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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의 목적 (습1)
찬양 : 주의 옷자락 만지며
본문 : 습1:1절 <유튜브에서 ‘변방목사’치면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의 옷자락 만지며 나의 왕관을 놓으리>
오늘은 이 찬양의 가사가 나의 마음에 들려지며 나의 고백이 되게 한다. 오늘도 나의 주인이신 주님을 붙들며 겸손히 나의 왕관을 내려놓아야 한다. 살다 보면 어느새 왕관을 만들어 쓰고 있는 나를 볼 때가 많다. 주님, 이 하루 나의 왕관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고래 힘줄보다 더 강한 ‘나’라는 왕관을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종이 되게 하소서.
오늘은 목회사관학교 8주차 수업이 있는 날이다. 수고하실 강사님과 진짜목사의 꿈을 가지고 달려오실 사관생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금주간 사관생도 가운데 한 분은 뇌에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했다. 정말 인간이란 삶의 자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예측불가능한 일들이 많은 변수의 세상인지 모른다.
이런 죄로 인해 변수 투성이가 된 세상에서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항상 우리의 상수가 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 붙잡아 주시고 주님의 뜻이 오늘도 이루어지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오늘 나는 선교회 건물의 공간 디자인을 하시는 분을 만나 젊은 세대를 위한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화를 나눈다. 비록 준비된 재정이 아직은 없지만 꼭 필요한 주님의 그림을 온전히 그리고 싶다. 이 만남에 땡스기브의 이사님과도 만남을 가진다. 하나하나 주님의 이끄심이 꼭 필요한 자리들이다. 주님, 인도하여 주소서. 오직 주님의 뜻만이 서게 하소서.
어떤 말씀으로 이 날을 축복하실까? 이제 구약의 마지막을 향해 나가며 또 한 권 소선지서 아홉 번째 책인 스바냐서(Tsephan-yah)를 시작하는 날이다. 구약 묵상 35번째이다. 금년에 다 마감을 할 예정이었지만 은혜가 많아 약간 늦어지고 있지만 감사할 뿐이다. 주님, 새로운 스바냐서를 통해서도 주님의 뜻에 굴복되게 하시고 주님을 닮게 하소서. 1절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오늘 본문은 스바냐의 가문을 소개하며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즉 그는 왕족 출신의 선지자라는 말이며 그가 활동한 시대의 왕인 요시야의 조카로 알려졌다. 그 이름은 ‘야웨가 숨으신다 혹은 야웨는 숨겨지셨다’는 뜻이다.
선지자의 이름치고는 참으로 애매한 이름이다. 선지자는 야웨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참으로 어떻게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사용하였을까?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유다의 가장 악한 왕이었던 므낫세와 요담의 시대를 거치면서 아이를 낳고는 그 시대의 영적인 암흑을 바라보면서 야웨가 숨으셨다고 야웨가 숨겨지셨다. 안타까움에 이런 이름을 담아주지 않았을까? 역설적으로 스바냐의 가슴에는 이렇게 감춰진 야웨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이다. 아멘. 아멘.
그렇게 자란 스바냐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시작되기 전인 주전 630년경에 이 스바냐를 썼다. 수신자는 므낫세와 아몬왕의 악한 통치의 영향으로 야웨의 율법이 가려진 시대에 유다의 백성들을 깨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앞서 묵상한 미가 선지자처럼 농부를 사용하여 말씀을 전하시기도 하셨고, 왕족인 스바냐를 불러 전하셨다는 사실을 묵상케 하신다. 그가 농부건 왕족이건 하나님은 모두 사용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이든지 어떤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께 붙들리면 사용될 수 있음을 본다. 그렇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하나님께 붙들리면 멋지게 사용될 수 있음에 감동하며 주님을 따르기로 다짐한다. 아멘.
그 목적과 환경에 따라 가장 적합한 사람을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왕족의 편안함 삶에서 부르심을 받은 스바냐 선지자 요시야를 통해 종교개혁을 이루어야 하기에 편안함에 있던 그를 불러내셔서 누구보다 강력한 말씀으로 백성들을 깨우게 하신다. 12절
‘그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라.’
오늘은 스바냐서의 서론 격으로 각 사람의 독특함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묵상하며 나의 부르심은 과연 무엇일까 묻게 된다.
작은교회에 하늘부흥을 이루도록 섬기라고 나를 부르셨다. 아니 나 하나도 제대로 일어서기 힘겨운 나를 부르셔서 말도 안 되는 꿈을 허락하시고 이 일을 10년 동안 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제 젊은 세대를 일으켜 하늘부흥의 주역으로 세우라고 또 하나의 짐을 더 얹어 주시고 계신다.
왕족으로 부르셨기에 요시야 왕에게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줄 수 있어 요시야를 통한 종교개혁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런데 나는 젊은 세대들과는 완전 불통인 사람이 아닌가? 이런 내가 어떻게 ... 정말 답답함만 생기곤 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붙드시면 가능하기에 나는 이렇게 정했다. 젊은 세대를 섬기는 사역에 나는 절대 전면에 서지 않는 도우미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나의 가장 무력한 부분을 적임자로 보셨던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는 부흥이 감춰진 젊은 세대들을 일으키는 사역을 위해 내가 가장 무력한 사람이기에 나를 선택하신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택을 하신 것이다. 아멘.
나는 내 무력함을 알기에 누구보다 하늘부흥을 갈망한다. 또한 내가 할 수 없기에 누구보다 젊은 세대를 일으킬 수 있는 준비된 분들을 세워 일하게 할 수 있다고 주님이 보신 듯하다. 아멘.
부르심을 받은 종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스바냐가 요시야 시대의 종교개혁을 위해 쓰임 받았던 것처럼 이 시대 젊은 세대의 사역자를 일으키는 일에 통로로 쓰임 받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여, 이 종을 사용하여 주소서. 오직 주님만 드러나시고 주님의 뜻만을 이루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변화와 이전을 위한 중보기도를 요청>
1. 50일간의 영적전쟁에서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를 품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으로 세워져 가도록
3. 모든 상황과 변수에도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드러나도록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EeTUh51HZ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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