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좋은 공동체
교회는 공동체라는 뜻이다. 공동체는 축복이자 십자가다. 좋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으면 하늘나라가 가까이 있다는 예수님 말씀이 실감 난다. 그런데 좋은 공동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 죽도록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천부적인 공동체, 가족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자식 사랑도 완전하지 않다. 요즘 청소년 교육이 큰 사회 문제가 된 건 교사나 학생 때문이 아니라 부모들이 삐뚤어진 자식 사랑 때문인 거 같다. 서로 뜨겁게 사랑해서 일생을 함께하기로 한 부부도 함께 살기 시작한 그때부터 자신의 사랑을 정화하고 성장시켜 나간다. 가족이든 수도회든 본당이든 그것이 좋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가 회개하고 예수님과 복음을 더 굳게 믿어야 한다.
공동체 생활이 어려운 건 이천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복음은 초창기 교우 공동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교우가 잘못하면 단둘이 만나 타이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고, 교회 전체에 알리라고 하셨다. 그래도 들으려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셨다.(마태 18,15-17) 끝까지 말을 안 듣는 사람은 예수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건 교회에서 내쫓는 파문 같은 형벌이 아니라 그를 공동체에 속하게 하려는 우리 노력이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사랑하는 이들 모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공동체로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예수님이 주신 계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에 우리 하느님이 삼위일체, 완전한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상상하면 마음이 하늘나라에 있는 거 같지만, 그 상상 안에는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하는 봉사와 희생은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 식대로 사랑하는 공동체, 더 나쁘게 말하자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공동체를 상상하는 걸지 모른다. 지상 교회는 죄인들 공동체다. 그래서 그 안에는 갈등 다툼 등이 없을 수 없다. 그런 말썽이 없는 공동체는 평화로운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려고 하지 않는 공동체일 거다. 그런 것들이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그런 것들을 해결하고 극복하고 인내하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 베드로 사도에게만 주신 걸로 알았던 사죄권을(마태 16,19) 다른 제자들에도 주셨다. 베드로 사도처럼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라고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서하는 권한을 주신 거다. 우리 사랑의 기원이 삼위일체 하느님,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시며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 아버지 안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하느님이 원하시니 그렇게 하고, 나는 할 수 없어도 하느님은 하실 수 있다. 용서와 사랑은 같은 뜻이고, 우리 죄인에게는 용서가 사랑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용서하고 인내하며 서로 사랑하는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이 더 커진다.
예수님, 시복시성식이 계속 거행됩니다. 교회는 어쩌면 그런 보석 같은 교우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가 봅니다. 성인이 되고 싶고, 주님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거룩한 욕망이 더 커지고 순수해지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오른손이 하는 선행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선행이 일상이 돼서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만 그 선행을 보고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