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국회에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단법인 기본사회가 주최한 '출생기본소득 토론회'에 토론자로 다녀왔습니다. 한달여 전에 더불어민주당이 출생기본소득 3법을 발의했다는 소식을 언뜻 접했는데요. 그땐 그저 아동수당을 확대하는 정책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토론회에 참석하며 자세히 보니, 한때 학계에서 상당히 논의가 이뤄진 '기본자산제'를 포괄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아동수당법은 현재 8세까지 지급되는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18세까지로 범위를 넓히고, 금액을 월 20만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요. 아동복지법과 조세특례제한법은 0세~18세에게 월 10만원의 금액을 적립해 18세가 될 때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자는 아동수당의 확대이고, 후자는 기본자산제 도입이죠.
*출생기본소득 3법 발의안과 검토보고서 원문 아동복지법 개정안(강선우 대표발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임광현 대표발의) 아동복지법 개정안(임광현 대표발의) 아동수당법 개정안(전진숙 대표발의)
기본소득도 낯선 제도인데, 기본자산제는 또 무엇일까요. 기본자산제는 기초자산제, 사회적 지분급여 등으로도 불리는데요. 쉽게 말하면 '기본소득보단 목돈의 금액을 모든 시민에게 일정 시점에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기본소득 최초의 주창자로 알려진 토마스 페인이 그의 저서에서 매년 지급하는 수당과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일회성 목돈을 함께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다시 말해 페인은 기본자산제의 주창자이기도 한 셈이죠.
오늘 레터의 주제가 기본자산제가 아니므로 관련 자료만 추천하며 갈음합니다. 우선 기본자산제에 대한 아마도 최초의 뜨거운 논쟁이었던 '2003년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에서의 토론을 소개합니다. 2019년 타계한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가 동료 사회과학자들과 2001년에 시작한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근본적 사회변화를 위해 필요한 대안들을 연구하는 장기 프로젝트였고, 이 프로젝트에서 매년 컨퍼런스를 열었는데요.(우리에게도 이런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2003년 컨퍼런스의 주제가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제였습니다. 이때 양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판 파레이스와 브루스 애커먼, 앤 올스톳 등이 총출동하는데요. 고맙게도 이 논의를 모아 발간한 책의 번역본 『분배의 재구성』이 2010년 국내에 출간됐습니다. 너른복지연구모임이란 단체가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하며 번역을 해준 덕분이죠. 저는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여러 문헌들을 대부분 봤지만, 2003년의 발제문이 담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양 제도에 대해 가장 정리가 잘 된 편에 속하기 때문이죠. 그 외에도 기본자산제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을 다음과 같이 추천합니다. 문득 에릭 올린 라이트의 저서들도 소개하고 싶어지는데요. 그건 다음에 할게요.
[단행본] 분배의 재구성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기본소득과 기본자산/서정희 금민 [참여연대 복지동향] 기본자산, 정말로 그게 최선입니까/김공회
다시 국회에서 열린 출생기본소득 토론회로 돌아가면요. 저는 토론자로서 아동수당의 확대와 기본자산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출생기본소득'이 왜 도입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돈'의 관점으로 설명했습니다.
일단 이번 출생기본소득은 상당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정책입니다. 일단 아동수당의 범위와 지급액을 늘리면 연령 범위도 두 배 이상이고, 지급 금액도 세 배를 지급하는 것이니 지금보단 훨씬 많은 돈을 써야합니다. 아동수당에 매년 2조원대의 예산이 편성되는데요. 18세까지 월 2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선 내년부터 당장 15.5조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18세에 일시금을 주기 위해 0~18세에게 월 10만원의 적립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도 연 7조원 이상의 돈이 들어갑니다. 다 합치면 한 해에 20조원 정도를 더 써야하는 셈이죠.
이 금액만큼 더 써야하는지에 대해선 앞으로 더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히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건 바로, 한국이 저출생에 돈을 적게 쓰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아마 이 사실이 세간의 인식과는 좀 다를 듯 한데요. 저희 연구소에 예산이 조금 확보되면 여론조사를 한번 해보고도 싶습니다. 질문은 바로 '귀하는 한국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재정을 많이 쓴다고 생각하십니까', '귀하는 한국 정부가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저출산 문제에 재정을 많이 쓴다고 생각하십니까' 등입니다.
제가 추정하기론 이런 질문들에 '아니오'라는 답변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언론 보도의 제목이 '저출생에 수십조 퍼부었는데도 효과 없어' 등이었기 때문이죠. '저출산 예산' 자체가 실은 부처별 정부 예산을 재분류한 '허구적 개념'이고, 국제 비교가 가능한 OECD의 사회복지지출(SOCX)의 하위 항목인 가족관련지출(family benefits)을 보면 한국은 GDP 대비 2020년 1.5%, 2019년엔 1.4%를 쓰고 있습니다. OECD 평균은 2019년 기준으로 2.1%이고,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는 3%가 넘죠. OECD가 분류하는 가족관련지출(Family benefits)엔 아동수당, 양육수당,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육비 바우처, 기타 보육과 아동보호서비스 등이 들어가죠.
OECD Family benefits database
다시 말해 한국은 OECD 그 어떤 국가도 이르지 못한 사상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했지만, 이 문제에 대응하는 지출이 OECD 평균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죠. 더 큰 문제는 마치 상당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세월호 참사' 초기에 '사상 최대의 구조 작업 진행'이란 오보가 나온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제대로 대응을 안 하고 있다는 인식이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마치 중병을 앓으면서도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는 상황이죠.
사실 저는 저출생과 돈을 연결시키는 시각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치 돈을 주니 아이를 낳아라는 느낌이 들어서죠. 그렇지만 정부가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이것만큼은 잘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저출생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돈만 더 써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OECD 평균 이상의 가족관련 지출을 해야합니다. GDP 대비 1%p를 높이면 한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상위권의 지출을 하게 되는데요. 한국의 GDP가 2000조원 남짓이니, 1%가 20조원 정도 됩니다. 마침 출산기본소득의 소요 재원과 비슷하네요.
저는 해외 아동수당의 연령 범위, 지급 수준, 국내 제도인 기초연금과의 비교 등을 통해 아동수당 확대의 필요성을 설명했는데요. 구체적인 자료는 토론회 자료집을 보시면 됩니다. 제 토론문을 포함한 다른 분들의 발제문, 토론문 등을 같이 공유합니다. 그럼 저는 다다음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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