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대 전의 성북동이라면 차 없이는 접근이 어려운 익명의 부호들이나 살고,
요정이 있어, 음모와 비리의 근거지라는 어두운 이미지가 있었던게 사실이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로서, 그 부정적 이미지는 더 강화된 것 같다.
그러나 이미지는 허상인 것이, 소생이 가본 요정은( 접대 받으러 가거나, 외국인 접대 하러 간)
옛 기생집 즉 기예를 보여주는 한정식집이지, 컴컴한 지하의 룸쌀롱 과는 거리가 먼,
상대적으로 건전한, 특히 외국상인들에게 맛보기로 한국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사회적 교섭의 장소였다고 기억한다.
다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불고기 갈비 굽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검은 세단이 오가니 주지육림의 나쁜 상상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이해가 된다.
21세기의 성북동은 이미 부자동네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경비가 가능한 외국대사관저로 많이 쓰이고, 수도원이 있는가 하면, 대원각이 길상사라는 산사로
변신한지도 오래 되어 단청을 안한 극락전이 벌써 고찰의 분위기를 풍긴다.
길상사 부처상이나, 보살상은 법정스님의 영향인지 다이어트한 단아한 상이라,
verdad는 석조 관음보살상이 마리아상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한복입은 마리아 상과 흡사하다.
마침 여러 젊은 수녀들이 방문하여, 그 말의 신뢰성을 강화하게 된다.
법정스님이 말한대로, 더 이상 불사를 하면 안될 정도로 절이 꽉차 보였다.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로 등록된 느티나무 고목과
자연의 배경을 그대로 살린 극락전에 어울리는 간소한 범종각과 떨어져
극락전 옆에 최근에 만든 듯한 화려한 단청이 돋보이는 법고와 목어는 눈에 거슬린다.
눈밝은 verdad가 잡아낸 선원의 부속건물인 방갈로 타입의 수행처가 육바라밀의 이름을 따 편액을 붙인 것이
이 곳이 잡인들이 놀러오는 유원지가 아니라, 부처가 되고자 수행에 전념해야 할 곳이라는 것을 상기 시킨다.
공양을 드려야 할 속인이 점심공양을 받고 왔으니, 길상사에 대한 주제 넘은 비판은 각설하고,
이 동네에 성당과 교회(덕수교회) 절이 이웃하여 간송미술관 앞의 성북초교에서 같이 바자회도 하고
사이좋게 지낸다니,김 추기경과 법정스님의 교유에 힘 입은 바 크겠으나, 보기 좋은 일이고,
성북동 비둘기가 다시 번지수를 찾았다고, 김광섭 시인에게 고해도 될 듯.
만해의 심우장과 이태준, 최순우의 옛집을 둘러보고, 팔천량 짜리 한정식에 막걸리 한 잔 걸치러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첫댓글 멋 있는 하루를 보냈구먼! 그런데 혹시 길상사의 전신은 삼청각이 아니라 대원각이 아니었던가?
맞습니다. 잘 보아주었네요. 요새는 자주 헷갈립니다. 검색을 해 보니, 석조 관음보살상은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의 작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