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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용지,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바둑
바둑소년 육용지, 영화가 바둑이고 바둑이 곧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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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용지, 흔치 않은 성에 뭔가 범상치 않은 이름이다. 바둑계 사람들이 '한번 들어본 것은 같다'고 이야기 하는 건 실제 지나치면서 한 번쯤 들어봤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최근 몇년간의 아마추어 대회현장에서 활약하는 육용지(26)라는 이름의 청년을 무심코 여러 번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말에 동아일보에 육용지씨에 관한 기사가 떴다. “올해 400편 봤어요… 바둑 SF영화 시나리오 구상중” 라는 제목의 2012년 12월 18일자기사다. 여기서 그는 아마 6단이며 중학교 때 본격적으로 바둑을 시작했다고 밝힌다. 영화광 육용지, 바둑사범 육용지 두 개의 얼굴이 일단 보인다. 그리고 아마대회 진행자로서 온갖 잡무를 해내는 '생활인' 육용지가 거기에 있었다. 아직 많다고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흔치 않은 역정이다. 트위터에선 영화 좋아하는 '바둑소년'으로 알려져 있다 . 2월 4일 서울 한국기원 옆 카페유전에서 육용지를 직접 만났다. 바둑을 오랫동안 파고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유의 수줍음이 눈에 띈다. 길고 고운 힌 손가락은 긴 시간 바둑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일단 바둑 이야기부터. - 반갑다. 신문에 소개된 걸 보고 새삼 이런 사람이 바둑계에 있었구나 했다. 바둑은 어떻게 배우게 됐나? "어릴 때 굉장히 산만해서 집중력도 쌓고 차분해지라고 부모님이 바둑을 배우게 했다. 중학교때쯤엔 오히려 지나치게 조용해져서 완전히 성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는 학교를 병행해서 취미로 하다가 점점 빠져들었다. 중2때부터 (학업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바둑에 뛰어들었다. 부모님들이 그리 염려하시지는 않았다.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흔쾌히 하라고 했다. 어머니는 ' 학창시절은 인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건데 내 학창시절이 없어지는 거'라고 조금 염려하시기도 했다." - 바둑 수준을 높이려면 일단 시간과 노력이 필수다. 어떻게 현재의 수준에 도달했는지? "바둑을 본격적으로 하기는 좀 늦은 나이였다.(87년생), 고향이 삼천포 부근이었는데 10살 때쯤 인천으로 왔다. 인천 김원 도장에서 공부했었다, 다만 나보다 더 어린 애들이 연구생 상위에 많이 있어서 연구생보단 도장에서 더 공부하며 준비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20살 무렵엔 청주에서 1~2년 바둑사범으로 일해었다. 청주에서 바둑사범으로 일할 때 원장님이 아마단증 이야기를 해서 아마추어 바둑대회와 단급인정대회를 통해 아마 6단을 땄다." - 학업은? "검정고시로 했다. 학교는 중학교때부터 다니지 않았다. 대학을 준비하기 보다는 바둑을 하고 글을 쓰고 하면서 영화공부를 한다. 대학교를 다니는 않는 것도 좋다. 다만 내 친구는 옛날 도장 친구가 대부분이다. 물론 영화쪽에도 새로 사귄 또래 친구, 선배, 영화 감독님들이 있다, 모두 진짜 친구들이다. 그래도 단짝 같은 친구는 아직 없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친구들이 있는 거 보면 부럽기도 하다. 20대 들어 '클럽 A7'팀에서 주말엔 주로 아마추어 대회진행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이용하는 장점이 있다. 글 쓰며 영화보며 시나리오 공부를 한다.독학이다. 관련 책 찾아보고 공부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고, 바둑을 보면서 스토리를 발견한다." 자신의 시간과 육체의 능력을 오로지 한 곳에 모두 투입하고 소비하는 것을 열정이라고도 한다. 다른 말론 중독이라는 것도 있다. 자기도 모르게 좋아서 빠져드는 것이다. 개인의 성공이나 명예에 그것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열정, 끝을 보는 성격'으로 찬양이 되고, 그것이 개인의 성취에 특히 경제적 자립에 어려움을 초래하면 심지어 '문제'라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 프로 입단에 실패한 연구생들이 스스로 열패감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러한 사회풍조와도 조금은 관련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경로는 그런 '열정과 중독'의 갈래길로 가득하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을 해봤다는 것과 못해봤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육용지는 어땠을까? 바둑을 선택해서 몰입한 것에 대한 낙심은 없었을까? 대단히 수줍긴 하지만 육용지는 또한 대단히 낙천적이다. - 왜 바둑을 택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 혹은 프로입단을 하기 어렵구나 했을 때 느끼는 낭패감 같은 것도 있겠는데. "그런 거는 없다. 내가 소극적이긴 해도 지금도 낙심과 좌절은 없는 편이다, 지방에 내려가서 사범일을 하라 할 때도 이런 게 또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시 서울에 와서 A7 홍시범 감독님을 알게되고 아마바둑계도 더 알게 되고 이렇게 사람들과 일을 조금씩 더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 잘 적응하고,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게 감사하고 또한 행복하다. 모든 과정은 이겨 내야 하는 것이다. 누구한테나 그렇지 않은가? 나중에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 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밀고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 물론 소극적인 성향은 아직도 자리잡고 있지만 여러 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바둑 행사도 많이 다니다보니 주위에선 농담도 많이하고 밝아져서 좋다고 한다. 아직 공개적으로 뭔가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있다. 영화모임에 나가면. 듣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10명 모이면 다른 사람이 99%를 이야기하고, 나는 1% 정도의 리액션을 하는 정도같다. 내가 말 하는 것을 듣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아주 예전이면 이런 인터뷰를 아예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니까 많이 바뀐 것이다." - 얼마나 소극적이었나? "청주에서 바둑사범으로 있을 때 당시 김연수 원장님이 제 성격을 변화시키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제가 애들 앞에서 "얘들아~ 조용히 해"라고 과감히 이야기를 못 하는 성격이었다. 그게 처음엔 잘 안되더라. 하하" - 신문에 나온 걸 보니 영화감독들이 영화에 빠져 보는 훈련, 보는 학습을 하는 것과 무척 비슷하다. 장르 안가리고 특별 프로그램전까지 찾아서 모두 보는 것 말이다. 장래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것이 목표인가? "그런 질문을 주위에서 많이 받는다. 일단 시나리오 훈련 하면서 영화 준비를 하고 싶다. 어떻게 각색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쓴 시나리오가 관객과 만날 수 있으면 한다. 그게 꿈이다. 혹시 그게 바둑영화라면 정말 다양한 바둑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 - 2012년 '올해의 관람왕'이라는 타이틀로 신문에 나올 정도로 전문적 영화보기를 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나 SNS를 통해 일단 영화 관련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나? 혹은 벌써 하고 있나? "'써라' 소리는 자주 듣는데, 성격 때문인지 대중적으로 쓰기 보다는 노트에 끄적거리거나 따로 정리해놓는 거가 편하다. 바둑에 집중해 빠지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보고 즐기고 하는 것보다 좀더 파고 들어 오래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금방금방 쓰기보다는 두고 생각한 다음 정리하는 편이다. 그냥 노트에만 쓰고 블로그에 잘 옮기지는 않는다." - 출발은 바둑인이지만 이제는 영화인인 것 같다. 그러니까 'A7'에서 아마대회 진행을 하면서 어느정도 경제적 생활을 꾸리고 이제 남는 시간은 모두 영화에 투입하는 것 같다. "아직은 순수한 관객의 입장에 선 편이다, 혹시라도 제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면 그때서야 영화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는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써보고 싶은 것에 대한 테마를 잡고 준비한다.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지는 않아서 진행이 더디다, 주변에선 빨리 써보라고 하는데 말이다. 현재 꼭 시나리오까진 아니어도 개인적으로 정리해 놓은 다이어리, 그런 게 2009년부터 4~5권쯤 쌓여있다. 시나리오는 노트와는 별도로 말이다." - 영화의 매력이랄까, 바둑처럼 빠져드는 게 있나보다. "바둑을 보면 한 수 한 수를 보며 보이지 않는 수들을 생각하고 예상하고, 그렇게 안됐을 때는 다르게 대응하곤 한다. 영화도 스토리를 보며 예상을 하는데 반전이랄까 이렇게 풀어갈 수 있구나. 이런 장면이 나오겠구나 하는데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공통점을 느낀다. 다른 부분도 물론 많이 있지만. 영화도 일단 눈으로 보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한 수를 놓고 오래 생각할 수 있는 것, 한 장면을 놓고 오래 음미할 수 있는 것, 이것은 마치 바둑과 같다." - 영화의 관점에서 바둑을 설명하면 어떨까? 본인에게 바둑이란, 또한 영화란? "작년에 특히 '영화란 너에게 무엇인가'란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영화는 한 마디로 바둑판이다. 바둑판안에 수많은 변화가 있듯이 영화또한 한 편에 많은 변화가 있다. 영화가 바둑이고 바둑이 영화다. " - 영화관련 학과로 진학하고 생각은, 영화수업을 위해 유학하고 싶은 생각도 있나? "유학까지는 아직 생각해 본 적 없다, 바둑 활동을 하면서 자유롭게 영화 공부를 하다보니까 그런 것 같다. 또 그리하면 바둑을 떠나 있어야 하니까.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지금 지내는게 행복하다. 정말 기회가 되면 해외영화제에 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 바둑계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 없나? 바둑에 대한 꿈도 상당했을 텐데 "아쉬움보단 바람이 있다. 전체로 보면 프로바둑이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아마추어 대회부문도 다들 노력하고 있다, 좀 많이 더 소개가 됐으면 좋겠다. 올해 입단한 이호승은 동갑 친구다. 올해 입단한 걸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그랬다. 죽어라 공부만 하는 데도 못 하는 애들도 많이 있으니까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이호승은 옛날 김원도장에 같이 있던 친구라, 마치 내가 입단한 것처럼 대단히 기뻤다. 입단한 호승이를 보면서 요즘엔 오픈전 같은 대회는 누구나 기회가 있으니까, 한번 쯤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허황된 꿈이다. 갈고 닦아 나가볼까하는 그런 거, 하하하" - 'A7'에서 일하는 것은 힘들지 않나? 시기적으로 일이 많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할텐데 "어려운 것이 있다기 보다는 배우는 게 많다. 일이 없을 땐 자유롭고, 할 때는 집중해서 하면 된다, 처음엔 실수가 많았는데 (홍시범) 감독님 하시는 거 보고 많이 배웠다." - 영화쪽은 서적으로 독학하고 영화보는 것 외 다른 것이 있나? "영화쪽 모임을 같이 한다, 영화 감독님들과 만나는 시간도 적극적으로 찾아간다. 감독과의 대화같은 프로그램은 적극적으로 찾아가 듣고 배우고 한다."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바둑 끝으로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바둑'을 한 편씩, 한 판씩, 혹은 여러 편이나, 여러 판을 꼽아도 된다고 이야기 했다. 이 질문이 이렇게 어렵고 많은 대답을 유도할 줄은 몰랐다. 5분이나 10분이 지나는데도 계속 답을 하기보다 여러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 장르나 시대 구분을 하지 않고 몇 개월씩에 걸쳐 몇 백편씩 보곤 한다. 이러니까 이게 몇편만을 꼽기가 상당히 힘들다. 영화를 그냥 즐기면서 보면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건데, 공부처럼 찾아보다 보니까 대답하기가 생각보다 힘들다. 이거 자꾸 생각이 많아져서 더 힘들다. 하하" 일단 말문을 텄지만 이야기를 더 이어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 바둑부터 생각나는 이야기를 시작해보라했다. "인천에 왔을 때다. 초등학교 3학년때 서울서 기초를 좀 배우다 인천 바둑교실(주안)에서 공부하면서 제가 바둑에 푹 빠지게 됐다. 김원 도장에 가서 공부하던 시기에도 어떤 기보라기보다는 사람들을 만나 가는 거였다. 기보로는 처음 놔본 게 이창호 명국선이다, 지금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너덜너덜해진 그 기보를 많이 놔봤다. 그랬던 거 같다. 대국보다는 바둑도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빠져들게 됐다. 다들 좋은 분들이었다. 스무살때 만난 청주의 김연수 원장님은 바둑밖에 모르던 내게 사회생활을 알게 해주신 분이라 고맙다.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김연수 원장님은 좀 더 청주에서 있으라 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당시에 청주에서 바둑사범을 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일단 저도 혼자서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제가 바둑을 하는 것을 언제나 이해해주던 분이다. 몸이 좀 아프셨는데 그렇게 돌아가실 줄은 잘 몰랐다. 목적도 없었다. 서울에 그냥 올라와서 걸음이 가는대로 걷다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게 됐다. 그렇게 영화에 빠지게됐다." "상업적인 영화든 저예산 독립영화든 좋은 작품은 많다. 가령 작년같은 경우 배급망이 없어 고전했던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도 좋다. 극장가서 찾아보고 다양한 영화들에 관심을 갖다보니까 예술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한국 영상자료원, 외국계 문화원 등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 5년전, 2009년 쯤인가에 '여름 속삭임'을 봤다. '글과 책 '을 다룬 내용이 많아, 아 이런 영화도 있구나 했다. '많이 안 알려져 있어도 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 했다. 외국영화 "구구는 고양이다."라는 영화도 기억이 갑자기 난다. 고양이 영화다, 일정 관객층이 있는 영화다. 사람과 고양이를 접목시켜 삶의 향기를 잘 표현한 영화였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점점 영화에 빠져들게 됐다. " 대답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은 아픈 일이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괜한 질문을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육용지 씨가 마지막으로 바둑과 영화가 접목하는 구상을 밝힌다. 바둑싸이트와의 인터뷰인 것을 감안해준 것 같다. "일단 글로 소통하고 싶다, 책도 써보고 싶지만, 지금은 시나리오가 먼저다. 건축학개론처럼 바둑도 영화와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미생도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바둑과 접목이 됐듯 말이다. 분명 바둑도 영화를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바둑하면 그냥 옛날의 이미지들이 많이 남아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서 다양한 이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말이다." |
첫댓글 헐..용지. 기사에 나올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네. 그 말없이 수줍기만 하던 친구가..ㅎㅎ 영화쪽으로 발을 넓힌것 같은데 하는 일 모두 잘되길 바라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