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역사 왜곡과 현대사의 가장 큰 가짜뉴스 가운데 하나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대한 왜곡이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는 미·소가 조선의 자주국가 건설을 위해 일정 기간 후견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이 이승만을 통해 갑자기 '찬탁'이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1947년 소련군은 북에서 철수하였다.
한편, 맥아더 포고문은 1945년 9월 7일 일본의 항복 직후, 한반도 남쪽에 맥아더의 이름으로 발표된 포고문(제1호)이다. 그 핵심 내용은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을 미군이 군사적으로 점령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이후에도 미국이 한국에 군사 .정치.경제
적으로 , 끊임없이 지배와 간섭을 하고 있다.
유엔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해체를 요구한 미군의 유령단체인 유엔사를 내세워 남북교류를 방해하고 있다.
한반도는 아직도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정전(휴전) 상태다.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는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 미군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한국전쟁의 성격을 알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침략이란 다른 나라에 군대를 보내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같은 나라 내부의 무력 충돌은 내전이라고 부른다.
역사는 다양한 사료와 사실을 바탕으로 객관적 이해하가 중요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 에서 조선의 독립을 논의 했다는 사실은 표면적인 것이고 실제로는 패망하는 군국주의를 지키려는 강경파들 때문에 피아 쌍방간의 인적 손실이 극에 달하는데 이를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 했고. 때마침 개발된 신무기(해폭탄) 를 실험할 명분 필요했다고 본다. 다행히 그 명분은 일본의 강경주의자들의 옥쇄 작전 으로. 확보했다 치더라도 엄청난 수의 민간인 희생에 따른 경제적 파장을 해소할 방안이 논의 되었을 것이라 본다.
그 근거로는
1.지리적으로 피폭지와 가장 가까운 곳이 한국이고.
2 일본 패망이후 미국의 태도 변화다.
팽창하는 공산주의를 방어한다고 설정한 극동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시키고 .
3 국내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던 이승만의 태도 변화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 기이할 정도로 공산주의. 김일성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 하는데 50년 6월25일을 기점으로 D-day를 설정한 듯한 기이한 행보를 보인다.
전 군에 비상경계령을 발령하고 대국민 연설을 통해 공산주의자 빨갱이들을 가혹 하게 색출하고 누명을 씌워 처단 한다. 날로 갈수록 심해지던 대 공산주의 조치들 가운데서 2 주 전 부터 38선 핵심부대 사단장들을 교체 시킨다.
이후 전방에 배치된 대 전차포를 수리 정비 명분으로 후방으로 이송시키고 직전에 군을 옭아매었던 비상경계령을 해제하고 휴가를보내는데 전 군의 1/3정도가 외출외박 휴가를 떠났고.
육군 장교 클럽에서 고급 장교들 파티가 24일 토요일 저녁에 열린다.
그리고 지휘부들이 꽐라된 새벽이 25일 D-day였다.
그렇게 전쟁은 벌어졌는데.
전쟁중에 기이할정도로 와중에 도망을 치고 개판 친 장수가 유재홍 인데 당시 사단장이던가 그랬다. 그는 부하들과 장비들을 버리고 홀로 경비행기로 탈출했다고 한다. 유재홍의 행태에 격분한 미군측에서 작전권을 빼앗아 갔다.
이후 중공군의 대 공세는 국군이 지키는 전선으로 집중되었다는 것.
이후 유재홍은 역대급 패장이면서 이상하게 박정희때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할 정도로 장수한다. 또 한사람은 백선엽 인데 낙동강 방선에서 국가의 안위가 위태로울때 그의 역할이 심히 의문을 자아내는데 그 사료에 대한 접근은 의문스럽게도 이상한 점이 있다.
좀 장광설이 되었는데 .
3 년여의 긴 전란 속에 서 일본은 착실하게 과거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경제적으로도 회복정도를 넘어서 안 정 가도를 달린다.
결론 .
한국 전쟁은 일본에 실험한 원자폭탄의 폐혜를 회복하기 위해 벌인 강대국들의 희생양 이었다. 한국 전쟁으로 일본은 최단기간에. 경제적 회복을 이루었다.
한국 근 현대전쟁사에서 극한의 패장인 유재홍의 생명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승만이 육이오 직전에 벌인 행태는 간첩의 소행이라는데 그 간첩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