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재미로 사십니까.
김경숙
이른 저녁 혼자서 노래방엘 갔다. 평생교육원 수필 반 쫑파티를 하는데 노래를
한곡씩 준비해 오라고 해서 연습 겸 간 것이다.
어쩌다 노래 부를 일이 있을 때면 나는 내 성격과는 달리 뒤꽁무니를 빼기 일
쑤였다. 아는 노래가 거의 없을뿐더러 혹 안다 해도 박자가 맞지 않았다. 맥주 한
캔을 마셔가며 누가 보지도 듣지도 않을 테니 목청껏 불러 보자며 마이크를 잡았
다. 화면에 나오는 노래 가사 자막을 보며 나름대로 몰입해서 노래를 부르는데 화
면에 엄마의 모습이 스친다.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흥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때 본 엄마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었다. 시골에서 모내기를 할
때면 어른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유독 엄마의 목소리만이 컸다. 다른 사람들
은 멀쩡한데 엄마의 몸에만 논흙이 머리에까지 묻어 있었다. 그런 엄마가 싫었다.
나는 커서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그때 다짐 했었다.
들판에서 부르는 엄마의 노래 소리가 집에까지 들리는 날이면 우리 형제들은
숨죽이며 어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땅거미 지는 어둠과 함께 엄마가
사립문을 밀고 들어왔다. 엄마의 모습을 본 우리 형제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
고 엄마의 눈치를 봤다. 우리들의 예상대로 엄마의 욕설과 맵디매운 손맛은 우리
형제들의 외마디 비명으로 이어졌다.
가난하고 황폐해진 부모로부터 쫓기다시피 도회지로 갔다. 큰 딸은 돈을 벌어서
동생들을 건사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불빛 찬란한 도시는 절대로 나는 들어
갈수 없는 다른 세상으로 보였다. 시도 때도 없이 수치심과 서러움 외로움이 뒤
섞여 울음이 목까지 차올랐다. 턱을 괴고 쪼그리고 앉아 해질녘의 도시를 내려다
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쓸쓸하고 공허해 보였다.- 1
스물다섯 무렵 처음으로 ‘나이트클럽'에 갔다. 그동안 혼자 힘으로 공부를 하느
라 시간도 없었고 갈 기회도 없었던 나이트클럽 이였다.
나이트클럽의 분위기는 원초적 본능을 꿈틀거리게 했다. 용광로 같은 가슴속의
불길을 이곳에다 발산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발로 온 세상을 헤맨
듯한 처절한 궁핍과 불안과 절망의 날들을 노래와 춤으로 달래보면, 사는 게 좀
수월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락’하지 않겠다던 매서운 결의
는 온데간데없고 이 분위기에 충실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런 생각은 잠시였다. 머리 푼 귀신처럼 낮선 거리를 헤매는 나 자신이 보였다. 요
염한 모습으로 홍등가를 배회하는 내가 보였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내 몸에서
비릿한 밤꽃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생각을 곧추 세워야 했다. 온몸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던 엄마처럼 될까봐 가슴이 서늘했다. 무엇보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덤비는 자신이 무서웠다. 성인이면 누구든 갈수 있는 곳이 나이
트클럽일지는 몰라도 나는 가면 안 되는 곳 이였다. 엄마를 닮을까봐 아니, 나
자신이 무서워 그 후로 지금껏 가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노래하고 춤추는 자리에
서는 손뼉으로도 장단을 맞추지 못하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오빠는 내게 너
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말하곤 한다.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고 술도
못 마시니 이해 할 수가 없단다.
삼십분 노래 연습을 했으니 최소한 분위기를 깨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서 파티장문을 밀고 들어갔다. 맛있는 음식이 식탁 가득 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다. 사회자의 적절한 유머와 세련된 진행으로 한껏 흥이 났다. 초로의 스승은
얼굴가득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치고, 오십이 넘은 제자는 노래와 춤을 추
었다. 보기에 좋았다. 아름다운 모습 이였다. 내 차례가 되어 노래를 부르려고 하
니 마흔일곱의 나는 사회 초년생처럼 떨리고 부끄러웠다. 술을 마셔서인지 노래가
제법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혹시 내가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
느 부분 엄마를 닮았을 테니 부르다 보면 잘 할지도 모를 일이였다.
아직은 마음이 시키지 않지만, 마음 한 자락 접고 노래 연습을 해 볼거나. 그래서
엄마가 젊었을때 열정적으로 부르던 노래를 엄마에게 멋들어지게 불러 드려 볼거나.
2006/23집
첫댓글 엄마가 젊었을때 열정적으로 부르던 노래를 엄마에게 멋들어지게 불러 드려 볼거나.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혹시 내가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
느 부분 엄마를 닮았을 테니 부르다 보면 잘 할지도 모를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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