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을 기억하는가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최승자-
청파동에 가고 싶었다. 그곳은 내가 나온 효창국민학교가 있었고 내어린 시절의 추억과 꿈이
묻어 있는 곳이다. 6학년때인 69년 가을 당시로는 신천지인 화곡동으로 이사하여 청파동을
떠난후 50여년만에 오늘 그곳을 다녀왔다. 내가 살던 시절엔 원효로 신광여고앞 개천에서
미꾸라지를 잡으며 놀기도 하고 성남극장앞 전차레일에 대못을 놓아 쇠칼을 만들었고
해방촌 사격장에 탄피줏으러 가기도 하고 여름엔 서빙고 한강 샛강까지 가서 물놀이를 하곤 했다.
겨울엔 학교앞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놀고 효창운동장에 스케이트를 타러 갔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우리학교 교가 맨 앞소절의 효창원의 뜻이 뭔지도 모르고 불렀는데
효창공원의 원래 이름이 효창원이었던 것이다
효창원 푸른숲 어린 소나무
나날이 자라는 즐거운 동산
씩씩하다 효창의 벗.
슬기롭다 효창의 벗
< 효창원의 유래 >
본래 조선조 제22대 왕 정조(正祖)의 장자로 5세에 작고한 문효세자(文孝世子)(1782∼1786)의 묘소
즉 효창원(孝昌園) 자리인데, 그후 이 경내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성씨(宜嬪成氏), 순조(純祖)의
후궁인 숙의박씨(淑儀朴氏) 및 숙의박씨(淑儀朴氏)의 소생 영온옹주(永溫翁主)를 안장한 곳이다.
효창원은 지금의 효창동과 청파동 일대에 걸쳐 소나무·밤나무 등 수림이 울창하여 매우 유수한 곳이었는데,
1894년 5월 청일전쟁 발발 직전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침공한 일본군의 주력부대인 대도(大島) 혼성여단이
지금 효창운동장 남단의 솔밭에 주둔함으로부터 그 좋은 경관이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어 일제가 1924년 6월 효창원의 일부를 떼어서 효창공원을 개설하고, 패망 직전인 1945년 3월에는
문효세자 이하의 상기 묘소를 모두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 서삼능 경내로 천장함으로써 효창원은
사실상 종말을 고하는듯했으나.
1945년 조국광복후 김구(金九) 선생은 그 주도하에 수많은 대중들의 지지로 옛 효창원의자리에..
우리민족의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전통성을 이어 받으며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받친
애국선열들을 효창원자리에 안장함으로서 국가적 신성한 묘역으로서 효창원의 그의미를 되살렸다.
남영역에서 내려 옛추억을 더듬던중 젤 먼저 눈에 띈 청파교회- 당시에도 지금 이자리 같은 모습으로 기억된다
신광여고도 이전하지 않고 옛모습대로 있다
내가 살던 골목길 양옆의 건물은 바뀌었지만 골목의 형상은 그대로이다
우리집터가 있던 자리 - 당시 다다미가 있어서 다다미집이라고 불렀다
효창국민학교 정문이 있던 자리는 숙명여대 2캠퍼스 후문이 되었다- 내가 졸업하고 5년쯤뒤 폐교되고
숙대가 우리학교자리를 인수했다
청암교회는 그일대 젤 높은 건물이었는데 지금도 그모습 그대로이다
이웃집은 모두 다세대주택으로 바뀌었는데 우리가 살았던 2층집은 외관이 그대로 남아있다
발길을 효창공원으로 돌렸다
3의사묘-당시는 의미없게 지나쳤는데 오늘은 제대로 참배했다
안중근의사의 가묘
백정기의사의 묘
장부출가생불환이란 시를 남기고 홀연히 집을 떠났던 윤봉길의사의 묘
원효로가 고향인 이봉창의사의 묘- 어쩌면 초등학교 선배일지도 모른다
효창운동장은 고등학교때 육상경기대회 응원하러 몇번 온기억이 있다
김구선생 기념관이 새로 생겼다
백범기념관 전경
백범 김구선생의 묘
엣 동아일보 건물 - 저곳에 동아방송국이 같이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 뒤에는 세종대왕동상도 보이고 광화문과 북악산 북한산이 석양에 아름답다
서울역 강우규의사 동상 - 이곳에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셨다
첫댓글 안중근의사 가묘를 모신
효창공원에 자주 갑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함 찾아볼까 합니다
진정한 애국자십니다 저는 아내와 변산반도에
갔다가 조금전에 와서 누워있습니다
이제 일어나 오늘 목표 공부량을 채우려
합니다
정겨운 곳 들 이네요..
효창 운동장 에서
고교시절
응원부장 했었죠.
ㅎㅎ
서울역 부근도 참
정겨운 곳들 이네요...ㅎ
광화문 청사
첫직장 이지요..
청진동,음식점들
수성고 종각 길..
추억 소환
감사 드려요...ㅎㅎ 💖💕👍
청파동,
여친구집 해방촌.ㅎㅎ
반갑습니다
청파동과 해방촌, 효창운동장, 광화문에 대한 추억이 많으시군요
저는 서울이 고향이지만 떠나산지 오래되어 지금의 서을은 낯섭니다
이문세의 노래 옛사랑을 감사의 마음으로 올려드립니다
https://youtu.be/LPZwUOeNo2w?si=ukmlY5f-8DgmNNNj
PLAY
잔잔하고 조근조근하게 고향이야기해주셨네요
행복한 마음으로 읽었어요
우리 교가는 ㅋㅋ 영도라는 섬학교답게
(솟으니 절영도라 파도치는 곳~) 뭐 이래요
영도의 본래이름이 절영도예요
絶影島
저도 봄맞이 고향방문 한번해보고
그산님 같은 글 쓰보고 싶네요^^
고향이 영도시군요
부산은 진해통합병원에 입원한 전우들 문병가다가
가본게 처음이었습니다. 그후 2번정도 더가봤었지요
이제 따땄한 봄날이 오면 오랜만에 고향나들이하시고
엣추억이 어린 글을 올려주시길 기대합니다 ^^!
그산님 고향이 청파동 이시군요.
저는 종로구 계동인데, 오래 전에 찾아가 봤더니
옛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는데
그래도 그산님 사시던 집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감회가 크실 것 같습니다..
넵 태어난곳은 한남동이지만 아주어릴때 청파동으로 와서
6학년때까지 살았습니다. 언제나 청파동은 어린시절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있습니다 ^^
정조 왕세자 능 이 거기 있었네요
지난번 드라마 보니
의빈 창녕성씨 덕임 나오던데
그 당시 문효세자가 왕통을 이어 받았더라면...
역사의 가정법 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드라마를 잘보지않아서 모르지만
순조때부터 조선왕조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합니다
정조가 좀더 오래살고 순조가 성인이 되어 왕이
되었다면 달라질수도 있었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