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날짜: 8월 10일~12일
누구누구: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코스: Ⅰ. 첫날
남원 터미널 7시15분 백무동 방향 버스 타고 출발→ 마천서 내려 음정까지 택시→
벽소령(점심식사)→세석산장(1박)
Ⅱ. 둘째 날
세석(아침식사)→ 장터목 →천왕봉(점심식사) → 중봉 →써리봉 →치밭목산장(2박)
Ⅲ. 세째 날
치밭목산장(아침식사)→유평→대원사로 하산→원지 →함양→인원→남원
며칠간 주어진 직장인에게는 황금같은 여름휴가.
사회생활 첫해의 여름휴가는 부모님과 같이 보내기로 결정!!
엄마 아빠 모두 나에게 휴가를 맞춰 놓으셨습니다.
작년에 나만 지리산에 몰래 몰래 다녀온 게 조금은 죄송스러워 2박 3일간 지리산을 등반하
기로 했습니다.
아빠는 매일 새벽 운동하러 다니시니까 문제없는데 ,평지조차 오래 걸으시면 허리며 무릎이
아프다는 엄마는 과연 하루에 7시간정도를 걸으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박 3일이면 종주를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부모님과 천천히 걸을 요량으로 적당한
코스를 짰습니다.
일단 오르는 길은 작년에 연하천 갈 때 걸어본 음정마을에서 작전도로를 타고 쭉 올라가서
벽소령 산장으로 가는 길로 정했습니다. 작전도로라면 재미는 없지만 경사가 거의 없기 때
문에 여느 계곡으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수월할 것으로 생각되었거든요.
첫날 세석산장에 오후 4시 반에 도착했습니다. 오는 길에 한번 소나기를 맞긴 했지만 오후
5시가 되자 비가 억수로 쏟아집니다. 다행히 우린 비 거의 안 맞고 밥해서 먹고 자리배정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세석 수용인원이 젤 많다고 해서 대기자로 등록을 했더니 산행 전날
에서야 예약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스팸메일로 도착되는 바람에 혹시나 하는 맘으로 스팸메
일 안 열어 봤더라면 대략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산장은 비 맞고 온 사람들, 예약 못한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나는 얼른 자리 배정 받아 엄마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빠는 2층으로 .
그때까지도 비는 억수로 쏟아져 그때서야 도착하신 분들은 완전 물에 빠진 새앙쥐 모양이었
습니다.
어수선한 가운데 날은 어두어지고 이제 잠자리에 들시간.
비는 다행이 그쳤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어둑어둑해져서 세수도 안하고 이도 안 닦고 겨우
화장실만 다녀와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나도 처음 산에 올 때는 당연히 씻을 곳이 있는 줄
알았었는데 산에서는 비누도 치약도 쓸 수 없다고 하니 엄마도 금방 적응하십니다.
9시가 소등시간인데 단체로 온 학생들이 마구 떠드는 바람에 잠 편히 자기는 글렀습니다.
옆에 온 아주머니. 남편이랑 아들이랑 같이 왔는데 딸이 없으니 이럴 때 안 좋다고 우리 엄
마와 날 보며 무척 부러워하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딱딱한 바닥에 좁은 자리에서 웅크
리고 자면 내일 아침에 피곤하실 것 같아 허리며 다리 발 등을 주물러 드리고 있었거든요.
나의 왼쪽에 자리잡은 친구인 듯 한 두 여인네... 강원도에서 왔다는데 우리는 그분들 하루
일정을 보고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침 6시 반에 화엄사에서 출발했다는데 그
날 세석까지 와서 자는걸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것도 초행길인데...강원도의 힘!!
둘째 날은 세석에서 촛대봉, 장터목으로 넘어가는 경치 좋은 코스입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도 화창해서 중간중간 좋은 풍경 보면서 갔습니다.
배낭을 내려 잠시 쉬고 있을 때, 어떤 남자분 내 배낭 사이드 포켓에 꼽힌 초록색 참이슬
병을 보고는 이럽니다. " 헉, 물대신 소주를....."
나 답합니다. "아, 이거 폼이예요. 이거 사실 물인데 여기다 담아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믿거나 말거나...나도 담번엔 소주 피티 병을 양쪽 사이드 포켓에 넣고 다니리라. 그렇게 하
면 부식 안들고 다녀도 된다지 ㅋㅋ.....사실 이번에도 꽁꽁 얼린 맥주 두 캔, 첫날 세석에서
둘째 날 치밭목에서 마셨습니다. 소주는 아빠를 위한 것이었다구요.
장터목에서 30분 가량 쉬고 천왕봉을 향해 오릅니다.
엄마 천왕봉이 세 번 째 이시란다. 처녀 적에 동네 총각들하고 왔을 때 한번... ㅎㅎ.
결혼 후 아빠랑 텐트 짊어지고 왔을 때 두 번... 음...
잘 오르시겠지? 그 동안의 코스는 이렇게 가파른 코스가 없었으니 조금 힘드실 것입니다.
양쪽에 지팡이 쥐시고 열심히 오르십니다. 나도 저번에 새벽에 천왕봉 오를 때는 정말 힘들
더니 이번은 가뿐합니다. 얼마안가 바로 통천문이네. 통천문 지나고도 한참을 가야 천왕봉이
나옵니다. 와, 드디어 도착이다. 감개무량합니다. 언제 또 부모님과 함께 이곳을 올 수 있으
려나 하니 좀더 애착이 갑니다.
남들 다 찍는 "한국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비석에서도 몇 방 찍고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
다.
아니 여기서 아는 사람을 다 만나네... 난 육사생도들을 몰고 온 황세연 님을 만나고, 엄마
아빠는 친구 분들을 만났습니다. 연락이 안 돼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약속도 없이 천왕봉에
서 만나신 겁니다. 그분들과 함께 천왕봉에서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습니다. 남은 김치며 고
추, 반찬 들은 우리에게 넘어오고 쓰레기는 그분들께 드립니다. 죄송. 우연이 만나서 더 반
갑다며 정말 좋아하십니다. 아마 조만간에 또 같이 어느 계곡을 오르시지 않을까 생각됩니
다. 같이 대원사로 내려가자고 하였으나 백무동에 차를 세워놓으셔서 올라온 길로 다시 하
산하신답니다.
우리는 중봉을 향해 출발입니다.
왜 사람들이 중산리 코스 힘들다는 말만하고 대원사길이 힘들다고는 얘기해주지 않았죠?
나도 이쪽으로 넘어와 본 것은 처음이고 구불구불한 길에 사람들이 별로 안 다니는지 산죽
이 우거져 있어서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금방 나올 것 같은 치밭목 산장이 안나와
서 적잖이 긴장했습니다.
천천히 걸어서 한 4시 반쯤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산하면서 같이 내려가자
고 했지만 우리는 어차피 급할 게 없었고 산장에서 하루 더 자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아 여기서 자기로 하고 얼른 저녁을 챙겼습니다. 우리 뒤에 도착한 부부, 우리가 이 시간
에는 도저히 못 내려간다며 꼬드겼더니 산장에서 자기로 합니다. 남자분 우리아빠한테 칠X
사이다 1.5L를 들고 오시더니 한 잔 하십시오. 아, 이 아저씨 소주를 사이다 피티 병에 담아
가져오시다니. 더더욱 고수시군요....
산장에서 잘 사람 별로 없을 거 같았는데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온 선생님과 학생들이 한무
리 와서 산장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오신 분도 많고 거기서 서로 어울려
서 밥해먹고 이야기하는걸 보고 있자니 참 좋았습니다. 나도 담 번엔 이따시만한 배낭매고
꼭 소주 피티병 사 가지고 오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대원사까지 두 시간이면 간다고 하시고 자기 차가 대원사에 있으니 남원까
지 몰고 가라고 하신 거창 군청에 계신 분!! 뻥이 상당히 심하십니다. 우리 내려가는 길에
힘들어 죽을 뻔했어요. 두 시간은 무슨 두 시간이냐고요.
아침에 깨어 치밭목 산장 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길래 고개만 창문 곁으로 빼꼼히 해서
봤는데 나무에 가려 잘 안 보입니다. 산장 밖으로 나오니 왼쪽에 큰 나무와 오른쪽 산봉오
리 사이로 해가 쑤욱~ 솟습니다.
그때 소란한 소리에 산장 마당에서 비박하신 남자 두분 그
제서야 침낭 밖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우리엄마 그분들 보시더니
"워매, 저사람들 밖에서 잤는갑다. 자리가 없어서..."
아니라고, 저건 비박인 데, 저렇게 하고 싶어서 하신 거라고 알려 드려도 상당히 걱정하십니다.
부지런히 밥해서 먹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다들 동시에 산장을 출발합니다. 이제서야 산장
지기 아저씨 편하게 쉴 수 있을 듯 합니다.다. 아래서부터 자기 키 만한 배낭에 물건 들고
오신 산장 아저씨. 설경구 닮았어요(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사투리가 심해서 다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참 맘이 따뜻해 보였습니다.
내려오다 배낭에 지리산이 좋은 사람들 뺏지 달고 계신 분을 만났습니다. 혹시나 만날까봐
저도 배낭에 뺏지 달고 다녔거든요. 어제 비박 하신 분 중에 한 분 입니다. 게다가 샌달을
신고 하산하셔서 우리엄마의 걱정을 한번 더 시킵니다. 광명 사신다는데 (닉은 까먹었어요.
ㅠ.ㅠ) 유평마을까지 카페이야기 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언제 기회 있음 서울 산행 때나 번개
때 나오세요^^
유평 마을 지나 시멘트 길을 걷습니다. 왜 이 코스를 조금 지겹다고 하는 줄 알겠습니다. 산
중에서는 좁고 가파르지만 편했고 여긴 반듯하고 평평하지만 사람도 많고 차도 다니니 맘속
으로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우리랑 같이 내려오신 분들 "공원순찰"
트럭에 잡아 타고 먼저 내려가고 우리는 대원사에 들렀다가 야영장에서 라면 끓여먹고 버스
를 탔습니다.
원래 계획은 하산하면서 동동주에 사이다 타고 도토리묵 시켜서 먹는 거였는데 돈이 다 떨
어져서 차비도 얼마인지 모르고 해서 못 사먹었습니다.(아까비~~) 아무리 내가 휴가비 챙겨
왔다지만 엄마 아빠 무일푼으로 따라나선 것입니다. 아니 딸래미를 그렇게 믿으셨나~ 아침
에 바빠서 그랬는지 일부러 그러셨는지 원....
딸랑 만원 남겨놓고 겨우 집에 도착했습니다. 만원 남을 줄 알았으면 동동주 사 먹었을 텐
데...
집문을 따면서 "이런 편한 집을 놔두고 왜 그 고생을 했지 " 했지만 맘속엔 다들 뿌듯한 맘
이 들었을 겁니다.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수박 쪼개서 우적우적 먹었는데 그 맛이 정말
와....
지리산 문집에서 누구는 배낭에 수박을 싸갔고 다닌다더니 이걸 산 속에서 먹었으면 얼마나
맛있겟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삼일 내내 너무 좋은 컨디션으로 별탈 없이 산행한데는 수방사 지리산 워밍업 산행에
나가 산행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다리 바위에 부딪쳐서 멍든 것하고 팔뚝 조
금 상처 난 것 빼고는 멀쩡합니다.
산행 중에는 그렇게 좋다~는 생각 별로 못했는데 갔다 와서 보니 이번 휴가가 맘 한쪽에 찐
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더더욱 좋은 것은 엄마 아빠 사이가 더 좋아진 것입니다. 같은 추
억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좀처럼 말다툼도 하지 않으시네요....
이제 내년에는 둘째 동생하고 같이 오고, 그 다음해에는 셋째 하고 지리산을 가시면 되겠다
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매년 좋은 추억 만드시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부모님과 함께하는 산행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내 닉을 기억못하다니 조금은 실망...ㅋㅋㅋ그날 차 얻어타고 내려오다 스틱 잃어버렸지요. ㅜ.ㅜ;; 언제 서울산행때 함 뵙죠...
그날 비박 하고싶어서한게 아니고 방 배정을 못받았지요...
참 훌륭한 딸이네요!! 난 언제 구래보나.. ^^
멋지고 멋집니다...부모님과 함께 한 산행 얼마나 잼나고 신나고 즐거우셨을까요*^^*
정말 너무 멋지다..난 울엄마랑 언제 천왕봉한번 올라보나~~
부럽습니다.
와, 별로 한 건 없는데 이리 칭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꾸벅~ 엄마 아빠 끝까지 가지 못하실줄 알았는데 아직은 체력이 좋으시더라구요.
언제님. 배신때리구 먼저 차 얻어 타고 가니까 스틱잃어버리자나요...ㅋㅋ
효녀시군요. 멋진 추억.. 아니 부모님들에게 정말로 좋은 선물을 해주신것 같아요. ㅎㅎㅎ
멋지고 부럽네요..잘 다녀오신거 같아 다행이구요.^^ 저두 대원사길...힘들던데요? 다른 사람들의 두배는 걸렸을거에요.
수방사모임서 뵜는데 충분히 그러시고도 남을 효녀지요.축하드립니다..
건강하신 부모님이 계셔서 유미님이 더 행복하신 겁니다...정말 부럽네요.
와우, 산행기 올릴까 말까 했는데 이렇게 많은 답글을 주시니 황송하옵니다. 글고 저 효녀 아니거든요. ㅠ.ㅠ 노력할랍니다.
부럽네요. 좋은 산행기 잘 봤네요.
여어~ 유미 ... 나만 이번에 지리산 못갔네 ㅜㅜ 좋았겠어
부모님과 함께한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present is present~~~ 가고 싶다.....지리
잘 다녀왔네^^* 유미는 정말 효녀네...부모님 모시구 지리산 오른다는거 쉽지않을텐데..기특하구 이쁘구 그렇다. 나두 종주마치구 17일날 늦게나 인천에 떨어졌어...여지껏 피곤이 풀리지를 않네...담에 만나면 잼난 야그 마니마니 해주꾸마...기대하그라^^
부모님께 참 존 선물해드렷네여 저두 이번 추석연휴때 엄마 이모님모시고 종주잡아놓앗는디 글씨...잘할수잇을려나 모르겟네요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네요...다음번에 멋진 단풍을 만끽할 수 있게되기를...산은 역시 지리산이죠...전 도봉산을 다시 다녀왔습니다...기회가 된다면 또 가고 싶어요...좋은 하루 보내세요...
^^* 저도 부모님께서 추석에 함께 가자시는데, 추석에 내려갈 수 있을런지. 누나 지금은 서울인가요?
인호 살아 있냐?? 나 재즈 .. 아이디 바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