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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 예물
스 8:24-30
24 그 때에 내가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
25 그들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그 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그릇들을 달아서 주었으니
26 내가 달아서 그들 손에 준 것은 은이 육백오십 달란트요 은 그릇이 백 달란트요 금이 백 달란트며
27 또 금잔이 스무 개라 그 무게는 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 같이 보배로운 놋 그릇이 두 개라
28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29 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3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그릇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무게대로 받으니라
스 8:24-30 / [성전에 바칠 예물 준비] 그런 다음에 나는 성전에 바칠 귀중한 예물들을 운반하도록 제사장들 중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 12명을 따로 세우고, 레위 사람들 중에서도 세레뱌와 하사뱌를 비롯한 12명을 따로 세웠다. 25) 나는 그들에게 은과 금과 귀중한 기구들을 저울로 달아서 주었다. 나는 바사 왕과 그의 참모들과 장관들과 그 강가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제물로 바친 그 예물들을 모두 이런 방법으로 운반하게 하였다. 26-27)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물건은 모두 다음과 같다. 은 650달란트, 은으로 만든 기구 100개, 금 100달란트, 금잔 20개, 빛나는 청동의 화려한 그릇 2개. 28) 이것을 나누어 주고 나는 그들의 임무를 알려 주었다. `여러분은 여호와께 헌신한 사람들이오. 이 물건들도 여호와께 바친 거룩한 것들이오. 이 은과 금도 여러분의 조상들이 섬기던 하나님 여호와께 자진해서 바친 예물들이오. 2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을 모두 잘 간수하여 예루살렘의 성전에까지 무사히 가지고 가시오. 그곳에 이르러서는 여러분이 성전의 골방으로 들어가 그 예물을 모두 다시 정확하게 달아서 제사장의 우두머리와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 가문의 어른들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30) 이렇게 해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귀중한 기구들을 인수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우리 하나님의 성전으로 운반하였다.
본문에서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들이 성전을 위하여 드린 예물들을 운반하도록 준비합니다. 아하와 강가에서 예루살렘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따로 세우고 주었으니(24-27)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 예물을 관리하기 위하여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웠습니다. “따로 세우고”는 철저히 분리시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성전에 두게 될 은, 금과 그릇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책임자로 제사장을 세우고, 이를 운반하는 책임자로 레위인을 따로 세웠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성전을 위해 드려진 예물은 바사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그 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들이 드린 예물입니다. 바사 왕 아닥사스다는 포로인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금은보화를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모든 역사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28-30) 여호와께 거룩한 자는 여호와를 위하여 특별히 구별된 자라는 말입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예물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않도록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금식하며 간구했을 뿐 아니라 거룩한 예물을 세속적인 사람의 손에 두지 않고 특별히 구별된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모든 예물은 하나님께 드려질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 외에 다른 용도로 쓰여서는 결코 안 됩니다. 에스라는 여호와께 즐거이 드려진 예물의 귀중함을 알고 책임감 있게 잘 관리하도록 여호와께 거룩한 자에게 정확히 분담하여 운반하도록 준비시켰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금과 은 그리고 성전의 기물들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책임을 기꺼이 수락합니다.
적용: 당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과 물질을 즐거이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맡은 자라면 그것이 성별된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바르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산상수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합니다.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의 뜻은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보물은 누구나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보물을 내놓기 위해서는 당연히 마음이 동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을 영어 성경에서는 ‘마음이 동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자원하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헌금은 우리의 마음이 동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드리는 우리의 보물인 것입니다. - [출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필수 조건|작성자 ruthisrael
< 설 교 >
에스라 8:24-36 강해
1. 에스라는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 형제 10인에게 성전에 바쳐진 예물을 다루는 일을 맡겼고, 그들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거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바친 은, 금, 기명들을 무게를 달아서 건네주었습니다.
에스라가 그들에게 무게를 달아서 준 것은 은 650달란트, 은 기명 200달란트, 금 100달란트, 금잔 20개, 놋그릇 2개였습니다. 에스라는 그들에게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기명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의 두목들과 레위 사람의 두목들과 이스라엘 족장 앞에서 이 기명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주의하여 잘 지키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 에스라는 적합한 자에게 일을 맡겼는데 이것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또 에스라는 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기까지 은, 금, 기명들을 주의하여 잘 지키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을 잘 지키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스8:24-30, 딤후2:2, 딤전6:14)
(매튜 핸리 주석)
우리는 여기에서 에스라가 그에게 맡겨진 귀중품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귀중품은 하나님의 지성소에 속한 것이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그 귀중품의 보호를 하나님께 의뢰한 후, 그는 그것을 어떤 특정한 자들에게 맡겨 지키게 했는데, 그들의 직책은 그것을 감시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 없이 그들이 그것을 지킨다는 것은 헛된 일이었다. 우리의 기도는 항상 우리의 노력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교회와 예배에 대한 배려를 그리스도에게만 맡기지 말고, 또한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해야" 한다(딤후 2:2).
2.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품들을 보존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 후 그는 손수 하나님의 전에 속한 것과 하나님께 바치는 봉헌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당신의 섭리로 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지켜 주시기를 기대하는가?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께 속한 것을 우리가 지키도록 하자. 하나님의 영예와 이익이 우리의 관심이 되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과 즐거움이 그의 것이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그가 하나님의 전의 봉헌물을 전달해 준 사람들. 그는 12명의 두목 제사장들과 또 그만한 수의 레위 사람들을 지정하여 이것을 맡도록 시켰다(24, 30절). 그들은 직책상, 하나님의 물건들을 돌보아야 했으며, 특별한 의미에서 이 거룩한 헌물의 혜택을 입은 자들이었다. 에스라는 왜 그가 이것들을 그들의 손에 두는지를 알려 주었다(28절).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기명들도 거룩하다." 그러니 거룩한 물건을 돌보기에 합당한 자가 거룩한 자들 외에 누가 또 있겠는가? 제사장의 권위와 영예를 지닌 자들은, 제사장직의 책임과 의무도 함께 지녀야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일꾼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것을 예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엄숙한 충고를 하고 있다(사 52:11).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를 정결케 할지어다."
(2) 그는 이 위탁물을 그들의 손에 줄 때 매우 정확성을 기했다. 그는 "은과 금과 기명들을 달아서 주었다" (25절). 왜냐하면 그는 그들로부터 다시 그 중량대로 거두어 들이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위탁물에 있어서, 특히 거룩한 것에 있어서는 정확해야 하며, 양방이 올바른 협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스룹바벨 시대에는 기명들을 수효대로 나누어 주었는데, 여기에서는 무게대로 나누어 주게 되었다. 이렇게 함은, 만일 빠진 것이 있을 때는 곧 살펴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다음 사실을 암시해 준다고 볼 수 있다(하나님의 오의를 맡은 모든 자들처럼). 성물을 맡은 자들은, 그 위탁물을 맡거나 다시 내어 줄 때에, 주고 받는 사실을 간단 명료히 알고 있어서 그 일에 성실을 기해서 나중에는 기쁨으로 책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3) 그는 이 헌물을 주면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29절). "그것들을 삼가 지키라. 그리하여 그것들을 잊어버리거나 횡령하거나 또는 다른 것과 섞이지 않게 하라. 그것들은 별도로 보관하라. 즉 그것들끼리 한데 놓아라. 그리하여 성전에 있는 두목들이 성전에다 그것을 달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하라" 는 것이다. 이것은 그 물건들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성실하게 보관해야 하는 것임과 그렇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영예로운 가를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의 보물을 맡길 때,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까지" 보관하라고 명하고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그것을 흠없이 보전하면 그의 충성으로 면류관을 받게 되리라고 말했다.
(호크마 주석)
따로 세우고(아브딜라) - 이것은 '나누다' 혹은 '구별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달'의 사역형으로서, 본질적 차이가 있으나 합해져있는 둘을 완전히 가르는 것을 가리킨다(창 1:14 ; 레 10:10 ; 신 10:8 ; 대상 25:1). 특히 이 단어는 제의적(祭儀的)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에스라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함께 구별시킨 이유는 제사장들은 거룩한 물건들을 취급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 한편 레위인들은 그것들을 운반하는 등의 부수적 업무를 담당해야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 함께 구별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Brockington, Myers). 적어도 에스라는 율법 학자였기 때문에, 이런 규정들을 익히 알고 있었고 또한 그대로 시행하고 있었다(7:10).
(박윤선 주석)
에스라가 사람들이 즐거이 드린 예물들을 12인의 두목에게 신중히 맡겨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하였다. 성경의 교훈은 언제나 공금(公金) 취급에 있어서 실수없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함께 보관하며 또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기명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삼가 지키라(28-29) - 에스라의 이 교훈은 사도 바울의 연보 취급과 일치한다. 고후 8:20-21에 말하기를,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즐거이 드린 예물"이란 말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원리를 가르친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자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것이다(고후 9:7).
2. 에스라와 유다 백성들이 정월[첫째달] 십이 일에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여 아하와 강을 출발하였습니다.
여행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여 주셨고, 그들을 원수와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오월 초하루[스7:9참조, 여행기간 4개월]에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성전 재산 수납자],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 레위 사람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는 에스라 일행이 가져온 모든 예물을 수납하면서 그 숫자와 무게를 목록에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천국을 향하여 여행하는 순례자들이 직면하는 위험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그 위험들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시고 천국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스8:31-34, 시84:7, 사35:8-9, 빌1:6)
(매튜 핸리)
에스라는 이제 도합 넉달 가량의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러나 무리들 때문에 행군 속도를 늦추었고, 그의 활동 범위를 좁게 하였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읽을 수 있다.
Ⅰ. 그의 하나님은 선하셨으며, 그는 그의 선하심을 시인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일을 활발히 하도록 만드셨다 라고 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1.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오는 도중 살해당함이 없이 생명을 부지했다. 왜냐하면 "길에 매복하여" 그들을 해하려는 적들이나 또는 적어도 아말렉처럼 "그들의 뒤에 선 자를 죽이려는" 자들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일행들을 보호하셨기 때문에 살았다(31절). 여행에서 오는 일반적인 위험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기도로써 우리의 출타를 거룩케 하고 찬양과 감사로 무사 귀가를 거룩케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위험한 원정을 할 때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2. 그들은 안전히 여행을 끝냈다(32절). 꾸준히 새 예루살렘을 향하는 자들은 "시온에 있는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까지" 그 목표를 잃지 말고 나아가도록 하자. 그러면 "선한 사업을 시작하신" 분이 "그것을 완성하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될 것이다.
Ⅱ. 에스라의 귀중품을 맡은 자들은 성실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당도하자, 즉시 보관물을 내놓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귀중품을 성전 두목들에게 바쳤고, 두목들은 그들에게서 그것을 인수하고 영수증을 주었다(33, 34절). 위탁물을 돌려준다는 것은 매우 홀가분한 일이다. 그리고 성실하게 보관했다가 돌려주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을 매우 영예롭게 하는 일이다.
(호크마)
건지신지라(야칠레누) - '구하다' 혹은 '찾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나찰'의 사역형으로서, 악인들의 무리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구출하거나 위기일발의 위급한 재앙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적극적 행위를가리킨다(창 32:11 ; 삼상 12:10 ; 시 25:20 ; 렘 22:3).
3.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수송아지 12마리, 수양 96마리, 어린 양 79마리를 드렸고, 속죄제로 수염소 12마리를 드렸습니다. 또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왕의 관원들과 강 서편 총독들에게 전달해 주었는데, 그것을 본 관원들과 총독들이 유다 백성을 도왔고 또한 하나님의 성전의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여기서 속죄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스8:35-36, 레4:34-35, 고후5:20)
(매튜 핸리)
Ⅲ. 그의 동료들은 믿음이 매우 깊었다. 그들이 제단 가까이에 오게 되자-바벨론에서는 무엇을 행했든지 간에-곧 제물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했다(35절).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을 때 행하지 못했던 일들도, 그 문이 개방되었을 때에는 다시 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은 주목해 볼 만하다.
1. 그들이 드린 제물 가운데에는 속죄제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모든 긍휼을 확고히 하고 깨끗하게 하는 속죄물로써 우리가 "죄악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안락할 수가 없는 것이다.
2. 그들이 바친 제물의 수효는 지파의 수와 관련되어 있었다. 즉 수송아지 12, 수염소가 12, 그리고 수양이 96(즉 12의 8배였다) 였는데, 이것은 예언된 대로 두 나라가 연합한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겔 37:22). 그들은 더 이상 2 지파와 10 지파로 나누어 있지 않았고, 12 지파의 각 대표들이 제단에 모두 모이게 되었다.
Ⅳ. 유대인들의 적들마저도 그들의 친구가 되어, 에스라의 명에 복종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방해하기는커녕 순수하게 왕의 명을 좇아 그들을 도왔다(36절). 왕이 온건한 태도를 취했을 때 그들도 역시 열심으로 그렇게 행했다. "그리하여 교회가 평안해졌다."
(호크마)
번제를 드렸는데 - 이같은 제사는 (1) 하나님께서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해주신 데 대한 감사, (2) 여행 직전에 있었을 수도 있는 서원의 이행(Williamson),(3)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헌신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속죄제 - 포로지에서의 신실하지 못했던 삶을 회개하며, 또 그 죄악들을 사함받기 위해 드려졌을 것이다.
에스라 강해
스 8:21-36 / 짱목사(신성주마음교회)
아하와 강가에서 귀환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출발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하니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우리도 종종 이런 일을 경험합니다.
믿음으로 준비하고, 어떤 일을 결정하지만, 막상 실천하고자 하면,
사실 우리 안에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떨쳐내기가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까?
21절,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에스라는 출발에 앞서 금식을 선포합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스스로 겸비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함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금식의 목적을 잘 보여줍니다.
금식은 우리가 겸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낮추는 것입니다.
겸손하고자 금식합니다.
한 끼만 못 먹어도 얼마나 무력한 게 우리 인간입니까?
그렇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를, 스스로 겸손하고자 금식합니다.
그런가하면 금식은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표현입니다.
내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우리는 금식합니다.
에스라는 그래서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합니다.
이제 아하와 강가에 1,7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정확히 기록된 사람의 숫자는 1,773명입니다.
여기에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합하면, 대략 5,000여명이 됩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 지금 넉 달 이상의 여정을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데,
그 여행의 안전을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그래서 에스라는 이 많은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에스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면 에스라는 왕에게 호위병으로서 보병과 마병을 구하지 않습니다.
아닥사스다왕이 내린 조서를 볼 때, 얼마든지 군대를 함께 보내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군대를 요청하지 않습니까?
에스라는 왕 앞에서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을 베푸신다'라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군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군대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절대로 빈말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앞뒤가 맞아야 합니다.
내가 말한대로, 고백한대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를 외친들, 말만 해 놓고 끝나버리면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단 한마디 말씀도 말로써만 끝나신 것이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대로, 본인도 직접 그대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좋은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언행일치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말한 대로, 입술의 고백대로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게 진짜 신앙이고, 실력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왕 앞에서 믿음의 고백으로 나아갔기에, 군인들의 도움도 구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1절,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그렇게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담대한 믿음을 주셨고 평안을 주셨고 확신을 주셨기에 길을 떠났습니다.
대적이 없었습니까?
아니요 정말 우려대로 대적들이 매복하고 기다렸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대적자들의 손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오늘 이런 기도의 역사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와 백성들이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손이 도우십니다.
그들이 금식하고 기도한 제목이 뭐예요
단순히 우리 자녀들을 지켜주시고 우리 재산 지켜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 전에 하나님을 위한 결단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지금 잘먹고 잘살겠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닙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헌신하고자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함께 1,700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자 이 일에 동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과 위험, 현실적인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단순히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여정이 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의 종착지는 편안하고 잘먹고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출발점은 그럴 수 있죠.
그러나 종착점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대적들의 손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대적들의 손에서 건져주옵소서, 나를 높여 주옵소서, 성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속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실속을 챙기고, 내 성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모르시겠습니까?
과연 진실한 마음의 기도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해서 내 실속을 챙기려고 하는 것이지?
오늘 에스라는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무사히 귀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오늘 말씀에 우리가 또 하나 눈여겨 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24-25절에 보면 에스라는 12명의 제사장에게 각각 은과 금과 그릇을 나누어서 관리하게 합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이렇게 보화들을 나누어 관리합니다.
또 33-34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각각 나눈 보화들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합니다.
오랜 여행가운데 재물이 도난당하거나 잃어버릴 위험성을 방지하고자 재물을 나누어 관리하고, 또 정확하고 꼼꼼하게 확인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기도했고 하나님을 의지했는데,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책임지실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끝나면 내가 모는 것을 책임지는 것처럼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전혀 도와주실지 않을 것처럼, 나 혼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이 끝나면 어떻습니까?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은, 탁월함과 겸손함이 함께 드러나는 것입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안하고 자기 혼자 열심인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기도만 하고, 자기 몫을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도 합니다.
이게 다 믿음 없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에스라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백한대로, 우리가 말한대로 그대로 행동하는 언행일치의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까지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기도가 끝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감당하고 그리고 일을 마치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바라기는 이렇게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는 자
에스라 8:28-36 / 동산교회
살아갈수록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분들도 있고 믿는다고 하면서 그 도우심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자들이 많은 것은 복음과 진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요 갈수록 원망과 탄식이 나오는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갈1:8-
그러나 복음이 믿어져 영이 살아나고 진리로 자라난 자들은 택하심이 더욱 감사하고 구원하심이 너무 감사하고 성령의 역사 안에 살아가게 됨으로 영이 자라나고 자란 만큼 직분을 주셔서 그 직분을 어떻게 감당하게 하시려 항상 하나님이 도우시는 역사를 맛보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에스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10장 전체가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를 나타내주신 양식입니다. 많은 기복 신앙자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잘되고 육신 건강한 것이 복으로 여기는데 그들은 얼마 안 가서 육신에 병, 사고와 재난으로 망가짐으로 그제서야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 줄 알게 되고 세상 복이 참 복이 아닌 줄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복이라 하셨는데 (마5:3) 요한복음은 생명의 빛을 비춰 복음으로 영이 살리심 받고 수가성 여인처럼 생수와 같은 기쁨이 솟아나고 (요4:14) 진리의 양식이 아구까지 채워짐으로 신령한 기쁨이 넘쳐 흘러 가는데 마다 나를 통하여 생명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그 기쁨이야 말로 참된 행복으로 나타내주셨습니다. (요7:38) 예수님도 사도들도 영광 받을 성도들도 항상 그 기쁨으로 살다 가신 분들입니다. 우리도 이 기쁨으로 살다 가게 하시려 주신 성경이요 내 영에 양식인 것입니다. 요2서4, 3서3-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 재료들을 각자가 분배함을 받아 금식까지 하고 4개월의 먼 여정을 떠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역사하사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는가? 오로지 하나님의 손이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물질 욕을 버리고 내 몸을 성전 삼고 영광에 합당한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영광의 하나님이 내 아버지십니다. 히13:6-
28절 내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기명들도 거룩하고 제사장들은 구별된 자들로 세상과 짝하면 안 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과 같은 육신 생각으로 살면 안 됩니다. 오늘도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지 못하여 그 몸이 망가진 자들이 많은 것은 그 몸을 온전히 거룩한 전으로 삼지 못하였기에 멸하신 것입니다. (고전3:17) 기명들은 오로지 하나님께 제사할 때만 사용합니다. 그러니 왕같은 제사장 노릇을 하는 분들은 받은 직분도 거룩하고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생활도 성령께서 주장하시니 거룩한 것입니다. 레21:8-
그 은과 금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자칫 잠깐 맡기신 은과 금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져도 교만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주신 직분과 물질을 가지고 기쁨으로 섬겨나감으로 그 모든 삶이 즐거운 것입니다. 예배당마다 자칫 재정이 많아졌다고 내 재산 늘어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빌립보 교회 지도자 에바브로 디도처럼 무엇하라고 주신 것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빌2:25-
29절 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골방에 이르러 중대한 책임이 주어지게 하신 직분자들입니다. 포로 생활 중 다 빼앗겼던 것들이었는데 이제 다시 돌려주셨으니 금과 은에 탐욕이 가득하여 아간같이 눈이 희둥그레져서 자기 주머니에 얼마를 숨기고 가룟유다처럼 도적하는 자도 많은 것은 내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많은 재물이 생겨도 치심치 말고 (시62:10) 잠시 맡긴 무익한 청지기인 줄 알아야 합니다. 눅17:10-
제사장의 두목들과 레위 사람의 두목들과 이스라엘 족장 앞에서 이 기명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맡긴 은금 기명들을 예루살렘까지 제대로 가져왔는가? 조금도 부족함은 없는가? 가져온 것들을 일일이 저울에 달았던 것입니다. 그와같이 주신 직분들을 제대로 이행했는가? 주일마다 예배하는 마음들을 저울에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잠24:12-
30절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기명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중수대로 받으니라 성전에 기명들을 저울에 달아 받았으니 정확히 자기가 받은 것이 얼마인지 알았습니다. 이제 예루살렘까지 하나도 잃지 않고 온전히 가져가야 합니다. 그 책임을 다하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금식한 것입니다. 금식을 잘못하면 육체가 상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40일을 금식하셨고 초대교회도 행 13:2-3에 선교하러 가는 바울과 바나바로 금식하게 하고 안수를 해서 보냈습니다. 행 14:23에 장로 될 자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주께 부탁하였습니다. 특히 일군을 세우는 중대한 결정은 온교회가 금식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31절 정월 십 이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쌔 그동안 정들었던 곳을 금식한 후 한 해의 시작 달에 떠나 무사히 귀환하게 도우셨습니다. 떠나기 전 삼일 동안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도우심을 간절히 바란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갈쌔 스 7:9에 1400키로 4개월이 걸리는 동안 대적들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육신으로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예배를 할 수 있도록 도우셨기에 예배를 할 수 있는 것이요 직분을 주셨기에 은사를 주셨기에 복을 주셨기에 일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믿고 있고 아무런 힘없고 약한 자들이나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오늘 왜 하나님의 도우심을 나타내어 주십니까? 에스라와 함께한 많은 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생명의 양식을 나누러 가는 것이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러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감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이미 주신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에스라 때에 대적은 성령 시대에 아버지 집을 세워놓고 양식은 나누지 않고 건물이나 크게 짓고 교인 수나 늘려 목회 성공이나 했다고 장사하는 자들이요 교인들이 가진 재산들을 강제로 빼앗는 강도들이요 매복한 자들은 진리로 나아가는 자들을 방해하는 핍박자들인데 예수님과 사도 때에도 도적 떼는 대제사장들이요 바리새인들은 방해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은 교권주의자들로 예배당을 크게 세워 자기 왕국을 세운 자들입니다.
행23:16-
32절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삼일을 유하고 각자에게 맡긴 직분대로 금, 은, 기명들과 예물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도착한 것입니다. 먼 길의 여정을 마치고 맡기신 일을 마치고 삼 일을 쉰 것입니다. 맡기신 직분을 감당하며 나간 자들의 즐거운 휴식인 것입니다.
33절 제 사일에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은과 금과 기명을 달아서 각자가 맡기신 직분대로 가지고 온 것을 말씀의 저울에 달아서 얼마나 직분에 맞게 바로 했는가? 반드시 확인하십니다.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붙이니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과 므레못은 높아짐이라는 뜻이요 겸손함으로 맡기신 일을 감당하면 반드시 더 일하게 하시려 높이십니다.
무슨 마음으로 어떻게 직분을 감당했는가? 달아보십니다. 삼상2:3-
레위 사람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가 함께 있어 레위는 연합이라는 뜻이요 요사밧은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뜻이요 노아댜는 여호와께 함께 모임이라는 뜻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모임마다 귀중한 시간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34절 모든 것을 다 계수하고 달아보고 그 중수를 당장에 책에 기록하였느니라 값나가는 많은 예물을 다 정확하게 가져온 것을 책에 일일이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 많은 예물을 가져오기까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운반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맡기신 책임을 다한 것이니 상 받을 생명책에도 기록된 것을 우리에게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빌4:3-
35절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돌아와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린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도우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 둘이요 또 수양이 아흔 여섯이요 어린 양이 일흔 일곱이요 또 속죄제의 수염소가 열둘이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구약 시대의 레위기의 말씀대로 제사를 하라고 한다면 지금은 그 번거로움에 아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폐해서는 안 됩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에는 번제(택하심과 구원하심의 은혜 감사), 소제(말씀을 양식으로 받고 기도), 화목제(형제 사랑의 교제), 속죄제(회개), 속건제(손해배상) 5가지 제사가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택하여주시고 주 예수로 구원하여주신 그 은혜와 사랑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넘치는 감사의 마음으로 예배를 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외식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헛된 예배가 됩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잡혀감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돌아와서 감사예배를 하게 하시고 잘못한 죄를 속죄하는 속죄제를 드리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1차로 성전을 짓고 유월절을 지킬 때에도 많은 예물을 드렸습니다. 스6:17-
36절 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관원과 강 서편 총독들에게 부치매 저희가 백성과 하나님의 전을 도왔느니라 하나님의 손은 왕뿐 아니라 관원 총독들의 마음까지 움직여 성전을 아름답게 하도록 돕게 하셨습니다. 나를 겸비하게 낮추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면 1.무사히 귀환하게 하시고 2.예물도 안전하게 운반하게 하시고 3.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시고 4.이제 반대자들까지도 나를 돕게 하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생명 살리는 그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일을 이루시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붙이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으로 보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나에게 있습니까? 없다면 왜 없습니까? 사 55:6에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하셨는데 언제입니까? 내 자신이 간절히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겸손히 엎드리는 그때가 만날만한 때입니다. 말씀을 주시는 그때가 깨달아지게 하시는 그때가 만나는 것입니다.
렘 29:13-14에 비록 잘못되어서 포로 생활에 떨어졌으나 하나님을 찾을 때까지 찾아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기도할 때도 간절히 하라는 것입니다.
마 7:7-11에 예수님께서 구하라 하신 것은 한말씀 한말씀을 나에게 영의 양식으로 주시기를 구하고, 찾으라는 것은 양식을 주시는 아버지 집에 나와야 하고,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루디아 같이 겸손히 내 마음 문을 열어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행16:14-
떡은 생명의 떡이고 돌은 율법을 통해서 잘못한 대로 심판을 하는 것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인 우리가 생명의 양식을 구하는데 떡을 주시지 않고 잘못했다고 심판만 하시겠습니까? 생선은 불에 구운 것으로 나같은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이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생명의 떡을 더 구하는데 뱀은 거짓된 자들로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거짓이 있으니 거짓된 자들의 미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하늘의 것을 구하면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지 않으시면 힘들게 살 뿐입니다.
따로 세운 거룩한 일꾼
스 8:24-30 / 원인섭목사
에스라는 귀환의 긴 여정에 앞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또 왕에게 보병과 마병으로 호위를 요청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는 믿음 아래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의 행보가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맡기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에스라는 귀환의 여정 속에 반드시 필요한 조치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중에 예루살렘에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함께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을 붙여 주심이요, 함께 동역하게 하심이요, 서로 의지하게 하신 일입니다. 이런 사람 중에 에스라는 따로 사람을 세우게 됩니다. 제사장의 우두머리 중 세레뱌와 하사뱌를 비롯한 12명의 제사장들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맡은 일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그릇을 달아서 나누어 운반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에스라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대적하는 사람들과 노략하려고 매복하는 도적들이 있었습니다. 이를 든든히 방비해야 했었고, 혹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은과 금과 그릇들을 분산해서 효율적으로 운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에 에스라는 일꾼들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남아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물을 온전히 관리하는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위해 모은 예물이니 거룩한 성물입니다. 이 거룩한 성물을 아무렇게나 나누고 운반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따로 열두 명의 제사장들을 세운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생각해 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은 함께 하는 것이지 혼자서 다 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약 4개월이 걸리는 여정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그 거룩한 성물들을 에스라 혼자 지키고 운반하겠습니까? 분담하고 맡겨야 했지만 또한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거룩한 사람들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가 하루 종일 혼자서 백성을 재판하는 일에 심력을 소모하고 또 기다리는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한 가지 권면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 18장에 나오는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 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모세의 부담은 줄이고, 백성들의 어려움도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동일한 원리로 교회에 많은 직분자들을 세우셨고, 또 서로 분담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직분을 맡은 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생각할 것은 이 일을 분담하면서 에스라는 그 맡은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인 것을 밝힙니다.
28절에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미 드려진 예물들이 거룩한 예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물을 나누어 옮길 사람들도 거룩한 사람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짊어지고 가는 짐의 무게 자체가 거룩한 부담이었습니다.
그 어깨에는 거룩한 예물, 사람들이 즐거이 드린 예물을 다루는 거룩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 거룩한 부담을 기꺼이 지기에 그들 또한 거룩한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은 이렇게 부여된 임무가 29절 끝부분에 나와 있는대로 ‘삼가 지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예루살렘 성전 골방에 이르러 그 그릇을 증인들 앞에서 달기까지 지켜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임은 때가 이를 때까지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마음을 먹어서는 될 일이 아닙니다. 오직 ‘삼가 지키기’ 위해서 온힘을 다하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의 삶속에서 우리는 거룩한 성도로써 부름받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는 거룩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일을 감당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은혜를 따라 온전히 맡겨진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이는 거룩한 부담일 수 있습니다. 힘겹고 어려울 수 있지만 완수해낼 때에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런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부름받은 대로 힘써 일하며 거룩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는 자
에스라 8장 28절 – 36절 2024년 8월 11일 주일 오후 말씀지
살아갈수록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분들도 있고 믿는다고 하면서 그 도우심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자들이 많은 것은 복음과 진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요 갈수록 원망과 탄식이 나오는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갈1:8-
그러나 복음이 믿어져 영이 살아나고 진리로 자라난 자들은 택하심이 더욱 감사하고 구원하심이 너무 감사하고 성령의 역사 안에 살아가게 됨으로 영이 자라나고 자란 만큼 직분을 주셔서 그 직분을 어떻게 감당하게 하시려 항상 하나님이 도우시는 역사를 맛보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에스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10장 전체가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를 나타내주신 양식입니다. 많은 기복 신앙자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잘되고 육신 건강한 것이 복으로 여기는데 그들은 얼마 안 가서 육신에 병, 사고와 재난으로 망가짐으로 그제서야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 줄 알게 되고 세상 복이 참 복이 아닌 줄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복이라 하셨는데 (마5:3) 요한복음은 생명의 빛을 비춰 복음으로 영이 살리심 받고 수가성 여인처럼 생수와 같은 기쁨이 솟아나고 (요4:14) 진리의 양식이 아구까지 채워짐으로 신령한 기쁨이 넘쳐 흘러 가는데 마다 나를 통하여 생명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그 기쁨이야 말로 참된 행복으로 나타내주셨습니다. (요7:38) 예수님도 사도들도 영광 받을 성도들도 항상 그 기쁨으로 살다 가신 분들입니다. 우리도 이 기쁨으로 살다 가게 하시려 주신 성경이요 내 영에 양식인 것입니다. 요2서4, 3서3-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 재료들을 각자가 분배함을 받아 금식까지 하고 4개월의 먼 여정을 떠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역사하사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는가? 오로지 하나님의 손이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물질 욕을 버리고 내 몸을 성전 삼고 영광에 합당한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영광의 하나님이 내 아버지십니다. 히13:6-
28절 내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기명들도 거룩하고 제사장들은 구별된 자들로 세상과 짝하면 안 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과 같은 육신 생각으로 살면 안 됩니다. 오늘도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지 못하여 그 몸이 망가진 자들이 많은 것은 그 몸을 온전히 거룩한 전으로 삼지 못하였기에 멸하신 것입니다. (고전3:17) 기명들은 오로지 하나님께 제사할 때만 사용합니다. 그러니 왕같은 제사장 노릇을 하는 분들은 받은 직분도 거룩하고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생활도 성령께서 주장하시니 거룩한 것입니다. 레21:8-
그 은과 금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자칫 잠깐 맡기신 은과 금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져도 교만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주신 직분과 물질을 가지고 기쁨으로 섬겨나감으로 그 모든 삶이 즐거운 것입니다. 예배당마다 자칫 재정이 많아졌다고 내 재산 늘어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빌립보 교회 지도자 에바브로 디도처럼 무엇하라고 주신 것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빌2:25-
29절 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골방에 이르러 중대한 책임이 주어지게 하신 직분자들입니다. 포로 생활 중 다 빼앗겼던 것들이었는데 이제 다시 돌려주셨으니 금과 은에 탐욕이 가득하여 아간같이 눈이 희둥그레져서 자기 주머니에 얼마를 숨기고 가룟유다처럼 도적하는 자도 많은 것은 내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많은 재물이 생겨도 치심치 말고 (시62:10) 잠시 맡긴 무익한 청지기인 줄 알아야 합니다. 눅17:10-
제사장의 두목들과 레위 사람의 두목들과 이스라엘 족장 앞에서 이 기명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맡긴 은금 기명들을 예루살렘까지 제대로 가져왔는가? 조금도 부족함은 없는가? 가져온 것들을 일일이 저울에 달았던 것입니다. 그와같이 주신 직분들을 제대로 이행했는가? 주일마다 예배하는 마음들을 저울에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잠24:12-
30절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기명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중수대로 받으니라 성전에 기명들을 저울에 달아 받았으니 정확히 자기가 받은 것이 얼마인지 알았습니다. 이제 예루살렘까지 하나도 잃지 않고 온전히 가져가야 합니다. 그 책임을 다하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금식한 것입니다. 금식을 잘못하면 육체가 상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40일을 금식하셨고 초대교회도 행 13:2-3에 선교하러 가는 바울과 바나바로 금식하게 하고 안수를 해서 보냈습니다. 행 14:23에 장로 될 자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주께 부탁하였습니다. 특히 일군을 세우는 중대한 결정은 온교회가 금식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31절 정월 십 이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쌔 그동안 정들었던 곳을 금식한 후 한 해의 시작 달에 떠나 무사히 귀환하게 도우셨습니다. 떠나기 전 삼일 동안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도우심을 간절히 바란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갈쌔 스 7:9에 1400키로 4개월이 걸리는 동안 대적들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육신으로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예배를 할 수 있도록 도우셨기에 예배를 할 수 있는 것이요 직분을 주셨기에 은사를 주셨기에 복을 주셨기에 일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믿고 있고 아무런 힘없고 약한 자들이나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오늘 왜 하나님의 도우심을 나타내어 주십니까? 에스라와 함께한 많은 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생명의 양식을 나누러 가는 것이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러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감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이미 주신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에스라 때에 대적은 성령 시대에 아버지 집을 세워놓고 양식은 나누지 않고 건물이나 크게 짓고 교인 수나 늘려 목회 성공이나 했다고 장사하는 자들이요 교인들이 가진 재산들을 강제로 빼앗는 강도들이요 매복한 자들은 진리로 나아가는 자들을 방해하는 핍박자들인데 예수님과 사도 때에도 도적 떼는 대제사장들이요 바리새인들은 방해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은 교권주의자들로 예배당을 크게 세워 자기 왕국을 세운 자들입니다.
행23:16-
32절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삼일을 유하고 각자에게 맡긴 직분대로 금, 은, 기명들과 예물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도착한 것입니다. 먼 길의 여정을 마치고 맡기신 일을 마치고 삼 일을 쉰 것입니다. 맡기신 직분을 감당하며 나간 자들의 즐거운 휴식인 것입니다.
33절 제 사일에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은과 금과 기명을 달아서 각자가 맡기신 직분대로 가지고 온 것을 말씀의 저울에 달아서 얼마나 직분에 맞게 바로 했는가? 반드시 확인하십니다.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붙이니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과 므레못은 높아짐이라는 뜻이요 겸손함으로 맡기신 일을 감당하면 반드시 더 일하게 하시려 높이십니다.
무슨 마음으로 어떻게 직분을 감당했는가? 달아보십니다. 삼상2:3-
레위 사람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가 함께 있어 레위는 연합이라는 뜻이요 요사밧은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뜻이요 노아댜는 여호와께 함께 모임이라는 뜻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모임마다 귀중한 시간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34절 모든 것을 다 계수하고 달아보고 그 중수를 당장에 책에 기록하였느니라 값나가는 많은 예물을 다 정확하게 가져온 것을 책에 일일이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 많은 예물을 가져오기까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운반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맡기신 책임을 다한 것이니 상 받을 생명책에도 기록된 것을 우리에게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빌4:3-
35절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돌아와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린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도우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 둘이요 또 수양이 아흔 여섯이요 어린 양이 일흔 일곱이요 또 속죄제의 수염소가 열둘이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구약 시대의 레위기의 말씀대로 제사를 하라고 한다면 지금은 그 번거로움에 아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폐해서는 안 됩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에는 번제(택하심과 구원하심의 은혜 감사), 소제(말씀을 양식으로 받고 기도), 화목제(형제 사랑의 교제), 속죄제(회개), 속건제(손해배상) 5가지 제사가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택하여주시고 주 예수로 구원하여주신 그 은혜와 사랑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넘치는 감사의 마음으로 예배를 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외식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헛된 예배가 됩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잡혀감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돌아와서 감사예배를 하게 하시고 잘못한 죄를 속죄하는 속죄제를 드리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1차로 성전을 짓고 유월절을 지킬 때에도 많은 예물을 드렸습니다. 스6:17-
36절 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관원과 강 서편 총독들에게 부치매 저희가 백성과 하나님의 전을 도왔느니라 하나님의 손은 왕뿐 아니라 관원 총독들의 마음까지 움직여 성전을 아름답게 하도록 돕게 하셨습니다. 나를 겸비하게 낮추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면 1.무사히 귀환하게 하시고 2.예물도 안전하게 운반하게 하시고 3.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시고 4.이제 반대자들까지도 나를 돕게 하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생명 살리는 그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일을 이루시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붙이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으로 보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나에게 있습니까? 없다면 왜 없습니까? 사 55:6에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하셨는데 언제입니까? 내 자신이 간절히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겸손히 엎드리는 그때가 만날만한 때입니다. 말씀을 주시는 그때가 깨달아지게 하시는 그때가 만나는 것입니다.
렘 29:13-14에 비록 잘못되어서 포로 생활에 떨어졌으나 하나님을 찾을 때까지 찾아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기도할 때도 간절히 하라는 것입니다.
마 7:7-11에 예수님께서 구하라 하신 것은 한말씀 한말씀을 나에게 영의 양식으로 주시기를 구하고, 찾으라는 것은 양식을 주시는 아버지 집에 나와야 하고,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루디아 같이 겸손히 내 마음 문을 열어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행16:14-
떡은 생명의 떡이고 돌은 율법을 통해서 잘못한 대로 심판을 하는 것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인 우리가 생명의 양식을 구하는데 떡을 주시지 않고 잘못했다고 심판만 하시겠습니까? 생선은 불에 구운 것으로 나같은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이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생명의 떡을 더 구하는데 뱀은 거짓된 자들로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거짓이 있으니 거짓된 자들의 미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하늘의 것을 구하면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지 않으시면 힘들게 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