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세? 흥행배우? 저는 그냥 ‘하배우’라는 말이 가장 좋더라고요> |
하정우. 단역부터 차근차근 작품 활동을 시작해 온 그는 이제 어엿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대세', '흥행' 등 그를 수식하는 말은 하정우의 현 위치를 입증한다. 하지만 그는 그냥 ‘하배우’로 불리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저 배우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 하정우는 어떤 역할이든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완벽히 소화해낸다. 작품 밖 그는 인간적이고 소탈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선다. 그래서 안팎으로 그를 향한 호평일색이다. 극중 캐릭터를 고스란히 또 다른 자신으로 표현해내 작품을 가장 빛내는 배우 하정우.
'믿고 보는 배우'로 떠오른 하정우가 자신의 유년기를 시작으로 배우, 그리고 인간 '하정우'에 대해 전한다. //편집자주
안녕하세요, 하정우입니다. 저의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고심 끝에 저의 어린 시절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우선 저는 최근 '베를린'이 개봉된 후 그와 관련된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또 다른 영화 '더 테러'의 촬영을 이어왔습니다. 음..한 회차 촬영이 남은 상태로, 아마 글이 나갈 때 즈음이면 모든 촬영을 마쳤을 것 같네요. 올해 개봉 예정인 작품인데 '폰부스', '127시간' 분위기의 영화입니다. '베를린'에 이어 이 작품 역시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는 말씀 전하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물론 ‘베를린’을 향한 많은 사랑 감사드리며 더욱 더 사랑 받았으면 하는 것이 요즘 저의 바람입니다.
‘그 정도면 잘 된 것’이라고 말씀들 하시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쏟아 부은 노력과 열정에 비한다면 더 잘됐음 하네요. 하하.
꼬마 하정우 ▶ 온 동네를 누비다
![]() <개구쟁이 하정우! 온 동네를 누비며 장난을 쳤죠> |
많은 대중들이 아시다시피 저의 아버지는 배우입니다. 아버지가 배우라서 느끼는 부담은 오래전에 벗어났어요. 물론, 어렸을 때는 누구의 아들, 대학교를 다닐 때도 'OOO의 2세'로 저를 대표함에 있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론됐습니다. 하지만 연기자로 데뷔를 하고 나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생각해보면 오히려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든든한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모델링 되는 점들이 있어요. 가까이서 아버지가 자기 관리를 하시고, 활동을 해나가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배우죠.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로서의 피와 열정을 물려받은 부분들이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유년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는 바쁘셨지만, 가정에 소홀했다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아버지와 여행을 많이 다니며 시간을 많이 보냈죠. 물론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에 스케줄로 인해 불참하셨던 적은 있지만 그런 점이 크게 섭섭하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저는 온 동네 장난은 다 치고 다닌, 말 그대로 말썽꾸러기였어요.
한 번은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동네 친구들과 나무를 기둥 삼아 그 주변에 이글루를 만들었어요. 6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죠. 눈을 많이 쌓아 만들어서 봄까지 녹지를 않는 거예요. 굉장히 큰 나무였는데 결국 얼어 죽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값을 물어 주신 적이 있어요.
또 한 번은 폭죽 장난을 하다가 근처에 있던 이삿짐에 불이 붙어서 모두 태워버린 적도 있어요. 전체의 비용을 또 물어줬어요.
장난에 관해서는 부모님이 크게 나무라시지 않으셨어요. 아, 물론 이삿짐을 태워버렸을 때는 많이 맞았던 것 같네요. 하하. 다른 이의 재산을 태웠으니까요.
한 때 소화기에 심취한 때가 있어서 동네 소화기는 다 뿌려본 것 같아요. 소화기 값도 많이 물어준 것 같고요. 이 모든 것이 다 초등학생 때네요. 어릴 때 장난들 치고, 사건이 좀 크죠? 블록버스터 수준이죠. 하하하.
사춘기 하정우 ▶ 운동-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다
![]() <무엇이든 열심히 했던 고등학생 하정우입니다!> |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남달랐던 것은 부모님의 교육이 강제적이거나, 강요하지 않으셨다는 점이에요. 그 어떠한 것도. 공부에 대해 과외를 한 것도 모두 제가 원했던 것이지, 하라고는 한 번도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어요.
또 하나, 감사드리고 다행스러운 건 수영, 스키 등 나아가서 운동에 대한 것들이 학교를 다니면서도 제한적이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농구팀에 들어가서 대회도 나간 경험이 있고요. 그런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저의 학창시절은 참 건강했다는 느낌이에요.
유년기, 운동을 많이 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신문반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경희신문반은 서울고등학교에서 학구적인 서클이중 하나였어요. 영자신문과 토론과 더불어. 분위기 역시 학구적이었죠. 원고지에 기사를 써서 선배들에게 검사를 맡는 식으로 진행됐죠. 그만 두게 된 계기는 농구 때문이었어요.
2학년 때 신문반의 편집장을 했었는데, 농구대회를 못나가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탈퇴를 했죠. 당시에는 대회를 나가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에요.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뭐든 어설픈 것이 싫었던 것 같아요. 무엇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 저는 반주를 하지 않아요. 하하. 술은 술! 밥은 밥! 밥을 안주로 술을 마시지 않아요. 한번 먹으면 충분히(?) 먹어야 한답니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건강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던 저에게는 '배우'라는 꿈이 마음 속 깊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이야기를 하지 못했죠.
당시에는 연극영화과를 간다고 하면 조금은 치우친 시선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버지께도 마찬가지였고요. 음..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당시엔 공부와 등수, 그리고 대학 진학 등이 굉장히 중요시됐어요. 그래서 저 역시 연기자에 대한 마음은 있었지만 연극영화과가 아닌 사회과학, 혹은 인문대학에 진학을 해서 이후 탤런트 공채 시험을 봐야 겠다고 스스로 계획을 세웠죠.
그런 계획에 대해 말씀을 드리니, 어머니께서 '왜 그렇게 돌아가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있으면, 전공을 삼아서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조언을 하셨습니다. 좀 더 현실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대학생 하정우입니다! 낯익은 얼굴도 보이죠?> |
반면 아버지는 좀 섭섭해 하셨어요. 공부를 성실하게, 열심히 한 편이었기 때문에 대학만큼은 일반적인 학과를 가길 원하셨던 것 같아요. 속내를 깊이 나누진 못했어요. 연기에 대한 갈망은 제 마음 속, 간혹 어머니와 이야기를 한 게 전부였으니까요. 아버지께는 배우가 되기 전에는 연기자에 대한 꿈, 목표,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저는 마침내 연극영화과에 진학을 했고, 이후 본격적인 배우 하정우의 길이 시작됐습니다. 부모님의 조언과 믿음 덕분에 다행히 돌아가지 않아도 된 셈이죠.
![]() <재미있으셨나요? 이야기꾼 하정우입니다!> |
이렇게 저는 장난꾸러기 어린 시절과 자유롭고 건강하게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대학교 때는 꿈을 위해 전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범수, 김석훈, 김상경, 강성범 선배들의 연극을 보면서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워갔죠.
유년기를 풀어낸 1부에이어 2부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연기'와 그동안 만났던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주세요.
![]() |
글 하정우
편집 황용희 국장(이슈데일리) ent@issuedaily.com
사진 이슈데일리, 하정우
첫댓글 내꾸..♥
너무조타고
이상하네 어렸을땐 머리가 안컸는데...
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 진짴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