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편지를 하겠어요 - 강촌사람들음악을 들으려면원본보기를 클릭해주세요.
우리절에는 석가모니부처님 본존불만 모시고 예배를 본다.
스님도 달랑 나 하나뿐...
어떤 보살님이 하루는 무심코 무심정사법당에는 왜 한분만 모시냐고 질문하길래..
"보살! 돈 많아? ...천도재나 49재 하려면 단청하는 삐까번쩍한 절에 가서 참배하고 싶은
보살님들의 중생심때문에 사찰불사하는거여...시주돈을 많이 받아야 사찰경영이 되니
당연히 사찰외곽에 치중할수 밖에...우리절에는 돈없는 사람들만 오니까..스님이 못하는거지"
기도 맡기려면 최소한 500만원이상은 주어야 하는데..우리절은 그렇게 올리는 사람 별로 없어서..."
그러다 불나면 또 시주불사 받아야 하니...차라리 이웃돕기하고 잊어버리는것이 월 낫지,..뭘"
헤멀쭉 말을 붙이려다 입을 닫아버리는 보살님을 사실 나무랄수는 없는일이다.
천년고찰 조계종에 가면 그 사찰이 유지하고 경영하고 관리하는 어려움을 무지렁이
보살들이 알 턱이 없으니까....
불교도 점점 어려워지고 불자들도 점점 영리해지니 스님노릇하기도 참으로 죽을맛이다.
무심정사 법회는 간단한 예불문만 하고 설법을 하는데,..
늘 법회때마다 느끼는것이
내 스스로 죄송하고 항상 조급증에 목마르고, 해도 해도 부족한 것이
이 어눌한 나의 설법이다. 나의 마음이지만 마음뿐 ....
저들에게 익숙하게 불교를 설법할 방편에는 내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늘 익숙하지 못하다.
부처님의 메시지를 과연 제대로 전달을 하였을까..
아니면 초심자 불자들을 꾸벅 꾸벅 바쁜시간에
졸리게 만들고 지루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신도회는 과연 우리 기존불자들이나 처음오신 불자님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가이드를 잘하고 있는가..그저 부엌의 밥순이들로 전락하여 대중공양 하나 챙기는것을 크나큰 봉사로
아만심에 가득차게 만들지는 않는지...
간부들 스스로는 과연 올해 개개인 각자에게 불법함양에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올해 실천수행의 첫 장으로 봉사를 할려고 하였는데 계획과 아이디어를 과연 어떻게 찾아야 할까...
생각이나 하고나 있을까..상념은 상념으로 꼬리를 물고 멀거둥히 쳐다보며 방관하는 불자들에게는
성질급한 나이기에 행동으로 어느날 쓱싹 보여주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스님이라도 모든 대중공사를 스님 마음대로 하지를 못한다.
차라리 불자나 조직이 없으면 스님이 누구를 시켜서 하는것이 편한데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참 많다.
불자들은 처음에는 자기자신을 되돌아보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뒤돌아보기는 커녕 목소리가 커지고, 무례해지며
조그마한 봉사에도 아상을 내기가 쉽다.
그러다 누가 서운한 말 한마디라도 듣게 되면
108배, 3,000배 힘들어서 한것이 도로아미타불이니까...이 절 안오면 된다는 식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심만 각자 서로 서로 느끼고 뒤돌아보아도 서로 부딪히지는 않을터인데 안타깝다..
그래도 처음에 와서 느낀것이 양주, 동두천에 천년고찰은 비싼 돈 들여서
홈페이지 제작하는데 실상 무지렁이 불자들에게는 참으로 하늘과 땅 차이...
운영과 참여는 더더욱 힘들어 그저 관리만 되어가는것도 아쉽지만 불교의 현실이다.
스님들이 아직도 받는것에 익숙해져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불자들, 비불자들이 참여하는 카페를 만들고, 활성화하는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으니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컴맹이 무심정사 카페를 만들고 이리저리 밤새워 고민하는것이 참으로
내 자신 스스로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또한 공양주가 없이 근 1,000평이나 되는 절 살림살이 적당히 이력도 나고 지긋지긋도 하였는데
문중에서 나가라고 하니 참으로 나는 엄청 내심 고맙기까지도 한 까닭이다.
(여름에 무성한 잡초 풀뽑기에 신도들몰래 하여야 하니 그것도 중노동..한겨울.폭설에는 눈치우는데 또 영차 영차...
내 스스로 내 성실이라는 딜레마속에 같혀서 스스로 독살이를 엄청 해대는 꼬락서니라니...)
시도때도 없이 울려오는 전화벨에, 핸폰에...그럴듯한 신행상담이지..
이 신행상담이라는것이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거리이다.
초심자들은 표현이 점보러 오는것이고
불자들은 그럴듯하게 신행상담이니까..
이세상 희노애락을 걱정근심하는것은 대동소이..아닌가!
아마 목사님이나 신부님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문제는 대화의 내용보다는 질이니까....
그렇지만 어떤분은 연이 안되어 스님을 못뵙고 가고
어떤분은 연이 되어 스님을 보고 간다.
바로 그제만 하여도 그렇다.
난데없이 스님 핸폰에 전화가 와서 공양간에서 허겁지겁 밀린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계속 울려대는 전화폰
받자마자 다짜고짜~
" 거기 영숙이 절에 잘 가지요?
영숙이가 거기 신도라던데~ 영숙이 언니인데..언제 절에 가면 스님을 볼수 있나요?"
거친 말투에 전화하면 최소한 인사라도 하여야 하는데 거두절미에 반말로 하니 이내
속으로 이것봐라...? 하며 심사가 뒤틀릴수 밖에...
"여기보살님 점보는곳 아닙니다..무당에게 가세요..이곳은 절입니다."
백중법회 엊그제 끝나서 스님 절에 당분간 없는데요"
"뭐라구요...? 거기 영숙이가 자주 간다고 하는데 영숙이 몰라요? 언제오는데요?..."
"글쎄요....그렇게 말씀하시면 스님 잘 몰라요..오시는 분들이 한둘입니까? 영숙이 잘 몰라요...그리고
법회때 오시지요..스님은 법회때는 항상 계시니까요..?"
"아니...뭐 이렇게 까다로워서.. 씨...하면서 전화를 거칠게 끊는 소리.."
물론 우리절에 오시는 불자들이 소개하였을터인데 아직도 요모양 요꼴이니..
그럴것이 공양주도 없고 전화받는 안내자가 없으니 그럴수 밖에 없다.
이해하고 넘어가는데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하나 묵묵히 와서 법당안이나 바깥 화장실과 등산객들이 오고가는 원두막조차도
쓰레기통을 치우는 사람 거의 없다..꼭 시켜서 하여야만 하는가...
물론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절 규모를 줄여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신도회에서 아니, 우리 불자님들중에서 단 한사람이라도 참된 불교를 알고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
단 한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성공하였다고 본다.
이것도 지도 타이밍을 놓치면 참으로 안하느니만도 못하니...
결국 모든것은 주지인 스님에게 또 탓을 당하기 일쑤이다.
처음에 바르게 배워야 다른절에 가서도 욕을 안먹는다.
그리고 왜들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야만 하는걸까..
불경기라서 다들 그런다고 치지만 경쟁사회속에서 하루 하루 자신을 놓쳐버리고 사시는 사람들 참 많다.
절에 와서도 경쟁의 습이 남아 있어서 참으로 허무하고 아쉽다.
처음 마차산 기슭 하봉암동 아래 후미진곳에 자리를 잡았을때는 1년동안 신도가 단 하나도 없었다.
요즘은 그때가 그립다.
그때는 하늘도 바라볼수 있었고...길가에 앉아서 코스모스도 바라보고..
마차산, 고대산, 불암산, 소요산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주먹밥 도시락 하나 챙겨들고
렛츠고! 하면 되었으니까...산삼, 봉삼 캐러간다고 심마니가 되어 한껏 부풀기도 하였으니까..
지금은 어느순간, 총무스님도 하여야 하고, 주지도 하여야 하고, 공양주도 하여야 하고,..
전화 안내자도 하여야 하고 카페지기도 하여야 하고,...요즘은 신도회중에 일부도 하여야 한다.
멘토의 정체성에서 둥둥 하루가 할일없이 지나가는 착각이 든다.
괜히 추석이 다가오니 벌써부터 밤하늘에 휘엉청 뜬 달보면서 지레
마음도 바쁘다.. 공양주를 그날 당일 쓰기도 힘들고
그 많은 제사상에 음식 준비까지 또 홀로 하여야 하니
또 날밤을 새어야 하는데..아직 나에게는 부처님께서 공양주복은 없는가보다.
언제 이런 것을 면하고 조용히 않아서 차 한잔 마시면서 부처님말씀이 수두룩한 법전을
편하게 볼수나 있을런지...
가다 가다 걸어가다보면 반드시 끝은 보이리라..
오늘도 겸손하고 불교를 사랑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단 한사람 그대를 위하여..
사라질 투명한 낙서와 쓰잘데 없는 푸념 몇마디 하고 하루를 시작해 본다.
솔향기 그윽한,...마차산 우리절 무심정사 광명스님 두손모아 합장드립니다.
첫댓글 부루나님이 올리는 광명스님의 글 가끔 읽습니다.
오늘 글 가운데, 스님 본인이 [..스님노릇하기도 참으로 죽을맛이다.]라고 하는 건 아직 하심이 덜 된 자신을 무심결에 드러내는 것일까요? 예전엔 큰스님들도 대중앞에 자기 처지를 드러낼 때는 [..중노릇]이라고 하셨거늘, 요즘 중들은 스스로를 [스님]이라고 부르기를 예사로하니 온갖 사단이 일어나는 건 아닐는지..
그래서 재가불자들 사이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다 [중상]이라는 신조어도 오르내리고, 특히 그 중상 증세가 좀 심한 스님을 가리킬땐 [그 '스'가 어떻고..]라고들도 하지요.. 님이라는 존칭조차 하기싫다는 뜻이지요.
듣기로는 스님들끼리 서로 부를 때에도 뭔가 좀 어색하거나 민망할 땐 '스'라고도 호칭한다는군요..
혹시 제 댓글에 반발심이 일어나는 분은 바로 위에 단현님이 올린 원효사 해월스님의 백범일지 내용을 찬찬히 한 번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저도 오늘 필업을 하나 짓나봅니다.. 정필업진언을 되뇌이며..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_()_
한마디 더..
위 광명스님의 난감한 심정은 알겠거니와, 그래도 관심을 두는 보살에게 타박하듯 반말투 대답을 하고, 무지렁이 불자 운운..까지 하는 것은 참으로 깝깝한 일이외다! 일부 몰지각한 중들이 지들이 세상에서 젤 똑똑한 줄로 알아요..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