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유허비
새해에 든 지 일주일이다. 엊그제 소한이 지났는데 소한보다 더 매서운 강추위가 엄습했다. 남녘에서는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는 날이 좀체 드문데 며칠 간 꽁꽁 얼어붙을 거란다. 간밤 거제 연사 원룸 주인장한테 전화를 넣어 와실 보일러를 ‘외출’ 눈금에다 켜두십사고 했다. 방학 중 지내지 않는 방바닥이 냉골이 되어 배관이 얼어 터질까 봐 연료비가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일월 첫째 목요일이다. 방학이라 틈을 내어 미뤄둔 치과 진료를 다닌다. 당분간 음식 섭취에 겪을 불편은 감수해야할 처지다. 한낮에도 영하권 날씨지만 햇살이 퍼지길 기다렸다. 이른 아침부터 간간이 날리던 눈발은 잦아들어 옷차림을 단단히 하고 길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무작정 걷기 가능한 행선지를 한 곳 물색해두었다. 창원대로 인근 외동과 내동에 있다는 고분군이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내가 사는 아파트가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외동반림로’라 명명되었다. 반림동은 내가 사는 동네라 익숙한데 그 앞에 외동이 왜 붙게 되었는지 의아했다. 아파트단지 곁으로 난 길을 북에서 남으로 계속 가면 외동이 나와 그런 모양이다. 외동은 신도시 창원이 출범하기 이전 ‘상남면’ 바깥이라 외동이고, 안쪽은 내동이라 불렀다. 창원대로 주변 창원병원 근처였다.
반송 소하천을 따라 창원스포츠파크를 지나 폴리텍 대학 후문으로 갔다. 대학 구내에서 도심 숲속 거님 길을 걸었다. 창원은 오래 전 계획도시로 출범할 당시 동서로 길게 창원대로를 뚫었다. 남천이 흘러가는 남쪽 일대 기계공단이 들어섰다. 택지가 조성된 북쪽에 학교가 자리했다. 업무지구에 관공서가 이전해 오고 상가가 들어서고 낮은 산언덕은 녹지공간으로 남겨둔 데였다.
폴리텍대학 구내는 그리 넓지 않아도 세 갈래 산책로가 있었다. 솔숲에는 인근 주민들이 이용하는 배드민턴장도 보였다. 산책로를 걷는 중년 사내와 아낙을 만나기도 했다. 교육단지 입구로 드는 찻길 위로 생태터널을 건너가니 주택가와 인접한 산기슭에 골프연습장이 나왔다. 도심 거님 길에서 중앙동 주민자치센터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왔는데 텃밭 사이 산등선을 따라 갔다.
어제 지나친 대상공원에서도 분묘마다 개장 공고 팻말이 꽂혀 있었는데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당국에서는 녹지를 민자 공원으로 개발하려는 듯했다. 신우대 숲을 빠져나가니 좌측은 창원병원이 가까웠고 우측 산속엔 낡은 집이 몇 채 보였다. 이삼십 년 전 전설처럼 전해오는 보신탕집인 ‘산성집’이 자리한 곳인 듯했다. 당시 여름엔 주차 아르바이트생만도 여러 명이었던 것으로 안다.
산언덕을 내려서니 마창대교 완암 나들목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찻길과 창원대로가 교차하는 곳이었다. 교육단지로 드는 진입로 근처에는 내동유허비가 세워져 있었다. 계획도시가 출범할 당시 원주민이 떠난 실향의 아픔을 달래주는 망향 빗돌만 옛터를 지키고 있었다. 대숲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가니 송정암이 나왔다. 황토 움막은 자연인 거처 같아 보였고 동굴과 불상이 특이했다.
송정암을 내려서니 떠나지 않은 원주민이 사는 집이 몇 채가 나왔다. 교육단지와 가까운 북향 기슭이었다. 민가 앞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아래편 길 건너는 각 급 학교가 나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다시 산마루를 올라가도 처음 목표로 둔 내동 고분군은 찾지 못했다. 오래 전 계획 도시 출범 당시 선사유적 시굴은 끝낸 듯했다. 산언덕은 당국에서 묘목을 가꾸는 곳으로 활용했다.
산언덕에서 내려가니 교육단지였다. 오가는 차량이 없고 보도에는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 가로수는 앙상한 가지를 펼쳐 겨울을 나고 있었다. 지난날 내가 삼 년 동안 아침마다 걸어서 지난 출근길이었다. 폴리텍대학 구내로 들어서니 대학인은 한 명도 만날 수 없어 썰렁했다. 방학이라 그런지, 코로나 때문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찬바람 속에 내 등 뒤로 겨울 햇살을 받으며 걸었다. 21.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