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단상
김경숙
중앙도서관에 갔다 집중해서 공부해야 할 것도 자료를 찾을 일도 없는데 시간
의 여유가 생기면 나도 몰래 도서관으로 발길이 간다 아마도 그것은 20대 일요일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곳에 가면 안정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인지
도 모르겠다.
20대 일요일은 이른 아침부터 도서관에 갈 준비로 분주했다 직장 생활과 검정
고시를 병행하던 나는 턱없이 부족한 공부를 하자면 일요일에는 꼭 도서관을 가야
했다.
널찍한 열람실은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과 책 넘기는 소리 뿐 조용했다 이 분위
기가 좋았다 도서관에 왔다는 자체가 행복했다.
가방가득 들어있는 중학생 참고서를 선뜻 꺼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책상이 칸
막이로 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다른 책은 숨기듯이 가방에 넣어 두고 영어 책을
꺼냈다 누가 봐도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활자가 큰 중학생용 교제를 펴자니 주변
시선이 부담되어 공부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티 없이 밝은 여학생들이 자기네들
끼리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더니 웃음을 못 참겠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내 옆
을 지나갔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했다 스무 살이 훨씬 넘어 보이는 사람이 중
학교 공부를 하고 있다며 저희들끼리 흉을 보는 듯 하여 마음이 움츠러들고 참담
한 기분이 들었다.
I am a boy How old are you? 오늘따라 영어 참고서의 활자가 확대경으로 보
는 듯 크게 보였다 몸의 고단함보다 열등감과 자존심이 더 견디기 힘이 들었다.
이제까지 잘 참았던 서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책 속에 얼굴을 묻었다 고향동
네에 살던 미친 여자 생각이 났다 머리에 꽃을 꽂고 옷만 보면 어른 것이나 아이
것 가리지 않고 입어서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하던 여자 무엇이 좋은지 항
상 웃고 다니던 그녀가 부러웠다 나도 그녀처럼 미치고 싶었다.
한참 울고 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눈물로 얼룩진 책을 보며 결코 편안함
에 길들여지지 않으리란 마음으로 연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함박꽃 향기· 기초반
도서관의 음식은 저렴하면서도 맛이 있어 좋다 오늘 메뉴는 정월 대보름이라
오곡밥에 삼색나물 미니돈가스 김치와 무국이 나왔다 내 앞에 대학생인 듯한 여
학생이 앉는다 보온 도시락에서 나온 반찬이 제법 푸짐하다. 국은 둥글둥글한 홍
고추가 들어 있는 콩나물국이었다 여학생의 콩나물국을 보자 밥이 목울대를 타고
내려가려다 말고 통증으로 울컥한다.
20여년 저쪽, 서울 정독 도서관에서는 콩나물국을 50원에 팔았다. 점심시간 콩나
물국을 사서 누가 볼세라 식당 맨 구석자리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반찬은 혀가
절여질 만큼 짠 장아찌나 된장 이었다. 날씨가 추운 날은 따끈한 콩나물국을 먼저
먹고 식은 밥은 된장에 비볐다. 비빈 밥 위에 눈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고개를
숙이고 허허로운 마음과 젖은 눈을 들킬까봐 밥을 비비고 또 비볐다. 입 가득 밥
을 넣고 눈물을 물 삼아 먹었다.
중앙도서관 2층 종합자료실에 ‘향토작가코너’가있다 이곳에서 반 숙자 선생님을
만났다. 청각장애를 가진 선생님의 눈물어린 사랑과 고통의 가슴 절절한 글을 보
고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수필 공부를 하여 가슴 훈훈한 글을 쓰겠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분노와 증오가 그대로였고 정제되지 않은 무절제한 문장들로
어지러웠다.
선생님의 책 ‘그대 피어나라 하시기에’와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를 교과서 삼아
내 안의 열등감과 분노를 승화시켜 선생님처럼 따뜻한 글을 써 보리란 각오를 해
본다.
빈자리가 많은 향토 작가코너의 책꽂이에서 내 이름을 보고 싶다는 소망은 걸음마를
배우는 내게는 지나친 욕심일까.
2006/24 집
첫댓글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하던 여자 무엇이 좋은지 항
상 웃고 다니던 그녀가 부러웠다 나도 그녀처럼 미치고 싶었다.
한참 울고 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눈물로 얼룩진 책을 보며 결코 편안함
에 길들여지지 않으리란 마음으로 연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