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8년 12월26일 현대중공업파업현장에서 노무현은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2. 1989년 현대자동차 파업현장에서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가 하루 놀면 온 세상이 멈춥니다.
그 잘났다는 대학교수. 국회의원. 사장님 전부가 뱃놀이 갔다가 물에 풍덩 빠져 죽으면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세상을 꾸려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노동자가 모두 염병을
해서 자빠져 버리면 우리 사회는 그 날로 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경제. 사회 관계 등 모든 것을 만들 때 여러분이 만듭니까.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의 대표가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사회를 위해 우리 다 함께 노력합시다. 여러분!".
3. 1990년5월4일 현대중공업의 총파업사태 때 노무현씨는 국회의원 자격으로 분규를 해결한다며
내려가 다음과 같은 말로 노동자들을 선동하였습니다.
"의원이나 검사 학자 부유층은 지금 죽어 없어져도 한국은 잘 되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가 없다면 한국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듭시다".
4. 1990년10월 5일, 보안사 이석양 이병이 폭로한 파일에는 노무현씨에 대해 이렇게 평가돼 있었다.
"노무현은 장기간 노동 및 인권 변호사 활동을 한 후, 국회에 진출, 재야의 지원금으로 노동자
권익을 빙자하여, 각종 노사분규 개입 및 활동했으며, 노동문제와 관련하여 반정부적인
과격한 언동으로 노동자를 선동하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동향 관찰이 요망되며 순화대상
a급인 자임".
5. 2002년 유세에서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 농민은 소수 특권 계급의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돼야 합니다.
재벌은 해체돼야 합니다".
"재벌 총수와 그 일족이 독점하고 있는 주식을 정부가 매수해 노동자에게 분배합시다.
매수와 분배 모두 20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 정도면 노동자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부채 탕감과 아울러 토지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분배합시다.
지금 제가 하는 주장은 공연히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닙니다".
6. 2003. 7. 18. 중앙일보는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과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성장정책을 쓰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노동자만 고생한다. 성장정책을
쓰면 안 된다.
외국자본이 들어오면 안 된다.
못살아도 민족자본만으로 살아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이러한 이들의 철학과 호전적인 투재행위로 인해 외국기업은 몰론 국내기업도 외국으로
일자리를 옮긴다.
노무현 이후 제조업의 70%가 해외로 나갔다.
7. 2003.11월, 뉴스위크 한국판이 국회의원 2백 8명을 상대로 한 실명 설문조사를 했다.
열우당은 외교안보, 국가보안법, 대북문제 등의 정치 분야에 있어서 강한 친북 색채를 띠고 있었다.
65.8%의 열우당 의원들이 노조의 경영참여를 지지했다.
76.3%는 반미-친북 성향을 나타냈다.
송석찬 의원은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악의 화신"이라고 발언했다.
이라크 파병반대를 당의 공식입장으로 채택했다.
임종석 의원은 파병을 반대하는 단식농성을 했다.
국가보안법폐지법률안 서명의원의 57%가 열우당 소속이다.
송석찬 의원은 "국가 보안법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악법"이라며
"국가 보안법의 부분개정이 아닌 전면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발언했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2003.7월 1일 북한인권개선촉구결의안 반대 및 기권*불참한 의원의 64%가 열우당 소속이었다.
열우당 의원들로부터 거침 없이 쏟아내는 말들이다.
“국보법과 같은 전근대적인 악법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느냐”,
“미국은 인디언을 학살하고 세운 나라다”,
“송두율은 위대한 학자다”,
"영해침범이 아니라 영해통과다“,
”제주해협은 북한에도 통항할 권리가 있다“,
”한총련이 합법화돼야 한다“,
”북한인권개선에 반대한다“,
17대 총선에는 간첩질을 했던 사람들, 반국가단체의 최고의원 및 간부를 지낸 사람들이
대거 열우당에 입성했다.
열우당 16대 현역의원 81%(47명중38명)가 이런 사람들로 차있다.
이는 기록에 나타난 자료이며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국보법 위반자(전대협 등) 40여명이 새롭게 17대 열우당 의원으로 새롭게 입성했다.
8. 노무현은 헌법을 여섯 차례 무시하면서 열우당 선거운동에 나섰다(탄핵사유).
이에 대해 국회와 언론과 애국시민단체들이 잇달아 경고를 보냈고,
드디어 2004년 3월 3일 헌법 기관인 중앙선거관리 위원회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이라는 경고를 보냈지만 그는 자숙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이 잘못됐다”며
“앞으로도 선거법에 관계없이 특정정당을 계속적으로 공개 지원하겠다”는 초헌법적,
반 법치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9. 2003. 6.13. 노무현은 일본에 가서 "나는 한국에서 공산당을 합법화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
이라는 말을 했다.
10. 2003. 7.10. 중국에 가서 우리의 통일을 저지하고 우리를 공격했던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11. 일본 [정론] 2003.8월호(저자 니시오카 쓰모두, “좌경화한 한국에서 번지는 반한 자학사관과
친북교육”)에서 아래 문장을 발췌한다.
1) “대한민국의 체제는 통일 이후에도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노는 “현단계에서 그에 대한 대답을 삼가겠다”고 대답했다.
2)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3) 부인의 부친은 경북 창원군 군당 부위원장이 되었다.
인민재판을 열어 9명의 주민을 학살한 죄로 국가보안법을 적용받아 무기징역을 받아
옥중에서 병사했다.
4) “국가보안법을 폐지합시다.
죄인으로 탄압받으면서 신음하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듭시다”.
5) 당선 직후 그는 장인의 묘소를 참배하면서도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홉 명(현제 밝혀진 사람은 11명) 의 가족들에게는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12. 2003.9.6. 해외 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 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범추위)와 법무부
고위 관계자를 앞세워 70- 80년대 일본 유럽 미주지역에서 친북 활동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귀국하지 못했던 인사 36명의 귀국을 허가했다.
송두률이 입국하여 법적 문제가 야기되자 노무현은 [송두율을 청와대에 초청하고 싶었다]고 말했고,
kbs가 송두율을 민주화인사요 세계적인 학자로 미화-영웅시하는 방송을 했고,
이어서 각료들과 여당인 열우당 의원들이 이어서 송두율 지지발언을 했다.
2003.9.24. 강금실 법무장관이 “설사 김철수라고 해도 처벌할 수 있겠어요.
그보다 더한 정치국원 이상의 인사들도 왔다갔다하는 판에"라며 송두율을 비호했고, 이어서
2003.10.10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이 송두율 사건에 대해 "왜 이렇게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송두율 문제를 희석시키려 했다.
열우당 이종걸의원은 “송두률은 하버마스에 버금가는 저명한 철학자다"라고 했고,
역시 신기남은 ”암흑의 시대에 외국에서 고민하던 학자의 행적을 갖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군사독재에 협력한 사람들, 과거의 잣대로 봐선 안되고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자기 발로 귀국해 수사에 협조하고 사과했는데 따뜻하게 맞아주지 못한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느냐',
이강래는 ”민주화 운동기념 사업회가 나름대로의 선정 기준에 따라 송 교수를 초청한 것
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고 감쌌고,
송석찬 의원은 “송교수 초청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며 감쌌다.
의원직을 가진 열우당 45명중 20명이 드러내놓고 송두율을 비호했으며 의중을 언론에
드러내 놓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도 상당수 있으리라 본다.
13. 2003.12.19. 노사모, 명계남이 주도한 "리멤버 1219" 행사에서 노무현은
"시민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노사모가 나서 달라"고 말했다.
명계남은 이렇게 응답했다. "탈레반은 다시 나서야 한다.
노 대통령을 믿는다면 끝까지 그의 지원군 홍위병이 돼야 한다.
나는 홍위병이다.
오마이뉴스 한겨레 경향신문은 뒤에서 비겁하게 똥침 놓지 말라.
내년 총선에 각 지역구 경선에 출마해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나도 출마할 것이다.
이왕이면 큰 데 가서 붙을 것이다.
12월까지 또박또박 악랄하게 전진해야 한다".
14. 2004.3.1.용산기지를 가리켜 “간섭과 침략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미군을 침략군으로 간주한 것으로서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위반행위이며
국가안보에 핵심 능력인 주한미군을 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파괴하는 행위다.
15. 2003.7. 노무현은 "한총련이 어떤 사상에 경도되어 철없는 공격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나는 안도감을 확인했다. 느낌이 좋았다",
“언제까지 한총련을 수배할 것인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16. 2003.5.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가 친북성향 및 이념편향자라고 규정, 임명에 반대한
사람을 국정원 원장과 기조실장에 임명했다.
노무현 스스로가 친김정일 세력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 사건이다.
17. 2003.8.19. 노무현은 ‘8·15 국민대회’에서 북한 인공기와 김정일 위원장 초상화를
불태운 것을 문제 삼자 “인공기와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를 불태운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유감스러운 일이다”고 사과했다.
18. 2004.2.24. 노무현은 "통일수도" 문제와 관련하여
“남북지방정부를 전제로 한 국가연합”을 지향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헌법위반이다.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국가로 승인하겠다는 말은 헌법을
고친 후에나 해야 한다.
이는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헌법3조의 영토조항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어서 그는 “남북연합 단계가 되면 개성이나 판문점에 통일수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19. 2004. 5월26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대북송금사건
관계자 6명이 재판을 받고 있는 도중에 사면부터 단행했다.
20. 2004.7.1. 의문사위는 남파간첩 및 골수 빨지산을 민주화인사로 규정한 데 이어
7.5.에는 “현재 생존해 있는 전향 장기수들은 유신정권시절 폭력에 의해 강제로
전향서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보내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kal858기 폭발사고를 재규명하겠다 했다.
이와 병행하여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김재규를
민주화열사로 지정하려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21. 이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자 2004.7.31. 노무현은
“의문사위의 활동에 큰 문제가 없으며 의문사위의 결정을 근거로 한 야당의
국가정체성 공세를 사실상 정치공세다”라고 반박했다.
22. 2004. 7. 16.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간첩죄 등으로 실형을 살았던 3명을
직원으로 채용해 ‘조사관’으로 활동하게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중 한 명은 북한 간첩에 포섭돼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주고 공작금을 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 93년 검거돼 4년간 징역을 살았고,
다른 한 명은 반국가단체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의 연락 총책으로 활동하다
90년 체포돼 8년간 복역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모두 사면·복권돼서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의문사위의 태도다.
간첩죄로 4년간 복역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 조사관 k씨가 작년 7월부터 올 6월까지
전 국방장관을 포함한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 출신 9명(예비역)을 소환 조사하고,
현 송영근(宋泳勤) 국방부 기무사령관에게도 5차례에 걸쳐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이와 함께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출신으로 8년간 복역한 의문사위 h조사팀장
역시 군에서 발생한 ‘허원근 사망사건’ 조사에 참여, 정수성(鄭壽星) 육군1군사령관을 한차례
직접 조사했다.
의문사위는 1기가 출범한 2000년 이후 기무사 관계자만 150여명을 조사하는 등, 군·경찰·국가정보원 등 국가 안보기관 전현직 관계자를 소환 조사해 왔다.
‘허원근 사망사건’ 조사에 참여한 h팀장은 사노맹 연락국장으로 활동한 혐의로 지난 90년 구속된 뒤 8년 후 만기 출소했으며, 2000년 사면·복권 직후 2000년 11월부터 의문사위에 참여해 민간조사관으로 활동해 왔다. ‘허원근 사건’ 조사팀은 지금까지 정 사령관을 비롯한 20여명의 군 관계자를 조사했다.
23. nsc 사무처장 이종석은 2004.6.19일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된 ‘2004년 무궁화회의’에 강사로 초대돼 각군 장성(준장-중장) 70∼80명을 상대로 안보관련 현안을 설명하면서 ‘적개심 고취로 강군이 될 수는 없으며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고취함으로써 강군이 된다문제의 발언을 했다.
24. 2004. 7.14. nll을 침범하고 한국군을 모략하는 북괴의 손을 들어주었다. 북괴에게는 말 한마디 못하고 영해를 잘 지켜낸 장군들과 국방장관을 해임했다.
25. 김안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장은 수도이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만약 남북간 전쟁이 일어나 평택쯤에서 휴전이 된다면 인구는 5할, 국력은 7할 이상이 빠져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얼떨결에 속내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북한이 처내려오면 못이기는 척하고 서울을 포기한 후 휴전을 요구하면 대한민국 자산의 70%, 인구의 50%를 북에 주려는 것으로 비쳐진다
줄리아님? 수많은 한국의 정상적인 법대 나온 사람과 노무현을 비교하다니......차라리 법대를 나오지 못하고 줄창 들어앉아 출세만을 노리고 고시공부만 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해야 사실에 가까울듯~ 제대로 법대 나오고 반듯하게 변호사 생활하였다면 오히려 좋은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까요?.......//야생마45님 감사!
첫댓글 놈현 처가족보 공개하여 국가보위 이룩하자.사돈팔촌까지.
줄리아님? 수많은 한국의 정상적인 법대 나온 사람과 노무현을 비교하다니......차라리 법대를 나오지 못하고 줄창 들어앉아 출세만을 노리고 고시공부만 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해야 사실에 가까울듯~ 제대로 법대 나오고 반듯하게 변호사 생활하였다면 오히려 좋은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까요?.......//야생마45님 감사!
이리속고 저리속고....마음갈때없는 국민들을 다돋거려주는게 가장급한일인데.... 지금은 국민들을 설득하기위한 설득은 아무리 강하게하더라도 통하지가 않는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대중이한테 사과할것은 사과하신 우리 박대표님결정에 올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