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까” “어찌할까” !!
논어(論語) 제15편 위령공(篇) 15장
子曰 不曰如之何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할까? 어찌하나? 하고 깊이 생각 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다”
어찌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갖고 사색(思索)하며 고민하지 않는
사람 또 고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발적인 의욕(意慾)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가르쳐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문제를 가진다는 것은 문제 해결에의 지름길(捷徑)이며
질문을 자주 한다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 궁금하여
책도 읽고 옆 사람에게 묻기도 하며 자신의 부족한 것을 열심히 해결해
나간다는 노력이다.
※첩경(捷徑)-멀리 돌지 않고 가깝게 질러 통하는 길.
우리는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의 이말을 많이 들어왔다
I think therefore I exist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어찌 할까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배수로가 막힌 하수도와 같다
이런 사람을 누가 어떻게 하겠는가.
▶논어(論語) 제7편 술이(述而) 8장에서도 말하고 있다.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깨달으려고 분발(憤發)하지 않으면 누가 깨우쳐 주지 않는다.
배운 것을 말과 실천으로 나타내려고 애쓰지 않으면
누가 대신해 주는 사람이 없다
여기 산(山)의 한 모퉁이라고 가르치면
이 산길은 나머지 세 모퉁이가 있다는 것을 자신이 깨닫지 못하면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세상에는 좋은 직장, 나쁜 직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직장 있는 동안에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좋은 직업, 나쁜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환경에 적응하여 발전적인 길을 찾아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 일하지 않는 사람을 월급 주는 직장은 없다.
필자 직장시절에 아래의 말이 유행했다
열배 일하고 10분의 1은 월급으로 가져간다.
그러므로 하나를 가르치면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하며
둘을 알려고 노력과 의욕이 없다면 가르치는 사람 역시 별다른
방도가 없다.
배우는 사람이 알고 싶음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가르치는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교육의 효과는 없다.
반대로 시키지 않는 일까지도 깔끔하게 처리를 하는 사람들은
“어찌할까? 어떻게 할까?”를 늘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여지하(如之何)”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다.
이 습관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죽는다.
※여지하(如之何)-어찌할까
내가 학교다운 공부를 못했다고 손을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책도 읽고 모르면 묻기도 하면서 자기의 부족한 스펙(spec)을
채우면서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경쟁사회의 사람 사는 모습이다.
어떻게 할까?
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성공적이 삶이란 무엇인가?
명문학교를 나온 사람인가
사회적 명성과 지위가 있는 사람인가
돈을 많이 번 사람인가?
사람마다 향하는 목표가 다르겠지만
내 이름 석 자를 아무도 아는 사람 없어도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삶이
감사하고 만족한 삶이라 생각하면 성공적이 삶이라 생각한다.
논어를 읽어보면 2500년 전 공자의 말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공자(孔子)는 상대를 가려서 정도에 맞게 교육했다.
요즘말로 “맞춤교육”방법이다.
사고투성이 제자인 자로(子路)는 자로(子路)에 맞게 교육하였다.
공자의 나이어린 제자이지만 성인(聖人)이라 칭찬한 안회(顔回)는
안회(顔回)에 맞게 교육하였다.
2500년이 넘도록
아니 영원히 공자(孔子)의 이름이 전해질것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자들 자신들이 스스로 분발(憤發) 할 수 있게 가르쳤다.
현대 교육학(敎育學)이 바라는 것도 이러한 교육법이 아니겠는가!
물론 학문이나 삶의 지혜는 훌륭한 사람들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그러나 스스로로 탐구하고 생각하고 의문을 갖고 연구하지 아니하면
제자신의 것이 되기 어렵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