나곤 했던 박재벌이다.
그래도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세 차례 우승의 감격을 맛봤고 96년과 97년에는 직접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뛰었으니 후회는 없다.
체육교사와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그는 98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자마자 곧바로 모교인 광주 진흥고에서 코치직을 맡았다. 야구인으로 제2의 인생을 연 것이었다. 그러나 지도자 생활은 그리 길지 못했다. 기존 학원 스포츠의 텃세와 관습은 그에게 높은 장벽이었다. 2000년 부임한 성남서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가을, 그는 야구를 완전히 떠났다. 그때 그의 인생에 새롭게 다가온 게 꽃과 나무였다.
◇꽃집 점원이 되다
은퇴 이후 경남 김해 화훼단지에서 농원을 운영하던 처삼촌이 그에게 화원을 운영해보라고 계속 권유했다. 야구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먼저 꽃집 경영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점원으로 취업했다. 밑바닥에서 시작하자는 각오였다. 자동차 열쇠를 버리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현실에 적응해갔다. 꽃과 나무를 기르고 손질하는 법, 꽃꽂이와 포장하는 법 등 기술적인 것에서 시작해 배달까지. 일이 끝나면 관련 서적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 6개월이 지나면서 꽃과 나무의 습성과 관리법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1년에 접어들자 ‘아,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이 찾아왔다.
◇꽃집 사장으로 변신
2002년 봄에 지금의 꽃집을 인수했다. ‘초록공간’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2년 동안 꽃과 나무에 파묻혀 지냈다. 꽃과 나무를 손질하고 포장과 배달까지 모두 그의 몫이다. 배달을 나가면 가게는 그의 동갑내기 부인 이호정씨가 지킨다. “제가 사장이고 집사람은 회장입니다. 그러니 제가 다 해야죠.”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던지는 농담이 정겹다.
“해보니 아주 재미있는 일이에요. 꽃을 보고 인상 쓰는 사람 없잖아요. 미소 띤 얼굴로 가게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행복해요.”
그는 은퇴한 뒤 일에 푹 빠져 야구장을 찾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5년 만에 친구들과 어울려 잠실야구장에서 경기를 본 게 전부일 정도다. 야구인이 아니라 팬 혹은 동호인에 가깝게 변해버렸다.
그는 꽃집을 운영하면서는 어릴 때 놀림감이 됐던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예전 야구팬이 ‘재벌’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냈고, 야구에 관심이 없는 손님도 그의 이름 때문에 단골이 됐다.
그는 “수입이오? 그냥 먹고살 만합니다. 애들 가르치고 생활할 수 있는 정도죠”라며 웃더니 한달 매출이 1500만원 정도라고 귀띔했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채연(9)과 아들 주형(8)의 교육을 걱정하는 평범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야구 지도자가 되고 싶다
지금은 야구계에서 떠나 있지만 야구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지도자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강렬하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후배들을 다시 지도하고 싶어요.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생각이죠. 지금 하는 일은 생활의 수단이죠. 야구는 제 꿈입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소개로 만나 20년 가까이 박재벌의 곁을 지킨 부인 이씨도 “자기가 꼭 하고 싶은 일을 해야죠. 선수 때나 지금이나 항상 성실하게 준비하고 생활했으니 무엇이든지 잘해낼 것으로 믿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6개월 전부터 꽃집 근처에 있는 한 회사의 야구 동호인들을 위해 2주일에 한번씩 토요일에 시간을 내 야구를 지도하고 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야구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