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초에 입안된 대영제국을 완전히 파멸시킨다고 작정하고 입안된 작전 War Plan Red는 1930년대가 다가오자 점점 현실화에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1929년에 미국의 주식들을 모조리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린 대공황이 들이닥친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경기는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한번더 꼬여 더 수렁에 빠지기시작하고 국민들의 불안과 소요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대공황 당시 실업자들
당연지사 국가들끼리의 호전도도 올라가기 시작하고 동시에 당시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타 극단의 이데올로기들이 대세를 타게됩니다. 실제로 민주주의나 이런 평화론적이고 애매한 이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시 세계는 사실상 유럽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이 유럽에서 유럽의 헌병역할을 자처하던 러시아는 공산주의의 이념에 물들어버렸고 독일및 이탈리아등 유럽 프랑스와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싸우던 유럽의 중요 강대국들에선 파시즘이 점점 대세를 타기시작했으니까 말입니다.

당시 이념의 양극화와 민주주의 존립의 위기.
거기다 여기에 기름을 얹은것은 대공황이 닥치기 2년전 제네바협정에서의 군비경쟁을 제한하기위한 군축조약이였습니다. 여기서 영국은 경전열함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전함들은 중전함들에겐 의미가 없을정도로 매우 약하였기에 중전함 생산을 중단하는 협정을 맺자고 합니다. 미국 또한 경전함및 중전함을 더욱 생산해야하는판에 이런 협정은 영국에게만 독단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였지요.
게다가 영국은 각국가들에게 70개의 함대와 60만군대로 병력에 제한을 두자고 제안하는데 이것 때문에 미국의 대표는 협정을 박차고 나가게됩니다. 그뿐아니라 당시 영국의 필요에의한 독트린이란 정책은 "국가방어에 필요한만큼만 해군을 생산하자" 였는데 미국은 "다른 국가에 비례한 해군만큼을 생산해야한다는" 정책을 밀고나갔고 일본또한 기타 열강들의 해군을 따라잡아야하는 입장이라서 일본도 동의하지않음으로써 제네바 협정은 해산되다시피합니다.

1927년 제네바 협정
이런 상황이오자 미국에선 영국이 이틈을 타 다시금 한번 국제패권을 되찾을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동시에 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War Plan Red 를 가동시켜 대영제국의 잠재적인 위협성을 완전히 뿌리뽑아버리면서 군수물자의 생산과 함께 경제를 활성화시켜야한다고 미 의회 뿐아니라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조차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영국 조지는거 동의 예산내줌.

ㅇㅋ 고마움. 영국놈들 너무 짱자리 오래해처먹었음.
War Red Plan의 목적은 영국의 전쟁계획의 목적인 단순한 White Peace 의 평화협상이나 영국을 건들지말라는 정도의 유리한 포지션을 점한다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무려 캐나다및 북대서양, 영연방에서의 모든 영국 육군 세력 말살 및 해군 괴멸 그리고 영본토, 캐나다를 점령및 합병해서 미국의 주로 편입한후 대영제국을 완전히 해산및 멸망 시키는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평화조약에서 점령한땅은 돌려주지 않는다고 계획에 명시해놓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로써 영국의 대공황 당시 식민지들과의 보호무역을하던 무역로들을 모조리 다 끊어버리고 비슷한 문화권이던 영국및 캐나다를 미국의 주로 편입하여 대미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원래 아내는 결혼하면 남편성 따르는거임 ㅇㅇㅋ.

크고 알흠다운 신대륙에서 시작하여 겨우 100년만에 상국을 역병탄하려드는 대 아메리카나의 위엄.
기서 약간 의문이 드는점은 왜 영국의 아프리카식민지나 인도연방들은 공격하지 않는가? 인데 이들은 다른문화, 다른 인종 등으로 영국과 이질감과 마찰이 심했고 영국의 억제력이 없으면 사실상 협조할리가 만무했고
독립운동을 겨우겨우 영국입장에서 민족주의의 광풍이 불고있음에도 자립을 막고있던입장이였기때문입니다. 그러니 본국만 무너뜨리면 그들은 알아서 통제에서 풀려나 캐나다나 여타 호주와같은 영연방과 다르게 협조하지않고 독립할께 뻔했으니까요.

인도놈들 꺼져.racist 
하나의 미국 단결된 미국.
그뿐아니라 당시 극심했던 인종주의를 생각해보아야할필요가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문화-인종이 흡사한 캐나다와 영국을 편입하고 싶었으며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전에 설명했듯이 식민지는 미국입장에서 오히려 손해였지요.
미국은 여기서 설명한바대로 '하나의 미국'으로 재탄생시킬려했기때문입니다. 경제적인이유와 유색인종과 이질적인문화등으로 인한 차별문제, 민족주의 자립문제등을 해결하기 싫은점등 여러가지가 있었지요.


해군성 육군성: 맥아더성님 피쉬앤칩스 간나새끼들 이참에 아예 밀어버리죠.

아 앵글로색슨놈들 스코티쉬의 매운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 계획을 동의한자들은 미의회,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 군부 최고의 직위에있었던 '맥아더' 입니다. 모두들 이 계획을 실시하는데 찬성하였습니다.
즉 이 계획은 의회-대통령(행정부)-군부 모두 의견이 일치한 언제든 시기만 오면 바로 가동될수있는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가정' 용 유사시 '대비용 계획' 이라기보다는 침략용 전쟁 계획이라고 보는게 더 옳습니다.

1차세계대전의 항공전 영웅 Charles Lindbergh
이 계획이 가동되기 위해서-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지도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기 위해- 미국은 준비작업부터 철저히 다지기 시작합니다. 1931년 미국의 1차세계대전 항공전 영웅이면서 나치즘 동조자였던 Charles Lindbergh가 캐나다 동부-중부에 걸친 허드슨베이로 가서 취약점및 얼마나 방어시설이나 군사들이 강력한지등에 대한 탐색을 펼치고옵니다.

영국에 박살나는 독일.
그리고 이건 전초전에 지나지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1차세계대전때 영국이 초강대국의 지위에 도전하는 독일을 한번 분쇄한것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였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대영제국을 아예 지도상에서 없애버리는수준의 대규모 공격을 먼저 감행해야한다고 믿고있었습니다.

미국 나치당의 뉴욕에서의 길거리 시위.
거기에 더하여 당시 영국이 독일과의 악감정으로인해 반나치 감정이었던데에 비해 1930년대 초 뉴욕에선 대규모 나치 동조자 시위가 종종 벌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이념적으로도 크게 비틀어지기 시작하고있었던겁니다.
그리하여 1935년에 미국 역사상 최대의 군사징병과 탄약생산이 이루어집니다. 수십만에 달하는 대육군은 Fort Drum 이란 캐나다와의 국경에서 겨우 30분내지 35분 거리인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군사 기지로 집결합니다.

포트 드럼. 캐나다의 국경과 바로 맞붙어있다.
이 거대한 군사기지가 이런 위치에 점해져있었다는것은 미국이 대영제국을 칠준비를 하고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이것을 당시 미국내 고위장성및 의회에서 평하기를 '아포칼립스적(종말론적)' 전쟁이 될수도있다고 평하기까지합니다. 이 기지가 지어지기 시작한 이유와 시점은 1차세계대전 직후입니다. 1918년에 미국 해군성에는 이런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 영국은 역사적으로 해상의 지배권을 두고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과 경쟁하였고 그 네국가는 모두 영국에게 패배를 맛보았다. 현재 미국은 독보적으로 강력하진 않지만 5번째로 영국과 경쟁하게 될 위치에 놓여져있다. 지금 영국의 견제는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역사적인 선례를 보았을때 우리 또한 먼저 영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
허나 이런 보고서에서 나타나는 미해군의 영국해군에 대한 우려감을 제쳐놓고 엉뚱하게 이 전쟁 계획 입안을 제기한것은 미 육군 측이었습니다. 당시의 미육군은 일본또한 잠재적국으로 여겼으며 이 두국가에 대항하는 계획을 동시에 진행토록합니다.
그리고 이 계획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1930년에 육해군합동본부가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시스템적인 계획은 프러시아의 슐리폔 계획과 같은것에서 가져온것이였습니다.
즉 실행하는 즉시 기계가 짜맞춰돌아가듯 진행이 되야 했습니다. 물론 프러시아의 그것과 다른점은 기본적으로 군부가아니라 행정부 측에서 검토하고 전략을 개정할수있는 여지가 있었다는것입니다.

야 미국이 우리 침략하면 우리 완전 좆망이다.

그니까 게르만분파인 잉글랜드는 우리 나치독일과 동맹맺고 미국을 공격한다.
이 전쟁은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 조차도 "미국과의 전쟁이 불가능한것은 아니며 상시 대비를 해야할것이다" 라고 말 하였으며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조차도 영국과 미국의 전쟁이 일어날것이라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히틀러는 영국이 미국을 이기길 바랬는데 그 이유는 영국이 독일과 같이 연합하여 미국을 공격할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독일에게 최선의 선택이 될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역시 아돌프 히틀러는 미친놈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여타 열강들의 수뇌부들의 생각은 정확했습니다. 미국의 수뇌부및 여론이 영국에게 느꼈던 바는 영국은 최강국의 지위를 빼았기지 않으려고 계속 전쟁을 일으킬려고 한다고 느꼈고 그리하여 미국은 영국이 바다에 발을 담그는것을 더이상 용납할수 없다고 까지 생각이 미치게됩니다.

당시 War Plan Red 계획도.
블루가 미국 Crimson(진홍)이 캐나다 Red는 그레이트 브리튼 본토. 핑크는 미국의 작전계획에 의미없는 아프리카쪽의 식민지들 (별 전쟁에 의미없다고 생각. 알아서 영국에서 자립하리라 생각함)
호주는 다홍색 뉴질랜드는 석류색, 인도는 루비색으로써 뉴질랜드와 호주는 영국이 무너지고나면 알아서 미국의 위성국화됨으로써 미국의 영향권내에 들어오리라 예측했습니다. 인도의 경우는 간디등의 독립세력이 알아서 자립하게끔 간섭하지 않도록하였습니다.
이로써 미 해군정과 미 육군정에 의해 동의되고 마지막으로 맥아더에 의해 동의받은 이 초대규모 작전은 Crimson(캐나다)와 Red(영국본토)를 접수하는 형태로 계획되어있었습니다. 그이후에는 태평양의 사실상 미국에 전혀 군사적 위협을 가할수없는 세력(호주 뉴질랜드등 영국잔여세력)들을 굴복시켜서
미국의 문화적 경제적 영향권에 편입시킴으로써 미국의 충실한 충복으로 만드는것이 이 계획의 마지막이라고 보시면됩니다. 호주는 편입안하는가? 하면 어차피 호주는 점령하여 주로 삼기에는 너무나 거리도 멀고 기본적으로 당시 미국은 태평양까지 군대를 배치하여 본국처럼 관리하긴 무리가있었기도했고 먹을 전략적 경제적가치도없었습니다. 그리고 영-미-캐나다권과는 약간의 문화 차이도 어느정도 있었지요.
기본적으로 이들은 캐나다 접수는 적어도 1-2일 내에 끝내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인구는 1억2천-1억4천가량에 육박하고 캐나다인구는 1000만대였기때문에 1/13이란 극악의 인구적 열세뿐아니라
캐나다의 기후특성상 90퍼센트의 인구가 미국국경과 50-60km 거리에 살고있어서 주요거점들을 점령당하는순간 캐나다는 저항할 인구조차도 마땅히 없었습니다. 그것은 워싱턴 포스트가 공개한 한 장교의말에서 잘드러납니다 " 캐나다놈들의 90퍼센트가 미국과 100마일도 안떨어진곳에서 사는데 뭐가 문제인가 국경을넘기만하면 우리가 이기는것이다!"

캐나다 인구 밀집도.
미국측에선 이미 의회에서 이 계획에 5700만 달러란 거액의 예산을 의회에서 군부에게 사용하라고 허가를 내립니다. 이 예산은 캐나다 동부 국경 5대호 지역에 군용 공군기지를 3개 만들고 민간용으로 둔갑시키기 위한 비용이었습니다. 즉 미군은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이미 탐색이 끝난 캐나다의 주요 군시설을 공군폭격으로 모조리 장악하고 캐나다의 공군을 무력화 시킬준비를 마치고 있었던겁니다.
그리고 공군에의한 캐나다 주요시설 장악이 끝나면 가장 캐나다 국경과 가까우며 가장 거대한 군사기지인 드럼포트에서 미육군이 할리팍스로 진격하여 로열 네이비 주둔기지를 점령하고 캐나다 점거때 고작 인구 총합 천만의 캐나다에게 무려 육군 "600만"을 한번에 미동부쪽에 동원할 계획이였습니다. 3대 작전.

오퍼레이션 바바로사(독일의 소련 침공계획)

오퍼레이션 바그라티온(소련의 독일 침공계획)

오퍼레이션 다운폴(미국의 대일본제국 몰락계획)
이는 바르바로사의 390만, 바그라티온의 230만 다운폴 100만-150만을 훨씬 상회하는 역사상 듣도보도 못한 초대형 작전이였습니다. 왠만한 중소국의 인구가 모두다 전쟁에 투입되는 수준이였으니까 말입니다.(물론 미국에겐 인구 10퍼센트도 안됩니다) 거기다가 맥아더는 생화학 무기 살포까지 제안하여 수천톤(7-9000톤)의 생화학무기 및 2만-2만 5천대의 전투기가량이 생산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해군은 20대-30대 의 항공모함 생산 및 8-9백 척에 달하는 전열함들을 생산하여
영국 해군과 수송선을 대서양에서 한번 결정적으로 대파해서 끊어버리고 그이후 약화되고 분열된 로열 네이비를 모조리 수장시키는 계획이었습니다. 일본에 핵이 떨어지지 않았을때 일본이 항복을 안하고있을시에 시행됬을 다운폴 작전보다도 훨씬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고 보시면됩니다. 이런 미친작전이 실제로 시행될뻔했습니다.
이 캐나다의 점거 전략은 매우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일단 요약하자면 기본방침은 영국이 캐나다를 전초기지로 사용하는것을 방지하는것이었습니다. 캐나다의 자원,공항,항구 들을 모조리 사용을 못하게 막아버리고 영국의 지원또한 차단하는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일단 첫번째로 말한대로 노바 스코티아 지역의 할리팍스 지역을 최우선적으로 타격한다고 계획을 세웠는데 이 에 동원되는 군대는 35-50만 가량이라고 수뇌부에서 예측했습니다.
미 육군성에서 예상하기에 이것은 1차세계대전 서부전선의 가장 격렬한 전투인 베르됭전투에 비견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1935년에 이미 미국은 캐나다와의 국경에 상시 35000명가량의 군대를 선제 공격이 가능하게 하기위해 주둔시키고 있었고 펜실베이니아에 후방병력으로 15000명가량을 또 주둔시키고 있었습니다. 이 군대들은 첫번째 점거목표인 노바스코티아의 선봉으로 나설 병력들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을 위해서 당시 미국은 사실상 캐나다의 모든정보를 다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예시를 들면
(1)개괄
캐나다는 2번째로 영연방에서 거대한 산업국이다 온타리오와 퀘벡이 가장 중요한 산업중심지로써의 역할들을 하고있으며 |
온타리오 퀘벡을 포함한 여타 프로빈스들의 경제력은 이러하다.
온타리오 $1,000,000,000.
퀘벡 650,000,000.
브리티시 콜롬비아 * 146,500,000.
마니토바 91,000,000.
앨버타 55,000,000.
노바 스코티아 53,000,000.
뉴 브룬즈윅 45,000,000.
사스 캐취완 36,000,000.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3,000,000.
*유콘 테리토리 또한 포함한다
-49-
캐나다의 주요 산업들(1932) are:
제지 $123,415,492.
전력 117,532,081.
강철 100,561,297.
육류 92,366,137.
밀가루 83,322,099.
낙농 80,395,887.
석유 70,268,265.
제빵 51,244,162.
면화 51,197,628.
출판 50,811,968.
여성용 옷 44,535,823.
자동차 42,885,643.
고무 41,511,556.
양말류 40,997,210.
제재소. 39,438,057.
(2) 탄약제조소.
(a) 공군.
밑은 육대 캐나다 공군 납품 회사들이다.
Canadian-Vickers...............퀘벡 몬트리올
De Haviland....................온타리오 토론토
Curtis Reid....................퀘벡 카터빌
Fairchild......................퀘벡 롱귀엘
Boeing.........................브리티쉬콜롬비아 벤쿠버
Ottawa Car Mfg. Co.............퀘벡 오타와
에어로 엔진은 세개의 회사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암스트롱 시들리 모터스 코퍼레이션 퀘벡
에어로 캐나다 엔진 ,몬트리올 퀘벡
프랫 휘트니 공군 제조사 ,롱귀엘 퀘벡 |
그리하여 이 Crimson(진홍) 계획은 대략 5가지로 나뉩니다. 동부 -> 중부 -> 초원지역 -> 서부 이런식으로 캐나다 전역을 최소 1일 최대 2일 내에 모조리 점령한다는 계획입니다. 고위 장성들은 하루내에 완전히 제압가능할거라 예측하였습니다.
-캐나다 동부- - 노바스코티아 뉴브룬즈윅 점거 계획

동부 캐나다지리.
할리팍스는 검은 박스안에 뉴브룬즈윅의 노바스코티아 국경근처에 Moncton 이라고 적힌도시가 보임.
1 선봉군과 합세한 육군 40만가량과 수십척의 해군의 엄호와 함께 할리팍스지역 점령, 그후 생화학 독가스탄 수백탄을 살포함으로써 캐나다와 영국의 접점을 끊어버림.
2 캐나다와 미국에 걸쳐있는 5대호를 미해군으로 장악하고 미육군 20만-30만가량이 가서 나이아가라 계곡 지역 전력소를 장악
3 아직 미개발지역인 마가렛지역은 상륙작전에 용이한것으로 파악되기에 마가렛 만에 상륙하여 노바스코티아 전역을 장악.
4 그다음 노스브룬즈윅을 중부 캐나다지역과 끊어버리기 위하여 즉시 점거하는데 이때 20만의 군대 정도가 진격 1시간 반내에 주요거점을 모두 장악하고 특히 Mocton 에 위치한 주요 철도거점을 최대한 빠른속도로 점거한다.
-캐나다 중앙- - 퀘벡과 세인트 로렌스 계곡 지역 점거 계획

퀘벡 지리 몬트리올은 최남단 퀘벡시티는 별표.
1 전쟁이 개전하자마자 노바스코티아의 진격과 동시에 5대호지역으로 북상하여 몬트리올과 퀘벡시티를 30만-50만에 걸친 군대로 장악하고 퀘벡으로 들어오는 보급로 및 철로를 모조리 파괴.
2 버몬트지역이 퀘벡국경이 공격하기 좋은 전략적지역이므로 거기에 20-25만에 달하는 군대를 배치하고 개전시 주요 2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근교도시들을 장악.
- 온타리오와 오대호 지역 점거 계획

온타리오 지리 오타와(캐나다 행정수도) 토론토(캐나다 경제수도) sudbury 는 오타와 에서 왼쪽으로가면보입니다.

5대호인데 캐나다 침략작전의 중심. (보급 수송의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경로임) 1 퀘벡장악이후 지원군 30만가량과 합세하여 캐나다의 최대 도시이자 산업의 중심지인 토론토지역을 장악. 토론토 지역을 장악시에 모든 주요시설을 우리 수중에 떨어뜨릴것
2 이 토론토지역과 그 근처 위성 도시들의 장악은 주요 산업시설을 미국이 차지 하게 함으로써 미국이 영국의 항공기 사용을 방지할수있다.
3 미국의 버팔로 지역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나이아가라 강을 가로질러 온타리오로 40만 가량이 진군할것이고 사울 ste 마리 지역에서 30만가량을 진격시켜 서드버리를 미군의수중하에 떨어뜨린다. 5대호를 완전히 통제하는것은 미군의 수송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 대평야-

캐나다 평야지대 지리 위니페그는 빨간점으로 표시되있습니다.
-위니페그 점거 계획
1 위니페그는 평야지역의 중심이자 캐나다 철로의 핵심 통제 도시이므로 반드시 장악해야된다. 50만의 군대가 동원되어 개전 2시간내에 도시를 완전히 통제하에 넣는다.
2 계획에서는 그다지 큰 저항은 없다고 본다. 노쓰 다코타에서 위니페그로 진격할시 캐나다군의 저항은 무시하고 가도될정도로 예상된다.
-서부-
- 밴쿠버와 빅토리아

캐나다 서부 지리
브리티쉬 콜롬비아와 빅토리아(주황색 남쪽의 큰섬지역) 프린스 루퍼트는 알래스카와 bc 북쪽 국경근처에 있습니다. 밴쿠버는 미국의 워싱턴주 국경과 맞대고있는중.
1 밴쿠버와 빅토리아 지역은 영국의 지원을 받기힘들정도로 상당히 유럽과 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천천히 장악을 하여도 되지만 밴쿠버를 장악한다면 영국에게 해상기지를 끊어버리는 셈이되며 캐나다를 태평양의 로열 네이비의 영향력에서 제외시키게 된다.
2 밴쿠버는 벨밍엄, 워싱턴주 에서 개전하자마자 1시간 이면 충분히 무리없이 쉽게 점거가능하며 이에 필요한 군대는 35만가량이다. 빅토리아지역은 포트 앤젤레스, 워싱턴에서 공격이 개시가능하며 해군과 동반하여 상륙작전을 개시한다. 이때 상륙하는 군대는 15만-20만 규모로 빅토리아 청사및 의회까지 상륙시간까지 감안하여 2시간내지 2시간반이면 점령이 가능할것으로 추측된다.
3 브리티쉬 콜롬비아 북부지역 프린스 루퍼트 항구는 다른 캐나다지역들과 철로로 이어져있으나 강이 가로막고있기에 밴쿠버만 장악한다면 해상봉쇄로 지원군을 차단할수있을것이고 밴쿠버 장악이후 1시간 - 1시간 반이면 10만가량의 육군이 파견되어 충분히 점령가능할것이다.
그외 소규모 도시들까지 모조리 미군의 통제하에 넣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8-10시간 최대 늦춰질경우 28-30시간까지이다. 군대 소모는 작전이 성공적일경우 3만-4만5천, 오래 걸릴경우 7만 내지 10만까지로 예상한다. 캐나다 정규군은 총 5만-10만 단위이고 동부에 절반이 주둔해있고 나머지 병력들은 분산이 되있으므로 그렇게 큰 군대 소모는 있을 가능성이 낮다.
이것이 캐나다 전토 점령 계획입니다. 이 계획 이후 미국은 Red 점령 계획을 가동합니다. (영본토 장악 후 호주 와 뉴질랜드에서 영국잔당 소탕후 해상봉쇄로 굴복시킴으로써 미국의 위성국화)
일단 육해군 합동본부는 캐나다 점령시간동안 캐나다 동부에서 해군으로 시간을 끌다가 점령이끝나면 대서양으로 오는 로열 네이비를 방어전으로 시작했다가 항공모함 전대와 함께 격파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미국은 약간 두려워했습니다. 허나 이것은 미해군의 영국해군에 대한 과대평가였음으로 나타납니다.

미국 항모 vs 영국 전함 
당시 영국의 해상국가로써의 명성과 1890년대의 영국의 바다를메우는 대함대 전열식등의 기억이 아직도 각인되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실 장비나 해군규모에선 자기들도 비슷하다는걸 알고있었고 오히려 교리는 이미 미국은 항공모함 교리를 타버린 상태라 영국의 전함교리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후속 충원할수있는 선박 생산력이 영국에 비해 몇배나 월등했기때문에 미국에게 매우 유리한 싸움이었습니다. 해군 숙련도 또한 이미 1810년대의 쩌리 해군사관학교도없던 시절의 미해군으로 상업용 선박에 대포를 장착한 개조 전투 선박으로 영국 정규 로열네이비와 어느정도 상대했을 정도이니 이미 해군사관학교에서 장교들이 공장에서 찍히듯이 나오는 미국이 영국에 크게 뒤질일또한 없었습니다.

-아일랜드 지리- 별표가 더블린 그 밑의 남쪽이 워터포드
미국은 Crimson(캐나다 점령) 계획 이후로는 어느지역을 어떻게 타격하고 이도시다음 이도시를 점거 이런식으로 매우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영국본토에 대한 봉쇄 및 장악을 방침으로 하였습니다.
당시 미 해군은 대서양에서 승리를 이끌고 미공군과 함께 13대이상의 항공모함 편대및 3백-4백에 달하는 호위함들을 이끌고 영국 본토로 침공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일단 이 항모전대들은 영국 을 동서 남북으로 봉쇄한다음 War Plan Emerald 를 가동하여 아일랜드에 미 해병대 15-20만 가량이 더블린과 워터포트등 주요도시를 점거후 아일랜드를 점령합니다. 그리고 아일랜드를 미국의 괴뢰국가화 시키고 거기를 군용 공항의 거점으로 삼습니다.

항공모함 전대들로 해상봉쇄

전폭기들로 무한 폭탄+화학탄 세례 찜질

수백만 대군 영본토에 상륙
5천내지 8천대의 전투기가 영국 공군이 가동되기전에 영국 군항을 다파괴함으로써 영국공군을 무력화시키고 다음 영국 전투기들 또한 모조리 파괴합니다. 그다음 보름내지 한달간 봉쇄를 통해서 식량공급 자원공급을 모조리 차단함으로써 영국 국민들을 사실상 모두 아사직전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아직 저항이 어느정도 존재한다면 3-5천대의 전투기가 생화학무기 수천톤을 2주간 밤낮동안 영국 전토에 뿌려줍니다. 그 이후 Crimson 계획 침공군(캐나다 침공군)에서 영국본토 상륙군을 차출하여 플리머스, 에딘버러, 맨체스터, 런던, 리버풀 등 주요 거점들에 150만 최대 200만 가량의 육군이 상륙하여 브리튼 전토를 장악합니다.

대충 이런식으로 조여오는거지요.(물론 이것은 바바리언들의 브리튼 점령기긴하다만)

영국을 쪼개줍시다.
그이후 영본토를 4주로 나뉘어서 편입 캐나다는 그대로 미국의 주들로 편입합니다. 그이후로는 뉴질랜드및 호주는 외교적 해상적 압박및 경제적 봉쇄를 가하여 미국의 영향력내에두는식으로 미국의 위성국화시킴으로써 사실상 미국의 종속국가로 만들어버립니다. 그이후 대영제국 식민지들은 자립하도록 도와주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영국에 대한 해전 승리이후는 사실상 미국이 95퍼센트는 승기를 잡은거라 보았다고 추산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이 왜실행되지 않았느냐고요? 이유는 독일의 콧수염이 폴란드 침공을 개시해주심으로써 이 계획은 실상황에서 사용하기 힘들어진다고 미 군부 및 행정부에서 파악하고 사실상 사문화시킵니다.
어차피 영국은 독일에 의해 개박살이나서 초강대국이아니라 전후엔 강대국위치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미국은 독일 패는게 더급선무고 독일 패면 알아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떠오르리라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대영제국이 독일녀석과 싸워주면서 국력소모를 대신해주는 방파제역할을 하는게 더 미국에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폴란드 침공이다 x새끼들아!!!
그렇게 된다면 영국은 식민지힘 본토힘 다 소모하면서 독일과 싸우게 됨으로써 알아서 초강대국에서 탈락하고 유럽에서의 나치독일이란 잠재위협도 뿌리뽑고 결국 역사는 이렇게 미국측에서는 국력낭비는 하나도안하면서 이득을얻게됨으로써 손안쓰고 코풀기일 정도로 쉽게 흘러갔습니다. 영국과 캐나다는 알아서 미국의 똘마니가 되었고 유럽또한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받는 동맹비슷한 종속관계가 되었지요. 어쩌면 히틀러란 존재는 미국을 싫어했으면서도 미국의 힘을 전혀 소모시키지않는상태에서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으로 만든 아이러니한 존재라고 봅니다.
결국 저 계획은 1974년까지(?!) 사문화는 되었지만 여전히 가동할수도 있음으로 만약의 가능성때문에 보존은 해두었다가 1974년때 마침내 캐나다등 이웃국에 밝히고 완전히 폐기하였습니다.
이때 Crimson 계획 의 구체적이면서도 악랄한 작전때문에 캐나다와 미국의 관계가 약간 트러블을 가졌으나 미국이 워낙에 강한지라 캐나다가 그냥 고개숙이고 다시 친해집니다.

미국이 세계다.

현재 미국에게 개길나라가 존재는 하는가?
나치의 폴란드 공격 개시가 몇년 더늦어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계획이 실제로 진행됬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을겁니다. 하여튼 결론적으로는 이계획이 진행됬으면 최소 캐나다는 지금쯤 무조건 미국령이고 영국본토도 온전치 못할가능성이 매우높았습니다. (아마 헬게이트 오브 헬게이트 석기시대로 돌아갔을수도있습니다). 그 이후 여타 영연방(호주 뉴질랜드)은 그들이 고개만 잘 숙인다면 미국과의 협상으로 인명피해가 크게없이 진행될수도 있었던 일이긴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나치독일이 고꾸라지는 선택인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가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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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해서 만들어진게 Rainbow War Plan이라고 하였는데 Rainbow War Plan 은 이미 제가 덧글에서 2차대전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말했고 그 이유는 당시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이 독일을 제압하고 영국과 함께 싸우는게 더 미국의 국력과 국제사회의 지위에 득이 되기때문입니다. 님은 남글을 제대로 정독부터하셔야될것같습니다만??? 반박하기전에 말입니다.
당시 유럽정치가들의 예견 또한 씹어먹는 트라콘님의 위엄이니... 처칠이 "The war with Americans are not inconceivable" 이라고 말하기까지 하며 대비를 외쳤는데, 이렇게 국가 방어 대비를 외치는쪽이 먼저 전쟁을 일으킨다고요? 그리고 영국은 자기들이 미국에 비해 '매우' 열세 임을 인지하고 있는지 오래였습니다. 제가 말한 근거들은 대부분 반박안하고 좀 만만하다싶으면 그냥 계속 덧글달기에 바쁘신데, 그냥 의견만 내서 글을 부정하는건 누구나할수있습니다. 전 지금 계속 근거를 들고있는데, 님이 말하는 온갖 인터넷에서 잠시 '훎어본' 것 그것도 제대로 보지도 않은걸 근거로하여 내지르는 의견을 계속 반박해줘야됩니까?
앞서말했듯 님이 부정하든 말든 상관없는데 그건 제가 남생각까지 애초에 관여할일이아니니까요. 근데 남 글을 부정할려면 적어도 역사적 정황 사실에 대해서 제대로 기반해서 들고오셔야지 대부분 제가 한말이거나 이미 덧글에서 언급한걸 단어만바꿔서 또 언급하시고 근거도 제대로 안갖추어져있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군요. 단순히 이 키배를 이기기 위해서 덧글을 다는 정도로 보이니 말입니다. 무려 영국 다큐에서 보는 미국의 선제공격한다는 관점조차 그냥 독일공격이 더 '가능성'이 있었을것이다란 아무 근거도없는 그냥 자기 망상만으로 싸지른 글로 그니까 니글은 틀렸다 이런식으로 말하는데, 그런식으론 아무도 설득못시킵니다.
님말대로 상식대로만 산다면 1차대전당시에 영-독-러 프랑스 고립동맹을 유지햇어야죠. 그리고 작계가 현실성없다 생각하시는거 같은데 이차대전당시 7만 전투기와 1200만군을 유지한게 미국입니다. 이건 무슨... 그냥 나중에 적국 되는놈가지고 이랬어야할것이다 란 근거도 뭣도 없는 추측은 소설놀이밖에안되죠 또 여기서 뭔가 태클을 걸려고 하실거같다만 이건 순전히 님이 말하신거처럼 예를든겁니다. 그리고 나치 개전 전 까진 나치동조자도 널렸던 판에 무슨 침략욕입니까. 그리고 일본이 본격적으로 태평양 점거하면서 미국에 '위협' 이 되기 시작하자 미국에서도 어느정도 전쟁여론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아직 동아시아에서나 날뛰
놔둔거고요. 독일 또한 1차대전때 이미 연합국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한게 있었던데다 군수기업들에의해서 말려들어간 전쟁이란 인식이강해서 참전을 꺼려했던겁니다. 당시에는 게토의 실상도 밝혀지지않았고 인종주의가 당연시되던상황에서 나치독일이 게르만 우월주의적인거외엔 그리 특별히 이상해보일것도 없던시대였습니다만? 그리고 한국은 개전시 바로 서울이 북한의 포격 사정권인데다 한반도는 중미일러등 초강대국들의 이권및 한미동맹 및 중소국으로써 눈치를 살펴야되는데 한국같은 국가하고 세계의 최강 미국이 같군요?
님은 비교를 해도 재벌과 샐러리맨수준의 비교를 합니까. 님은 이미 이 토론에서 불리한 근거는 다무시하고 근거없이 자기 유리한것만 주장만할때 이미 토론패턴은 환빠나 다름이 없습니다.
님이 저자들 운운해서 그러는데 2차대전이 안터졌으면 영국이 공격받을수도 있다는거 이건 제의견이아닌 영미 역사학 대학교수와 미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말한겁니다. 님은 그 저자들 운운하지만 소스가 어딘지도 못밝히는군요. 님 머리속입니까? 영문위키 그것도 제대로 해석도 못한채 반박하시면서 저자들이 한말이라면서 대단한 권위인듯 말하시면 잘도 믿겠습니다. .Channel 5: America's Planned War On Britain: Revealed or War on the 'Red Empire': How America planned for an attack on BRITAIN in 1930 with bombing raids and chemical weapons 전님처럼 출처나 근거없이 뇌내망상은 안합니다.
Mark LV, Reading, UK, 22/9/2011 0:11 ? This was a plan that relied on the “enemy” having no plans to attack, no troops build ups to attack or counter attack, to be essentially a friendly nation caught napping. The unthinkable being what in this case?
- Tom H , London, 22/9/2011 00:30
다른 댓글단 영국인이 모든국가들은 유사시 전쟁계획이 있다해서 왜이렇게 미국의 전쟁계획에 놀라냐고 적은 댓글에 적은 반박 댓글인데 이제 이 영국인 놈도 님 논리 대로라면 간편히 반쯤 망상하는놈 이라고 취급해버리면되겠군요.
여기서 천안함에 관해서 근거도 없이 주장만하다가 아르카나님이 말한것처럼 님은 그저 까기위한 까기를 하는거로 밖에 안보이지 말입니다. http://cafe.daum.net/shogun/TAp/10162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한게 있나, 아니면 주장에 근거를 제시한적이있나.
논리에서 쳐발릴대로 쳐발리니까 이제 인간 녹음기처럼 토론의 상대방이 올린 본문의 글까지 언급해가며 한말 반복하고 한말 또 반복하고 트롤링하면서 사람 화 돋구다가 발끈하면 어설프게 잠시 10분 서치한것으로 다른주제로 물타기하고 기본 논리순환구조부터 엉망이라고 생각이드는데 말이죠?
님글을 님이 한번보세요. 1 작전을 승인했다는것이 저 작계를 실행하려고 승인한게 아닐텐데요.... 미국은 전쟁을 시작할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 2 아닌 다국적군을 맞이할 상황이 다분해지자 기존의 색깔 작계에서 발전시켜 만든 작계입니다 3 미국이 그것을 실행에 옮겨가고 있는중에 2차대전덕에 안했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영국과 전쟁을 벌일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지 않습니다.
4 독일, 일본이 얌전히 있었다면 미국이 먼저 영국에 전쟁선포했으리란 생각은 반쯤 망상입니다
5 30년 후반부 들어서 다국적군을 맞이할 상황에 직면하여
반복반복 물타기후 좀 주제돌렸다가 또반복
에효... 자기 추측만이라고 함부로 재단하시네요? 27년에 영미 대사의 회담에서 양국이 확인한 내용이 뭐였죠? 두 국가간의 전쟁가능성은 없다! 선언입니다요. 영미가 20-30년대에 지속적으로 한게 뭐죠? 군축 협상입니다요.
작계가 현실성이 없다는게 아닌데요? 곡해하지 마세요. 작계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습니다. 미국을 제외하면 당대 최강국과의 전쟁 시나리오인데 허접하게 만들리가 없고요. 단지 작계 작성시점인 30년에 미국이 전쟁의도가 없었다는겁니다.
독일이 히틀러 없이 걍 찌그러져있어서 유럽이 평화롭게 40년대까지 갔다면 님 말씀대로 영미간의 충돌이 현실화 될 수 있겠죠. 하지만 30년대엔 아닙니다. 대공황 여파로 군 예산 다 잘려나가는데 전쟁 일으킬 생각할리가요.
그니까 그 영미 대사 회담중에서 미국측 말은 거짓이였다고 반박했고 군축회담에서 미국측과 일본의 거부로 해산이되었다고하는데 대체 뭘 보면 똑같은 말만 반복합니까? 괜히 쓸데없이 빙빙돌고 돌거같으면 헛시간 날리지말고 그냥 의견차이라고 끝내죠.
영국은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20년대엔 대미 작전계획 수립조차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거부한적 있지만 대공황 터지고 경제 안좋아지자 군축에 다시 합의한건 모르시네요?
영국이 미국과 전쟁할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전쟁위협을 했을때 영국은 미국과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 가능성이 백배 높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을 영국이 얼마나 회피했는지 30년대의 영국을 보면요.
일본도 한때 국제연맹 가입국가였습니다. 당시 고전외교가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외교인데 잠시 군축조약 참가 한거가지고 전쟁안하는가봅니다. 저는 이미 영국이 미국을 자극하지않게 한다고 본문에적어놓았는데 제 말을 그대로옮겨놓으시니. 말했던거 또말하고 인간녹음기입니까?
그니까 전쟁의 선택권은 영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아니라 미국에게 있는거란 말인데 이해를 못하십니까?
40-50년대까지 2차대전이 발발하지않고 평화가 지속되었다면? 그땐 저도 님 말씀대로 영미간의 전쟁 가능성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30년대엔 아니란거죠(유럽의 평화가 지속되는 경우라도요).
그니까 2차대전이 터진때가 1939년이고 그이후 몇년만더지나서 대공황이더심화되는등 하면 이작전이터진단말이잖습니까 --... 무슨 제가 1930년대 중반에 터진다했습니까. 그랬으면 이미 이세계역사는 바뀌었죠.
미국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죠. 그런데 미국이 밑도끝도 없이 전쟁을 진주만처럼 일으키지 않을거라는겁니다. 외교적 압박이 우선될것이고 그게 성공하면 굳이 전쟁을 안일으킬겁니다. 피 안흘리고 목표 달성하는게 최고죠.
그리고 영국의 30년대 독일과의 전쟁을 극도로 회피하는 양상을 볼때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 영국은 최대한 양보할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습니다. 따라서 양국간의 전쟁 가능성이 적어도 30년대엔 없다시피 한겁니다.
그니까 영국이 외교적압박만으로 대영제국 전부 해산하고 자신의 충복한 신복이되라하면 해산하고 그리하냐말입니다. 그게 애초에 미국 자기네도 말안되는거아니까 무력으로조지는것이지요. 이건 일본이 남한에게 외교적 한일연방이루자하는급인데 누가 찬성합니까.
전 애초에 2차대전 터지는 시기 몇년후라했는데 2차대전터진땐 1939년 거의 1940년인데 제가 언제 1930년내에 터질정도로 일찍터질것이다라고 언급이라도했나요?
모두가 정신나간 미치광이 독재자로 인정하는 히틀러도 생각치 못한 대영제국의 완전 해체 요구를 미국이 할거라고요? 미국이 그렇게 막 지르는 미친국가는 아닙니다. 충돌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만요.
그니까 미국이 똘추짓을 한다고 본문에 적어놓은거고 미국이 원하는건 대영제국의 '해산'이었습니다. 외교적으로 안될걸뻔히아니 무력적으로 간다고말씀드렸잖습니까. 무려 2차대전중에 동맹으로있을때도 루즈벨트만해도 계속 처칠한테 강압넣었고요. 그래서 2차대전 이후에 식민지 다독립하라고 사실상 강요해서 다독립시켜냈고 홍콩조차 반환해라했는데 홍콩은 조차지란 변명 및 자치권 완전허락으로 겨우 지켜낸거고요. 이건 무려 역사적으로 실제일어난일입니다.
일단 제가 님의 글을 잘못 알아들은 점은 사과드립니다. 님께서는 미국의 전쟁 시작시점을 40년대로 잡으셨고 전 30년대로 알아들었습니다. 대체역사는 사실 뭐든지 가능하다 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견해차는 견해차로 남길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실제 역사와 틀어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더 많은 시간이 흐른뒤를 계속해서 예측해나갈경우 정말 뭐든지 가능하겠지요.
전쟁없이 시간이 흐르면 미국이 자신의 패권 확대를 위해 영국의 제국 해체를 어느정도 시도할거란 것은 가능성 높지만 과연 전쟁까지 치달을지는 또한 사실 미지수라고 봐야합니다. 독일이 전쟁을 안일으키지만 미국 또한 그당시 엄청난 성장을 보이고 있던 소련의 견제차원에서 대영제국의 완전해체까지는 바라지 않을 가능성 또한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제국주의 열강이 이념이 완전 다른 공산주의 진영보단 훨씬 친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작계 Red 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작계 Red 의 전제는 대영제국의 전쟁 목적이 미국의 열강으로서의 완전한 배제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와 님이 말하는 미국의 영국 선제공격과는 성격이 다르단 겁니다. 물론 작전 계획이 매우 구체적이기 때문에 실제 미국이 영국을 공격할때 계획의 상당한 부분을 그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긴 하겠지만요.(작계 Orange 는 2차대전때 대 일본전에 상당부분 그대로 쓰였습니다)
저도 그렇다면 약간 말이 심하게 나간걸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말하는 대영제국의 해산은 영본토까지 털리는게아니라 적어도 해상에서의 영국의 힘이 사실상 본토 방어 해군정도로 줄어드는것이고 해외식민지들또한 해체를 원한다는겁니다. 대영제국이 브리튼본토와 그 주변섬만 가지고있어도 충분히 소련권에 대항하는 푸들로삼을수있는데 뭐할려고 푸들을 크게 키울필요는없죠. 이 푸들이 주인 발을 물가능성도있다고 생각했단거죠. 미국은 대영제국이 캐나다및 식민지 를 해체안한다는걸 전제로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1920년대 대영제국이 반환을 말로써는 하기 힘들다고생각하였고 그렇기에 무력을 사용한다고 결론이나온거죠
1920년대 얘기꺼낸건 작계만들어진 시기라서 말한겁니다.
궁극적으로는 해체를 원한다는 님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2차대전 후의 미국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단지 2차대전이 없었다면 전 아주 천천히 진행됐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국가도 외교적으로 상대국가에 신호를 보내지 않은 채로 속으로 혼자서만 생각하고 상대국은 이렇게 행동할거라고 재단하고 바로 전쟁 선포로 들어가진 않지요. 지속적인 식민지 시장개방 압박과(아마 시장개방을 영국이 한다면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봅니다) 식민지 독립운동 지원, 심할경우 독립전쟁 지원 등이 선행되고 그에 따른 영국의 미국에 대한 전쟁선포 유도로 전쟁 명분 확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아예 미국이 제정상이 아닌이상 번갯불에 콩볶아먹듯이 하진않고 일단 식민지의 경제적 정치적 독립등 자치령의 완전 독립등을 강요하겠지요. 그후에도 계속뻐기고 트러블이 생기면 저 작계가진행되는거고말입니다.
로스차일드님은 계속 '근거'를 대시는데 트라콘님은 가정만 하시네요. 미국에 대한 개인적 환상과 역사적 사실은 구분하시는게 나을것 같습니다.
저걸 정말 실행에 옮길 의지가 얼마나 강했을지는 이해가 아직 안가지만,
그래도 저런 작전을 세운다는게.... 여기 지구 맞아....? ㅎㄷㄷㄷㄷㄷㄷ
이차대전이없엇음 거의 실행됬을겁니다
이뭐... 소름돋네요 ㄷㄷ 당시 세계최강국을 그냥 족쳐버릴 계획이라니 ㄷㄷㄷㄷㄷㄷ
저 작계가 실행이라면 1984의 오세아니아 제국의 탄생이네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