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 오두막에는 아이가 많았다는 게 정설(?)이다. 전기도 없던 시절이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도 간간이 지나가는 기차 소리에 잠은 자주 깨고 젊은 부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금슬 놀이뿐.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푹 칙칙 푹푹........... 기차소리 요란해도 우리 아기 잘도 잔다."
동요가 증명하듯 아기도 잘 자 주었으니 오죽했으랴!
그건 그렇다 손 치고,
코로나 이후의 삶은 넌-컨택트(Noncontact, *주)가 신대세(New Normal)가 될 것이라고 한다.
비대면 경제 활동.
비대면 사회 활동.
인터넷 뱅킹, 무인점포, 무인 자동차, 원격의료, 로봇 생산, 로봇 도우미, 로봇 애완동물, 재택근무, 플랫폼 화상회의, 랜선 공연, 인터넷 강의, 택배 발달,.....
이미 ICT, AI 기반 기술이 대세로 잡아가며 사람들은 밀려나고 간격은 멀어지고 있다.
비대면이 신대세가 되면 이런 결혼식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 비대면 결혼식 장면 ]
(청첩장)
. 신랑: ㅇㅇㅇ님 ㅇㅇㅇ님의 외동남 ㅇㅇㅇ
. 신부: ㅇㅇㅇ님 ㅇㅇㅇ님의 장녀 ㅇㅇㅇ
. 일시: ㅇㅇㅇㅇ년 ㅇㅇ월 ㅇㅇ일, ㅇㅇ시 ㅇㅇ분
. 결혼식 참석 방법:
1) M사 Z화상회의 플랫폼. 아이디: xxxxx, 비번: zzzz
2) 필수장비: 스피커, 마이크가 장착된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
3) 부득이 한 사정으로 실시간 참석이 불가능하신 분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지정된 클라우드에 저장 바랍니다.
4) 화면 조정을 위해 결혼식 시작 5분 전 컴퓨터를 켜고 카메라 앞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5) 하례 음식은 결혼식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하례객 각자의 주소지로 배송됩니다.
. 축의금: ㅇㅇ은행, xxxxxx-xx-xxxxxx. 전자화폐, 기프트콘 가능. 가상화폐는 혼주에 문의 바람.
(결혼식 3개월 전)
두 젊은 청춘의 연애의 결실로 결혼을 약속하고 양가 부모를 모신 가운데 상견례를 한다.
상견례 장면은 모두 영상으로 스틸 사진으로 촬영된다.
(결혼 1개월 전)
상견례에서 결혼을 허락받은 예비부부는 '사전 신혼여행'을 떠나고 신혼여행의 모든 과정이 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된다.
(결혼 3주 전)
예비 신랑 신부의 우인들이 레스토랑에 모여 결혼을 축하하고 싱글로서는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때 결혼 축하연 모습이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된다. 부케를 던지고 받는 장면도 이때 촬영된다.
(결혼 2주 전)
주례와 양가 부모를 모시고 결혼 전문 스튜디오에서 결혼식 장면을 촬영한다. 이때에는 양가 어머니 두 분의 기원 촛불 점등 장면, 신혼부부 서약 장면, 주례사 장면, 성혼 선언문 장면, 축가 장면, 결혼식 마치고 신혼여행 떠나는 장면 등이 촬영된다. 가까운 친척들의 사진도 예비 신랑 신부가 가운데 선 모습으로 이때 촬영된다.
스튜디오 촬영이 끝나면 예비 신랑 신부는 결혼 전 추억을 영상에 더 보태려 야외 촬영을 한다.
(결혼식 1주일 전)
결혼 전문 스튜디오에서는 그간 촬영한 영상, 사진과 예비 신랑 신부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연애시절 찍은 영상, 사진 등을 받아서 편집을 하고 예비 신랑 신부로부터 감수를 받는다.
(결혼식 당일)
시작 10분 전에 컴퓨터를 켜면 화면이 여러 조각으로 쪼개어져 보인다. 주례 위치, 신랑 신부 위치, 양가 부모 위치 등은 화면 중앙에 조금 크게 정돈되어 배치되어 있다. 하객 자리를 비추는 작은 화면들은 아직 좀 어수선해 보인다.
(결혼식 장면)
[사회자] 지금부터 ㅇㅇㅇ군과 ㅇㅇㅇ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하례객 여러분, 결혼식 중 언제든지 축하 댓글을 올려 주시면 실시간으로 화면 하단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회자의 개회 선언에 맞춰 컴퓨터 화면이 가지런히 정리되고 아직 제대로 착석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수선한 하례객 화면은 편집자에 의해 화면의 하단으로 내려진다.
*사회자가 양가 어머님의 축원 촛불 점화가 있겠습니다 하면, 스튜디오에서 미리 찍어 놓은 두세 컷의 장면이 줌인되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작아지며 사라진다.
*결혼식 순서에 따라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같은 방식으로 신랑 신부 등장 장면, 인사하는 장면, 서약하는 장면, 성혼 선언문, 주례사 장면 등이 화면에 등장하며 커졌다 작았다를 거듭한다.
*간간이 하객들의 모습도 같은 방식으로 서너 컷 화면에 비쳤다 사라진다.
*결혼식이 진행되면서 화면 하단에는 실시간 댓글이 지렁이처럼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꿈틀꿈틀 흘러간다.
[주례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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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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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혼하는 원앙 같은 한쌍은 2세 계획도 미리 세워 혼수품으로 마련하였습니다.
신랑은 임신, 출산으로 인해 몸매 망가지는 것을 크게 염려하는 신부의 의견을 존중하여 3개월 전 어느 혈기 충천한 날 새벽 5 시에 ㅇㅇ종합병원에서 정자를 채취하였습니다. 신부는 같은 달 가장 몸 상태가 좋은 배란일을 잡아 동병원에서 난자를 채취하였습니다.
건강한 신랑 신부로부터 채취된 정자 난자는 유능한 ㅇㅇ종합병원 전문 의사팀에 의해 수정되어 동병원 '안심자궁센터'로부터 임대한 '안심 자궁'에서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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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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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코로나 같은 유행병이 돌 때에는 양팔 간격으로 부부간의 사이를 벌려 잘 것이며, 부부의 정은 강렬한 눈빛으로만 나누되 몸의 정기가 솟아오를 때라도 각자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펄펄 끓어 넘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에는 양팔 벌린 간격에서 ET 영화에서 본 것처럼 검지 손가락 끝으로 육신의 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접촉 전후 손가락 끝은 반드시 알코올 소독제로 소독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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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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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주례사 이후 사전 촬영된 사진 찍는 장면, 부케 던지고 받는 장면 등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작아지기를 거듭하며 사라진다.
*잘 된 댓글 몇 개가 화면에 하이라이팅 되며 사회자에 의해 소개된다.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신랑 신부의 어린 시절 장면, 연애시절 장면, 사전 신혼여행 장면, 상견례 장면, 신랑 신부 우인들 축하 장면 등이 잘 기획 촬영 편집된 영화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며 흘러간다.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양가 부모님이 참석한 하객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육성으로 전하고, 가까운 집안 어른들의 육성 축하 격려의 말씀도 전해진다. 이때 자기 모습이 화면에 줌인되어 커지면 어떤 어른들은 어색해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사회자]
....... 이로서 오늘 신랑 ㅇㅇㅇ군과 신부 ㅇㅇㅇ양의 결혼식을 마치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멘트로 식은 끝이 난다.
*식의 중간중간에 화장실을 가거나 지루한 하객들이 카메라를 떠났다 돌아오는 모습 등도 쪼개진 작은 화면에서 포착된다.
*식이 끝나자마자 하객의 주소지로 배송된 하례 음식이 집안으로 들여져 식탁에 차려진다.
*이런 결혼식에 아직 익숙지 못한 어른들은 배달된 음식을 먹으며 "먼길을 오고 가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제. 사람도 보고. 격세지감(隔世之感)일쎄" 라며 혼잣말을 하며 옛날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한편, 결혼 전문 스튜디오에서는 촬영한 결혼식 영상과 스틸 사진을 하나의 멋진 결혼식 영화처럼 편집한다. 영상은 신랑 신부의 최종 감수 후 수정을 거쳐 신랑 신부에게 전달된다.
*최종본 영상을 전달받은 신랑 신부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카오 등 영상 플랫폼 사이트에 올리고 친지, 친구들에게 SNS로 영상이 올라간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댓글을 통해 전해지는 반응을 살핀다.
*이런 결혼식은 결혼 전문 스튜디오의 기획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당일에는 사회자와 화면 편집자는 스튜디오에서 진행을 하지만 신랑 신부와 가족들은 스튜디오나 집안 거실의 소파에 편히 앉아서 진행되는 것을 화면으로 보며 즐긴다.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은 육성으로 참석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양가 부모와 '그래도 결혼식에는 격식을 차려야 한다'며 카메라 앞에 앉은 나이 든 어른들이 대부분이다.
*하객들 중 마지막까지 카메라 앞을 지키는 사람도 대부분 신대세 비대면 문화에 익숙지 못한 어른들이고 젊은 하객들은 중간에 사진만 걸어 놓고 자리를 뜨기도 한다.
*대부분 사전 촬영을 한 신랑 신부는 결혼식 당일날은 사실상 할 일이 없다.
이 글은 현재로서는 다소 비약적이고 무리한 결혼식 장면으로 설정된 듯 하지만 ICT, AI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는 멀잖은 미래에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나마 경조사에는 얼굴을 내밀어야 체면치레가 된다며 결혼식 내내 정장 모습으로 카메라 앞을 지키는 세대가 세상을 등지고 나면 이 정도로 비약된 결혼식 장면마저 사라지고, 결혼식 당일에는 신랑 신부 측에서 제공하는 잘 찍힌 한 편의 결혼 영화를 보는 날이 될 것만 같다. 댓글이나 달면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여 신대세(New Normal) 세상으로 바뀌며 변해가도 사람 사는 곳에는 손에 손잡고, 얼굴을 마주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컨택트(대면접촉, Contact) 세상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주) 넌-컨택트(Noncontact, 비대면 접촉).
언택트(Untact)라는 용어가 '비대면 접촉'을 뜻하는 말로 코로나 이후 사회상의 변화를 예견하는 글에서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 말은 서울대 소비자학과 모교수가 2018년 10대 소비 트렌드로 '언택트 마케팅'을 언급하면서 시작된 듯한 내용의 인터넷 정보를 보았는데 그 교수가 처음 차용한 조어인 지 아닌 지 모르지만, Noncontact 나 Contactless 정도로 대치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굳이 Con(접두어) + tact(어간) 형식의 반의어로 고려한다 하더라도 영어 tact라는 단어는 '접촉. 대면'의 함의가 희박해 적절치 않아 보인다. 어설픈 지식이 화를 부른다는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한자성어를 생각게 하는 용어 차용이다.
(**주) 주례사에서 이 글 제목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필자의 다른 글도 보시려면 다음, 줌에서 '권삼현 글방'
또는 여기: https://blog.naver.com/samh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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