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머리칼 투구를 쳐들어
난간에 기대어 서니
세찬 비가 그쳤구나.
눈을 들어 둘러보다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 지름은
사나이 품은 뜻 뜨거움이라 (…)
팔천 리 길, 구름과 달을 벗하리라.
세월 가벼이 보내지 마라
청년의 머리 희어지면
공허한 회한에 사무치리니
정강년(靖康年)의 치욕
아직도 씻지 못하여 (…)
전차 휘몰아 적진을 돌파하여 (…)
머리부터 발끝까지
옛 산하 수복하여
황제께 알현하리니.
-『조선일보/최영미의 어떤 시』2023.08.28. -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남송(南宋)의 장군, 악비가 지은 시. 용맹스러운 군인의 기개가 하늘을 찌르는 “분노한 머리칼 투구를” 보자 내 머리칼이 쭈뼛 섰다. 무인(武人)이라면 기세가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정강년(靖康年)의 치욕’은 1127년(흠종 정강 2년) 금나라 군대가 벤징을 함락하고 휘종과 흠종을 포로로 잡아간 일을 말한다. 등에 정충보국(精忠報國)의 문신을 새기고 금나라에 빼앗긴 국토 회복의 꿈을 키우던 악비는 승리를 거듭하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화친파의 모함으로 서른아홉 살에 처형되었다. 참 군인의 길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