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면 셀레브렉스 처방전을 받으러 화양리에 있는 정형외과에 갑니다.
그 정형외과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사무실이 있는데 월요일마다 정형외과에는 가면서 사무실에는 안 가보고 그냥 집으로 옵니다. 재택근무 중인데다 사무실에 특별히 갈 일도 없어서입니다.
어제는 정형외과에 갔다가 모처럼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B5 미색 복사지도 한 묶음(500장) 가져와야 하고, 월말에 있을 행사에 쓸 증서에 붙일 씰과 리본도 가져와야 해서죠.
내 방 문틈에 우편물이 여럿 꽂혀있습니다. 전도사님이 꽂아놨겠지요. 전도사님도 내 방 열쇠를 가지고 있지만, 재택근무가 아닐 때도 내가 없을 때는 항상 그렇게 문틈에 꽂아놓습니다.
씰에 찍을 철인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책상과 서류장 서랍들을 다 열어보고, 책장 구석까지 다 봐도 없습니다. 미리 철인을 찍어두었던 씰이 딱 한 개 있어서 몇 장 더 찍어서 가져오려는데 철인을 영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이에 1층 출입문 소리가 나길래 내다 봤더니 권사님 한 분이 손자를 데리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재택근무 후에 2년 만에 처음 보는데, 두 살이던 아이가 많이 자랐습니다. 권사님이 내게 더 건강해 보인다고 말하는데, 아이가 새 오리털 파카를 입었다고 자랑합니다. “용주야, 오랜 만인데 목사님이 뭐 줄게 이리와.” 용케 아이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라무네’ 캔디 한 봉지를 주었지요.
다시 찾아도 안 보이던 철인을 복사지 상자 뒤에서 찾았습니다. 작은 수납장 아랫간에 있었는데, 복사용지 상자가 가려져 있어서 못 봤던 겁니다.
한 장에 네 개씩 붙어있는 씰 석 장에 철인을 찍고, 리본 조금을 씰 봉투에 넣고, 책꽂이에서 ‘히브리서의 신학’과 ‘사도행전 강해’를 뽑아 쇼핑백에 함께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화양리 사거리를 지날 때쯤에 햇빛 사이로 눈이 하나씩 흩날립니다. 성동교를 건너는데 갑자기 함박눈이 되었습니다. 모처럼 눈 구경을 하는구나 했더니 이내 눈이 그쳐갑니다. 경동시장 앞에서, 미아사거리에서 또 함박눈이 내리더니 또 이내 그칩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어가 마눌과 딸이 좋아하는 구구콘과 붕어싸만코 등등을 사 가지고 들어와 냉동실 아이스크림 칸을 채웠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열심히 성경 읽고, 기도하고, 열심히 설교문 작성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열심히 미드 일드를 보면서도, 이렇게 영양가 없이 쓸데없는 글이라도 또 열심히 쓰지 않으면 재택근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습니다. 사무실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하는 일은 똑같지만 집에 있으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그것이 2년 동안이나 계속되니까 그런지 얼마 전부터 기분이 좀 갈아앉는 것 같아서 이러다 우울증 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