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렴과 발산
김혜경
간절히 기원 했으나 미완의 소망으로 다 접어둔 한해가 가고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한다. 섣달그믐이나 정월 초하루나 매일 뜨고 지는 해 이련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왠지 허전하고 무언가 아쉬운 것을 놓치는 느낌마저 든다.
친근한 후배가 부아가 나서 씩씩거리며 현관을 들어선다.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
사처럼 명절에 시댁에 내려 갈 일로 남편과 또 다툰 모양이다. 장인이 병원에 입원을
해도 들여다보지 않던 사람이 오촌당숙이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고 서산까지 다녀오
잔 단다. 매년 울근불근 하는 모양새로 보면 차례도 못 지내고 구정이 날 것 같다.
어느 집 며느리라고 다르랴만 명절이 다가오면 돈 쓸 일이며 부엌일, 손님 접대
를 생각하면 마음부터 무거워진다. 더욱이 동서지간의 알력은 녹녹치 않은 스트레
스가 되기도 한다. 명절이면 촌수가 어찌 되는지도 모를 친척들을 만난다. 남편의
고향에서 만나는 지게를 지고 가던 아저씨가 당숙이고 외양간에서 소여물을 주던
아저씨가 시숙이요, 광주리에 고구마를 이고 가던 부인이 당숙모 뻘이 된다니 꾸벅
꾸벅 겉치레 인사를 할 뿐 명절이 지나고 나면 까맣게 잊고 만다. 수수빗자루처럼
엮인 혈족 이라는 것을 명절이 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래도 가족의
중심이 되는 것은 무촌의 부부가 될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부여 받게 되는 무촌의
촌수 한 치의 거리도 없이 하나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생각마저 하나가 되던가.
결혼이란 하나의 함수 값을 찾아내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두 사람의 상호관계인
함수가 아니라 오히려 미분에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상대편
을 향해 다가 갈 때 상대 또한 가까이 다가오는 limete의 개념이 되지 않을까. 아
내가 남편에 가까이 다가갈 때 남편 또한 아내에게 가까워지고 있는 결코 확정된
하나의 함수 값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까워질 뿐이라는 것. 단지 하나의 공
통점을 향해 수렴해 갈 뿐인 것을....
무촌이라는 촌수를 부여 받으면서 이미 하나의 함수 값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같다. 무촌의 관계가 수렴일 뿐인 것을 잊었을 때, 두
사공이 한배를 이리저리 끌고 가 망망대해에 표류하거나 침몰하기도 한다. 그리고
는 정말 무촌의 관계는 아무 상관이 없는 또 다른 무촌이 되고 만다.
서로 만나기 이전엔 평행의 관계는 유지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틀어져버린
무촌의 관계는 ∞로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 0부터 수를 세어 억, 조, 경, 해를 넘
어 ∞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는 수의 개념을 넘어선 도저히 셀 수
없는 극한이 존재하지 않는 값이 되는 것이다.
수마가 풍성히 곡식이 익어가는 전답을 휩쓸고 가거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도
시간이 지나면 대지의 자생 능력으로 회복 될 수 있지만 한번 어긋나기 시작한 인간
의 관계는 서로 가슴에 남긴 상처로 인하여 근접할 수 없는 ∞에 다다르게 된다 무
촌의 촌수를 부여받게 되는 것은 그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운 선택이 되는 것 같다.
금방 갈라 설 것처럼 길길이 뛰던 후배가 남편의 전화를 받고 슬며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애들만 아니면..’한마디 던지고 총총 돌아가는 후배의 뒷모습을
보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나약하고 위태롭기 까지
한 무촌의 관계에서 탄생한 1촌은 또 다른 의미가 되는 모양이다.
원 개념의 무촌의 관계는 해제되었다하나 1촌의 관계는 어떤 상황에서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면면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미 부부의 인연은 소멸되었으나 아
이들로 인해 여전히 시아버지가, 장인이, 당숙모가 존재하고 시숙이 가족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게 되니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한 치의 틈도 없을 만큼 가까웠
던 무촌은 와해되어 무로 돌아갈 수 있으나 부모자식간의 1촌은 절대로 소멸 될 수
없기에 어쩌면 혈연은 1촌이 근본이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부산하게 제 자리로 돌아간 후배는 발산의 무촌의 관계가 아닌 수렴의 무촌으
로 돌아선 듯 하다.
하늘에 별이 촘촘하다 오리온자리 북두칠성자리의 별무리들도 제 나름대로의
촌수를 맺고 혈연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서편 하늘에 외로이 반짝이는 저별의 무
촌은, 1촌은, 당숙은 어디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일까...
*수렴: 수학에서 변수가 어떤 값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일
*발산: 수학에서 변수가 극한값을 가지지 않고 한없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일
∞:(무한대)수학에서 변수의 절댓값을 한없이 크게 할 경우의 변수. 한없이 큼.
2006/23집
첫댓글 하늘에 별이 촘촘하다 오리온자리 북두칠성자리의 별무리들도 제 나름대로의
촌수를 맺고 혈연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서편 하늘에 외로이 반짝이는 저별의 무
촌은, 1촌은, 당숙은 어디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