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소주병하나
김용례
좋은 사람도 매일 보면 반가움이 싱거워지듯 비를 좋아 하지만 매일 내리는 비
에 실증이나 있었다. 대지도 흠뻑 젖고 왠지 마음마저 눅눅해 하던 차에 평소 뜻
이 통하던 문우가 아주 빗 속 으로 빠져 보잔다 거절할 수 없는 유혹 이었다.
차를 몰고 바다를 향해 달렸다. 빗줄기는 더 거세지고 안개마저 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자욱했다. 그 안개와 비가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우리는 두려움보다
뚫고 나간다는 환희 같은 것을 느꼈다. 겁 없는 십대의 치기도 아니고 아줌마의
배짱도 아니고· 집을 나섰다는 달뜸 이였을까. 차안이 터지게 웃고 노래 부르고,
우린 이러고 싶지 않지만 비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아 이렇게 집을 나왔노라고 탈
선주부의 인터뷰 흉내를 내며 웃고 또 웃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오늘은 회 한점에 소주도 한잔 마시고 싶다.
바다가 그랬고, 비가 그랬고 빗속을 달려온 기분이 그랬다.
들뜬 마음으로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방파제 끝에는 빨간 등대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그 사람의 눈동자처럼 푸르게 맑은 바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와 마주보며
걸었다. 방파제를 만들려고 바다에 던져 놓은 테트라포드 위에 빈 소주병 하나가
서 있었다. 누군가 바다를 보면서 비우고 간 소주병 옆에 나도 가만히 서 보았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비우고 가버린 그는 누구일까. 바람일까 구름일까 조금 전
다녀간 소나기일까. 아니 실연당한 남자가 추억을 바다에 버리고 싶어 다녀갔을까,
나처럼 사는 게 버거워 욕심을 버리려고 왔을까
시 한편 낚으려고 다녀간 시인 이었을까. 빈 소주병이 시로 보인다. 알맹이 없
이 비워진 소주병이 텅 빈 내 마음 같아 소주병 옆에서 꺼이꺼이 울음이 났다. 소
나기가 세차게 내린다. 나는 전생에 소나기의 연인 이었나보다, 밤비도 좋고 장대
비는 더 좋고 양철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끝없는 상념속으로 이끈다. 비 만
오면 묵은 병처럼 그리움이 도져 욱신거린다.
멀리 오징어 배 여러 척이 길을 떠난다. 연오랑 세오녀가 된 것 같이 배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세월도 가고 오는 것 사람도 떠나고 맞이하는 것 보내고 싶
지 않지만 보내야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봐야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
생의만남과 헤어짐, 빈 소주병에 바닷물로 다시 채우며 늙은 유행가를 흥얼거려본
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느니 비워야 또 채우고 채워지는 동안의 그 희열
때문에 힘든 순간을 땀 한번 흠치는 시원함으로 달래지는 것이 복잡한 인생의 단
편처럼 느껴진다.
바위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사는 따개비처럼 살던 세상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
보는 여유를 가지고 다시 차를 돌렸다. 마음껏 즐긴 바다 떠나 온지 불과 두어
시간 인데 또 그립다 인생이 이런 것 인가 보다 돌아서면 아쉽고 그 속에 속하면
무감각해지고.
빈 소주병만 남겨놓고 간 그도 다시 뜨거운 심장이 되어 그의 일상으로 돌아갔
겠지.
2006/23집
첫댓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비우고 가버린 그는 누구일까. 바람일까 구름일까 조금 전
다녀간 소나기일까. 아니 실연당한 남자가 추억을 바다에 버리고 싶어 다녀갔을까,
나처럼 사는 게 버거워 욕심을 버리려고 왔을까
시 한편 낚으려고 다녀간 시인 이었을까. 빈 소주병이 시로 보인다. 알맹이 없
이 비워진 소주병이 텅 빈 내 마음 같아 소주병 옆에서 꺼이꺼이 울음이 났다
그 사람의 눈동자처럼 푸르게 맑은 바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 실연당한 남자가 추억을 바다에 버리고 싶어 다녀갔을까,
나처럼 사는 게 버거워 욕심을 버리려고 왔을까
시 한편 낚으려고 다녀간 시인 이었을까. 빈 소주병이 시로 보인다. 알맹이 없
이 비워진 소주병이 텅 빈 내 마음 같아 소주병 옆에서 꺼이꺼이 울음이 났다. 소
나기가 세차게 내린다. 나는 전생에 소나기의 연인 이었나보다, 밤비도 좋고 장대
비는 더 좋고 양철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끝없는 상념속으로 이끈다. 비 만
오면 묵은 병처럼 그리움이 도져 욱신거린다.
세월도 가고 오는 것 사람도 떠나고 맞이하는 것 보내고 싶
지 않지만 보내야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봐야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
생의만남과 헤어짐, 빈 소주병에 바닷물로 다시 채우며 늙은 유행가를 흥얼거려본
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느니 비워야 또 채우고 채워지는 동안의 그 희열
때문에 힘든 순간을 땀 한번 흠치는 시원함으로 달래지는 것이 복잡한 인생의 단
편처럼 느껴진다.
바위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사는 따개비처럼 살던 세상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
보는 여유를 가지고 다시 차를 돌렸다. 마음껏 즐긴 바다 떠나 온지 불과 두어
시간 인데 또 그립다 인생이 이런 것 인가 보다 돌아서면 아쉽고 그 속에 속하면
무감각해지고.
빈 소주병만 남겨놓고 간 그도 다시 뜨거운 심장이 되어 그의 일상으로 돌아갔
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