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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스 8:15-23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16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17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20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스 8:15-23 / [에스라가 레위 사람을 모으다] 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하와 성읍으로 흘러 가는 강가에 귀향단원들을 모아놓고 사홀 동안 천막을 치고 묵으며 최종 점검을 하였다. 내가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제사장들은 많이 있었으나 성전에서 시중 들 레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16) 그래서 나는 엘리에셀과 아리엘, 스마야, 엘라단, 야립, 엘라단, 나단, 스가랴, 므술람 등 몇 가문의 어른들을 부르고, 요야립과 엘라단이라는 현인 두 사람도 불러 그 문제를 의논하였다. 17) 그리고 나는 그들을 레위 사람들이 사는 가시뱌 마을의 대표자 잇도에게 보내며 그와 그의 친척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시중 들 사람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18) 이 일에서도 우리 하나님의 친절한 손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그들이 세레뱌라는 총명한 사람을 데려왔다. 그는 말리의 아들이고 레위의 손자이며 이스라엘의 증손이었는데 자기의 아들들과 형제들을 모두 18명이나 데리고 왔다. 19) 그 밖에도 므라리 가문에서 하사뱌와 여사야가 함께 왔다. 이들도 자기의 아들들과 형제들을 모두 20명이나 데리고 왔다. 20) 끝으로 성전에서 시중 드는 일꾼 220명이 더 왔는데 그들의 이름이 모두 귀향단 명단에 등록되었다. 그들의 조상들은 옛날에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이 성전에 넘겨 주어 레위 사람들을 돕도록 한 사람들이었다. 21) [금식과 기도] 나는 거기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일을 선포하였다. 우리는 모두 우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우리들 모두와 우리 어린아이들과 우리가 가지고 가는 모든 재산을 위하여 그리고 무사히 고국에까지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하였다. 22) 우리가 가는 먼 길에는 대적이나 강도의 위험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왕에게 그런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도록 기마병을 내어 달라는 간청은 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런 간청은 부끄러워서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왕에게 이미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당신을 버리고 멀리하는 이들에게는 무서운 분노를 내리십니다.' 23) 그래서 우리들은 금식하며 위험하고 먼 여행길에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호소를 들어주셨다.
본문에서는 에스라가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무리를 모으고 2차 귀환을 준비합니다. 레위인들과 성전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출발하기 전에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15-20) 1차에 귀환자 중 제사장들은 4,289명이었고, 레위인들은 341명으로 그 수가 부족했는데(스 2:36-42), 2차 귀환자에 레위인들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귀환목적은 분명합니다. 성전 제사, 예배의 회복입니다. 레위인들은 제사장을 도와 성소의 일을 하며 율법을 가르치는 등 공동체의 신앙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레위인들은 이미 바사에 머물며 다른 직업을 갖고 정착하여 살고 있었기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의 고된 일을 하는 것보다 바사에 그대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명보다 현실에 안주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모든 족장들과 명철한 사람을 불러 가시뱌 지방으로 보냈습니다. 그 곳 족장 잇도와 그의 형제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에게 함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려오라 하였더니 레위인 39명과 220명의 성전 수종자들이 지명되어 귀환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우리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을 입고”라고 고백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세워갈 일꾼이 필요합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간구하였더니(21-23) 이제 성전에서 섬길 자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발에 앞서 에스라는 모인 무리들에게 금식을 선포합니다.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몸을 낮추고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간구합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고 하나님을 간증했었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7:6).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호를 왕과 귀환자들에게 믿음으로 보이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간구함에 응낙하였습니다(31).
적용: 코로나 19 전과 후의 당신의 신앙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다시 돌아가야 할 당신의 사명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새로운 출발 앞에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까요?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이 아무리 특출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응급처치는 할 수 있을지라도 완치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소망은 기도에서 이뤄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철저하게 결단하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자세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함이 응낙을 얻는 온전한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기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2b-3)
< 설 교 >
하나님의 선한 손
스 8:15-23 / 피영민 목사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한다.
에스라 8장의 핵심은 22절이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신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가?
1.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
1)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 하나님의 말씀이 평소에 영혼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은 위기에도 여호와를 찾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2)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 에스라 7:27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 주권도 능력도 없는 존재라면 찾을 가치가 없는 것이다.
3)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을 감사하는 태도로 여호와를 찾아야 한다.
- 에스라 7:28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 여호와를 찾는 일은 사람의 육신(죄성)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 로마서 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신이란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말한다)
- 육신을 죽이는 최고의 방법은 금식기도이다.
- 성도의 가장 큰 원수는 내 안에 있는 죄성(육신)이다.
- 이 육신을 매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2. 여호와를 찾은 결과 → 하나님의 손이 선을 베푸신다.
1) 함께 귀환할 사람을 공급해 주셨다. 12가문에서 1,496명, 레위인 38명, 느디님사람 220명 도합 1,754명의 남자
- 마태복음 9:37~38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
2) 필요한 물질을 공급해 주셨다. 은금만 30톤이 넘는 양이다.
- 에스라 8:26~27 내가 달아서 그들 손에 준 것은 은이 육백오십 달란트요 은 그릇이 백 달란트요 금이 백 달란트며 또 금잔이 스무 개라 그 무게는 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 같이 보배로운 놋 그릇이 두 개라
3) 먼 길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
- 에스라 8:31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3. 여호와를 찾은 목적
- 예루살렘에 귀환하며 하나님의 법을 재건하는 것.
-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회복하는 것.
* 하나님의 임재와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 여호와를 찾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손의 공급과 보호를 체험하자.
평탄한 길
스 8:21-23 / 오치용 목사(종교개혁주일)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주 설교제목은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이번 말씀은 ‘평탄한 길’ 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약 540년 전입니다. 바벨론 땅에 유대인 포로였던 에스라 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에스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되어간 때에 율법에 아주 밝은 학사였고 동시에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스라가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샤의 왕의 총애를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본토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귀환의 길에는 유대인을 미워하는 족속들이 진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보물을 가지고 돌아가서 성전에 장식하도록 허락을 받았기에 보물을 운반하는 대열을 이끌어야했습니다. 아주 위험한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왕으로부터 호위군대를 요청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전에 왕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선한 보호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시고 도우십니다,’라고 강조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신앙을 강조한 적이 있었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말을 했기에 지금 와서 ‘왕이여! 군대를 풀어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라고 전도한 일에 불신을 초래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손상을 가져올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대열을 이끌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교훈이 됩니다. 우리가 우리 앞에 있는 난관, 인생의 길을 놓고 때때로 어떻게 기도해야할지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는 내일부터 믿음의 성도들을 예수님의 12지파로 보면서 매년 상, 하반기에 갖는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구약의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는 다니엘서를 다시 보면서 말씀과 기도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주제는 ‘깨어 영생을 얻는 자들’이고 표어는 ‘새벽의 삼삼오오’, 입니다. 새벽에 함께 일어나 함께 오는 그런 가족 그런 교우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면 새벽에 도우실 것입니다. 에스라는 위기의 길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1. 먼저, 평탄한 길을 구하는 것
그의 기도를 들어보실까요.
8: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8:21 There, by the Ahava Canal, I proclaimed a fast, so that we might humble ourselves before our God and ask him for a safe journey for us and our children, with all our possessions.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하나님과 인간의 접촉점을 '극한 상황'혹은 '한계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형편과 처지를 말합니다. 이때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탄한 길, 안전한 여행길을 기도하는 것이지요. 평안이 중요합니다.
중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길을 떠날 때 인사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루핑안(一路平安)’이라고 합니다. ‘가시는 길 내내 평탄한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의 인사입니다. 일루핑안. 그렇게 한번 인사를 서로 하시지요. 우리는 천국가는 나그네. 서로 간에 이런 인사를 하면서 중국어도 익혀 보시면 좋을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매우 중요한 은혜가 하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평안이요 평탄한 길입니다. 이 길은 지금으로부터 488년전, 독일에서부터 일어난 이른바 종교개혁의 대운동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고난이 있었던 교회의 큰 개혁의 운동이 일어난 그 때의 시작은 마틴 루터가 로마교황청을 향해서 95개의 질문을 만들어 1517년 10월 31일, 당시 그가 재직하던 독일의 빗텐베르그 교회의 문에 붙혔던 일이었습니다. 그 질문 속에는 면죄부를 삼으로써 연옥에 있는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로마 천주교 설교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32. 면죄부에 의해 자기들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가르치는 그 스승과 함께 영원히 정죄(定罪)를 받을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면죄부를 사는 것 같은 돈으로 구원을 사는 행동을 가르치지 않고 오직 자기와 세상 자랑을 다 비우고 겸허하게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도록 형벌과 죽음, 지옥에 대한 교훈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94번째 루터의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94. 그리스도인들은 형벌·죽음·지옥을 통하여 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노력하도록 권면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루터는 95개조항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95.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평안의 보장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수많은 고통을 통해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한다(행 14:22)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충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평안의 보장보다 고통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믿어야한다’라는 이 밀은 오늘 설교제목과 비교할 때 어떻게 생각이 됩니까? 오늘 설교제목은 ‘평탄한 길’입니다. 영어로는 safe journey, 즉 안전한 여행,입니다.
루터는 평안의 보장보다 우리는 ‘수많은 고통’을 통과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행위,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만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에게 많은 환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천국여행은 평탄한 길보다는 고난의 길이라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자! 이 말씀이 신기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누리게 하려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탄한 길은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평탄이 아니라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평안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다 이겨놓으셨으니 그 분 믿고 나아가면 환난을 이긴다, 평안이 온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평안은 이김으로써 얻는 것인데 그 이김이 주님을 통해서 이미 이루었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이 이겨놓으신 것을 이기는 것 뿐입니다. 주님이 이루신 것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안, 평탄은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을 당하든지 아니면 환난의 위협이 있든지 어떤 경우든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완전히 낮추고 겸손해 졌을 때 주어지는 형통이요, 평안이요, 보호요, 승리이며, 평탄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 마음의 의심, 두려움, 교만, 등을 이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개혁은 친히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속죄 구원의 길, 죄와 싸워서 승리하는 일을 이루신 것이며 우리는 우리 마음에 있는 불신앙만을 이기고 믿음으로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믿음을 지키는 싸움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믿음의 싸움을 싸우며 승리와 평탄함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심령의 개혁, 믿음생활의 개혁,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가장 큰 종교개혁의 요구인 것입니다.
사실 종교개혁의 요구는 루터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개혁의 요구들 중에는 스스로에 대한 살핌이 부족한 가운데 남보고는 잘하라고 하는 그런 개혁의 구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루터 때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기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면서 많은 고뇌를 겪고 그 후 자기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깊은 깨달음,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른다는 큰 각성을 가진 후에 이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개혁의 불쏘시개에 기름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질문을 우리 마음 벽에 붙이면 어떨까요?
첫째, 나는 진정 사랑의 사람인가
둘째, 나는 진정 정의로운가
셋째, 나는 진정 신앙인인가
넷째, 나는 진정 희생하는가
다섯째, 나는 진정 전도하는가
글쎄, 우리가 이 외에도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지만 감당을 도저히 못하겠고요 … 이 질문이라도 스스로에게 던져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떨까요. 어떻게 대답할까요? 우리는 그 가운데서 진정 이 모든 일이 이루는 평안, 평탄한 길, 형통을 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평탄한 길을 구하는 것은
2.둘째, 하나님의 은총을 선언하는 것
역경에도 은혜가 있습니다. 역경 속에 은혜가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역경 자체가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신앙인을 만드는 그 자체가 은혜이기도 합니다. 제가 전에 아주 인상깊게 읽었던 설교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단의 신학을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하신 고 박형룡목사님의 설교집이었습니다. 그 설교집의 제목이 역경의 은총이었습니다. 지금 그 설교를 기억은 못하나 역경의 은총이라는 제목이 깊이 인상적으로 남았고 그 의미가 생각납니다. 신자들은 역경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오는 은총이 있기에 역경자체가 은총이기도 하고 역경 속에서도 은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때문에 역경을 감사하면서 역경 속에서 오는 은혜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 중의 하나는 시편 119편 165절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 늘 부담이 있었습니다. 왜 장애물이 없는가? 이것은 좀 기복적인 말씀이 아닌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 신앙을 가진 자. 순종하는 자.’라고해도 역경이 있잖는가? 그런데 어떻게 큰 평안이 있으며 어떻게 장애물이 없는가?라는 질문이 늘 생겼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나면 금방 집안이 잘되고 건강하고 자녀가 잘되고 문제가 척척 해결되고… 그렇게 될 줄 알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혹시 계신지요. 그런데 예수믿으니까 오히려 시련이 오고 핍박이 오고 위기가 오고 사업에 직장에 가정에 자녀들에게 곤란한 일들이 생기는 일은 없었는지요. 신앙생활은 당연히 장애물과 역경을 예견해야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역경이 있습니다, 장애물이 많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있습니다,라고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의 환난을 당할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 16:32). 그리고 이어서 위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주님 안에서 큰 평안과 형통의 길이 열리고 승리한다, 는 말씀이지요. 이 말씀이 바로 시편 119편 165절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는데 그 이유는 장애물이 이미 없는 것 같이 길이 다 예비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큰 역경이 오지만 큰 길이 예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출애굽의 큰 구원은 그것이었습니다. 애굽에 노예생활을 할 때 때가 되면 애굽을 떠나 구원을 얻을 큰 구원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는 유월절의 밤에 바로왕은 꼼짝 못하고 그 모든 백성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다시 바로 군대가 추격해 오고 앞에 홍해가 놓여 있을 때 이미 그 홍해 안에는 구원의 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만나를 주시면서 반석의 물을 주시면서 먹고 살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여리고성이 크게 가로막고 있었지만 무너뜨릴 길이 이미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역경에는 그 속에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믿는 자, 순종하는 자, 그리스도안에 있는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자, 이미 받은 줄로 믿는 자에게는 그 길이 열릴 것이요 그 평안이 올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 평탄한 길을 이제 기도하고 믿어야합니다. 모든 역경에는 평탄한 길이 그렇게 해서 준비되어 있습니다. 역경에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역경을 만나도 그 역경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평탄한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정면승부가 필요합니다. 담대해야합니다. 문제가 올 때 기도하고 그 문제를 향해 정면승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면 홍해도 길을 열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믿고 그렇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오는 곤란도 감수하면서 은혜의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학사이며 제사장이었던 에스라가 왕의 은총을 입고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아닥사스다 왕이 그에게 성전을 지을 많은 돈을 주었고 옛날 성전에서 사용하던 금으로 만든 그릇들과 은으로 만든 그릇들, 그리고 많은 양의 보물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 도둑들의 습격을 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그들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은 다 나있고,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는지도 다 압니다.
그런데 그들은 군대가 없습니다. 재물을 지킬만한 힘이 없는 것입니다. 돈만 빼앗기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목숨까지도 위험합니다.
누가 그 길을 따라 나서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그 길을 따라 나서겠습니까? 아무리 계산을 해 보아도 실속이 없는 여행길입니다. 고생이 이미 예약된 그런 길입니다. 그것을 알고는 아닥사스다 왕이 군대를 보내서 보호를 해 주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4개월이 걸리는 여행길, 그것도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야 하는 길, 언제 도둑을 만날지 몰라 두려워해야 하는 그 길, 그런데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의 왕이 군대를 보내서 아무 조건없이 그들을 보호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그 제안을 앞에 두고 고민을 합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가?
이렇게 군대의 보호를 받고 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길이 보이면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응답인가 하고는 감사한 마음으로 덥석 받습니다. 그 길을 선택합니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정말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길인가 아닌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급하니까 그 길을 선택하곤 합니다.
에스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군대의 보호를 받으면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보장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이스라엘로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가서 성전을 건축하고 다시금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왕의 군대는 여행길에는 보호가 될 수 있지만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나아가서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그들에게 의지하고 여행을 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보호를 요구할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보호로 모든 일을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그들의 출발이 군대를 의지하고 세상적인 힘을 의지하는 잘못된 출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가 결심을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평탄한 길을 간구하면서 왕의 호위를 요청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려는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전에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었습니다.
8: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8:22 I was ashamed to ask the king for soldiers and horsemen to protect us from enemies on the road, because we had told the king, "The gracious hand of our God is on everyone who looks to him, but his great anger is against all who forsake him."
하나님의 은총은 사람들의 협력 도움을 통해서도 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도우심 만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부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이 경험한 일입니다. 동인병원 앞에서 야간에 정면으로 좁은 골목에서 어떤 차를 만났답니다. 후진하기도 매우 곤란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냥 버티고 저 차가 물러서게 할까, 하다가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먼저 일단 눈부신 조명부터 한단 내리고, 조심스럽게 후진해서 양보했습니다. 그런데 상대편 지나가는 차를 보니 교회 집사님이시더랍니다. 그래서 인사하고 난 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얼굴 붉히고 싸웠다면?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꺼리더랍니다. 다행히 길을 먼저 비켜드린 것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육체의 생각을 접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학사 에스라는 스스로가 말한 것으로 인해 그 스스로 발목을 붙잡는 일을 했습니다. 바사 왕에게 포로귀환 명령 이전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해 오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증하고 자랑하여 온 일입니다.
8:22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후략)
이 때문에 학사 에스라는 22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심정을 고백합니다.
8:22 (전략)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이제 와서 자신의 선포하고 간증하였던 내용을 눈 앞에 고통과 장애물이 생겼다고 해서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은 영적인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사 에스라가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영적인 자존감을 가지고 취한 태도 때문입니다.
저도 친구들에게 목사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다 책임지실 것이라고 했기에 제가 신학교 등록금이 없을 때 친구들을 찾아가거나 친척의 도움을 받는 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이 부끄럽게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선언을 약하게 할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에스라 같은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평탄한 길을 구하되 주님께서 예비하신 십자가의 길, 그 안에 있는 천국의 열린 길과 부활의 권능을 우리는 선언해야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은 출애굽의 대장정도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큰 증거를 남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한 은혜임을 선언하면서 지혜롭게 이런 부분의 전적인 은혜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고 나타나는 도움은 세상의 것이라도 감사하게 받아야합니다. 이 신앙이 확고한 가운데 오는 모든 도움은 주님께서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난계로 사역을 할 때 지역이 협력해 오면 받아야합니다. 다만 그 일이 주님의 은총이라는 사
실을 확실히 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기복신앙은 우리의 삶과 함께 신앙이 연결되어 있기에 근본으로는 동기의 문제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더라도 욕심과 정욕으로 쓰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쓸 생각을 하시면 그 기도에 주님은 평탄한 길을 주실 것입니다. 이미 모든 직장, 생활 속에서 주님의 평탄한 길, 예비된 사명의 길, 선교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적극적으로 이 지역을 향해 나아가면서 주여, 평탄한 길을 여소서, 이 곳에서 저 사랑의나라를 향한 길이 형통케 하소서, 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3. 셋째, 평탄한 길의 인도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환난 속에서 오는 평탄함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때때로 아주 중요한 때에 어떤 면에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고난과 역경을 막아주시고 평탄한 길이 열리기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평탄한 길을 열며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다시 에스라의 기도를 생각합시다.
8: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내가, 라는 에스라의 기도를 이제 우리가 드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평탄한 길을 여는 사람이 됩시다. 전에 18일에 바자 전 날 우리 교우들이 제 방에 와서 장애인을 데리고 서울 숲 나들이 한 때 이야기를 하며 흥분하고 기뻐했습니다. 장애인들을 돕는 그 모습을 모두가 칭찬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역경에 있는 분들에게 형통의 길, 평안의 길이 있음을 전도하는 일도 해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그들에게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평탄한 길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탄한 길을 구하고 은총을 선언하며 이제 평탄한 길을 여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올 것입니다.
8: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8:23 So we fasted and petitioned our God about this, and he answered our prayer.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을 베풀기 전에 반드시 먼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을 온전히 통과하면 놀라운 축복과 형통의 길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가 그 약속을 확인하는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세는 40년동안의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했으며 야곱은 20년 요셉은 13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당장에 길이 안보이고 답답해보이고 방해물이 내 앞에 견고하게 진을 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고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믿고 의지하면 놀라운 은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작은 축복을 위해서는 작은 시험이 큰 축복을 위해서는 큰 시험이 예비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신다면 절망케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따라서 큰 환난 속에서도 큰 평안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그렇게 믿고 긍정적인 신앙의 고백자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탄은 우리의 믿음과 기도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전적인 은혜를 구하여 보는 결단입니다. 이번에 그렇게 기도하면서 정말 신앙과 기도에 깨어나고 은혜에 깨어난 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민 6장에서 우리에게 복과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6: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평탄을 간구하는 것은 매우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당연한 외침인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에스라와 우리의 평탄한 길을 구하는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8:23 (전략)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이 기도의 응답으로 우리 앞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 앞에 평탄한 길이 열리고 이 가운데 역경의 은총이 증거되는 역사를 일으키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부족한 것을 살펴봅시다
스 8:15-23 / 김상수목사
우리가 12월이 되면 항상 결산도 하고, 새해 예산도 세우며, 개인적으로도 한해를 마무리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고, 또 새해를 준비하는 계획도 세우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이왕이면 고생하지 않고 잘 살아야 될 텐데 많은 분들이 세상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초행길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인생길을 어떻게 하면 고생하지 않고 잘 갈수 있는지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의 긴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TM룹바벨이라는 지도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차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어서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메데 파사 시대 아닥사스다왕 때에 지도자 에스라를 통해 2차 귀환을 하게 했습니다. 2차 귀환을 하는데 귀환 과정과 가는 사람들의 명단, 또 어떻게 준비했는지 기록한 장이 오늘 본문 8장입니다.
남자만 1800명과 여자와 아이들을 더한다면 수 천 명이 됩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2000키로가 넘는 먼 거리로 4개월을 걸어서 가는 대 장정의 길이었습니다.
귀환 길에 올라서 9일 만에 아하와 강가에 도착하고 3일 동안 쉬면서 살펴보니 예루살렘에 가는 목적은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위함인데 가만 보니 제사를 드려야할 제사장이 없고, 또한 성전에서 봉사할 레위지파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에스라는 가는 동행들 중 족장들을 불러서 빨리 인근에 가서 그곳 총독을 만나고 거기 있는 지역 레위인들을 발탁해서 같이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완전히 해서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빠트렸다는 것을 알고 거기서 그들이 다 준비한 후에 출발하고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라가 바벨론을 출발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모든 여정의 길은 전에 가보지 못했던 첫 여행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그들이 걸어갈 때에 그들은 준비를 잘 하고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걸음이 이와 똑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 다 초행길인데 왜 고생하는지 아십니까?
제가 가끔 다른 나라에 가거나, 우리나라 가까운 지방을 가게 될 때라도 지도를 가지고 물어서 물어서 가야 고생을 하지 않는데, 그냥 가면 목적지에 바로가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이리갔다 저리갔다 헤매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모두 천국 가는 초행길인데 첫째는 꼭 필요한 하나님 말씀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가거라”하는 지도책이 있는데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그대로 가지 않고 내 마음대로 갔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나보다 먼저 간 선배들의 말을 듣고 지도를 받으면서 간다면 고생을 덜한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산다는 말입니다.
저도 30대 초반부터 한 10년을 죽을 고생을 했는데 지금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먼저는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목사되라고 할때에 “예”하고 신학교에 갔다면 좀 덜 고생했을 텐데 고집이 세서 내 고집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말씀 지도책을 보지 않고 살았었습니다. 사업한다고 주일날도 이리뛰고 저리뛰고 했으니 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망하기 딱 맞는 일만 골라했기에 망해서 고생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길이 이왕이면 천국갈 때까지 고생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할까요?
나에게 처해진 중요한 문제가 다가왔을 때에 그 문제 앞에서 심사숙고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덤벙덤벙하지 마시고 조금 더 심사숙고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성전중심의 삶을 살기 위해서 머나먼 길을 가는 것인데 막상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습니다. 레위지파가 빠지고 제사장 직분을 담당해야하는 분들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잘 지어놓았는데 목사님이 없고, 교회 봉사할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 때문에 살아갑니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위에 사는 것은 왜 살까요?
여러분, 내가 오고 싶어 왔습니까? 가고 싶어서 갑니까? 그렇다면 왜 여기 삽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시켜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살게 하고 다시 하늘나라로 오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짜놓은 인생 스케줄인데 여러분의 삶 속에 정말로 하나님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무엇을 위해서 하는 사업인지, 이 사업이 하나님을 위한 사업인지 썩을 육신을 위해서 하는 사업인지, 하나님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자녀를 키우는데도 하나님이 없는 자녀를 기르고 있습니다. 열심히 과외공부 시키고, 열심히 학교공부 시키지만 하나님이 없습니다. 이사를 갈 때에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섬길 수 있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텐데 좋은 학군인지 8학군인지를 알아서 그곳에 이사가서 아이들 학교보낸다면 교회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다 자라서 보니 하나님도 모르고, 믿음도 없으며 자기 좋은대로 커버리고 나니 부모 품을 떠나게 되니 내 자식도 아니고, 하나님 자식도 아닌 버린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먼저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갖추는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편에는 우리 인생이 걸어가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만 살고 따라가면 고생하지 않을텐데 이것을 버리고 내 고집대로, 내 욕심대로 살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서 빨리 점검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요?
먼저 자신에게 부족한 신앙과 인격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인격이 갖추어져야 대접을 받고, 성도가 성도대접을 받으려면 믿음이 바로 갖추어져야 성도의 대우를 받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대우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 들어가면 그 분위기를 굉장히 좋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분위기에 들어가면 그사람 때문에 그냥 분위기가 다 깨져버립니다. 가정에 분위기가 깨지고, 직장의 분위기가 깨지며, 구역의 분위기도 사무실의 분위기도 다 깨져버리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디를 가든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주님 말씀 하신대로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서 온유하고 겸손해서 잘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사람은 자기 울타리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땅속에 두더지 같이 깊은 굴을 파지도 않고 사는데 땅속 굴속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 굴속밖에 모르는 자기세계밖에 모릅니다. 그러다가 언제 하늘을 볼 수 있습니까? 장마로 땅이 꺼져버리면 하늘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자기 굴밖에 보이지 않고, 자기세계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굴이 무너지고 나니 비로소 하늘이 보이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이 사업하시느라고, 세상 육신생활 하시느라고 내 세계만 모르고 살기 때문에 자기밖에 모르고 옆에 사람을 모르며, 다른 사람을 위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업이 망하고 가정이 깨어져버렸습니다. 육신도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보게 되며, 이웃 사람을 보게 되고,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보이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아픔도 알게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자기의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이 많은 고통과 갈등을 통과하며, 실패를 통과하고 또한 인내하면서 통과해야만 비로소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잘못해서 고생하는 것, 내 성격이 모가 나서 고생하는 것, 내 인간관계가 잘못되서 고생하는 것 모두가 내 탓인줄 아시고 내 인격하나 형성되는 것은 많은 고생도 통과해야 되는 줄 아시고, 인내하면서, 기도하면서 자기의 부족한 것을 채워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사람일 수록 자꾸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부족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 앞에 자기 행동의 부족함을 보아야 합니다.
조금 전에는 인격에 대해서이며 지금은 나의 행동의 부족함을 빨리 보아야 합니다. 행동의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은 벨사살 입니다. 이 왕이 교만해서 귀인들 천명을 모아놓고 대 연회를 베풀 때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는 금귀명, 은귀명으로 술을 따라 마시고 방자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안 되겠다고 하시며 천사를 통해서 맞은편 벽에 큰손이 나와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썼습니다.
그것을 본 벨사살 왕의 모습이 어떠한줄 아십니까?
다니엘 5장 6절은 “이에 왕이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 다리가 마디가 녹는 듯 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떨었는지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한때 교만하고 잘난척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너무나 두려워 다니엘을 통해서 도대체 저 뜻이 무엇인지 말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해서 해석하게 하실 때에 그 내용은 “내가 너를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그래서 너는 불합격이다. 너는 이제 너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신 내용입니다. 그 날 밤 메데 장군 다리오가 들어와서 바벨론을 함락하고 그날 밤 벨사살 왕은 죽게 되었고 바벨론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항상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우리 마음이 항상 거기에 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무엇이 부족한가?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에 저울에서 부족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야합니다. 내 믿음에서 부족함이 없는가? 내 기도는 부족함이 없는가? 내 봉사는 부족함이 없는가?를 늘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교육관을 건축하고 있는데 남의 집 구경하는 것처럼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과연 그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저울에 달아보았을 때에 어떤 모습일지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 할 때에 우리 모두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 잘하고 있지만 전도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전도하는 일도 하나님 앞에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목사님께서 부산 해운대 집회를 갔는데 그 교회 집사님이 아닌 다른 교회 집사님께서 아침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말할 수 없는 실패를 해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고 알거지가 되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 은혜로 크게 성공해서 해운대에서는 아주 잘 산다고 했습니다. 명함을 한 장 주는데 보니 어느 주택건설회사 전무이신데 그 명함 뒷면에 “저희 회사 사장님은 그리스도인이십니다. 저희 회사 사장님을 만나기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쓰여있었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명함 한 장이 전도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울에 달아보았을 때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너는 되게 무겁구나. 합격이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그런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천성길을 향해 가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신속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내일로 미루지 마시고 지금 움직이셔야 합니다.
레위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족장들을 뽑아서 바로 보냈습니다. 3일만에 모든 족장을 보내서 레위인들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르비딤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레위인 40인과 르비딤 사람 220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하는 것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성도들이 머리로만 믿으며, 생각만 가지고 믿고 있습니다.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찰스 아데인 박사는 어느 교회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면밀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전체의 20%교인이 주일예배에 불참하며, 25%의 교인이 기도를 안하며, 30%의 교인이 기도할 줄 모르며, 35%의 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고 40%의 교인이 헌금을 하지 않고, 60%의 교인이 신앙서적을 읽지 않고, 70%의 교인이 교회활동을 외면하고, 75%의 교인이 교회에 대해서 책임은 진 것이 없고, 85%의 교인이 불신자 한사람도 전도해본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85%는 우리 교회와 조금 맞는 것 같습니다.
전도하는 교인은 15%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100%의 교인들이 하나같이 천국에 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천국은 가고 싶다고 했다니 믿는 성도들이 이렇게 얌채 같으면 되겠습니까? 우리 일심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하겠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길이 편안하게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영성이 자꾸 올라가는 것은 은혜의 날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올라가려면 날개를 자꾸 움직여야 위로 올라가지 날개를 가만히 있다면 추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서 어떻게 천국갈 수 있겠습니까. 올라가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하고 말씀 붙들어야 합니다. 기도의 권고를 듣고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도하도록 만들어서라도 여러분을 데리고 가실텐데 기도하도록 만드는 것은 죽을 일이며, 망할 일이 생기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생겨야 기도 하지 마시고 평소에 좋은 일 있을 때, 은혜 주셨을 때에 기도해서 계속 올라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입니다. 사업하는 것도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돈벌어서 무엇 하시겠습니까? 가지고 천국가시겠습니까? 돈벌어서 내 자녀들 교육시키고, 내 할 도리를 다 하고 나면 그것 하나님 앞에서 일 많이 하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보니 그분들은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사회활동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갈 때에는 교회에 기증하고 사회사업에 기증을 많이 합니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평소에 헌금을 많이 하는 숫자보다는 죽을 때에 유산을 교회나 선교기관에 남기고 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산다면 자녀 교육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있는 자녀교육을 시켜야합니다. 출세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출세해야 하며, 은혜 받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우리 성도의 신분에 부끄럽지 않고, 부족하지 않도록 성실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불신자들이 성실하게 사는 것은 칭찬하면서 우리 자산이 그들보다 못하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되겠습니까?
작년에 작고하신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이 부지런한 것과 성실한 것 때문에 오늘에 자신이 있도록 한 것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분은 이 유산 때문에 어려서부터 부지런히 농사일을 했고, 도시에 나와서는 최선을 다해서 막일을 하고, 성실한 부두 노동자로 일을 했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고, 부기를 익히며 법률공부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이 미천이 생전 처음 월급을 받고 취직한 쌀집에서 주인의 인정을 받고 땡전 한 푼 없는 내가 서울 장안에서 쌀집을 경영할 수 있게 해 주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이는 22세였습니다. 이렇게 인생을 시작했고, 80을 바라보면서 그분은 “내가 맡은 일에 한번도 게으름 피워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향해서 당신은 특별하게 시대를 잘만났다고 했을 때에 그는 아니라고 말하며 “나는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불굴의 개척정신과 끈질긴 근면, 창의적인 노력, 진취적인 기상을 배우고 익히면서 전진에 전진하는 성실한 노력과 부지런함에 대한 댓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첫째는 목사로서 부끄러웠습니다. 여러분, 저만 부끄럽습니까? 여기계신 장로님들 부끄럽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장로님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권사님, 집사님들 모두 다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직분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 직분에 맞는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삶은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서 날마다 점검하고 기도하면서 말씀 붙들고, 한걸음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야 이것은 가능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일은 당장 해야할 일입니다. 미룰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벤자민 프랭크린은 “나는 학교 다닌 것은 고작 1년밖에 못다녔고, 취미는 독서이며, 어머니에게 배운 교훈은 잠언22:29절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업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이다”라는 성경구절 한마디라고 했습니다.
이분은 훗날 미국 철학회를 창설하고, 초대 프랑스 대사에 임명이 되었으며, 과학자로서 피뢰침을 발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분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13가지의 덕목으로 말했습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버리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부족함이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며, 또한 나의 인격을 다듬고, 나의 삶의 행동을 풍성하게 만들고, 부족한 것을 채울수 있는 그런 시간으로 잘 사용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기까지는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됩니다.
에스라가 다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지금 고국에 돌아가는데 왕과 방백들로부터 수 많은 귀금속과 보물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것을 예루살렘으로 싣고 가야 하는데 2000키로나 되는 장거리에 가는 길에 도적 떼를 만난다든지 적군을 만난다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임금에게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은금 보화를 싣고 가는데 호위병과 마병을 달라고 한다든지 군대를 보내달라고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금식하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셨다고 했습니다.
31절은 “정월 십이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도착할때까지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셔서 부사히 안착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에 도적맞을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를, 남편을, 아내를 나보다 먼저 보냅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업 도적맞지 않도록 기도하시며, 인생의 행복과 축복을 빼앗기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서야합니다. 의지하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독일에서 10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아가지고 고국에 돌아오려고 귀국 준비를 다해두고 돌아오기 일주일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할 일 다 한 후에 하나님께 맡기시고 나가시면 우리 인생길에 하나님이 나의 지도자가 되시며, 보호자가 되시고 나의 모든 걸음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일심교회 성도들 모두 이 연말을 앞에 두고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서 하나님 앞에 부족한 것이 보이지 않도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하와 성회
스 8:15-23 / 유관지목사
오늘 설교의 제목은 ‘아하와 성회’입니다.
‘아하와(Ahava)’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하와이라고 하기 쉽습니다.
오늘 아하와, 이 이름을 처음 대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이름을 알고 있었던 성도가 있습니까? 한 번 손들어 보라고 할까요?
우리는 성경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구석구석에 모르는 것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이하와 성회,’ 제가 만든 말인데요, 더 낯선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미스바에 모여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미스바 성회라는 말이 생겼고 이 말은 지금도 자주 쓰입니다.
특히 나라를 위한 기도 모임, ‘미스바 구국성회’ 이런 이름을 많이 붙입니다.
여호수아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았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 수령들, 재판장들, 관리들을 불러 모으고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수 24:14)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이 집회는 ‘세겜 성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하와 성회’라고 하면 ‘그런 것도 있었나?’ 아주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렇지요?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약 2,462년 전에 아하와 강가에서 모인 집회에 대해서, 에스라서 8장, 나가서는 에스라서 전체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 집회는 왜 모였는지, 모여서 무엇을 했는지,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피는 가운데, 성도들 한 분, 한 분에게, 또 대 성전 시대를 시작했고, 오늘밤부터 부흥성회를 갖는 우리에게 은혜와 교훈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하와 성회는 왜 모였습니까? 어떤 집회였습니까?
아하와는 바벨론의 지명입니다.
이 이름은 성경에서 에스라에만, 그것도 8장에만 세 번 나옵니다.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하와’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하와 지방을 흐르는 강을 아하와 강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마 작은 강이었을 것입니다. 이 앞에 있는 동막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유브라데 강의 지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는 운하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벨론 북쪽 80리 좀 못 미치는 곳에 핫 운하가 있었는데 이 운하가 아하와였을 것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습니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Cyrus)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고국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도록 후원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철저하게 파괴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하게 약탈당했습니다.
고레스는 느부갓네살이 약탈해 와서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금, 은그릇들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건축에 착수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지도자인 스룹바벨, 대제사장 예수아가 앞장서서 이 일을 이끌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어, 16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이 때 성전 재 착공을 독려한 예언자가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에스라서 5장 1절에 이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516년,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제6년에 드디어 성전 공사가 끝났습니다.
이 성전을 보통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의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신약의 헤롯 성전 셋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에스라서의 전반부인 1장에서 6장까지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에스라서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7장은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가 하는 자가 있으니라“ 라는 말로 시작 됩니다.
“이 일 후에” 넉 자로 된 짧은 말이지만 여기에는 짧지 않은 세월이 숨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페르시아가 바사라고 나오는데 성전을 준공할 때 페르시아의 왕은 다리오였습니다.
그 다음 왕은 아하수에르 왕입니다. 아하수에르 왕은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바로 그 왕입니다.
그 다음 왕이 7장에 나오는 아닥사스다(Artaxexes)입니다. 이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를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뿐만 아니라 느헤미야의 활동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느헤미야 1장과 2장을 보면 그 일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이 준공된 다리오 왕 6년에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일들이 시작되는 아닥사스다 왕 7년(스7: 7)까지 57년입니다.
이 57년 동안 이스라엘은 그렇게 활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초기 귀환운동과 성전건축을 이끌었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인 예수아는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예언자인 학개와 스가랴도 세상을 떠났거나 나이가 많아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도력의 공백상태가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지도력도 공백이었고 영적인 지도력도 공백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생활은 침체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에스라와 거의 같은 시대의 일을 적은 느헤미야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은 지어졌는데 성전에서 조석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쳤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성전은 건물도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전이 성전으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성전의 건물을 요즘 말로 하면 하드웨어입니다.
소프트웨어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그 하드웨어는 제 값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좋은 컴퓨터를 샀으면 잘 활용해야지요.
컴퓨터는 ‘나 이런 컴퓨터 가지고 있다.’자랑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보 14면 ‘목양광장’을 보세요. 아래쪽에 이번에 부흥강사로 오시는 최세웅 감독님이 쓰신 「전도폭발의 뇌관이 되라」라는 책에 있는 말들을 몇 개 옮겨놓았습니다.
첫 번째가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송장들만 모인 교회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송장 소리 듣지 않으려면 열심히 전도하십시오.
그 다음은 “에밀 부르너라는 신학자는 불은 타고 있는 동안만 불이지, 꺼지면 불이 아니라고 했는데 교회는 전도하고 있는 동안만 교회이지, 전도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다. 자전거가 계속 굴러가야 넘어지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원리이다.”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비틀거리며 넘어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전도하십시오.
매우 강력하고 도전적인 말들입니다.
이번 부흥성회에도 이런 말들이 계속해서 선포될 것입니다.
성전은 활용되어야지 성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보기 좋은 건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문화재가 됩니다. 유럽에는 그렇게 된 교회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전은 일종의 그릇입니다. 그릇 가운데는 보고 즐기기 위한 그릇도 있습니다.
성전은 그런 그릇이 아니고 좋은 음식이 많이 담겨야 하는 실용적인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이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이런 상태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운 인물이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 대 손이었습니다.(스7: 5)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스7: 6).
이 에스라는 백성들을 이끌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준비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한꺼번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레스 왕 때, 기원전 538년의 귀환은 일차 귀환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이 귀환을 인솔했지요.
그로부터 80년 뒤인 기원전 457년, 아닥사스다 왕 때 에스라가 인솔한 귀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귀환은 이차 귀환이었습니다.
2차 귀환으로부터 13년 뒤에는 느헤미야에 의한 삼차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에스라는 귀환을 앞두고 아하와 강가에 모여 사흘 동안 준비집회를 했습니다.
이 준비집회를 아하와 성회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아하와 성회는 귀국 준비성회였고 성전에 활기를 주려는, 성전을 살리기 위한 성회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고레스 왕, 다리오 왕, 아닥사스다 왕, 유대인들의 귀환을 도와주고, 성전재건을 도와준 왕들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이 왕들이 이런 일들을 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들은 이방나라의 왕들이었습니다. 점성술이라든가 말둑 신을 비롯한 우상들을 섬기던 왕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왜 이런 일들을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에스라서 1장 1절을 보세요.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래서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다리오 왕이 성전 재착공을 허락하고 성전공사와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도록 한 것도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이차 귀환을 허락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에스라서 7장 27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하실 뜻을 두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상관하지 않고 세상의 통치자들, 왕들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성경들은 그 사실을 기초로 하고 기록되었니다.
에스라서도 마찬가지, 느헤미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살피면서 그 하나님께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마음을 주장하시어서 그가 억지 주장을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특히 신사참배를 더 이상 계속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마음을 주장하시어서 그가 중국의 인권과 민주화에 대해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후진타오 주석이 집권했을 때 그가 실용주의 노선의 인물이라 중국의 교회에 대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질 것으로, 신앙의 자유를 확대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반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무엇보다도 북한의 김정일의 마음을 주장하시어서 우선 백성들을 먹이고 살리는 일부터 힘쓰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 이와 같이 하여 아하와 성회가 열렸습니다.
아하와 성회에서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먼저 성전에서 일할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사람들을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점검을 하였습니다.
그 명단이 8장 1절에서 14절까지에 있습니다. 조직을 재정비한 것입니다.
큰 일을 앞두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레위 자손이 없습니다.
레위 자손은 성전에서 일하도록 되어 있는 지파입니다.
민수기 3장 5절에서 9절까지에 그 점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들이니라
성전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는 일은 레위인들이 해야 하는데 그들이 없습니다.
에스라는 자기의 이번 귀환이 성전에 활력을 넣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자기를 세우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까 성전에서 일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24절 이하를 보면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예물을 풍부하게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물을 관리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봉헌을 하면 재무부원들이 주일 오후 내내 그것을 정리합니다. 헌금을 다 세고, 봉투를 정리하고, 봉헌한 분들 명단을 작성하고, 주간재정 수입과 지출통계를 내서 주계표를 만들고, 시재일람표를 만듭니다.
만일 재무부원들의 이런 수고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스라는 성전에서 일할 사람들이 없는 귀환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른자가 빠진 달걀과 같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족장을 보내 성전을 위해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아하와 성회에서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 다음에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자, 우리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잔치를 하자. 이제 이 페르시아를 떠날 텐데 이곳의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고 즐기자.’ 하지 않았습니다.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금식을 귀환의 서곡으로 삼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큰일을 앞두고 있습니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합니까? 자녀가 결혼을 합니까? 입대를 합니까?
경건한 시간을 가지며, 숙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1월에 남선교회 대회 때 강사로 오신 한명수(韓明洙)목사님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납니다.
고향이 북한의 연백(延白)인데 1951년에 단독 월남을 했습니다. 강화도로 내려와서 군에 입대해서 여러 해 군인생활을 했습니다. 켈로 부대라는 특수 유격대 생활도 했습니다.
이제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제대하는 다른 사람들은 집에 가게 되었다고 좋아서 야단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제대를 해도 갈 곳이 없고 맞아줄 사람도 없습니다.
이 분이 쓴 글을 보면 이 때 홀로 우주의 미아가 되는 것처럼 서럽도록 외로웠다고 합니다.
이 분은 혼자 냇가에 나가 눈물을 흘리며 찬송가 421장을 불렀다고 합니다.
나는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합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합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합소서
아무 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아기 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줍소서 힘도 없이 약하니 나를 도와줍소서 힘도 없이 약하니 나를 도와줍소서
맘이 심히 슬프니 나를 위로합소서 의지 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합소서 의지 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합소서
이 찬송을 밤이 새도록, 목이 터지도록 불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이 분을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도와주시고, 위로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게 하셨습니다. 이 뒤에 수원 가는 도로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조금 안쪽으로 창훈대교회라고 유럽식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교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교회가 이 분, 한명수 목사님이 1964년에 개척해서 40년 동안 시무한 교회입니다. 이 분은 성공적인 목회와 함께 교단을 위한 활동, 나가서 교회연합활동도 많이 하셨습니다.
십여 년 전에 위암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는데 그 때 제대를 앞두고 이 찬송을 부르던 일이 생각나서 목사실 문을 닫아걸고 이 찬송을 밤새도록 불렀다고 합니다. 이 분은 위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도 십 여 년 간 건강하게 활동하다가 작년에 은퇴하셨습니다. 우리 몸에는 암세포를 억제하는 의지세포가 있는데 이 의지세포가 왕성하게 활동해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를 인도하소서’, ‘하나님, 나를 가르치소서’, ‘하나님, 나를 도와줍소서’, ‘하나님 나를 위로합소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도와주시고, 위로하시고, 크게 사용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하와 성회에서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바칠 준비를 했습니다.
이들이 귀환하니까 페르시아의 왕과 관리들이 ‘이것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바치시오. 성전에서 사용하도록 하시오.’ 하면서 은과 금과 그릇들을 내 주었습니다.
함께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것도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세요.’ 하면서 역시 많은 예물을 내놓았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을 따로 세워 그 예물을 잘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바치도록 했습니다.
이 일은 오늘 본문 뒤에 이러지는 8장 24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하와 성회를 통해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성전에서 일 할 일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성전에서 일할 사람 수백 명을 보내주셨습니다.
아하와 성회를 통해서 어떤 일이 일었습니까?
에스라가 구하는 것을 응낙해 주셨습니다.
23절 /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에스라가 특별히 간구한 것은 안전한 귀환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왕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22절이 그 기도인데 알기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평안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왕에게 군대를 동원해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하고 싶지만 저희가 전에 왕에게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군대를 동원해 달라고 하기가 부끄럽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구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직선거리로는 840Km이었지만 도로를 따라가면 1,450Km입니다. 에스라서 7장 8절에는 에스라는 넉 달 걸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들을 노리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막대한 재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새어나갔거나 새어나가지 않더라도 그렇게 짐작하고 그것을 탈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8장 26절 이하에 그들이 가지고 가는 재물, 성전에 바칠 것들의 목록이 있는데 은 육백오십 달란트, 은 그릇 백 달란트, 금 백 달란트, 금잔 스무 개, 아름답고 빛나 금 같이 보배로운 놋 그릇 두 개, 많은 사람들이 탐낼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라 일행이 이 재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무사히 돌아가도록 해 주셨습니다.
8:31 /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아하와 성회를 통해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어와 보니 귀환한 백성들의 삶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제일 심각한 것은 잡혼 문제였습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을 성전 앞 광장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큰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개혁을 선포합니다.
재건은 되었으나 별로 쓰이지 않던 예루살렘 성전의 광장이 회개의 광장, 개력의 광장, 정화의 광장,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인 것을 확인하는 광장, 순수하고 경건한 삶을 살 것을 서원하는 광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때때로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헌신과 봉헌을 다짐하는 시간도 갖게 되기 바랍니다.
금식에도 힘쓰기 바랍니다.
특히 젊을 때 금식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금식을 감당할 수 있는 의지도 약해지고 체력도 어려워집니다.
제가 올해 사순절 금식헌금을 좀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금식은 좀 부족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올해 여러분이 사순절에 하신 금식 헌금은 몽골 선교를 위해서 쓰여 집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제가 타문화권 선교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선교기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선교와 관련된 여러 일들에 관계하고 있었지만 원래는 그것보다 더 많은 애착을 가진 일이 있었습니다.
1990년에 충현교회에서 아시아선교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제가 마흔다섯 살, 아직 젊을 때인데 선교에 대한 자세를 분명하게 하고 싶어서 한 주일 내내 금식을 하면서 그 대회의 새벽기도회에서 저녁집회까지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그때 베이징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려 선교단체들이 베이징으로 떠날 준비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중국선교에 대해 말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금식을 하면서도 낮에는 그런 단체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많이 다녔습니다.
이 일이 그 뒤 계속해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선교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교가 직장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 때문에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금식기도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돕는 사람들을 보내주십니다.
여러분이 간구하는 것을 응낙해 주실 것입니다.
23절 끝에 나오는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라는 말을 저는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의 확신을 주셔서 가고자 하는 길을 용기를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됩니다.
하고자 하는 일을 용기를 가지고 할 수 있게 됩니다.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회개하고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꼭 가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성전 건축을 완료한 목양교회는 아하와 성회와 같은 시간을 꼭 가져야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게 하기를 원하셔서 에스라를 일으키시고, 이방의 왕인 아닥사스다 왕까지 사용하신 하나님께서는 목양교회 대성전이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에 여러분과 저를 사용하기 원합니다.
여러분, 레위인과 같이 성전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십시오.
우리는 오늘 저녁부터 열리는 성회가 아하와 성회와 같은 귀한 모임이 되도록 함께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미처 잘 모르고 있었던 아하와 성회의 중요함을 잘 깨닫고 개인적으로도 이런 시간을 갖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고, 특별히 그와 같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시는 사람
스 8:21-23 / 피영민목사
에스라는 바벨론 아하와 강가에서 가나안까지 4개월이나 걸리는 긴 여정의 길을 떠나기에 앞서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나, 최종적으로 자신을 낮추어 금식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당시에는 여행자들을 약탈하는 도적의 무리들이 출몰했음으로 자신들의 자녀들과 모든 소유가 먼 여정에 모두 안전하기를 원하는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는 아무리 인간적인 준비가 완벽한 듯해도 그 경영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그 경영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실 때는 능치 못함이 없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찾는 자입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스 8:22)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왕에게 군대를 요청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 신뢰했고 인간의 도움 받기를 부끄러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에게 그를 만나주시고(잠 8:17),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그의 눈을 눈물에서, 그의 발을 넘어짐에서 건져주시며(시 116:8), 선을 베풀어주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둘째, 금식하며 간구하는 자입니다.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스 8:21) 금식을 선포한 에스라는 함께 모인 모든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금식은 인간적인 생각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만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할 수 있습니다.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고,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사 58:6). 에스더의 금식기도(에 4:16)는 멸망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나라를 구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한 사람의 기도는 큰 나라를 한꺼번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그런 핵무기보다 귀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금식기도는 핵무기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겸손한 자입니다.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스 8:21) 기도는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이 해결치 못한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드리는 자는 겸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비하다’란 말은 ‘복종하다, 고난당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값진 것을 얻으려고, 그들 스스로를 낮추어 복종하고 고난조차 감수하리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이 말씀 때문에 고난을 당하겠다는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빌 2:8).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여주시고(빌 2:9),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며(시 10:17), 구원해주시고(욥 22:29),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벧전 5:5).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군대의 힘을 의지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분을 찾고, 겸손한 마음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한 에스라의 기도는 응답을 받아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짐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스 8:31).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찾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돕는 신앙
스 8:21-23, 31 / 오창우목사
오늘은 에스라, 학사라고도 하도 제사장이라고도 하는 에스라에대해서 말씀을 드리며 함께 은혜나누려고합니다.
에스라는 특별한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잡혀갔다가 70년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포로고향으로 돌아오는 귀향이 세 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수룹바벨의 총독을 통해서 고향땅에 가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을 합니다. 둘째는 셋째는 느헤미아라는 페르시아왕의 비서실장을 통해서 고향에 돌아가서 예루살렘의 성벽을 쌓고 적들의 침략을 막는 그러한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첫 번째에 갔던 스룹바벨에 의해서 고향에 가는데 5만명이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80년있다가 에스라가 가고 곧 이어서 느헤미아야 따라가는데 3만명 넘게 따라갑니다. 이 두 사람은 성전 건축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성벽을 건축하는 눈에 띄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으로 스룹바벨의 성전이 생기고 80년이 지나도록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이들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적 회복운동을 벌입니다. 신앙부흥운동을 벌입니다. 에스라는 항상 하는 말이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도 아시는 것처럼 포로 귀향했다고 해서 독립한 것은 아닙니다. 나라가 되려면 땅도 있어야 하고 주권도 있어야 하고 백성도 있어야 합니다. 백성은 있는데 땅도 없고 주권도 없습니다. 페르시아의 속국이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의 속국은 헬라의 속국입니다. 로마의 속국입니다. 주권도 없고 땅도 없고 사람들만 있습니다. 그런데 남은 사람들이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때 에스라는 하나님을 찾으면 그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영적회복운동을 위해서 떠나자고 하니 그 말에 갑시다’하고 따라 나선 사람이 1,400명이 따릅니다.
눈에 보이는 일은 그래도 사람들이 따라나서는데, 힘이 있는 사람이 말하면 5만명, 3만명이 따라 나서는데 힘이 없는 제사장이나 학사가 말을 하니 그의 말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천사백이 그를 따라 나섭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이 자그마치 걸어서 5개월을 가야 합니다. 그러니 가는 길에 여러 일들이 생길 것이고 적군과 도적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들에게 죽지않고 살아남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아는 수룹바벨과 느헤미아는 왕에게 우리를 경호할 수 있는 경호부대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자기 한 말이 있기 때문에 경호부대를 요청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의 그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그러니 내가 부끄러워서 우리를 지켜줄 마병, 보병 요청을 못하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22절을 보시게 되면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천 사백명을 이끌고 5개월 동안 많은 적군과 도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을 그냥 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손이 도우셨습니다.
에스라서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손이 돕는다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인생의 여정이 에스라가 가는 길보다 더 힘들면 힘들지 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것은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지키실 때 우리는 안전히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와 사랑속에서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손이 돕는 그런 축복은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에스라를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는 느헤미아 8장을 보게 되면 느헤미아가 성벽건축을 하면서 성벽봉헌식을 하기 전에 성경통독을 합니다. 느헤미아 8장의 내용을 잠깐 말씀을 드리면 백성들이 에스라를 앞에 세우고 단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펼치니 백성들이 다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그 말씀을 받고 받은 말씀을 통해서 울며 회개를 하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성벽봉헌식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통독은 읽기만 해도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성경은, 율법책은 제사장인 에스더만 가지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듣기만 합니다. 지금은 우리 성도분들 한 분 한 분 다 갖고 계십니다. 그런 마음 가지고 성경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서 함께 성경을 읽읍시다.
1.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게 했다(15-20)
“(15)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16)..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18)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20)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여기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라고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서 이북땅에 오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회당을 만들었습니다. 회당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예배했습니다. 회당이 없으면 강가에 가서 기도처로 삼았습니다. 사도바울도 전도하러 갈 때 회당이 없으면 강가에 갔습니다. 우리는 산기도를 하는데 이들은 강가에서 주로 기도를 했습니다.
제일 먼저 성전을 위해서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더니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 일을 도우셨다고 돼 있습니다.
2.금식을 선포하고 평탄한 길을 간구했다 (21-23)
“(21)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2)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23)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3.하나님의 예물을 삼가 지키게 했다(24-31)
그 이유는 이들이 성전에 영적회복을 하러 간다고 했더니 헌금을 했습니다. 헌금한 것을 잘 지키라는 이야기입니다.
“(28)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29)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30)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그릇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무게대로 받으니라 (31)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4.이스라엘 전체를 위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32-36)
“(35)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두 마리요 또 숫양이 아흔여섯 마리요 어린 양이 일흔일곱 마리요 또 속죄제의 숫염소가 열두 마리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36)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총독들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 주매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느니라”
이렇게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들렸습니다.
에스라서 8장에 나오는 전체 내용입니다.
에스라 사건가운데 전체적으로 중심이 되는 것은 에스라서 8장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손이 돕는 신앙, 하나님의 손이 돕는, 여러분 사무엘상 7장에 보게 되면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서 미스바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 주신 축복은 하나님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그들을 지키시매 그들이 평안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지킴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받느냐? 4가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묵상으로 받는 하나님의 손이 돕는 신앙은?
첫째, 하나님의 일군을 필요로 하는 신앙
17-18절“..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나님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찾으니까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사울임금은 이스라엘의 초대임금이지만 그가 하나님의 사랑과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왕의 자리에 이르렀는데 교만해 졌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까지는 맞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려고 하니 제사장 사무엘이 빨리 안오니까 사울임금이 나섭니다. 자기가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일꾼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납니다. 그리고 악한 영이 그를 지배하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성 사람들이 죄 때문에 망했다. 죄가 있다고 해서 다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니느웨성 사람들은 주의 종이 가서 전하니까 회개하고 구원받았습니다.
종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전에 일할 일꾼이 필요하다, 그분들을 모셔야 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종을 필요로 하고 역시 귀하게 여깁니다. 다윗왕이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주의 종의 주님의 일꾼의 필요를 알았고 그들의 사역을 귀하게 여깁니다.
나단선지자가 책망하니까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밤새도록 눈물을 흘립니다.
갓 선지자가 와서 잘못을 지적할 때 하나님의 벌을 달게 받습니다.
에스라는 주의 종의 필요를 알고 구했더니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셨습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나를 위해서 주의 종을 세우셨습니다. 주의 종들을 귀하게 여긴 에배소교회는 사도바울이 편지를 써도 하나님의 교회가 은혜가 있는지 그런 말씀을 씁니다. 고린도 교회는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는데 은사를 많이 받았지만 싸우지 말라 사랑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편지를 받고 똑같은 사랑을 받아도 어떤 사람은 그러지 말라고 하고 당신은 귀하다고 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오묘한 교회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 에베소교회입니다. 에배소교회는 사도바울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도 영적 깊이가 커져가는 것입니다. 매일 불평하고 주의 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위로받으려고하고 날 설득하라고만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렇습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도움을 받습니다. 그래야 신앙의 깊이가 깊어지고 높아지고 길어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4장 16절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마다 흩어지는 교회의 특징은 제사장을 높이지 않고 장로들을 대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흩어지게 돼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일꾼의 필요를 느끼고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돕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찾는 신앙
21절“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의 선한 오른손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세 가지를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금식을 선포하라. 내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금식기도를 통해서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합니다.
둘째, 겸손입니다. ‘스스로 겸비하여’ 나는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릅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가 은혜 받습니다.
셋째, 간구입니다. 기도를 하는데 간절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거이요 간절한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금식을 하고 겸손하고 간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니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수원에 가면 창대교회라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담임목사는 제 친구입니다. 합동측 교회입니다. 수원에서 부흥한 교회입니다.
거기에 담임하셨던 한명수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이북에서 피난내려오신 분이십니다. 피난 내려와서 군대의 컬러 부대에 가서 군인으로 있다가 제대를 했습니다. 제대를 하고나니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갈 곳이 없으니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셨다고 합니다.
나는 갈 길 모르니 [421장 ]
1. 나는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합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합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합소서
2. 아무 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 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 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3. 아기 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 줍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 줍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 줍소서
4. 맘이 심히 슬프니 나를 위로합소서 의지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합소서 의지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합소서 아-멘
또 부르고 부르는 가운데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수원에 교회를 개척하고 40년동안 목회를 잘하고 마치셨습니다. 이분이 은퇴를 앞두고 10전에 암병에 걸렸답니다. 우리들이 다 염려를 했습니다. 또 이 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면 또 이 찬송 421장을 부르셨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암을 하나님의 손으로 다스려서 은퇴할때까지 건강하셨습니다. 이 내용을 한 잡지에 다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때로는 금식도하고 때로는 겸손하고 때로는 간구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지키실 때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해결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지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것을 지키는 신앙
28-29절“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이들이 에스라가 이스라엘의 성전의 영적회복운동을 위해서 간다니 왕부터 관리들도 은그릇 금그릇을 헌금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도 헌금을 해서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도적들이 많아서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하나님의 것이니 잘 지키라고 합니다. 내 것은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것이기에 잘 지키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이 얼마나 축복하시는지 31절을 보게 되면 “(31)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은 잘 지켜져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쳐진 헌금이 잘 지켜지도록, 잘 사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전주에 안디옥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여기 목사님의 온 교회의 관심은 헌금을 선교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선교 때문에 불편한 교회라고 합니다. 예배당교회도 불편하고, 행사를 해도 빵하나 못먹으니 많이 불편한 교회랍니다. 상은 하늘나라가서 받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최소화 하는 것입니다.
‘나는 불편해져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드린 헌금이니 귀하게 써야지’
요즘 간식으로 빵을 자주 먹게 됩니다. 빵하나도 천 원이상 하더라구요. 또 유명한 메이커 아니면 또 잘 안드셔요. 학생이든,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필리핀의 나보따스에 갔는데 나보따스 중간중간에 가게를 보니 아주 작습니다. 거기에 이런 바구니에 쌀을 담아 놨습니다. 제일 비싼 것은 41페소, 1페소에 25원입니다. 1킬로에 40페소입니다. 천원입니다. 싼것은 27페소입니다. 우리 빵 안먹으면 1킬로 쌀 사서, 하루 천원가지고 10식구가 삽니다. 박선호 선교사는 땅에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바다 위에 집을 짓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제는 빵을 덜 먹어도 되지 않을까요. 추워도 히터를 더 세게 트는 것이 아니라 두툼하게 입어서 그 절약된 돈으로 선교를 하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하나님의 손이 하나님의 것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 도와주십니다.
우리 교회가 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고 더 귀함을 받고 더 존귀함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들고 불편해도 참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접 받으러 오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은혜 받아야 합니다. 은혜 받는 것은 빵이 아닙니다. 먹는것이 아닙니다. 다른 상이 아닙니다. 상이 없어도 하늘 나라 가서 상급을 받고 하나님의 것을 잘 지킬 때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지키셔서 승리하는 인생될 줄로 믿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하는 신앙
35절“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두 마리요 또 숫양이 아흔여섯 마리요 어린 양이 일흔일곱 마리요 또 속죄제의 숫염소가 열두 마리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여행갔다가 5개월 만에 왔는데 제일 먼저 제사를 드렸습니다.
작은 것이 아닙니다. 수송아지가 열두 마리, 또 숫양이 아흔여섯 마리, 어린 양이 일흔일곱 마리, 이 양들을 번제로 준비하는 것도 일이었겠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지방에 도착하면 왕의 조서를 총독들에게 줘야 거주할 수있습니다. 그런데 총독에게 왕의 조서를 전해주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려 제사들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이 지키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마지막절 36절에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 주매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느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 총독들과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과 백성들을 도왔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을 최고로 여겨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예배만 드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에스라처럼, 에스라를 따랐던 천사백명처럼 하나님의 손이 항상 우리를 도우시고 힘있게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꾼 필요로 하십시오.
둘째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셋째 하나님의 것을 잘 지키십시오.
넷째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해서 예배하는 일에 가장 우선시 여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C.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기도
“하나님,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받는 신앙의 삶을 살게 하소서!”
준비기도와 금식기도
스 8:21-23 / 김홍도목사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되어 있는 샘물교회 형제자매들을 위해 우리도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들이 준비 기도를 충분히 하고 떠났더라면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성령께 가는 길을 바울이 비두니아로 선교여행은 가려고 할 때 막으신 것같이 막아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여튼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도록 계속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미리미리 준비 기도를 충분히 하면 사탄의 방해를 막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재난,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모든 교회가 어떤 행사나 계획을 놓고 많이 기도하면 교회가 더 크게 부흥될 줄로 확실히 믿습니다. 준비기도가 없이 하는 일은 실패하거나 별 열매가 없이 끝나기 마련입니다.
1995년도쯤에 미국 하와이 함대 사령부에서 일기예보를 발표했는데 앞으로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아서 큰 흉년이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에서 1월 1일부터 7일간 밤마다 특별기도회를 열고 두 손 들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해주셨습니다. 성회가 끝나는 날부터 눈도 아니고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그해에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부터 북한 은 큰 흉년이 들어서 해마다 100만 명씩 굶어 죽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미리미리 준비기도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가 모든 일에 준비만 제대로 한다면 큰 부흥은 물론 나라의 운명이 달라질 것입니다.
1. 어떻게 준비기도 할까?
① 모든 행사를 앞두고 준비기도 해야 합니다
작년 7월말 세계감리교대회를 금란교회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된 다음부터 첫째 기도 제목이, 장마철인데 비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고 또 수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국내외에서 못하게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를 잠잠케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WMC 개회 전날까지 비가 오고 사방에 물사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멈추지 않고 두 손 들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보고 어느 목사는 나를 어리석고 무모한 목사라고 비웃듯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랫동안 준비기도 해왔기 때문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사 개최하는 날부터 비가 멈추고 끝나는 다음날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고 전국각처에서 홍수로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방해하던 사탄의 역사도 잠잠해지고 도리어 감탄하며 칭찬했습니다. 세계감리교 100년 역사상 가장 훌륭하게 치렀다고 신임회장도 칭찬했습니다. 준비기도가 없었다면 사탄의 방해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고 성공적인 대회를 치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흥회를 하기로 결정하면 적어도 두 달 전부터 강사를 위해서, 우리들 자신이 은혜받기 위해서, 사탄의 방해를 막아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성공적인 부흥회가 되는 것입니다. 수증기가 많이 올라가야 비가 많이 내리는 것처럼 기도를 많이 하는 만큼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잘못하면 시험만 받고 손해를 보기 쉽습니다.
또 여름에는 각부 수련회가 많이 있는데 교통사고, 물 사고, 질병의 사고 등 모든 사고를 막아달라고 준비기도 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기도를 많이 하면 아무 사고도 없이 큰 은혜를 받습니다. 준비기도를 충분히 하지 않고 무슨 행사를 하면 사탄의 방해를 받거나 큰 사고가 나기 쉽습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과 방해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돈이 많아도 짓지 못합니다. 또 해마다 제직을 뽑고 예산, 결산을 하는 당회를 앞두고는 두 달 이상 준비기도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대했다가 집사, 권사, 장로가 되지 못하여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준비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에스라 8장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바사 나라의 아닥사스다 왕 때에 왕의 허락을 받고 귀국하려 할 때에 이를 방해하는 무리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귀국길에 숨었다가 덤벼들어 죽일 음모까지 꾸민 것을 알고도 지도자 에스라가 왕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에 마병을 동원하여 지켜달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아하와 강가에 백성을 모으고 기도하며 무사귀환을 위하여 금식했습니다.
에스라 8장 21~23절에서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금식하며 준비기도 했더니 31절에 “정월 십 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군대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금식기도를 준비기도로 했더니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가운데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준비기도할 때 때로는 금식기도를 준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은 준비기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② 자녀를 위해 미리미리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어려서부터 기도하는 것이 재산을 모았다가 물려주거나 보험을 들어주거나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기도를 많이 한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나라를 구원하고 영적으로 큰 부흥을 일으키는 귀한 사사요, 선지자가 되었으나 그렇지 않은 엘리의 두 아들은 나라를 망치고 법궤도 빼앗겼고 엘리 자신도, 두 아들들도, 비참한 종말을 고했습니다.
이사야 45장 11절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장래에 될 일, 또 자녀들을 위해서 미리미리 내게 부탁하라고 즉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중요하고 재산 물려주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대로 살면 다른 모든 것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부탁하라” 하는 말씀은 “명령하라”(command)로 되어 있습니다. 명령하듯이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식을 마귀에게 빼앗기고 피눈물 흘리게 됩니다. 미리미리 기도해야 합니다.
③ 노년과 죽음을 위해 준비기도 해야 합니다
평생을 아무리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해도 죽을 때 잘못 죽으면 그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미국의 유명한 감독님이 죽음 앞에 이르러서는 “나는 천국이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는데 구원받았겠습니까? 복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령에 치매가 걸리거나 오랜 기간 고통스러운 병에 걸려 주위 사람들한테 폐를 많이 끼치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기도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 권사님들은 죽을 때 잠자는 듯이 천국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대로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요한 노령을 대비해서 준비기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④ 나라를 위해 미리미리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가 적화통일 된다면 한국의 6만 교회는 다 파괴될 것이고 천만 명이 넘는 크리스천들이 대량학살을 당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배반하고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다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고려연방제를 선언하거나 “평화체제선언”을 하거나 하면 미군이 철수하고 따라서 외국기업은 다 철수할 것이고,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경제가 몰락할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공산국가들과 같이 경제가 몰락하여 거지의 나라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것입니다.
에스겔 22장 30~31절을 읽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너져가는 나라를 위해 염려하고 탄식하며 부르짖는 사람이 있으면 그 나라를 구원하려고 했는데 없어서 진노의 불을 쏟아부었다는 말씀입니다.
2. 금식기도
성경에 보면 위기에 처할 때에 금식기도하며 부르짖어서 위기를 극복하고 구원받은 예를 많이 봅니다.
이사야 58장은 금식기도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12절에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금식과 받지 않으시는 금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잘못된 동기에서 하는 기도는 “금식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 우리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시지 않는다” 하고, 불평하며 금식하는 것과 “금식하는 날에는 오락을 찾아다니고 금식하면서 싸우고 다투고 주먹질을 하는 것” 등은 잘못된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데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1절과 14장 1절에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는데 필요합니다.
② 하나님의 목표를 달성케 하십니다
사도행전 10장 30절에 고넬뇨가 기도할 때에 천사가 빛난 옷을 입고 나타나 할 일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나흘 전부터 지금까지 금식기도 하고 있는데”(Four days ago, I was fasting until this hour…)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천사가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9~10절에 보면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도 금식하다가 음식을 먹으려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넬뇨와 베드로가 다 각기 금식기도 하는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된 것입니다.
③ 금식기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3절에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기도 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라고 했습니다. 금식기도 한 후에 종들을 파송하여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이나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은 너무나 귀한 일이고 너무나 사탄이 싫어하는 일이므로 금식기도가 필요한 것을 목회하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④ 교회 지도자들은 금식할 것을 표본으로 세웠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7절에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금식과 고난 받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금식기도를 통하여 받은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금식기도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세계적인 교회의 목회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⑤ 금식은 보통 기도로 해결할 수 없는 장애물을 걷어치울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21절에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21절은 난 하주를 보면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식기도를 통하여 믿음이 강해지고 또 불가능해 보이는 태산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⑥ 금식은 믿음과 신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사야 58장 8절에 “그리하면(금식)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내 치료(healing)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한 말씀대로 병 고침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하셨고 흑암의 세력을 걷어치우고 영광과 빛이 나타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⑦ 금식은 부흥을 일으키는 방법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금식기도만큼 영혼을 새롭게 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설교에 은혜와 능력이 안 나타날 때 영혼의 칼날을 날카롭게 하는 방법은 금식이 최고입니다.
⑧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게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몸을 드려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금식기도입니다. 그리하면 내 맡은 직분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가 있습니다.
⑨ 금식은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케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최고의 간절한 기도는 금식기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물질은 공급하실 수가 있습니다.
⑩ 금식은 회개와 자복의 좋은 기회입니다
느헤미야 9장 1~2절에 “그 달 이십 사 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자기의 외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라고 했습니다. 금식하며 회개, 자복하는데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영혼을 마귀의 결박과 죄의 결박에서 풀어 자유케 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6절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
스 8:21-23 / 박봉수목사
이번 성지순례는 정말 평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 좋은 사람들을 예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버스 기사 야신이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금년 30이 된 총각 기사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운전을 잘 하던지요? 터키만을 12박 13일 동안 순례하는 동안 주로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높은 산악 지대를 지났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대 평원도 지났습니다. 바닷가도 지났습니다. 복잡한 시내도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사고가 없었습니다. GPS도 없었으면서 정확하게 길을 찾았습니다. 우리 일행을 정말 편안하게 해 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급정거를 해서 불안하다든지 너무 멀리 차를 대서 힘들다든지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 일행 대부분이 운전기사 때문에 여행이 참 순적했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운전 참 잘한다고 입이 닳도록 칭찬들을 했습니다. 정말 운전기사 덕에 여행이 참 평안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바로 여행과 같습니다. 태어나서 세상 떠날 때까지 기나긴 인생길을 여행합니다. 그런데 이 인생 여정이 누가 운전대를 잡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내가 내 인생 여정의 운전대를 잡으면 불안합니다. 길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여러 차례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기도 불안합니다. 나보다 나을지는 몰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인생 여정의 운전대를 잡으시면 달라집니다. 평안합니다. 우리가 갈 길을 정확하게 찾아주십니다. 도중에 불안한 일도 없습니다. 안정감이 있고 신뢰가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분의 손을 철저하게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을 의지했던 사람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에스라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손을 의지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도전과 교훈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바랐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이란 말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것을 비유로 설명하려고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에스라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이 지금과 앞으로도 도와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저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에스라는 1:1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귀환하게 된 원인과 저들이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게 된 원인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이진 않는 하나님의 손이 섭리 가운데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돌려보내게 하셨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재건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와 보면 에스라가 2차 포로귀환을 감행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었습니다. 1차 포로 귀환 결과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성전은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속에 성전은 아직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제대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뜻밖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습니다. 허락한 정도가 아닙니다.
7:1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에스라가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와도 함께 갈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7: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왕이 그 필요한 모든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7:24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 사람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에스라가 돌아갈 때 크고 작은 여러 나라와 고을을 지날 텐데 그 때 조공을 받거나 세금을 받지 말라고 엄히 명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모든 정황을 살펴보면서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흔쾌히 돌아가도록 허락했습니다. 재정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에스라는 참 재미있는 표현을 썼습니다. 7:9을 보면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바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에스라는 지금 하나님의 손이 능력있게 역사하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하신 손으로 친히 역사의 운전대를 잡으셔서 이끌어 가시는 것을 소름끼치도록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력하게 그 하나님의 손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고 한경직 목사님의 간증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목사님께서 목회 도중에 어떤 문제 때문에 크게 낙심한 일이 있었답니다. ‘이제 목사 사표내고 목회를 그만두고 말리라' 마음속에 굳게 다짐했답니다.
비몽사몽 가운데 환상을 보게 되었답니다. 당신이 무척이나 험한 길을 걷고 있더랍니다.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오른쪽으로 그만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손이 나타나서 일으켜 세우더랍니다. 또 한참 가다가 왼쪽으로 쓰러지려고 하니까 다시 큰 손이 나타나서 일으켜 주더랍니다. 또 죽을 힘을 다해서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앞으로 쓰러지려 하니까 그 때는 두 손이 나타나서 일으켜 주더랍니다.
그렇게 험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번쩍 눈을 떴는데 바로 환상이더랍니다. 이 환상 속에서 깨달았답니다. "목회는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구나. 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그리고 이후로 더욱 힘을 내서 목회를 하게 되었고 영락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부흥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길은 우리 혼자 걷는 것이 아닙니다. 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이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소망 중에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의지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의 도움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손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만 의지했습니다.
우선 본문 2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군사를 보내 경호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를 돕기로 굳게 마음 먹은 상태입니다. 원하는 사람 누구라도 함께 데려가라 한 상태입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도 내어 줄 태세입니다. 이제 일행의 안전과 경호를 위해 군인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또 많은 재물도 함께 보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경호하려고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모르는 왕에게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선포했었다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왕에게 여행길에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군사를 보내 자기들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에스라가 왕에게 군사를 보내 자기들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면 왕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혹시 에스라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믿는다고 말했던 고백과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는 행동이 달라서 위선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뿐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을 예배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당신의 백성을 지켜줄 능력이 없는 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만일 왕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이 일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이제 갓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어떻게 나오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친구의 강력한 권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번 나와 봤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처음이냐고 물었습니다. 여러 해 전에 작심하고 교회를 본격적으로 다녀본 일이 있었답니다.
그러면 왜 그 마음을 바꾸었냐고 물었습니다. 안타까운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때 동업을 하던 어떤 교회 장로님의 전도를 받아서 교회를 다니게 됐답니다.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지자 그 장로님이 자기에게 부채를 떠넘기고 잠적해 버렸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교회를 다닐 수가 없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사람들의 도움을 의지한다면 그 꼴이 무엇입니까? 그게 올바른 믿음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굶으면 굶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자신을 지켜주시고 역사하실 것을 믿고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붙여주셨다고 강변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최선을 다해 활용하여 도움을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라고 강변을 하기도 합니다.
왕상 17장을 보면 엘리야가 가뭄에 죽을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순종했습니다. 그곳에서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음식을 날랐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순종했습니다. 거기서 한 과부를 만나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를 찾아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돈 땅 사르밧을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지 않은 때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펴십니다. 우리는 이럴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내게 붙여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코 자기가 사람을 찾아 나서고, 자기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의도하고 자기가 계획을 세우고 자기가 일을 저질러 놓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붙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되게 하셨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결국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인내로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성급하게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기도에 몰입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은 것입니다.
우선 금식했습니다. 왜 금식했을까요? 하나님 앞에 간절함을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철저한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예루살렘으로의 길을 하나님의 손으로 인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번 성지순례 기간 중 밧모섬을 순례했습니다. 그 중에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동굴을 찾았습니다. 2000년 전 사도 요한이 기도하던 그 동굴,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밧모섬에 유배당해서 왔습니다. 이미 나이가 80이 넘었기 때문에 몸을 거동키가 힘이 든 상황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요한의 수발을 들도록 요한의 제자 푸로코로스를 보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매일같이 푸로코로스의 등에 업혀 언덕 위의 이 동굴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몰입했습니다. 그 기도 자리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흔적을 따라 기도하면 이런 자세입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머리를 바위 바닥에 댔습니다. 그리고 오른 손을 들어 바위를 잡았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기도로 그 모진 박해를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기도에 몰입하는 요한을 붙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옆 자리에서 그 모습을 흉내 내 보았습니다.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철저하게 마음이 낮아지고 온전하게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라는 감동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 그야말로 원 없이 기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걸고 기도에 몰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만 의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3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철저하게 기도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았을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붙잡았다가도 쉽게 놓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기도에 몰입해 보십시오. 그분의 능하신 손을 붙잡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라
스 8:21-31 / 이수영목사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많은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들어 정복하게 하시고 페르시아의 왕들로 하여금 유다 백성을 놓아주어 그들의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된 성전을 다시 세우도록 명하게 하신 역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멸망하고 흩어졌던 민족공동체를 복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단지 유다 백성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게 하시는 일로 그치지 않고 새 성전에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제사를 드리게 하시며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사는 바른 신앙을 회복하게 하시는 일로 이어졌음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가장 중요한 영적 회복운동에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이가 율법학자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였습니다.
에스라는 당대의 페르시아 왕인 아닥사스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는 자신과 자신의 일곱 자문관의 이름으로 에스라를 유다로 보냈으며(스7:14) 그를 보낼 때 하나님께 성심으로 금과 은을 보냈습니다(스7:15). 그뿐 아니라 그는 바벨론의 온 도와(스7:16) 궁중창고와(스7:20)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 지역의 모든 창고에서도(스7:21) 예루살렘 성전과 거기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내다 쓸 수 있도록 조치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일체의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면제해주도록 했습니다(스7:24).
에스라는 자기와 함께 유다 땅으로 돌아갈 백성을 아하와 강가로 모았습니다. 아하와 강의 정확한 위치는 오늘날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바벨론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마도 에스겔서에서 말하는 그발 강가처럼 사로잡혀 온 유다 백성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추측됩니다. 에스라는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을 치고 머물며 함께 돌아갈 백성들을 점검했습니다. 특히 그의 주된 임무가 예루살렘 선전에서의 바른 제사와 신앙의 회복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수행할 제사장들을 살폈습니다. 그 때 알게 된 사실이 같이 갈 일행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스8:15). 그래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모으느라고(스8:16-20) 바벨론에서 길을 떠난 지 열하루 뒤인 첫째 달 십이일에야 아하와 강에서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본문 31절).
예루살렘을 향한 이주의 행진을 시작할 준비는 끝났지만 그 일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의 귀향길은 약 900마일 즉 1440킬로미터였으며 삼천육백리 길이었습니다. 군대가 행진한 것이 아니고 본문 21절에서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한 데서 보듯이 남녀노소와 함께 각 가정의 온갖 살림살이가 들어있는 이주이삿짐 외에도 성전을 위해 드려진 모든 예물을 끌고 가야 했습니다. 본문 25-30절에서 언급된 성전을 하여 바쳐진 예물들은 어마어마한 물량의 것입니다. 또 조심히 다루고 지켜져야 할 물건들이었습니다. 삼천육백리 길을 이러한 물량을 운반한다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걸어서 귀환했습니다. 넉 달이 걸려 간 길이었습니다(스7:9). 그 이주경로에는 떼강도들이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매우 고되고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게다가 어린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까지 있어 느리고 숱한 귀한 물건들을 갖고 가는 이런 이주자의 무리는 강도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표적이었을 것입니다.
이 길고 험난한 길을 떠나기에 앞서 에스라가 한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 21절은 보여줍니다.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합니다. 에스라가 금식을 선포했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했으며 그에게 평탄한 길을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전보다 후에 금식을 더 많이 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가기 전에는 금식은 특별한 경우에만 행해졌고 온 백성이 다 하는 때는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하곤 했지만 잡혀간 후로는 금식이 더 강조되었습니다. 슥8:19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합니다. 금식이 훨씬 자주 행해졌으며 또 정례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에스라가 금식을 선포했다는 것은 자기 혼자만 금식을 한 것이 아니라 온 일행이 다 같이 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금식이 어려운 처지에 놓일수록 더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모으기에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스라는 또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했다는 말입니다. 에스라나 유다 백성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지켜주셔야 할 일임을 잘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에스라와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간구한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라 한 것은 “약한 자들”이란 말로 어린아이뿐 아니라 여인들과 노약자들을 다 가리킨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에스라 일행의 귀향길은 길고 고되고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호위하는 군대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자기를 절대 신임하고 직접 자기를 명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며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페르시아 왕에게 호위군대를 요청할 수도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고국 땅으로 돌아올 때는 페르시아 왕이 보내준 군대 장관과 마병과 함께 왔습니다(느2:8-9). 그 사실로 보아 에스라도 왕에게 요청하기만 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페르시아 왕에게 그런 요청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요청을 하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긴 것입니다. 본문 22절을 봅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이미 페르시아 왕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드러내 놓고 말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실 것이므로 하나님을 믿고 가면 달리 도와줄 군대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앙고백을 했는데 이제 와서 갈 길이 멀고 험해서 걱정이 된다고 호위해줄 군대를 요청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에스라의 일행 중에는 아무래도 군대의 호위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왕에게 호위군대를 요청하자는 제언을 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고 오로지 하나님의 보호에 의존하기로 다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다 같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동행하시며 보호해주셔야만 할 것을 간구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을 위한 다른 준비에 앞서 에스라가 행한 것은 바로 이 영적 준비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31절을 봅니다: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이 말 속에서 우리는 실제로 에스라 일행을 대적하거나 매복했다가 공격을 감행한 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에스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귀한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려고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친히 지켜주시기를 간구하는 믿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일에 있어서도 그렇고 교회가 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국가적인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새 성전 건축>이라는 큰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진행시키는 데도 많은 장애가 있을 것입니다. 대적하는 자들도 있고 숱한 어려움이 매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금식하는 자세로 우리 모두의 몸과 마음을 모으고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지켜주셔야만 될 일임을 깨닫고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추진하는 <새문안 새 생명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기를 힘쓰는 우리 앞에 얼마나 많은 대적과 장애가 매복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우리의 목표를 이루려면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과 겸비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다른 힘을 빌리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되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만 한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자성과 개혁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이 운동에 대해 저항하고 방해하며 오늘의 부패한 상태를 외면하고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지키려고 혈안이 된 자들이 많습니다. 안팎으로 적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개혁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떻습니까? 북한은 갈수록 더 적반하장의 태도로 우리에 대한 협박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는 그들의 협박 때문에 불안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나 군대는 국민을 안심시키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분명한 대비를 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 어떤 군사적 보호에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 준비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비하며 늘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믿음의 자세를 확고히 하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 옛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그들이 눈으로 보는 앞에서 승천하신 후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하던 중 성령의 강림과 충만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그들은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뛰쳐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복음의 결실을 할 수 있었으며 숱한 박해와 고난을 견디며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우리를 대적하거나 매복하여 공격하는 모든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의 오심과 우리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놀랍게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우리 개인과 교회와 나라의 모든 일을 성취해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