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오늘의 부처님 말씀]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잡보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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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선어록 산책]
성철스님의 신심명 · 증도가 강설_ 증도가(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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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證道歌 104
그름과 그르지 않음과 옮음과 옳지 않음이여
털끝만큼 어긋나도 천리 길로 잃으리로다.
非不非是不是여
비불비시불시
差之毫釐失千里로다
차지호리실천리
그르다든가 그르지 않다든가,
옳다든가 옳지 않다든가 하는
이것을 바로 알면 사실에 있어서
구경을 완전히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경을 성취하려면
그름과 그르지 않음과
옳음과 옳지 않음을
다 버려야 되는데,
그름과 그르지 않음,
옳음과 옳지 않음의
양변에 머물러 있으면
이것은 변견이지 중도는 아닙니다.
'털끝만큼만 어긋나도
천리 길로 잃어버린다'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누구든지
그름과 그르지 않음을 버려야 되고
옳음과 옳지 않음도 버려야 되는데,
여기에 조금이라도 집착을 하면
근본 대법과는 천리만리로
어긋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름과 그르지 않음과
옳음과 옳지 않음을 쌍차하면 쌍조가 되어
그름이 그르지 않음이요.
옳음이 옳지 않음이 되어서,
그름과 그르지 않음과
옳음과 옳지 않음이
융통자재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다만 조금이라도 이해를 잘못하여
양변에 머물러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양변을 여읜 데 머물러 있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쌍차해서 쌍조하고
쌍차해서 쌍차하여
차조동시(遮照同時)가 되어야만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이해가 되어야만
비로소 우리가 정법을 바로 안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변견에 떨어져서
단견과 상견에 집착하게 되고
양변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털끝만큼만 어긋나도 천리나 멀어져 버린다'는
이 말도 피상적인 뜻보다도
더 깊은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만은 더 얘기하지 않고
덮어 두어야겠습니다.
법문한다면서 뜻을 너무 설파(說破)해서 큰 병입니다.
그런 줄만 알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그 뜻을 실제로 자신이 맛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철스님의 신심명.증도가 강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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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깨우는 오늘의 부처님 말씀 124)
“고독의 맛, 진리의 맛,
마음의 편안한 맛을 보게 되면
열(熱)과 같은 괴로움도 없고
죄과(罪過)도 없어진다.”
<소부경전>
불기 2569년 1월 5일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3번)
♣법신진언 :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3번)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3번)
♣소원성취진언(所願成就眞言)
옴 아모카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훔(3번)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훔(108번)
♣보회향진언(普回向眞言)
옴 삼마라 삼마라 미만나 사라 마하 자거라 바라훔 (3번)
"위없는 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중생을 편안하게 한다.
나쁜 길을 버리게 하며,
어려운 데서 벗어나게 하며,
가난의 뿌리를 벗어나게 하며,
선지식을 만나게하며,
광대한 법을 받아 지니게 하며,
보리심을 내게 하며,
보살도를 비추게 하며,
보살의 지혜에 들어가게 하며,
보살의 지위에 머물게 한다."
<출처 : 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