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적인 펌질은 금지라고 했는데도 네이버 등에 퍼나르시는 분들... 자제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뭐 이제와서 자제해 보아야 나갈만큼 나간 모양입니다만...) 링크 소개는 말릴 생각이 없습니다만, 글을 퍼나르면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현재 글에 걸려있는 링크를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논지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 두번째는 차후 추가 수정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자신이 [믿는] 내용을 박살내고 있는 탓에 네이버 등에서 오만가지 소리가 다 나오는 모양입니다만, 반론을 내고 싶은 분들은 좀 지적해서 이야기를 하기 바랍니다.
- 저 글도 근거없이 떠든다는 [근거없는 비방], 죄 그런게 어딨냐는 식이라는 [모함] 밖에는 찾아볼 수 없군요.
저런 주장을 신봉하는 모 사이트의 회원은 이 글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내렸습니다.
반박한 내용에 근거가 제대로 나온게 하나도없습니다. 전부 자기 멋대로 추측하고 현 역사교육에 비춰서 이런건데 헛소리라는 둥...(이건 말이 안되니 억지다..라고 주장하려면 왜 말이 안되는지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해야하는데 그런 과정없이 그냥 말이안된다 수준의 반박에 불과합니다.) 심지어는 대부분의 미스테리에다가 근거가 없이 멋대로 주장한다고 반박하면서 자기도 근거를 제시한게 거의 한개도 없네요.
이제 여러분이 한번 읽어보고 근거를 제시한 게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저 사람들은 어떤 근거를 대서 이야기를 해도 "근거없는 주장"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 말 꼬투리 잡는 것밖에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이해력이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 수준에 맞게 이야기해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도 수준이 훨씬 낮았군요.
우리나라가 중국에 있었다는 이런 거짓말을 논파하자, 나보고 우리나라를 비하한다는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군요. 참 특이한 관점입니다. 어떤 정치가가 "제가 집권하면 1인당 국민소득 100만불을 만들어 내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아니냐?"고 따지자 그 정치가가 "왜 우리 민족의 잠재력을 깔아뭉개는 겁니까?"라고 화를 내는 격입니다. 대체 거짓말을 반박하는 것이 왜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게 되는지요? 궁금하신 게 남은 분은 제게 직접 물어보시기 바래요.
참 재밌는 것은 이런 반응들이죠. 반박문을 보기 전에는 근거도 없이 반대만 한다고 난리를 치면서, 내 반박문을 보면 모조리 반박하는 법이 어딨냐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난리를 칩니다. 모조리 반박 당해도 할 말 없는 글이 바로 이 엉터리 글이라는 걸 깨닫기 바랍니다. 거짓말이래도 우리나라가 위대하면 좋다는 사람들, 자식이 거짓말로 1등 했다고 이야기해도 기분 좋은 분들인가 보군요.
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에른스트 폰 헤쎄-봐르테크의 [Korea]라는 책 때문에 나온 말이다. 존 로스는 중국 선교사다. 문제는 저런 말은 그 책에 있지 않다는 것 뿐이다. 국내신문의 보도내용은 이렇다.
저 글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중국 사신들이 봉황성문과 의주 사이를 왕래할 때는 조선측이 관할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런 말이 하북성이 근대 조선 것이라고 옮겨지는 것이다. 신촌에서는 기침한 사람이 동대문에서는 죽은 격이다.
위 글이 무슨 뜻인지 일반인들은 모른다는 것을 잠시 망각했다.(생각해보니 망각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본래 이 글은 그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썼던 글도 아니니까.) 일반인들은 [하북성]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봉황성은 요동에 있다. 압록강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는 않았다. 지도를 올릴테니 한번 살펴보라. (이 지도는 [영토 한국사] (안주섭 외 소나무 출판) 168쪽에 있는 것이다.)
의주 보이지? 고 바로 위에 봉황성도 보일 것이다. 그 사이에 주황색으로 칠해진 것이 바로 고대의 국경이다. 이 구역이 조선인도 청나라 사람도 못 들어가게 되어 있는 거주 금지 지역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부터 살기 어려워지자 사람들이 이 구역으로 계속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후일 간도문제를 낳게 되는 것이다. 저 무인지경을 가는 책임은 조선에 있다 이거다. 그런데 조만한 구역을 가지고 하북성이 조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래 지도에서 하북성을 찾아보라. 하북성은 북경과 천진을 감싸고 있는 땅이다. 우리나라 경기도와 비슷한 셈이다. 초록색으로 칠해 놓았으니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저 지도에는 표시도 할 수 없을만큼의 관할구역, 그것도 무인지대 관할구역을 가지고 저 큰 땅까지 먹으려 드는 셈이다.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훌륭하다.
압록강 북쪽의 중국 성이 있는 곳까지 조선이 관할했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하북성까지 조선 땅이었다는 이야기로 둔갑시키는 실력은 참으로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럼 관할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전근대 시절의 국경은 철조망 쳐놓고 군인들이 나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 사이에 적당히 공지를 두고 있다. 봉황성은 당시 중국 최전방의 성(조선과 사이에서)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오는 것은 조선이 알아서 오도록 해라. 우리는 책임 없다. 이런 뜻이다. 존 로스(John Ross)의 책 [History of Corea - Ancient and Modern]에 실려있는 지도도 한번 보자. 색은 내가 넣었다.
주황색으로 그어놓은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8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핑안도] [함깅도] [절라도] 등등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푸른색으로 처리한 것이 바로 [얄루 리버] 즉 압록강이다. 붉은색으로 밑줄 그어놓은 것이 [랴오퉁] 즉 요동이다. 중국어 발음으로 적어놓은 것을 알 수 있겠다. 대체 이렇게 버젓이 우리나라 지도를 떡하니 올려놓았는데 어떻게 이 책이 하북성이 우리나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되겠는가? 이 책이 하북성이 우리나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면 우리나라 지도에 하북성을 포함해서 그렸어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며 살자고요. 아참, 귀찮아서 안 넣었지만 저 책에는 3세기 우리나라 지도도 있다. 한반도 안에 마한, 진한, 변한을 다 표시해 놓았다. 이 사람들 주장대로 하면 대륙에 있어야 하지 않나? 웃음만 나올 뿐. 결국 이런 이야기는 미스테리도 뭣도 아니다. 독해력이 없는 인간이 얼핏 본 구절을 가지고 상상에 상상을 더한 다음, 얼라리? 이해가 안 되는걸? 이렇게 중얼거린 헛소리에 불과하다. 어떤 글을 보니 나보고 감정적이라며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대보라고 하던데, 해당 책에 없는 구절 없다고 하고, 거기 실려있는 지도까지 올려준 이상 대체 뭘 보여줘야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읽어나보고 지껄이고들 있는 걸까?
2. 중국의 '중국고금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있다. 중국고금지명사전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금과옥조다. 저 사전은 중국지명에 대해 각종 사서의 기록을 모두 옮겨놓은 책인데, 시대를 따지지 않고 자기 주장에 유리하면 다 채용해서 견강부회하여 자기 주장에 이용해먹고 있다. 저런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이 말이 왜 나왔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걸 물으면 어떡하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자기들이 해당 구절을 찾아내서 제시하든지... 원.
이자들의 주장은 대개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고(그것도 대부분 조악한 한문 실력으로 오역했기 때문에 유리하게 해석되는 것이다. 오역을 지적해주어도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이 등장하면 "조작!"이라고 외치면 그것으로 끝이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다시 되새김질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글쓴이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겠다는 것, 이해한다. 역사공부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말에는 함정이 있다. [좋은 말]이라는 말을 넣어서 특정한 품종을 얻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몽골은 제주도라는 섬을 통째로 목장으로 만들어버린 것 뿐이다. 이런 간단한 문장 안에도 사람을 현혹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들의 실상이다.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말들을 어떻게 날랐는지 궁금하다는 사람도 있더라. 당연히 배로 나르지... 그걸 의문이라고 내미는 걸까? 충렬왕 2년에 몽고말 160마리를 제주도로 들였다는 기록이 버젓이 있다. 후일 기황후는 원나라 황실의 말들도 제주에서 기르게 한다. 이때문에 제주에는 강력한 친원파들이 들어서게 되고, 뒷날에는 공민왕 살해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결국 1374년 최영 장군이 제주도로 들어가 반란을 진압하기에 이른다. 제주도 목장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와 지명] (김기빈 / 살림터)을 참고하기 바란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중국 측을 설명하는 [위 촉 오의 병력]은 사서에 적힌 결과를 적용하지 않고 [실제로는] 이라는 말을 적어서 현대의 연구결과를 적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쪽은 최치원이 써놓은 옛날 기록(즉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한창 왕성할 시기에는 강한 군사가 1백만이나 되었으므로, 남의 오월을 침략하고, 북으로 유연, 제로를 위협하였습니다.]라는 구절이다.)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자치통감]을 보면 조조는 손권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군 80만]을 거느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것은 [실제]를 적용하고 어떤 것은 [적힌 것]을 주장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이런 수법이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런 것을 이중잣대라고 부른다. 수양제가 동원한 백만대군(여기에 보급병력까지 합하면 2백만이 된다.) 이런 것은 왜 예로 들지 않을까?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반도에서 그게 왜 불가능하겠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옛날에 내가 증명해 준 적이 있다. 또한 올해(2005년) 호남지방에만 폭설이 내린 것도 한번 생각해 봐라.
위 링크를 가보면 자세한 반론이 있다. 퍼간 글만 읽는 사람들은 위 링크를 못 가보니 이 글이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퍼가지 말라고. 이 글 안에는 저렇게 링크된 글이 여러 개 있다. 어떤 이는 반박을 하려면 책 한 두권 읽은 실력으로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던데, 언제 나를 봤다고 책 한두 권 운운하는지 알 수가 없다. 본 블로그에는 이런 황당한 주장에 대한 반론이 하나 가득하니 읽고 이야기해주기 바란다. 어떤 한심한 반론을 보니까 현대는 환경오염 따위로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지만 과거는 그럴 수 없다고 써놓았더라. 그러니 퍼가지 말고 링크 좀 챙겨보라고 했잖냔 말이다. 여기 있는 링크에 가보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그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긴 조선도 중국에 있었다고 믿는 정신이상자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겠지만.
6.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 조선 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정용석이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라는 책을 쓰면서 시작된 것인데 그 책에서는 삼국시대에만 메뚜기 피해가 있다는 식으로 쓰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절대 메뚜기 피해가 일어날 수 없다고 그 책에서 누누이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정용석에게는 불행히도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도 메뚜기 피해가 적혀 있다. 이 점을 지적당하자 일부 재야학자는 드디어 조선도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다. 이런 글을 옹호하는 이들은 먼저 입장부터 명확히 해야한다. 조선도 중국에 있었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점부터 입장을 밝힌 뒤에 증거로 삼아주기 바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메뚜기 피해가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온다고 알려주자 삼국사기에 나오는 메뚜기는 [수퍼 메뚜기로 비황飛蝗이라고 쓰며, 일반 메뚜기와 다른 것이라고 우긴 인간들이 있었다. 그에 대해서도 반론을 내려준 바 있다. 메뚜기 문제 (98/04/27) [클릭] 저 옛날 이야기가 아직도 돌아다니다니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근거없는 이야기. 애신각라가 신라를 사랑하라는 말이라는 해석과 더불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일뿐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천문학 연구 결과를 들어 신라가 양자강 중류 지방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마 그 시대에는 양자강 중류지방을 만주라고 불렀나 보다.
이 주장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궁금했던지라 조금 찾아보았다. [만주원류고]란 청 건륭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1771년 아계阿桂라는 사람이 편찬. 문화 전통이 없는 만주족이 한족보다 나은 종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식적으로 만든 책이다. 자기네 역사로는 당연히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까지 죄다 자기네 것처럼 그 안에 집어넣었다. 말하자면 [만주원류고]는 청나라에서 행해진 동북공정이었다. 이제와서 재야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 만주족도 우리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역사책이 두고두고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다. 여진족은 우리와 신화도, 언어도 공유하지 않는다. 물론 역사도 공유하지 않았다. 재야들은 공유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이 책은 신라, 백제, 부여, 발해, 숙신, 말갈 등등 우리나라 및 만주의 제 국가들을 다 언급하고 있는데 고구려는 쏙 빼놓고 있다. 왜 그럴까? 발해 편을 보면 대조영이 본래 고려별종이었다든가, 속말말갈이 고구려에 속해 있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편집해 놓았다. 이 책의 음흉한 속셈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본론으로 돌아가자. 위에 언급한 문제의 글은 이런 것이다. 표점은 내가 찍었다. (이런 일로 표점까지 찍으며 이런 글을 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선 저기 첫대목에 나오는 [근안謹案]이라는 말에 주의하라. 이 책은 기존 사료에 있던 글들을 모은 다음에 청나라 학자들의 해석을 [근안]이라는 이름으로 붙여놓았다. 즉 이후에 나오는 말은 어떤 사료에 있는 말이 아니라 그냥 지네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 나와있는 이야기를 대단한 사료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저 인용된 문구의 빨간 부분이 재야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대략 번역하면 이렇다.
삼가 살피건대 신라는 처음에 백제에 부용되었으나 후에 인근의 가라, 임나 백제 등을 겸병하였다. 그 강토를 살펴보면 동남으로 지금 조선의 경상 강원 2도요,서북으로는 길림, 오랍에 이르고 또 서쪽으로는 개원, 철령 부근이다.당 현경(656-660년) 이후에 백제 옛땅과 고려 남쪽경계까지 얻어 동서로 구백 리, 남북으로 천여 리를 얻었다. 개원(713-741) 이후에 발해가 강성하여 그 서북 경계를 모두 병합하였고 신라는 압록강 이남의 땅만 차지하였다.
이 글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하나 짚어보자. 우선 이 글은 신라가 통일 전쟁 이후 9주를 설립했을 때의 영토를 설명한 글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다음 [만주원류고]는 고구려를 의도적으로 뺐다고 했는데, 그에 맞춰 신라의 영토를 고구려의 영토까지로 확장해 놓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위의 문장을 보면 고구려를 병합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역시 고의로 없애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고구려 이야기를 하면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졌고, 그곳에 안동도호부가 설립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말갈이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결국 당(한족)에게 말갈(여진족)이 복속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싫었기 때문에 고구려를 빼버리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땅은 발해가 당으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땅이 신라 것이 되었다고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조작을 대충 하다보니 [만주원류고] 안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신라9주 조의 마지막 항목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至九州之設,東至吉林, 西至廣寧, 跨海蓋而包朝鮮幅員式擴矣
앞의 문장과 무엇이 다를까? 길림이 앞의 글에서는 [서북]이었는데, 이번에는 [동]이 되었다. 방위가 왜 이렇게 들쑥날쑥할까? 윗 글을 쓸 때는 신라 입장에서 서북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밑의 글은 고구려 영역을 모두 신라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런 황당한 사서가 [만주원류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만주원류고] 이외에는 이런 황당한 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만주원류고 안에서 밝혀야 하는 것은 청황실이 왜 이런 사고를 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생각한 것을 가지고 고대사를 꾸며대는 일이 아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이런 시각이 이런 자들이 역사를 보는 자세다. 세월이 변해도 언어가 변하지 않고, 지명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영도의 판타지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라도 읽어보기를 바란다. (언어가 변한다는 문제를 재미있게 써놓았으니...) 중국의 지명도 한반도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국의 대표적 수도로 모든 이들이 말 들어봤을 [장안]만 해도 [호경], [함양], [장안], [서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저 [함양]은 경상남도에 있는 지명이니 장안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겠는가?
더구나 위 주장은 교묘한 사기극이다. 가령 계백장군이 결전을 펼친 장소는 [황산벌]인데, 재야학자라는 인간들은 [황산]이 그곳이라고 주장한다. 사비성에 흐른 강은 [사자수]인데 [사수]가 그곳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견강부회해 놓고는 [모든 지명]이 다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자음만 같으면 같은 것이라 주장하고, 글자 중 하나 둘 빠지거나 다른 것은 다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체 뭐가 [모든 지명]이냐?
나는 심지어 석탈해가 석씨 일족이 중국의 후조(後趙)를 세운 석씨들과 관련이 있다는 황당한 글도 본 적이 있다. 석탈해의 석은 昔이라고 쓰고 후조의 석씨들은 石이라고 쓴다. 오늘날 한국어의 발음으로 똑같이 읽는다고 저런 주장을 늘어놓으니... (한숨) 지명 가지고 장난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인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멋진 지도 하나가 있다. 중국이 사실은 한반도에 있었다는 [중국재한반도설]. 한번 감상해보자.
어느 환빠(환단고기 빠돌이) 게시판에서는 이 지도를 보고 [우리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증명하는 지도가 올라왔다]라고 좋아했다고 한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삼국사기를 읽어보면 수양제의 별동대가 압록강을 건넌 뒤 평양성에서 물러나다가 일격을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청천강 설은 그런 기반 하에 나온 것이다. 평소에는 김부식을 중화주의자라고 있는대로 깔아뭉개다가 이럴 때는 권위있는 학자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사실 재야학계에서 김부식을 보는 입장도 둘로 나뉘어져 있다. 오래된 재야들은 김부식을 개무시한다. 중화주의가 골수에 뻗쳐 우리역사를 왜곡날조하고 역사서를 모두 불태운 개망나니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려가 중국땅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김부식이 적어놓은 기록에서 대륙고려나 대륙삼국을 읽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김부식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렇게 입장들이 다르기 때문에 한가지로 재야사학계를 공박하기는 어렵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그래서? 남한에 아파트가 서 있으니 미국 땅이라고 주장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서울에 관제묘가 있으니 중국땅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경상남도에 왜식 성이 세워져 있으니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더구나 저 이야기는 내몽골자치구와 요녕성의 경계 부근에서 발견된 성에 대한 이야기다. 지도에서 내몽골 자치구가 얼마나 넓은 땅인지, 또 요녕성과의 경계라면 어딘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위에 중국 지도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고구려 영토와 별 차이도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으리라. (물론 별 차이 없어보여도 사실은 상당히 넓은 지역이 된다.) 고구려가 한때 이 지역에도 진출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몽골까지 다 우리 땅이라는 주장으로 확대해석하면 곤란하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닮은 부분도 있고, 닮지 않은 부분도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고구려칸이라니? 이런 헛소리는 처음 본다. 이 글의 본 출전은 이것이다. [주간조선] 바이칼에선 동명성왕을 ‘고구려칸’이라 부른다 [클릭]
이 글의 해당 구절은 딱 이거 한 줄이다.
심지어 동명왕을 코리족 출신의 고구려칸(Khan)이라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 [소름끼치도록]이라는 부사어를 넣어서 사람들의 오판을 유도함과 동시에 원문에는 있지도 않은 [모시고 있다]를 넣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위 글을 쓴 정재승이라는 사람도 국수주의 사학에 푹 빠진 인간이며, 물론 역사학자도 아니다. 이런 종류의 글에는 마땅히 전문가인 이선복 교수와 같은 사람이 한 "북방지역의 문화상이 ... 보면 볼수록 우리와 틀리는 점들이 점점 더 많음을 실감하고 있다."(이선복, 고고학 이야기 p174)는 말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위 기사를 클릭해 보았으면 알겠지만 저 주장은 바이칼 호 부근의 부리야트족이 고구려와 뿌리가 같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다. 그럼 아래 그림을 한번 보기 바란다. Y염색체로 비교한 민족간 도표다. 한민족은 도표에 없는데, 북방한족과 일본인 사이쯤으로 보면 된다.
보다시피 부리야트족과 북방한족-일본인 사이의 거리는 엄청난 것이다. 특히 부리야트족은 Y염색체 하플로그룹 D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민족과는 거의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들이 이주해서 우리 조상이 되었다고 하거나 고구려족이 이동해서 몽골족이 되었다고 하거나 다 틀린 말이다. 몽골족과 우리는 신석기 시대 이전에 이미 갈라진 사이라는 것은 보도도 되었다. 대쥬신의 환상 - 몽골족과 한민족 [클릭]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치우를 중국에서 고리국 황제라고 이야기한다는 말은 처음 본다. 황제라는 개념 자체가 진시황때 만들어진 것인데 무슨 헛소리인가? 일부 사람 중에는 삼황오제 중의 황제黃帝와 황제皇帝를 구분하지도 못하고 황제가 진시황 전에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진시황이 자신은 삼皇과 오帝보다도 뛰어나다고 해서 만든 칭호가 [皇帝]다.
[사기] 본기를 한번 보자. 진시황본기 26년조에 진시황이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寡 人 以 眇 眇 之 身 , 興 兵 誅 暴 亂 , 賴 宗廟 之 靈 , 六 王 咸 伏 其 辜 , 天 下 大 定 。 今 名 號 不 更 , 無 以稱 成 功 , 傳 後 世 。 其 議 帝 號 。 과인이 보잘것 없는 몸으로 군사를 일으켜 폭란을 토벌한 것은 종묘의 혼령에 힘입은 바로 6국의 왕들이 모두 처벌되자 천하는 안정되었다. 지금 명호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동안 이룬 공을 후세에 드러낼 수 없고 후세에 전하지도 못하리라. 제호를 논의하라.
朕 為 始 皇 帝 。 後 世 以 計 數 ,二 世 三 世 至 于 萬 世 , 傳 之 無 窮 。 짐이 처음으로 황제가 되었으니(시황제라는 말의 유래가 이것이다.) 후세에는 수를 세어서 2세, 3세라고 하여 만세에 이르기까지 무궁하게 전하게 하라.
자, 이제 진시황 전에는 황제라는 호칭이 없었다는 것을 알겠는가?
그럼 위에서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워낙 헛소리로 이루어진 근거가 많기는 한데, 보통 들이대는 것 중 하나가 [사기]의 주석 중 이 부분들이다.
應 劭 曰 : 「 蚩 尤 , 古 天子 。 」 응소가 말하기를 치우는 옛 천자라고 했다. 孔 安 國 曰 「 九 黎 君 號 蚩 尤 」 공안국이 말하기를 구려의 임금 호칭이 치우라고 했다.
우선 저 내용은 [사기]의 내용이 아니라 후대의 학자가 붙인 주석이라는 것을 알아두자. 어디를 보아도 [皇帝]라는 말은 없다. 없는 말도 지어내는 것이 저들의 특징이다. 더구나 많은 일반인들은 [천자]라는 말이 [황제]라는 말과 같은 것인 줄 안다. 그 점을 이용해서 재야라는 것들이 혹세무민하고 있는 것이다. 천자와 황제는 같은 말이 아니다. 그리고 천자라는 말이 진시황 때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쉽게 이야기하자. [맹자]를 읽어본 적이 있는지? 맹자에 보면 걸핏하면 나오는 말이 [천자]다. 맹자가 진시황보다 훨씬 이전 사람이라는 것도 알려줘야 하겠지? 천자라는 말은 황제라는 용어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혹세무민은 제발 그만둬라.
또한 바로 뒤에 [치우는 천자가 아니라 제후]라고 되어 있는 글은 물론 소개하지 않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구려九黎]라는 발음이 [고구려高句麗]와 비슷해서 이 사람들은 구려가 고구려 혹은 고구려의 전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말할 근거가 없다. [구려九黎]가 문헌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춘추시대 각국 역사를 기록한 [國語]라는 책이다. 주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지은 책이다. 좌구명은 공자 시대 사람이다. 고구려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저 구려라는 것은 중국 남방의 종족인 묘족苗族의 나라로 장강과 한수 일대에 살고 있는 종족을 가리킨다. (한문을 모르는 무식한 인간들이 묘예苗裔라는 말을 [묘족의 후예]라고 해석하면서 온갖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묘예란 [후예]와 같은 단어일 뿐이다.) 치우가 묘족의 추장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저 말을 한 공안국孔安國은 누구인가? 공자의 11대손으로 한나라 무제 때 사람이다.
치우는 우리 민족과 아무 관련도 없다. 헛물 켜지 말기를. 12번같은 주장은 중국인들이 동아시아 전체를 지배하기 위해 지껄이는 헛소리에 우리가 장단맞춰주는 격이다. 제발 정신차리기 바란다. 심지어 재야사학자 중에는 3황5제가 모두 한민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의 주장에 따르자면 치우는 동족상쟁을 일으킨 악당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렇게 주장하고도 치우는 위대하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재야학자들 중에는 유교-불교-기독교까지 모두 우리나라가 발생지라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교-불교-기독교를 외래종교라고 죽일 듯이 미워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중국인들은 황제黃帝(제발 한자가 황제皇帝가 아니라는 걸 살펴보아주기 바란다.)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데, 황제가 동이족으로 우리 민족이면 중국의 동북공정은 하나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족漢族도 사실은 동이족이었으니, 그들이 자기 조상 역사를 찾겠다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이렇게 보면 을지문덕이니 연개소문이니 다 동족과 싸운 나쁜 놈들일 뿐이다. 이런 한심한 논리가 재야학자들의 논리 밑에 숨어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저 동이東夷라는 말에 있다. 동이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이 전해종 교수다. (역사학자들이라면 친일 사학을 한다고 찌질대는 인간들에게 먼저 이야기한다면 전해종 교수의 집안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조부와 부친이 모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주어지는 보훈금을 전해종 교수는 장학기금으로 내놓은 바도 있다.) 도서관에 가서 전해종 교수의 [동이전의 문헌적 연구]라도 읽어보면 좋겠지만, 그런 열의는 흔한 것이 아니리라. 그러니 여기서 쉽게 말해주마. 선진시대(중국 진시황 이전을 선진시대라 부른다.)의 동이는 우리민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 시대의 동이는 산동, 강소 등 중국 동해안 일대의 종족을 가리킨다. 이들은 일찌감치 중국에 흡수되었다. 본래 [제하]라 불리는 중원에 살던 중국인들은 자기 영역밖의 종족들을 오랑캐라 생각했는데, 그중 동쪽에 살고있던 이들을 [동이]라 불렀을 뿐이다. 중국이 통일된 이후 동이는 통일 중국 동쪽의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그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중국인들에게 [동이]라 불렸던 것이다. 그러니 은나라가 동이였다라든가 하는 이야기가 중국인 학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황인종이라고 하면 다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동이라고 하면 다 우리 조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동이가 훨씬 큰 집합인 것이다.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이 이야기를 주장하는 중국학자들도 있다고 하더라.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당에 의해서 점령당한 백제인들이 대부분 중국으로 끌려갔고, 그래서 중국인이 되었다는 흑심을 깔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대국가 죄 중국에 있고 후손들도 중국에 살고 있으면, 여기 살고 있는 우리는 대체 뭘까? 백제가 우리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있던 곳도 중국이고 후손들도 중국에 살고 있는데? 더구나 백제 8대 성씨 중 진 씨와 국 씨, 연 씨, 묘 씨(묘씨의 경우는 재야사가들이 [수서]에 나오는 묘苗가 백苩의 오자라는 것을 모르고 일어난 해프닝이다)는 우리나라에 엄연히 있는 성씨다. 저런 주장에 등장하는 사沙 씨가 중국에 있다는 등의 소리는 사실은 사씨가 아니라 사택 씨라는 것을 고의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국사 시간에 [사택지적비]라는 이름을 들은 기억은 있겠지? 사택이 성이고 지적이 이름이다. 목씨 같은 경우도 실제로는 木刕 씨다. 木刕 씨가 중국에 있다고? 최소한 이런 주장을 하려면 중국 해당 성씨의 사람들이 조상으로 백제 사람을 족보에 올리고 있는지나 확인한 다음에 떠드는 것이 역사학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 점을 확인하고 싶다면 백제시대 성이 중국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황당한 주장에 대하여 [클릭] 읽어보면 알겠지만 백제와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성씨는 하나도 없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거짓말이다. 박혁거세의 무덤은 경주에 가면 금방 찾을 수 있다. 경주는 땅만 파면 신라 유물이 나온다. 대체 그 유물은 뭘까? 중국에서 파와서 거기다 묻어두었겠냐? 그럼 석가탑, 다보탑은 왜 안 묻어두었겠냐? 무구정광다라니경이나 석가탑에서 나와 그동안 보관해 두었다가 과학의 발전으로 해독하게 된 불국사중창기(고려때 기록)는 뭘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렇게 우리가 원래 중국에서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토불이하기 위해 중국 수입 농산물만 먹고 살고 있겠지?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역시 거짓말이다. 대체 뭘 수출했는지는 대지도 않고 근거도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품목도 대지 않고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심하지 않은가? 오대사로부터 원사까지 뒤져보면 고려가 중국에 조공무역한 내역은 수정, 황동, 백금, 인삼, 비단, 말, 구리, 모시, 대나무 공예품 등이다. 조선 시대의 무역에 대해서는 책이 많다. [조선후기 대청무역사 연구] 같은 책을 읽은 뒤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그때 이야기 해보길 바란다.
그 동안 궁금했는데 이 말의 근원은 조선대륙설을 주장하는 김종윤이 한 말이다. 그는 자기 책에서 이렇게 말해 놓았다.
조공 품목을 보아도 한반도에서는 나올 수도 없는 사슴뿔이며 물소뿔이며 표범가죽이며... 이런 식이다. 어느 교수라는 이에게 물으니 그 당시에는 이런 동물들이 있었을 것이거나 수입을 해서 갖다바쳤을 것이라나!
저 중 사슴이나 표범은 당연히 한반도에 사는 동물인데, 뭐가 문제일지 모르겠다. 그럼 물소는? 물론 물소는 한반도에 살지 않는다. [명사] 조선전을 한번 보자. 성종은 명에 사신을 보내 이런 요청을 한다.
활의 재료로 소모되는 소뿔에 대해서는 윗나라를 바라볼 뿐입니다. (중략) 이제 바라건대 특별히 활에 쓰이는 뿔의 수매를 허락하여 다른 번국처럼 금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리하여 조선은 각궁에 사용되는 물소뿔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양이 적어 뒷날 다시 2배로 수입량을 늘여달라 청원하고 허락을 받기도 한다. 그럼 김종윤이 물소뿔을 조공으로 바쳤다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착각인가? 그것은 병자호란 후 청이 요구한 조공품목에 들어있기 때문에 일어난 착각이다. 조선에서는 골치아픈 문제였다. 그래서? 이것을 없애달라고 청원을 한다. [조선왕조실록] 인조 10년 기사에 이렇게 실려있다.
물소뿔 [水牛角]은 원래 토산(土産)이 아니라서 진정 갖추어 보내기 어려우나, 그 밖의 잡물(雜物)은 모두 원래의 수효대로 보내겠다.
하나 더 추가한다. DC역사갤러리에 올라온 글이다. 적은 수의 자료를 가지고 위치를 추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열 명의 사람에게 설문조사를 하고나서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DC역갤]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클릭]
박창범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른다 해도 신라 후대로부터는 한반도에 나라가 있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멋진 자세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주기도 쉽지 않다. 일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광대한 지역에서 관측 가능한지 보여주는 일식 동영상을 첨부한다. 2008년 8월 1일 일식에 관한 것이다. 저 지나가는 원형 그림자가 달그림자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위의 것과 동일하다.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문항 수만 불려놓는 것도 파렴치한 짓이다. 이 글에는 60개를 맞추려고 같은 소리를 하고 또 한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가만보면, "천문학 박사가 주장한 내용은 일반인이 반론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럼 너희들은 역사학 박사들이 주장한 내용을 왜 찧고 까부는데? 더구나 어떤 인간은 전북대 이문규 교수의 글을 "일개 대학생이 펼친 반론"이라고 하더라. 이문규 교수의 박사논문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서남학술총서의 하나로 [고대 중국인이 바라본 하늘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출판해 놓았다. 읽어보고 이 교수가 전문가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바란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의 각도별 인구를 합산한 뒤에 내놓은 결론이다. 그렇게 세면 조선 시대 인구가 형편없이 줄어든다. 이 부분에서 이해가 안 간다고 하는 분이 있는 것을 보았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세종실록지리지 경기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요즘은 왕조실록 검색이 웹에서 되니까 한번들 찾아보라.)
"호수가 2만 882호, 인구가 5만 352명[본조는 인구의 법이 밝지 못하여 문적에 적힌 것이 겨우 열의 한둘이 되므로, 매양 나라에서 바로잡으려 하나, 너무 인심을 잃게 되어, 그럭저럭 이제까지 이르렀으므로, 각도 각고을의 인구수가 이렇게 되었고, 다른 도들도 모두 이렇다.]"
즉 인구 조사에 걸리면 세금을 내야하는데, 그걸 기피하는 바람에 대충대충 만들어졌다는 거다. 자세히 적으려면 인심 야박해지니 그렇게 하지 못해 각 도의 인구 수가 형편없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조사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적혀있는데도 이 이야기를 앞으로도 몇 번이나 우려먹고 있다. 가령 21번에서 또 나온다.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 평양성을 장안성이라고 불렀다는 데서 착안한 발칙한 아이디어다. 이런 결과 어떤 이는 중국의 장안은 페르시아에 있다는 등의 헛소리를 하게 된다. 최근에는 중국의 장안은 티벳에 있었다는 주장도 보았다. 나는 중국의 장안이 경상남도 함양군이었다는 말을 차라리 믿겠다.
최근 안학궁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안학궁의 경우 남문 크기가 남대문의 3배다. 안학궁 중궁의 크기가 87미터로 30.7미터의 경복궁 근정전에 비해 거의 3배가 되는 규모다. 중국이라면 침을 질질 흘리며 좋아서 중국인들의 문화유산까지 우리 것이라고 사기치려는 이들은 잘 보아야 한다. 안학궁 중궁의 크기는 자금성 태화전보다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럼 대체 평양에 있는 안학궁은 누가 지어놓은 거냐? 저들은 외계인들이 지어놓은 줄 아는 모양이다. 이렇게 조상들의 화려하고 장엄한 유산까지 부정하는 것이 바로 저들의 행태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있어야한다. 저 인간들은 성이 중세 유럽에 나오는 거대한 규모인줄만 알아서 저런 소리를 한다. 경주 시내에만 성이 6개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18번에서 이미 다뤘다. 그런데 이 주장은 본래 삼국만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할 때 나왔던 주장 중 하나였다. 즉 삼국은 이렇게 인구가 많은데, 조선은 인구가 적으니 삼국이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쓰였던 것이다. 이 60항목은 그런 것을 가리지 않고 써제낀 것이어서 조선도 중국에 있었다고 하는 주장도 여러 개 포함하고 있다. (아래 읽다보면 나온다. 우선 23번 항목을 먼저 읽어보면 좋겠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과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끼리 싸워서 결론을 좀 낸 뒤에 와줬으면 좋겠다. 조선이 중국 땅에 있었다는 사람 이야기로는 얄타회담 때 전승국들이 한국의 힘을 무서워해서 한민족을 한반도로 보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도 나와 있다. 어떤 게시판에서 자기 부모에게 대륙에서 왔는지 물어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 할머니는 1900년생이신데, 아직도 고향 산청에 가면 우리 할마니를 아시는 분들이 있다. 1945년에 집단 이주? 이런 말을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중국 대륙내의 요동이란 수나라때 설치된 요산현을 가리킨다. 지도에서 <요>자만 나오면 요동이라 우기고 있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어떤 지돈지 나도 보고 싶다. 지난번 유조변 지도 [클릭]같은 황당한 내용일 것이 분명하다. 위에서 이미 존 로스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대체 그 지도에 중국 대륙의 일부를 지배하고 있던가?
위 21번에서는 조선의 인구가 37만 명이라고 했다. 37만 명의 조선 인구가 한반도와 만주, 중국 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근거도 없이 선거철에 상대방 비방하는 마타도어처럼 아무렇게나 지껄여 놓은 글에 대해서 어떻게 근거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내가 근거를 대지 못하는 주제에 어떤 건지 보고싶다는 소리나 지껄인다고 비방한다. 개념이 어디에 탑재되었는지 궁금하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산동성 봉래시 전설 - 이세민의 형이 고구려와 싸우다 전사했다 (실제 역사 : 이세민의 형은 이세민이 정변을 일으켜 죽여버렸다. 봉래시는 고구려 원정군이 배타고 떠나는 곳이다.) 산동성 즉묵시 전설 - 연개소문에게 사로잡힐 뻔한 당태종을 신라 용양장군 김걸이 구출하고 김걸은 전사했다. 강소성 숙천시 전설 - 연개소문이 침입해서 당군이 연패를 하는 것을 보고 설인귀가 연개소문을 쫓아버렸다는 전설, 강소성 염성 전설 - 이세민이 즉위 전에 이곳을 순시하다가 연개소문을 만나 도망쳤는데, 진흙탕으로 잘못 가서 말을 버리고 동굴로 숨었다. 거미가 거미줄을 쳐주는 통에 살아날 수 있어서 황제가 된 뒤에 절과 탑을 세웠다. 절 이름은 정혜사, 탑은 몽롱탑이라고 한다는 전설. 이런 전설은 서양에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곳이 고구려땅이라고 주장하는데, 전설과 역사는 다르다는 상식 정도는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전설이 생긴 이유는 이런 이유일 것이다. 고구려 공격 시 산동과 강소에서 징병이 있었고, 이들이 고구려 전쟁에서 돌아와 전해진 전설인 것이다. 왜 군주를 모독하는 전설이 남았냐고? 오늘날 노무현 대통령 욕을 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봄이 어떨는지? 자신을 괴롭힌 권력자를 칭찬하는 전설이 남아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순진한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은 발해가 원정을 해서 장문휴 장군 지휘 아래 휩쓸고 다녔던 지역이기도 하며, 고려말에 고려군이 파병되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원나라가 장사성 반란을 진압하러 갈 때 고려군 2만 3천명도 이곳에 동원되었다. 이 전설은 그런 이유로 발해나 고려군에 의해서 생겨났을 수도 있다. (고려군의 이야기는 고려, 강소성을 누비다 [클릭]를 참조하라.) 발해도 스스로를 고려라고 불렀으므로 중국인들은 혼동을 일으키기 쉽지 않았겠는가?
전설을 따르면, 설인귀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전설도 있다. 중국사서에는 설인귀가 분명히 중국 사람이니 설인귀가 태어났다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은 중국 땅이어야 할까?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우선 위 중국 지도에서 강소성을 찾아보기 바란다. 이 주장은 그런 것이 있으니 거기가 우리땅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 서울을 한자로 한성漢城이라 썼다. 서울이 중국 땅이었나 보다.
이것은 중국측 강소성 금호현 사이트에 나온 글이 출처라 한다. 우리나라에 떠도는 글과 중국 사이트의 글은 좀 다른데, 우리 측에 있는 글이 가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성의 이름은 高麗城이 아니고 高黎城이라는 것과 이것이 송(宋) 영종(英宗) 1064 ~ 1067년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고구려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궁금한 분은 직접 살펴보시라. 고려성 [클릭]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25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서울 시에 중화동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중국 영토였었나 보다. 서울에 테헤란로가 있으니 페르시아 제국은 한반도까지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후손은 한국말 하던가? 고구려 역사가 중국 것이라는 증거로나 이용될 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중국의 동북공정이 주장하는 바는 고구려인이 중국에 흡수되었으니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에 귀속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인데, 위와 같은 주장은 바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편들어주는 결과를 빚게 된다.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깨닫고 정신 좀 차리기 바란다.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증거나 제출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위와 같이 [수많은 성]이라는 애매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이 이들이 흔히 하는 짓이다. 더군다나 이 내용은 이미 25, 26번에 나온 말이다. 같은 말로 문항수 부풀리기의 수법이 또 나온 것이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고려할 가치가 없는 말이다. 지명에 대한 부분은 이미 위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모두 설명이 된다. 이들은 현재 부여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할까? 어떤 재야학자는 무녕왕릉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묘지명이 초라하다는 것이 그 사람이 내놓은 증거였다. 지명 관련해서는 29, 30, 31이 모두 동일한 이야기다. 48, 49번에도 같은 종류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위 항목과 마찬가지다. 위 항목과 같이 이 역시 문항 수 부풀리기. 이런 내용이 문항 수 부풀리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은 가슴에 손을 얹고 29번과 30번이 뭐가 다른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러니 산성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성들은 대체 누가 언제 지은 것일까?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서 이렇게 애착이 없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모두 조상의 나라 중국으로 가서 살아주길 바란다.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위 항목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말 찾아보기는 한 건지 매우 의심스럽다. 중국애들도 알고 있는 것을 김부식은 왜 몰랐을까? 고려도 중국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 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이미 말한바와 같이 저 동네에는 삼국만 중국에 있었다, 고려도 중국에 있었다, 조선도 중국에 있었다라는 세 종류가 존재한다. 김부식을 보는 입장도 이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널을 뛴다. 삼국만 중국에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은 때려죽일 놈이 김부식이다. 그런데 고려도 중국에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은 김부식을 찬양하기까지 한다. 이 [한국사 미스테리]라는 글에는 이런 관점들이 혼재되어 마구 실려있다. 이들이 바로 저 동네의 네번째 종류인데, "한국은 위대했다"라는 말만 하면 앞뒤 모순은 생각도 하지 않고 헤벌레하는 종류다.
더군다나 이자들이 주장하는 지명의 실체를 보면 정말 한숨밖에 안 나온다. 가령 [사자수]는 중국의 [사수]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토함산]은 [함산]이라는 지명에 붙여 놓는다. 또 한자漢字가 달라도 우리나라 말로 발음만 같으면 같은 데라고 우긴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서 모든 지명이 다 있다는 식으로 우기고 있는 것이다. 이따위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환단고기와 규원사화는 양립이 되지 않는 사서다. 규원사화 진본을 믿고자 한다면 환단고기는 폐기해야 한다. 더불어 규원사화의 원본이라는 것은 그것이 조선 숙종 때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규원사화는 조선 후기 단군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일 수 있다. 그 이상의 의미를 증명할 수 있는 교차증거는 현재까지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무슨 고문헌일까? 저 주장은 반절로 한자를 읽는데 우리나라가 가장 정확하다는 주장이며, 그런 주장을 통해 한자를 우리가 만들었다고 우기기 위한 것이다. 중국인을 몽땅 우리민족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에 어떤 논리도 먹히지 않는다. 중국 땅에서 출토되는 갑골문자의 주인공도 우리 민족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 말의 어순대로 쓰인 자료가 없다는 말을 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우리 말에서 빼먹을 수 없는 [를]과 같은 글자는 한자도 없다. 우리가 만든 한잔데, 우리가 자주 쓰는 발음의 한자가 왜 없는지는 생각이나 해봤을까? 이런 글자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이 주장은 임승국이 한 것인데, 그가 얼마나 무식한 주장을 한 것인지 궁금한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라.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토함산 뒤에 함월산이 있다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 (달을 머금고 달을 뱉어낸다는 참으로 시적인 이름의 산들이다. 조상의 이런 멋진 작명센스도 이해 못하는 것들...) 토함산이 화산이라는 것은 삼국사기에 토함산에 구덩이가 생기고 불이 3년간 탔다는 기록(삼국사기 태종무열왕 4년)에 의거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화구로 보기에는 너무나 작다는 것을 지적해도 못 알아듣는다. 아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이런 내용으로 추정할만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슬그머니 거짓말을 보태서 자기 주장의 권위를 높이려는 수작이다. 이 글의 원 작성자는 역사에 대한 소양이 전혀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 중국 기록이 대체 어디 있을까? 이런 식의 주장은 정말 무책임한 것이다. 중국의 문헌? 이름조차 대지 않고는 있다고 우기는 것 뿐이다. 한마디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저런 문헌을 가져올 수 있는가? 이 기록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다. 사마천의 생존 시점에 일어났던 일이므로 1차 사료가 된다. 한나라에서 파견된 장수로 기록되어 있는 인물은 좌장군 순체, 누선장군 양복이다. 이중 좌장군 순체만 기시형(육시형이 아니라)에 처해진다. 누선장군 양복은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따로 파견되었던 위산과 제남태수 공손수가 일처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이런 뻔한 기록을 무시하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유가 뭘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것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조선이 졌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공부 안 한 티를 내는 말이다. 사기 본기 효무본기 조에 보면 [그 이듬해, 조선을 토벌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사기본기 / 까치출판사 / 387쪽) 두번째로 주장하는 것은 사기에 한사군의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위만조선에서 투항한 사람들이 봉해진 곳이 한4군이라고 우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공부를 안 한 탓인지, 일부러 속이려 드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조선에서 투항하여 제후가 된 사람은 모두 다섯이다. 그러니 봉해진 곳도 다섯 곳이다. 그런데 꼭 한 사람 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사기]에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숫자도 안 맞는데 뻑뻑 우기며 그게 4군이라고 주장한다. [사기]를 보면 [조선열전] 바로 앞에 [동월열전]이 있다. 그건 읽어나 보았을까? 동월을 정벌하고 제후를 봉하는데, 이 사람들 논리대로라면 거기가 동월의 영토여야 한다. 그런데 그 봉해진 곳들이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등등이다. 동월이 전 중국에 걸쳐 있었나 보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동월 땅은 무인지경이 되었다라고 나오는 것이다. 한나라는 여기에 군현을 설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4군과 투항자들의 제후 임명은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다. 눈이 한쪽으로만 쏠리면 전체를 조망할 수 없음은 당연가지이다. 넓게 보고 살아라.
또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4군이라는 건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요서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입장이 어느 것인지 밝히지 않으면 논쟁을 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한가지 더. [사기] 기록은 1차 사료라 믿을 수 있다는 분들은 사기에 나오는 수많은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진한에 이르는 지명들이 어디 있는 건지 고증 좀 한 뒤에 계속 떠들기를 바란다. 삼국이 중국 땅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사기]에는 중국 땅 곳곳에 중국인들이 살고 있음이 아주 잘 증명되어 있다는 말씀. 그게 아니면 사마천은 조선 이야기는 사실대로 쓰고 한나라 이야기는 몽땅 거짓말로 쓴 거냐? 대체 중국은 어디 있었을까나? 하긴 나는 유방이 로마에 있었고, 항우는 파르티아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봤으니까. 이런 주장하는 사람들도 거기에 찬성하는 건가? 입장을 밝히고 이야기를 좀 해보시라니깐요.
사마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저 동네의 황당한 이야기를 해주자면, 사기가 사마천이 쓴 시기보다 수천년 전의 일까지 다루고 있으니 거짓말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그럼 환단고기는? 이 인간들은 자기들 잣대를 똑같이 들이대는 적이 없다. 삼국사기도 김부식이 천년 전 이야기를 쓴 거니 다 거짓말이겠네? 도대체가 [사기]의 그 방대한 분량을 [조선열전]이라는 한 챕터만 진짜고, 나머지는 몽땅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뻔뻔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한마디 더. 고구려의 동명성왕이 이 대목에 왜 나오나? 동명성왕은 불로장생의 인물이었을까? 궁금한 분들은 연대를 한번 확인해 보라.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아래 37번에 나오듯이 애신각라는 여진어로 "금족金族"이라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청은 본래 나라이름을 후금後金이라고 했다. 이것은 본래 아골타가 한 말에서 기인한다. 아골타는 [요遼]와 원수지간이었다. 요를 멸망시키고자 맹세하면서 요는 빈철=좋은 철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나라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는 아니다.) 그래서 쇠보다 강하고 변하지 않는 금을 자기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는 주장이 금사에 나온다. 그런데 금사 지리지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금이라는 국호는 여진 완안부의 고향인 按出虎水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다. 여진어로 按出虎는 금이라는 뜻이다. 이 물에서 금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것으로 나라 이름을 취했다고 한다. 신라 성씨가 거기에 왜 끼겠는가?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청 태종이 인조에게 삼고구두배를 시킨 뒤에는 자신들이 부모의 나라라고 했다. 옛날 동아시아는 부모-형제의 관계로 나라 관계를 정립했었다. 힘이 약한 쪽이 자식 나라가 되거나 아우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것은 역사학의 기본에 속한다. 즉 기본도 모르는 소리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저런 말을 했는지 근거를 제시한 원전을 보지 못했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이런 소리가 있다.
선조 30권 25년 9월 17일 (갑술) 004 / 여진이 왜적을 정벌하는 데 돕겠다고 한 것에 대해 명나라 병부와 주고받은 자문 -------------------------------------------------------------------------------- 병부(兵部)가 요동 도사(遼東都事)를 시켜 자문을 보내왔는데, 자문에,
“이번에 여진(女眞)의 건주(建州)에 사는 공이(貢夷)와 마삼비(馬三非) 등이 하는 말에 의거하건대 ‘우리들의 땅은 조선과 경계가 서로 연접해 있는데 지금 조선이 왜노(倭奴)에게 벌써 침탈되었으니, 며칠 후면 반드시 건주를 침범할 것이다. 노아합치(奴兒哈赤) 휘하에 원래 마병(馬兵) 3∼4만과 보병(步兵) 4∼5만이 있는데 모두 용맹스런 정병(精兵)으로 싸움에는 이골이 났다. 이번 조공에서 돌아가 우리의 도독(都督)에게 말씀드려 알리면 그는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좋은 사람이니 반드시 위엄찬 화를 내어 정병을 뽑아 한겨울 강(江)에 얼음이 얼기를 기다렸다 곧바로 건너가 왜노를 정벌 살륙함으로써 황조(皇朝)에 공을 바칠 것이다.’ 했습니다. 이 고마운 말과 충의가 가상하여 그들 말대로 행하도록 윤허함으로써 왜적의 환란을 물리치고자 하나 단지 오랑캐들의 속사정은 헤아릴 수가 없고 속마음과 말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저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니 선뜻 준신하기 어렵습니다.”
위 말에는 쥐새끼 운운이나 부모의 나라 운운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근거를 좀 제시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거라도 읽고 대체 청이 우리나라와 무슨 관계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렇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왜 미스테리일까? 이 주장은 금 태조가 고려에서 왔으니, 금나라는 우리나라. 그러니까 화북지방도 우리가 다스린 것이다라는 한심한 논리를 받쳐주기 위해 나온 이야기다. 왕의 출신에 따라 나라의 역사가 바뀐다는 멍청한 생각에 기인하고 있다. 영국 왕실은 독일에서 왔다. 그러면 영국은 독일땅인가? 노르만인 윌리엄이 영국왕이 되면 영국 역사는 노르만의 역사로 변하나?
그럼 발해는? 이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더라. 발해의 주민이 고구려계였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국내 발해전문학자들의 글 좀 읽어보고 나서 덤비기 바란다.
한가지 더 이야기해놓자. [고려사]를 보면 왕건의 조상은 당나라 숙종이다. 그러니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금나라는 커녕 고려사까지 중국에 바쳐야 한다. 고려는 당나라 후손이 세운 나라니 중국 것이고, 그 중국 것인 고려에서 금나라가 나왔으니 금나라도 중국 것이다. 또 이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일제가 강점한 기간동안은 한국사가 아닌 것이 된다. 이런 자들이 누구보고 친일파라고 짓까부는지 모르겠다. 대동아공영론에 동조동근론을 착실히 받쳐주고 있는 인간들이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건국 영웅은 외부에서 온다. [클릭]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원문 제시라도 하면서 이런 주장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식의 주장은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마구 해댈 수 있다. 내가 본 어떤 책에는 우리 조상들이 외계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 안드로메다 쯤에서 왔나 보다. 어떤 사람은 원문보여준다면서 한글로 자기 마음대로 써놓고는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대체 그런 수준으로 무슨 역사를 논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만주원류고]에서 뭘 보고 저렇게 이야기했는지 찾아냈다. 한번 보자. 괄호 부분이 청나라 학자들의 해석이다.
欽定滿洲源流考 卷七 部族 完顔 金史世紀 金之先出靺鞨氏 古肅愼地也…金之始祖諱哈富(舊作函普) 初從高麗來 (按通考及大金國志皆云 本自新羅來 姓完顔氏 考新羅與高麗舊地相錯 遼金史中 往往二國互稱不爲分別 以史傳按之 新羅王 金姓 相傳數十世 則金之自新羅來無疑 建國之名亦應取此 金史地理志乃云以 國有金水源爲名 史家附會之詞 未足憑耳) 흠정만주원류고 권7 부족 완안 [금사세기]에 금의 선조는 말갈씨에서 왔으며 옛 숙신의 땅이었다고 한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 생략) 금의 시조는 이름이 합부(옛날 기록에는 함보라 한다.)인데 처음에 고려에서 왔다. (살피건대 [문헌통고]와 [대금국지]에는 모두 본래 신라에서 왔으며 성은 완안씨라고 나온다. 고찰해보면, 신라와 고려는 옛 땅이 서로 섞여 요금사 중에 종종 두 나라의 호칭을 분별하지 못했다. 신라왕은 성이 김으로 수십 대를 전해내려갔다. 즉 금이 신라에서 온 것은 의심할 것이 없다. 건국지명도 여기서 취한 것이다. [금사 지리지]에는 나라 안에 금이 나오는 물이 있어 이름을 삼았다 하나 역사가의 견강부회로 신빙성이 부족하다.)
다시 말하지만 [按-살피건대]라고 되어 있는 것은 청나라 학자의 생각이다.
그 생각 중에서 [금이 신라에서 온 것은 의심할 것이 없다]라는 말에 나오는 [금]은 [함보]를 가리키는 것이다. 함보가 신라사람이었는지, 신생 고려 사람이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데, [만주원류고]에서는 별 근거없이 단정하고 있다. 또한 초기 기록인 [금사 지리지]를 근거없이 견강부회라고 몰아부친 뒤 자신들의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 [만주원류고]에 대해서 말한 바 있지만 여기서도 고구려를 의식하여 의도적으로 고려에서 출자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에는 조선이 신라의 계승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만주원류고]에서 삼한 및 신라, 백제를 모두 다루고 있는 것은 조선도 다 자기네 것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청나라의 동북공정 [만주원류고]에 홀딱 넘어가서 근거도 없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불쌍한 인간들이 바로 이들 재야라는 족속이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39번, 40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추가로 한마디 하자면 [부족]은 [국가]가 될 수 없다. 저 용어는 김철준이 주장한 이후 역사학에 악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용어다. 오늘날 역사학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지만, 저 말을 배운 사람들이 여전히 쓰고 있어서 사라지질 않는다. 용어가 한번 잘못 쓰이면 얼마나 개념을 해치는지 보여주는 예다. [행성]을 [혹성]이라고 자꾸 쓰는 것과 비견할 수 있다. 역시 이 글을 참조하라. 건국 영웅은 외부에서 온다. [클릭]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39번, 40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족보에는 공자를 조상으로 삼는 사람도 있으며, 중국의 유명 인물을 시조로 삼는 집안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나라 사람은 다 중국인이었다는 말일까? 따지고 보면 고려사에는 왕건의 조상이 당나라 숙종이라고 나온다. 그럼 고려사는 중국사가 되나? 이것도 역시 이 글을 참조하라. 건국 영웅은 외부에서 온다. [클릭]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그런 상식으로 생각해도 백제 북쪽은 대방에게 막혀 있어야 한다. 말갈 문제는 복잡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주장으로 백제가 중국 땅에 있었다고 한들 지리 공간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더불어 설명한 것도 본 적이 없다. 고대의 지리 주장은 상호 모순되는 이야기가 매우 많다. 그 모든 모순을 해결하는 설명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오늘날 우리처럼 방향을 정확하게 알 수도 없었고,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재야학자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대목만 뽑아내서 자기들 주장에 이용한다. 이는 사료의 자의적 취사선택으로 역사학이 금기로 삼는 방법이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그렇다. 유주자사가 관직이었으니 태수들을 거느린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자들은 이런 것을 증거로 고구려가 유주를 다스렸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려면 자사라는 관직이 고구려의 관직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고구려에는 자사라는 관직이 없었다.
사실, 위의 내용만으로 보면 미스테리라고 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역사학계에서 무척 오랫동안 논의하고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위에 써놓은 입장을 지지하지만 국내학자 중에도 나와는 다른 의견(물론 그게 삼국재대륙설은 아니다. 그런 거짓말은 역사학계 안에 설 곳이 없다.)을 내는 경우도 있다. 정말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고대로부터의 통신]같은 역사학자들이 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인터넷의 엉터리 주장들만 열심히 찾아다니지 말고, 제대로된 글도 좀 읽으란 말이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대개 이 대목은 백제요서경략설과 연관짓거나, 고구려의 오기라고 본다. 기록이 북쪽에 정통하지 못한 남중국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알아야한다. 한가지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북위]가 수전에 약해서 바다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라 추정하는데, 기병이 바다를 못 건너긴 왜 못 건너겠는가? 임진왜란이 항주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어느 게 더 비현실적일까?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고려도경에는 이렇게 나온다. "옛날에는 그 영토가 동서로는 2천여리, 남북으로는 1,500여리였는데 현재는 신라와 백제를 병합하여 동쪽과 북쪽이 약간 넓어졌고 서북쪽은 거란과 접해 있다." 여기서 옛날이라 함은 고구려를 가리키는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는 [옛날에는]이라는 부분을 똑 떼어놓고 있다. 재야학자들이 사료를 인용하는 방식이 바로 이런 식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사기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사람들은 자세히 나와있는 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기재되어 있는 사료들은 되게 좋아한다.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일반인들을 잘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이것은 칭기즈칸의 조상인 알랑-고아가 임신을 한 내용이 고주몽의 신화와 동일하다는 점, 그리고 그 부족 이름 중에 "코리"가 들어간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오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칭기즈칸의 어머니와 아내로까지 이야기가 변한 모양이다. 신촌에서 재채기한 사람이 동대문에서는 죽었다고 소문나는 격이다.
48.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명사, 선조실록, 난중일기, 이순신전서, 임진전란사, 은봉야사별록 등) 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명, 상황전개, 위치, 방위, 거리 및 전후사정이 한반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면서 꼬투리를 하나하나 잡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보면 한국전쟁도 한국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 주장의 근본은 조선이 중국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한국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최종적으로 하고 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왜인이라고 하더라. 이런 글에 흥분하는 분들은 그 결론에 만족들 하시는지? 김종윤의 책에 있는 해당 구절을 옮겨보겠다.
(1607년 중국의 [사민첩용분류학부전편]에는) 왜는 중원의 백이족이고 고구려족과 같으며 진한이나 마한 사람들이라 하였다. 그러니까 고구려인도 되고 신라의 혈통도 섞여 있으며 백제의 종족과도 같다고 하였으니, 고대로 올라가보면 조선 종족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중략) 그러한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에 한반도에는 수많은 이동민족이 모여 농경사회를 이루고 살았을 테지만 주종은 왜족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중략) 대륙의 조선이란 왕국은 소멸했어도 그들, 남아있던 민족은 19~20세기에 이르는 격동기 속에서 나름대로의 정신을 버리지 않고 중화사상을 일구면서 중화민국을 창출해냈다.
일반적으로 삼국이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뒤에 한반도로 기어들어가서 우리나라 역사를 죄다 뜯어고쳐서 한반도에 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땅의 몇 배나 되는 영토를 포기하고 한반도로 들어간 이유가 뭘까? 거기에 더해 사사건건 중국 눈치까지 보는 이유가?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자 최근에는 이성계는 중국인이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성계는 무척 바빴을 것이다. 석가탑, 다보탑도 세워놓고 무녕왕릉도 만들고, 고려 태조 능을 비롯해서 고려 청자들 묻어놓을 무덤도 많이 만들었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김종윤이 이 기록이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한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명사 인용) 조선은 3면이 바다와 접해있고 부산은 대마도와 마주보고 있고 거제는 중요하므로 울산과 한산에 많은 군대로 지키게 해야 한다. (김종윤의 해설) 왕경을 수비하는 데 있어 부산은 대마도와 마주보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부산 다음으로 거제가 중요한 지세도 아니며, 거제가 중요하여 울산과 한산에 많은 군대를 포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
먼저 조선의 3면이 바다와 접해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기 바란다. 저렇게 해석해 놓으면 "진짜 이상하군?"하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럼 원문을 보자.
朝鮮三面距海, 釜山與對馬相望, 巨濟次之, 宜各守以重兵, 幷蔚山閑山等處皆宜戍守. 조선은 삼면이 바다에 접해있다. 부산은 대마도와 서로 바라보며 거제는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 마땅히 많은 군사를 두어 각기 지키게 해야한다. 아울러 울산과 한산 등도 모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해야 한다.
대체 "마땅히 군사를 두어 각기 지키게 해야 한다."는 구절은 어디다 팔아먹었을까?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사료를 어떻게 다루는지 모르겠는가? 아직도 내가 무조건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되는지?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중국 지명도 상당수 한반도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을 왜인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지명들을 비정하는 방식은 앞에도 말했듯이 비슷한 글자 하나 찾기다. 울산은 울주라고 주장한다. 대마도는 별 이유도 없이 숭명도라고 주장한다. (지명이 비슷하지도 않군!) 애주는 악주라고 주장한다. (애주는 의주의 별칭임) 사주(지금의 사천)는 안휘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다하다 결국 두손을 든 것이 부산이다. 이 지명을 찾지 못하자 김종윤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주춤거리는 곳은 부산과 동래라는 지명이다. 이것은 한반도 전란으로 꾸미기 위한 조작의 술수가 분명한데 부산만은 완전히 창작품으로 보여진다. 한반도 내의 현재의 큰 지명은 전고가 넘어와 식재되는 것인데 부산의 전고만이 없는 것을 보면 이런 의문이 나오게 된다.
어이가 없기로 이럴 수는 없지 않는가? 지명을 못 찾으면 "지어낸 거다"라고 주장하면 된다. 역사학하기 정말 쉽다.
자, 이쯤 오면 이런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우선 여기까지 읽은 분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열혈애국자, 민족지상주의자들인데 이 사람들이 동북공정에 협조하거나, 일선동조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라고. 그렇다. 올바른 생각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동북공정을 반대하고, 일본을 우리 민족의 발아래 놓는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내 이야기는 이들의 주장은 결론적으로 동북공정을 뒷받침하게 되고 일선동조론을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옛날에 차근차근 재야사학을 신봉하는 이를 몰아붙여가본 적이 있다. 결국 자신의 논리에 파탄을 일으킨 그 사람은 "우리와 일본이 한민족인 것 맞지만, 어디까지나 우리가 주류고 걔네는 말류야!"라고 말하게 되었다. 아무튼 결론은 한일합방이다. 그럼 재야학자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유는 단지 무식해서라는 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을까? 없긴 왜 없겠는가? 가장 강력한 이유가 있다. 이런 주장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돈이 벌린다는 것이다. 또 종교의 전파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재야에서는 학자들을 [강단사학자]라고 부르는데, 강단사학자를 비난하는 가장 큰 목소리가 "재야의 주장을 인정하면 자기 밥그릇이 없어지기 때문에 재야의 주장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자기들 밥그릇이 없어지기 때문에 바락바락 우기는 것이다. 가령 내 글이 그렇게 많이 퍼져있지만 제대로된 반론 하나 쓰는 인간이 없지 않은가. (반론 좀 써달라고 읍소하는 사람들은 많더라.) 끝으로,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화교도 아니다.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경주 이씨로 조상 꼭대기까지 한국인이다. 내가 [개독교(=기독교를 비하하는 표현)]니, 짱깨 화교니 하고 날조하는 인간들이 많던데, 본래 사료조작에 도가 튼 사람들인지라 이런 것 지어내서 욕하는 거야 누워서 떡먹기일 것이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본인이 한문 실력이 안 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이 되면 기분 좋은가? 또한 이런 주장을 하게 되면 독도는 우리나라 땅일 리가 없다. 한반도에 조선이 없었다면 독도가 우리 것일 리가 있겠는가? 신라장군 이사부가 점령한 우산국도 울릉도가 아닌 것이다.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일본한테서 독도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이야기 좀 해보기 바란다.
한문 실력이 안된다고 이야기했다고 난리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 그런지 알려주마. 김종윤의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김종윤의 책에 따르면 최두환과 많은 의견 교환을 하였다고 되어있다.)
선조 [교유서]에 "회서의 군사들은 정승 배도(裵度)를 믿고 따라 그를 만리장성처럼 여겼다."
이런 말이 임진왜란이 중국에서 일어났다는 증거 중 하나로 쓰였다. 어쩌면 좋겠는가? 저기 나오는 정승 배도는 당나라 때 사람이다. [신당서]에 열전도 실려있다. 옛날 임금이 내리는 글은 고전이 두루 인용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읽기가 버거운 법이다. 사실 나도 저 시대 글이 되면 읽기 힘들다. 저 구절만 나와 있으니 애매하긴 하지만 배도는 훌륭한 장수의 귀감으로 종종 인용되는 사람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그런 훌륭한 장수로 인용한 대목이 바로 저 윗 글이다. 그런데 배도가 누군지도 모른 채 "회서"가 나오니 "회수 서쪽"이고 그러니 임진왜란은 중국에서 일어났다고 이야기하면 대체 어쩌자는 건가?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서울에서 개성으로 가면 그것을 북쪽으로 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옛날에는 서쪽으로 갔다고 쓰기도 했다. 서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기록]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 당시 기록이 하나 둘이 아니다. 실록? 승정원일기? 임진록? 이런 것조차 출전도 밝히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지껄이고 있는 것이 이들이 자기 주장이라고 늘어놓는 방식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또 조사를 해보았다. 이 역시 김종윤의 책에 나오는 말이다. [임진장초]의 구절을 따내서 주장하고 있다. 선조가 평양으로 피신했고 평양은 고려 시대 이래 서경으로 불리운 곳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서쪽으로 왕이 피신했다고 말한다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52. 어제신도비명 에 보면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여러길로 나눠 서쪽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반도라면 당연히 북상 하는 것이 옳다. 51번과 동일하다. 그리고 서쪽으로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혹시 이 글은 출전이 있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도비]라는 것은 고관 무덤에 세우는 비석이다. [신도비명]은 그 비석에 새겨진 글이라는 것인데, 조선시대의 신도비는 한 두개가 아니다. 대체 누구 묘에 있는 신도비에 적힌 글이라는 이야긴가? 이것을 반박하기 위해 내가 신도비를 다 읽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겠지, 뭐.
53.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1402년에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세계지도를 제작했다. 여기에 조선, 명, 일본,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나타나 있다. 지도 제작은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들이 집결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글을 보면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조상을 얼마나 하찮게 보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조상은 19세기 말에 지도 하나 못 만들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54.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그래서? 위 글의 목적은 아마도 그러니까 대동여지도는 가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래야 조선이 중국땅에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는 매우 많다. 궁금한 사람들은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 (한영우 외 지음 / 효형출판) 과 같은 책을 한번 보기 바란다. 조선이 중국 땅에 있었다면 동해를 놓고 일본해라는 이름과 싸울 필요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해는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동해가 아니니까. 이렇게 이런 주장들은 우리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주장들인 것이다. 자신들이 일본의 주장을 증명해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이해나 할 수 있을까? 남아있는 대동여지도 판본을 보면 서로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한번 찍어보고 잘못 만들어진 부분을 수정한 것이다. 대동여지도 목판에는 그 흔적도 분명하게 남아있다. (잘못 판 부분을 다시 깎아낸 흔적이 1차 인쇄본과 2차 인쇄본의 차이와 일치한다.) 일제가 이런 일까지 했다고?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바란다.
55.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대동여지전도](대동여지도와는 다른 것이다. 재야는 이것을 구분할 줄 모른다.)에 적혀 있는 글인데, 조선을 뺑돌았을 때의 거리라고 명기되어 있다. 제발 읽지도 못하는 한문 가지고 읽은 척 사기치지 말기 바란다.
蓋我東邦域 三面際海 一隅連陸 周一萬九百二十里 凡三海沿一百二十八邑 總八千四十三里 [번역] 우리 동방 강역은 3면이 바다에 접하고 한 모퉁이가 육지에 이어져 있으며,둘레는10,920리이며, 세 바다 연안은 도합 128읍에 총 8,043리이다.
저 둘레를 킬로미터로 바꾸면 4,368킬로미터가 된다.(1리=400미터로 계산) 현재 우리나라 둘레는 6,285킬로미터라 이부분은 오히려 작아져 버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 측량기술의 발달로 꼬불꼬불한 남해안 해안선의 정확한 측량 때문이다. 최근에 이에 대한 황당한 반론도 본 적이 있다. [周]의 해석을 알려주자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그건 위조란다. 대체 자기들이 근거라고 내놓은 증거를 반박당하자 [조작]이라고 내미는 그 심보는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애초에 조작이었다면 증거로 들먹이지를 말던가, 이 부분은 원래 무슨 글자인데 조작된 것이다라는 증거를 제출하든가 해야 하지 않는가? 하여간 그 동네에는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 없다.
56. 조선의 중심지는 낙양이라고 쓰고 있다. 한반도에는 낙양이라는 지명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낙양은 중국의 천년고도의 도시이다. 어디에 나온 말인지도 적어놓지 않았다. 이 말도 대동여지전도에 적혀 있는 [낙양]이라는 단어 하나를 보고 상상한 내용이다. 한문을 읽을 줄 모르면 떠들지나 말았으면 싶다. [원문을 첨가한다.]
域民以太平之仁 習俗有箕壇之化 況均四方來廷之道 正亥坐南面之位 實猶周之洛陽非東西關 三京所可比也 其爲天府金城 誠億萬世無疆之休也 歟嗚呼偉哉 [번역] 백성은 태평의 인으로써 습속에 기자 단군의 교화 있어 사방에 내정의 도가 고루 미치고, 정해좌 남면지위가실로 주나라 낙양과 같으니, 동서관 삼경이 가히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천부 금성이 되어 삼가 억만세 무강지휴라, 아아 훌륭하도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조선이 중국에 있었다고 한다. 찬란한 역사의 주인공은 현재 자신들이 한족이라 믿고 있는 중국인들이며, 우리는 그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출간까지 한 그 글의 내용을 잠깐 읽어보자.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찬란한 문화민족을 하루아침에 잘라 없앤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기서 그들 식민주의자들이 착안한 것이 '조선을 다른 땅에다 옮겨주자'는 것이었다. 조선이 오늘날 한반도에 이식되면서 대륙 땅에서는 민중봉기의 연속이었다. 갑오경장(중국에서는 '갑오웅혼甲午雄魂'이라 함)이 그러하고, 동학난이 그러할 뿐 아니라, 도처에서 일어난 독립운동들이 모두 그래서 일어난 것이다. 지금은 대륙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모두 중국사에 편입되어 있으나, 여원홍·손문·원세개 등이 일으킨 신해혁명도 사실 처음에는 '조선 부활'이 주목적이었다. 어쨌든 일본도 서구열강도 민족의 대봉기에는 당해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조선은 중국(중화민국)으로 옷을 갈아입었으며, 한반도에 조선이 이식됨과 때를 같이하여 중국도 새로운 민족, 새로운 나라로 변신을 도모했던 것이다. (중략) 총독부 안에는 또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라는 것도 있었다. 문집류나 씨족사 등 역사서는 아니나 그 전고가 밝혀져서는 안될 문헌은 역시 이곳에서 '교열'과 '중간'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하였다. 지금 우리가 원서니 원전이니 하는 책들이나, 규장각에 있는 대개의 책들은 모두 이런 절차를 거친 것들이다. (중략) 1920년대에 와서는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와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라는 것을 만들고는 세종 때의 정음正音만을 떼어내 그것을 이땅의 글이라 가르쳤다. (중략)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일제가 만들어 놓고 간 역사물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고 또한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맨인블랙]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이 영화에선 레이저불빛을 착 쏘이면 기억이 사라진다. 우리나라 땅에는 이 [맨인블랙]이라는 조직보다 더 뛰어난 비밀조직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인간은 유신시대에 사람들의 기억을 모두 뒤바꿔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하더라. 그 막강한 조직은 요새 무슨 일을 하고 있으려나?
57. 세스페데스라는 포르투갈 신부가 16c 에 쓴 책에 의하면 꼬라이 또는 꼬리아라는 왕국은 일본에서 10일정도 걸리며 왕국의 끝은 티벳까지 달한다고 씌여있다.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조선대륙의 강들은 수량이 풍부한데 강의 폭이 3레구아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세스페데스는 임진왜란 때 종군 신부다. 무슨 책에 나오는 이야긴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대체 이자들은 조상이 남긴 기록은 하나도 믿지 않으면서 어디선가 줏어들었다는 이야기에는 목을 맨다. 저 타타르라는 말은 일본에서 여진족을 부르던 이름에 불과하다. 이 당시 서양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지도 하나를 보자. 1595년에 제작된 지도다. 임진왜란은 1592년에 일어났다.
출전 : 한국고지도발전사 (이상태/혜안) 지도에 보이는 것처럼 섬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나마 좀 비슷하게 생긴 지도로 1655년 서양인이 그린 지도를 보자. 출전은 위 책과 같다.
하늘색 선으로 둘러놓은 것이 조선이다. 글로 써놓은 것을 엉터리로 옮긴 것보다 훨씬 확실한 증거가 되지 않는가?
58. 루이스 프로이스 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씌여있다. 루이스 프로이스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있던 신부다.그는 조선에 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 조선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들은 것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전해 들은 것을 근거로 이용하자면, 별별 이야기를 다 해도 될 것이다.
더구나 이 사람의 책에는 이렇게 조선이 나온다.
남북의 길이는 2,500리, 동서의 길이는 90리 또는 그 이상이다. 몇몇 큰 강이 있고 그 중 하나는 하구의 넓이가 10리나 된다. 또한 중국과 인접해 있는 변경에는 통과하기 매우 어려운 넓은 사막이 있다고 한다.
마술사의 마술처럼 그 본질을 알게 되면 저런 주장은 매우 초라해지는 것이다. 남북은 길고, 동서는 좁다는 이야기고(지금의 한반도), 하구의 넓이와 사막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들었다고 한다는, 카더라 통신에 불과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조선에 와 본 적이 없으니까. 프로이스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직접 읽어보라. 읽어보면 김종윤이 완전 창작했을 거라는 부산의 지명도 나오고, 김종윤이 일본군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모른다는 일본군이 대마도에서 출정했다는 이야기도 적혀 있다. 일본에는 튼튼한 배가 없어서 가능한한 짧은 거리를 항해하기 위해 조선부터 공격해야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종윤은 일본이 복건성에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프로이스가 자기 책이 그런 황당한 주장에 이용되고 있는 것을 알면 혀를 찰 것이다. 프로이스의 책에는 소서행장이 가등청정에게 해주는 말 중 이런 대목이 있다.
나의 계획으로는 서울은 바다에 가까이 위치해 있고 강을 1리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해상으로 식량을 수송하고 부근을 흐르는 강을 통해서 서쪽으로부터 서울을 포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하겠다.
이 사람들이 한양이라 주장하는 곳은 중국 내륙 깊숙이 있는데, 그럼 이 대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 방법은 간단하다. 위 구절은 조작된 것이라고 하면 된다. 정말 쉽지 않은가?
21번 항목에서는 조선 인구가 37만명이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조선 인구를 근거로 조선과 삼국은 같은 곳에 있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 48 - 58번 주장은 조선도 중국에 있었다는 근거 아래 만들어진 내용이다. 서로 간에 모순되는 주장이 이 글 안에 있다는 이야기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부분을 재야학자들끼리 정리 좀 하고 떠들어 주기 바란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 처음에는 고구려가 위대했다고 썼다. 고구려가 자꾸자꾸 위대해지자 고구려와 싸웠던 신라나 백제도 덩치가 커져야 했다. 그러다보니 한반도에 이것들이 있어서는 이야기가 안 되었다. 중국대륙으로 나라들을 옮긴다. 조선같은 찌질한 나라는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꾸 모순이 드러나자 조선도 중국으로 옮겨놓기에 이른 것이다. 조만간에 한국전쟁도 중국에서 일어난 것으로 변하리라 생각이 들 정도다. 상해임시정부가 있는 곳이 조선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과거에 조선을 무시하던 글들과 최근들어 등장한 조선도 위대했다는 글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
17세기에 작성된 지도들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명시되어 있는 지도들이 많다. 조선이 중국 땅에 있었다면 이런 지도는 모두 가짜 지도다. 대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데 우리쪽 증거를 무장해제하겠다는 저들은 어떤 자들인가?
59.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이것은 이미 결론이 난 이야기다. 일제는 20만권의 사서를 태웠나 [클릭] 를 읽어보기 바란다. 더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남겨두었다고 하니 견강부회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고려시대 역사기록으로는 제왕운기와 동국이상국집, 익재난고 등이 남아있고, 조선초기에 제작된 삼국시대 역사서들도 많이 남아있다. 위 링크된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일본이 금서로 지정한 것은 51종의 책이며, 그 목록까지 모두 남아있다. 모두 일반적인 책들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 "일제가 남긴 기록을 어떻게 믿느냐?", "일제는 얼마든지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도 모르냐?"는 반론도 아닌 반론이 있었다. 애초에 일제가 20만권의 사서를 태웠다는 주장 자체가 일제의 기록에서 나온 말이다. 내 글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기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자 그런 기록을 믿어선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철수가 돈을 훔쳐갔다고 영희가 말했어." "영희는 그런 말 안 했다는데?" "넌 영희가 하는 말을 믿냐?"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조선사는 역사책이라고 보기보다는 사료집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대체 읽어봤으면 저런 무식한 주장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사편수회에서 내놓은 [조선사]는 기존의 사료들을 모두 모아 연대순으로 배열해 놓은 자료집이다. 역사 해석을 해놓은 책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비난과 달리 [단군 신화]도 수록되어 있다. 다만 이 경우 단군을 신화로 취급하여 연대를 책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려 공민왕 24년 기록 다음에 수록해 놓는 짓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을 비판하든 사실에 입각해서 해야 하는 법이다. 멋대로 상상한 다음 비난하는 짓은 비난하는 쪽의 정당성마저 훼손하고 만다. 이자들의 특징은 읽어보지 않고 비난하는 데 있다. 이 내용에 대해서 반박하고 싶은 사람은 [조선사]와 [국사교과서]의 거의 똑같은 부분을 제발 공개 좀 해주기 바란다. 어떻게 사료집인 [조선사]와 역사책인 [국사교과서]가 거의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또 어떤 멍청한 반박문이라는 것을 보았는데 이병도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장광설을 늘어놓더라. 바보 아닌가? 내 주장을 반박하고 싶으면 조선사를 펼쳐놓고(웬만한 대학 도서관에 가면 다 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도 열람이 된다.) 국사교과서 가져간 뒤에 [거의 똑같은지] 비교해서 그 결과물을 가져오면 된다. 주둥이만 나불대지 말고 발로 뛴 다음에 증거 가져와서 이야기하길 바란다.
임승국의 [한단고기]에 빠진 사람들은 임승국이 어떤 주장을 하던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그를 좋아하면 좋겠다.
위 링크에서 밝힌 것처럼 임승국은 전두환에게 온갖 아부를 늘어놓고, 일본국군주의를 찬양하고, 국가보안법으로 역사학자들을 처단해야 하며, 자유민주주의는 간판에 불과하고, 철학있는 독재는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이다.
어느 글에선가 "임승국이 말년에 잠깐 노망이 나서 한 일을 가지고 대단한 것처럼 떠든다"고 하는 반론같지도 않은 반론을 봤다.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1980년에 임승국은 53살이었다. (임승국은 1928년생) 하긴 노망이 빨리 들 수도 있긴 하겠지. 임승국은 2001년에 죽었는데 그럼 그 20년동안 한 이야기는 모두 노망난 사람의 헛소리였단 말인가? 말한 사람은 그런 사실을 알고 말한 건지 참 궁금하다. 또한 오만가지 재야 학설의 주창자인 재야의 이병도와 같은 인물인 "문정창"은 어떤 사람인지 아는가? 그는 조선총독부 관리에 군수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런 친일매국노의 학설에 헤벌레하는 인간들은 누구?
환단고기를 비롯해서 우리나라가 원래는 중국땅에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으시다가] 내 블로그에 와서 글을 읽은 분들 중에는 역사관에 혼란이 온다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참 다행스런 일이다. 역사학이란 본래 의심하는 학문이다. 합리적인 결론을 추적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분들은 학계의 역사학 성과물들을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나도 재야라는 인간들과 다투던 소시적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이 있다. 그것은 출전에 대한 신뢰인데, 나는 수많은 학자들이 검증해온 결과물을 인용하고, 저쪽에서는 되도 않는 글을 끄적여놓은 책을 들고나오기 때문에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당연히 나한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역사학자 이종욱 교수의 [고조선사연구]나, 대륙론자 이중재의 [상고사의 새발견]이나 동일한 책에 불과한 것이다. 그 점을 이해하자 이런 논리에 혹하는 일반인들의 심리가 이해가 갔다. 나는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내려온, 우리 역사의 궁금한 점을 참지 못하는 열의가 있는 분께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광복 후 5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역사학과가 친일을 할 이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교수가 시키는대로 해야만 교수가 되기 때문에 일제의 논리가 계속 재생산된다고 한다. 학계에 교수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역사학은 이병도의 학설에서 하나도 진보한 것이 없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동안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이병도의 책을 한번 읽어보고, 이기백의 책을 읽어본 다음, 이종욱의 책(송호정의 책이라도 상관없다)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들 책이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어떤 이는 역사라는 것은 단정지을 수 없으니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 보아야 하지 않느냐,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여러분이라면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라는 주장을 들으면 열린 마음으로 날아보려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위 60가지 사례들을 하나하나 검토해서 토를 달아주었다. 사실 시간도 많다, 그런 짓을 왜 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재야사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검토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나에게 [무조건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조건]이라는 말은 "야, 그건 틀렸어. 땡!"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위 글에서 그랬는가? 하나 하나 저 주장을 편 인간이 제시하지도 않은 원문을 추적해서 제시하고 비판을 가해 준 것이다. 물론 개중 몇 개는 도저히 어디서 가져온 주장인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이것들도 어디에서 나온 놈인지 알게 되면 추가 반론을 해줄 것이다. 자신이 속한 나라의 역사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거짓말로 꾸며놓은 것을 사랑하진 말자.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우리나라가 중국 땅에 있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또 대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글을 보라. 소위 대륙설에 대한 고찰 [클릭]
우리나라의 삼국이 중국 땅에 있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 서쪽에 바다가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백제가 중국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문제부터 해결하고 와야 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이 링크를 보라. 백제의 서쪽 바다에 대한 고찰 [클릭]
사족 : 환단고기에 대한 23가지 실증사례라는 말도 안되는 글도 돌아다니더라. 그에 대한 반론 [클릭]
전체적으로 답변을 하신 분도... 반론을 하기 위한 반론이네요.... 어떤 내용과 논쟁을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싸움으로 가기보다는, 함께 대화를 유도하여,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이고, 상대방이 모르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직 정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의 논쟁으로 간다면, 10년이 지나도 해결이 안나죠... 모든 사건과 정황이 들어맞는 지형적 특징과, 전쟁의 이유, 인종의 갈등들이 모두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이 가능해야 합니다...
51번 가지고 말씀을 해 보시죠... 동서남북은 분명히 다른데요.... 그런데, China조선만 가지고는 안되실 겁니다.. China조선-고려설은 한반도 조선-고려설 보다, 설득력이 분며히 떨어집니다... 한반도는 수십년간 정확한 지점으로 해당위치를 계산해서 이동시켜 놓은것이기 때문에, 왠만한 논리로는 깨기 힘듭니다....
첫댓글 위 내용은 대륙조선사 연구회 본 카페와 거리가 먼 내용입니다. 이 카페는 신강성 천산을 조선의 중심으로 놓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고구려,백제,신라는 대륙에 있었다'.라는 책에 있는 내용이니다.. 1994년도에 초판이 발행된 오래된 책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포인트는, '사막메뚜기'죠... 그 유명한 메뚜기 이론의 창시자가 이 책의 저자가 됩니다. '정??'님인걸로 기억하는데요... 저는 이 황충의 근거로 조선의 영토를 소말리아까지 확대 했었습니다... 아무도 반응을 안보이셨지만요...
지금 생각해도 이 메뚜기 이론은 너무나 '감명 깊습니다.'
하나의 의문점은 '고려시대'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몰랐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떻게 정확하게 해당위치가 알져졌을까요?.. 다른 문헌을 보았던 것인가요?..
김부식이 살수를 모를리가 없습니다. 묘청을 공격하기 위해 총사령관을 지낸 사람이 살수가 어딘지 모른다는 것은 상식이하입니다. 따라서 후대에 누가 손을 댓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조작했을까요?... 조선왕조 실록에는 안주부근으로 정확이 모든 신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답변을 하신 분도... 반론을 하기 위한 반론이네요.... 어떤 내용과 논쟁을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싸움으로 가기보다는, 함께 대화를 유도하여,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이고, 상대방이 모르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직 정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의 논쟁으로 간다면, 10년이 지나도 해결이 안나죠... 모든 사건과 정황이 들어맞는 지형적 특징과, 전쟁의 이유, 인종의 갈등들이 모두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이 가능해야 합니다...
51번 가지고 말씀을 해 보시죠... 동서남북은 분명히 다른데요.... 그런데, China조선만 가지고는 안되실 겁니다.. China조선-고려설은 한반도 조선-고려설 보다, 설득력이 분며히 떨어집니다... 한반도는 수십년간 정확한 지점으로 해당위치를 계산해서 이동시켜 놓은것이기 때문에, 왠만한 논리로는 깨기 힘듭니다....
선조의 서쪽이동도, 조선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되고, 고려와 조선의 관계, 수도의 이동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만 해설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평양 서경도 그렇구요...
한반도 조선설을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뛰어난 학자들이 수십년간 연구해서 만들어놓은 역작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접근할 만한 요소는 서경과 서천의 개념이라고 봅니다... 중국(한성?), 서경, 동경, 남경, 북경이 있는 것이니까요...
한반도에는 서경이 있을 수가 없지요.... 북경, 남경은 가능합니다...
개성이 서경이니까... 서천, 서쪽으로 갔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는 얘기인데... '궤변'이죠...
한반도로 보면, 개경과 평양은 북경이 되어야죠...
전체적으로 무슨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이태수선생님의 의견처럼, 해당내용을 우리카페에서 적극적 대응을 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새로운 사실과 발견에 촛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누구가 보아도, 합리적인 이론과 설명, 및 유물이 있다면, 위와 같은 논쟁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