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만의 책을 읽고 쓰는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책을 읽다가 마음을 두드리는 부분이 있으면 밑줄 긋고 견출지를 붙여놓습니다. 마음에 새겨지는 문장들을 노트에 옮겨 적고요. 그리고 제 생각을 씁니다. 책의 핵심 메시지를 그림으로 쓱쓱 그려서 기억하기 쉽게 만들기도 하죠. 독서는 읽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책 내용을 내 지식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죠. 그러려면 써야 해요. 읽기의 완성은 쓰기입니다. 많은 분이 읽고 쓰는 걸 어려워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만든 ‘3331 독서법’을 추천합니다. 책의 내용을 잘 기억할 수 있고, 글 쓰는 데도 유용하죠.
그게 뭔가요?
첫 번째 3은 이 책의 문장 가운데 내가 기억해서 꼭 써먹고 싶은 세 문장을 적습니다. 두 번째 3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 세 가지를 뜻해요. 마지막 3은 내 삶이나 업무에 적용해 실천할 사항 세 가지를 쓰는 겁니다. 마지막 1은 읽은 책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는 거예요. 이렇게 적은 열 가지를 갖고 다른 사람과 토론해 보세요. 똑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느낀 점이 다릅니다. 어떤 문장이 마음에 새겨지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서로 생각을 교환하다 보면 책을 한 번 더 읽는 효과가 생깁니다.
📢 배움에는 ‘땀’이 필요하다
유영만 교수는 책을 통해 자신은 오이에서 피클이 됐다고 했다. 비가역적인 존재론적 변화가 일으켰다는 말이다. 하지만 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박사를 끝내고 들어간 직장에선 이론과 현장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피부로 느꼈다. 그의 직장은 삼성인력개발원이었다. 거기서 그는 삼성그룹 임직원을 위한 교육과정을 기획해 강의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유 교수는 “배우는 데 ‘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체험,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건가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도 땀이 가르쳐줬어요. 강의를 잘 못해서 등에 땀이 났거든요. 그 덕에 알게 됐죠. (웃음) 명색이 해외에서 박사까지 했는데, 사람들한테 전달을 못하는 겁니다. 제가 얘길하면 표정이 안 좋았죠. ‘왜 내 얘기를 재미없어 할까’ 고민했어요. 그때 알았어요. 제가 배운 지식이 얼마나 관념적이고 이상적인지요. 책상머리에서 나온 이론이나 개념만 말했던 겁니다. 체험이 빠져 있었어요. 내 몸으로 겪지 않고 남의 이야기로만 설명하려다 보니 지루했던 거죠.
요즘엔 챗GPT가 몇 초 만에 원하는 답을 줍니다. 굳이 땀 흘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말씀대로 인공지능은 땀을 흘리지 않아요. 남이 만든 데이터베이스를 편집해 논리적인 답을 내놓죠. 하지만 감동까지 주진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다 쓰는 사람의 특징이 뭔 줄 아세요? 설명을 하는 겁니다. 반면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은 설득을 잘해요. 공감을 이끌어 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죠. 챗GPT에게 인간의 손가락이 왜 열 개인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진화의 결과이고, 복잡한 도구를 사용해 문화 발전을 하게 만든 요인이라는 논리적인 설명을 찾아줬어요. 그런데 함민복 시인은 성선설이란 시에서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풀어내요.
뭐라고 했죠?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이라고 했어요. 임신 기간인 열 달간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라면, 마음이 끌리는 해석이죠.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책상 앞에서 관념을 만들 수 있지만 경험을 얻을 순 없어요. 경험이 중요한 건 신념을 만들기 때문이에요. 몸을 던져 땀 흘린 경험이 몸에 남고, 그렇게 탄생한 자기만의 살아 있는 언어, 신념에 찬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심장을 두드립니다. 챗GPT 시대일수록 우리가 경험으로 체화된 지식, 실천적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죠.
유 교수는 "챗GPT 시대에는 몸을 던져, 땀 흘려 얻은 실천적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2년 사하라 사막 월드 마라톤에 참가한 유영만 교수의 모습이다. 사진 유영만 교수
실천적 지혜를 얻으려면 어떤 경험을 해야 할까요?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경계를 넘어야 해요. 낯선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고, 낯선 질문이 생겨나요. 답을 찾으려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우칠 수 있고, 상상하지 못한 걸 창조할 수 있습니다. 지성인일수록 야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만 쓰지 말고 몸을 써야 한다는 얘깁니다. 야성 없는 지성은 지루합니다. 제가 사하라 사막 월드 마라톤(2012년)에 도전하고, 킬리만자로를 등반(2015년)하는 여러 도전을 하는 것도 그래섭니다.
야성을 갖추려면 평소 체력을 열심히 키워야 할 것 같아요.
전 매일 새벽 다섯 시 반쯤 일어나 한 시간쯤 헬스장에 가서 운동해요. 그렇게 생활한 지가 30년 가까이 됐어요. 미국에서 박사할 때 일주일에 사나흘 저녁 때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어요. 영어로 수업 듣고 공부하기도 벅찬데, 새벽까지 공부하는 날이 많다 보니 체력이 바닥났어요. 결국 쓰러졌습니다. 그때부터 운동을 했어요. 살려고요.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이 절실했거든요. 뇌력도 체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매일 운동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운동을 지속하는 비결이 있나요?
전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바로 일어납니다. 말 그대로 1초 안에 일어나야 해요. 그 순간이 지나면 운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운동 안 해도 되는 이유들이 머릿속에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하거든요. 생각을 끊고 일단 나가야 해요. 그러다 운동하는 맛을 알게 되면, 습관이 됩니다. 전 이제 운동을 하지 않으면 더 피곤해집니다. 운동이 내 몸과 삶에 일으키는 긍정적인 변화를 실제로 겪어보면 오히려 끊기가 어려워집니다.
📢 “끊기 없는 끈기는 위기다”
2012년 유 교수가 사하라 사막에서 마라톤을 할 때의 일이다. 중반쯤인 120Km 지점에서 한계가 왔다는 걸 알았다. 완주라는 목표에 집착했다간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하프마라톤에 40번가량 참여하며 몸을 다져온 그였다. 이번 대회를 위해 준비한 수많은 시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포기했다. 유 교수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실제 한계 상황에선 위험한 조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끊기 없는 끈기는 오히려 위기를 불러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영만 교수는 "끊기가 없는 끈기는 위기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끊기를 왜 강조하시는 건가요?
과거엔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가는 사람을 성공의 표상으로 여겼어요. 끈기가 미덕이고, 포기는 악덕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공식으로 성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미래는 전에 없이 불확실하죠. 버티는 끈기는 오히려 무모할 수 있습니다. 적확한 순간에 끊을 줄 알아야 해요. 그동안 쏟아부은 매몰 비용, 손실을 보전해야겠단 생각으로 끌고 가다간 삶이 더 피폐해질 뿐입니다.
성공하려면 끈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끈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끊어버려야 할 것과 끈기를 발휘해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하고, 선택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죠. 끊기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전략입니다. 끊어내서 내가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대상에 잘 쓸 때 더 성공하고 행복해질 수 있어요.
교수님은 삶에서 어떤 걸 끊으셨나요?
가장 크게 끊은 건 고시 공부예요. 담배와 드럼도 끊었죠. 운동을 하는데 자꾸 호흡이 달리더라고요. 어느 겨울에 창문을 열어놓고 덜덜 떨면서 담배를 피우다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게 우습잖아요. 한 칼에 끊었습니다. 드럼은 3년 정도 연주했어요. 드럼 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죠. 강연 전에 먼저 드럼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드럼 공연을 앞두면 늘 다리가 떨렸어요. 사실은 제가 박치, 음치였던 겁니다. 그래서 공연을 앞두고 그렇게 다리가 떨린 거였어요. 강연을 할 때는 심장이 떨리는 데 말이죠.
다리가 떨리면 끊고, 심장이 떨리면 계속해야 하는 거군요?
다리가 떨린다는 건 불안하고 초조하단 겁니다. 심장이 떨린다는 건 설레고 행복하다는 거고요.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심장이 떨릴 거예요. 좋아는 하지만 잘할 수 없다면 다리가 떨리고요. 다리가 떨리는 일은 빨리 포기해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심장 떨리는 일에 집중하세요. 보다 확실하게 끈기와 끊기 대상을 구분하는 팁이 있어요. 결정의 기준이 있으면 됩니다. 전 그걸 ‘핵심 가치’라고 부릅니다.
유 교수는 "인생을 이끌어가는 핵심 가치를 정하고, 끊기와 끈기를 선택과 집중하라"고 말했다. 사진은 2021년 유영만 교수가 자전거로 국토를 종주할 때의 모습. 사진 유영만 교수
핵심 가치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 일은 계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결정하는 기준이에요. 저에겐 그런 핵심 가치가 5개 있습니다. 바로 열정, 혁신, 신뢰, 도전, 행복입니다. 모두 제 심장을 두드리는 단어들을 꼽은 겁니다. 인생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길을 안내해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죠.
끊고 싶어도 못 끊는 일이나 관계도 적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도 없고요.
독이 되는 인간관계는 가족일지라도 끊어야 합니다. 단번에 끊기 어렵다면 거리를 두세요. 그렇게 멀어지면 어느 순간 끊깁니다.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살아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더 그렇죠. 그렇다면 기왕에 해야 하는 일 재미있고 즐겁게 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움이 되고 의미가 생기는 경우도 많아요. 상사 대신 축사를 써야 하는 업무가 주어졌다고 해보죠. 당연히 하기 싫죠. 그래도 기꺼운 마음으로 하다 보면 누군가를 감동하게 만드는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지금 일을 하는 그 순간을 즐기란 겁니다. 목표 달성에만 매몰되지 말고요.
끊기에도, 도전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유 교수에게 두려움을 떨치고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그는 “일단 해보면 된다”고 했다. 뭐든 도전해서 뚝심있게 지속하려면 해봐서 그 ‘맛’을 아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기 전에 했던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 해도, 해봐야 알 수 있다. 유 교수는 ‘도전’이란 단어가 주는 거창함에 겁먹을 필요도 없다고 했다.
어제와 다르게 하는 모든 행동이 도전입니다. 어젠 가지 않았던 골목길로 걸어가 보는 것도 도전입니다. 내가 도전한 만큼 세상은 다르게 배울 수 있어요.
용접공 출신의 유영만 교수가 인생에서 배운 세 가지
·“책이 운명을 바꾼다”: 방황하던 용접공이 대학 진학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건 우연히 집어든 책 덕분이었습니다. 책 속에 빠져 살면 새로운 세상의 창문이 열립니다. 읽고 쓰는 삶이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배움에는 땀이 필요하다”: 체험 없는 개념은 지루합니다. 내 몸으로 땀 흘려 얻은 나만의 언어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 경계를 넘으세요. 챗GPT 시대엔 그런 실천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끊기 없는 끈기는 위기다”: 하나의 방식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버티는 끈기가 되려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어요. 인생에서 끊기를 발휘해 내가 잘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끈기를 집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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