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스팅'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 레전드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홍보 담당자인 신디 버거는 1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로버트 레드포드는 9월 16일 유타 산악지대에 있는 선댄스 자택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세상을 떠났다. 그가 무척 그리울 것이다. 가족은 사생활 보호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메릴 스트립과 제인 폰다를 포함한 배우들이 오스카상을 수상한 스타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선댄스 영화제를 창립한 것으로도 유명한 레드포드는 1980년 '보통 사람들'로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6년 "연기에 지쳤다"고 말한 뒤 2019년 은퇴를 선언했는데 '어벤저스 엔드게임'에 카메오로 출연한 다음이었다. 하지만 그가 곧바로 조명 아래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몇 년 뒤 구순을 바라보는 시점에 그는 은퇴 결정을 번복했다. 이 때 선택한 작품이 시리즈 '다크 윈드'였다. 평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아픔에 크게 공감했던 그는 이중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두 나바호족 핏줄 경찰관의 얘기를 다루는 이 작품을 골랐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호흡을 맞춘 스트립은 "사자 가운데 한 마리가 세상을 떠났다. 편히 쉬세요, 사랑스러운 친구여"라고 애도했다. 1967년 로맨틱 코미디 '맨발공원'(Barefoot in the Park)'를 비롯한 영화들에 함께 출연한 평생의 친구 폰다는 "오늘 아침 밥이 스러졌다는 소식을 읽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울음을 멈출 수 없다. 그는 내게 큰 의미가 있었고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가 계속 싸워야 하는 미국을 옹호했다"고 애도했다.
론 하워드 감독은 엑스(X)에 글을 올려 레드포드를 "엄청나게 영향력 있는 문화적 인물"이자 "예술적 게임 체인저"라고 묘사했고, 배우 콜먼 도밍고는 "사랑과 존경을 담아. 레드포드의 영원한 영향력에 감사드린다. 여러 세대에 걸쳐 느껴질 것이다. 안식을(RIP)"이라고 기원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인스타그램에 "배우, 활동가, 열정적인 환경운동가, 예술의 옹호자였다"면서 "지구를 보호하고 변화를 불러일으키려는 그의 확고한 헌신은 자신의 엄청난 재능과 일치했다. 그의 영향력은 다음 세대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제이미 리 커티스는 스레드에 "가족. 예술. 변형. 옹호. 창작. 유산. 고마워요 로버트 레드포드"라고 적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두 번째 영국 국빈 방문을 위해 백악관을 떠나면서 기자들에게 "로버트 레드포드는 더 나은 사람이 없는 시절을 보냈다. 그가 가장 섹시했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그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전 국무장관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고인을 "진정한 미국의 아이콘"이라고 묘사했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나는 배우이자 감독으로서의 전설적인 경력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일어난 일과 관련해 항상 로버트 레드포드를 존경했다. 그는 환경 보호와 예술에 대한 접근과 같은 진보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와 영화 제작자를 위한 기회를 창출했다"고 돌아봤다.
1969년 두 은행 강도에 관한 서부 영화인 '내일을 향해 쏴라'는 폴 뉴먼과 공동 주연한 레드포드를 하룻밤 사이에 스타로 만들었다.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레드포드는 가슴을 뛰게 하는, 미남 꼬리표에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뉴욕 매거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내 외모를 칭찬하는 데 바빴는데 내가 자의식에 가득 찬 원형질 덩어리가 되지 않은 것은 기적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1973년 역시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범죄 영화 '스팅'에서 다시 뉴먼과 호흡을 맞췄다. 그 뒤 오랫동안 우정을 나눴는데도 둘은 다시는 함께 한 작품에 나오지 않았다.
레드포드가 영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선댄스 영화제였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독립영화 제작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줘 그의 경력을 시작한 시기에 필적했습니다.
선댄스에서 초연돼 큰 성공을 거둔 영화로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 'Precious', '맨체스터 바이 더 시', '리틀 미스 선샤인',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 '겟 아웃'이 있다.
2014년 레드포드는 BBC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제를 "뉴욕이나 LA에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유타에 두자, 가기 어렵게 만들자고 말했다. 이상하게 만들어 보자고 했다. 우리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들에게 작품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할 수 있는 장소로 선댄스를 시작했다. 우리의 사명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30년 전만 해도 이 사람들은 갈 곳이 없었다. 나는 '그래비티'와 '아메리칸 허슬'을 각자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과 데이비드 오 러셀이 실제로 선댄스를 통해 등장했고 이제 주류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
오스카상에 진출한 많은 영화는 그 과정에 선댄스의 도움을 받았다. 여배우 말리 매틀린은 "우리 영화 '코다'는 선댄스 덕분에 모두의 관심을 끌게 됐다"면서 "선댄스는 로버트 레드포드 때문에 일어났다. 천재가 세상을 떠났다. RIP 로버트"라고 적었다. '코다'는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레드포드의 다른 출연작으로는 'The Candidate',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Indecent Proposal' , 'The Way We Were'가 있다. 그는 또 1992년 브래드 피트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퀴즈 쇼'(1994), 'The Horse Whisperer'(1998) 등을 연출했다.
CBS 뉴스에 따르면 그는 2009년에 결혼한 아내 Sibylle Szaggars를 유족으로 남겼다. 그는 이전에 롤라 반 와게넨과 결혼한 적이 있는데, 둘은 1995년 이혼하기 전까지 네 자녀를 뒀다. CBS는 자녀 중 한 명인 스콧이 영아 돌연사 증후군으로 생후 두 달 만에 사망했고, 제임스는 2020년에 암으로 세상을 떴다고 전했다. 화가 Shauna와 감독 에이미 두 딸만 남았다.
찰스 로버트 레드포드 주니어는 1936년 8월 18일 캘리포니아주 샌타 모니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젖소를 키우다 나중에 스탠다드 오일 사의 회계사로 일했다. 학창 시절 부잡스러워 거리 갱단으로 어울리다 "보석상을 턴 일당에게 자동차를 빌려준" 혐의로 체포된 적도 있다.
야구에 재능이 있어 장학금을 받고 콜로라도 대학에 입학했지만 18개월 동안 술에 절어 생활하다 때려치웠다. 동시에 모친이 나이 마흔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슬픔에 젖어 그는 떠돌아다녔다. 캘리포니아 유전 일자리를 찾거나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피렌체 등을 쏘다녔는데 그림 공부도 했다. 유럽에서 지내며 미국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귀국해 American Academy of Dramatic Art에 등록했다. 무대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야심을 키웠지만 얼마 안가 연기로 전향했다.
1950년대 말 뉴욕의 많은 배우들이 그랬듯, 그도 연극과 텔레비전 인기 시리즈 '언터처블'과 '페리 메이슨과 닥터 킬데어'의 단역들을 전전했다.
그의 빅스크린 데뷔작은 1960년 ' Tall Story'에서의 단역이었는데 폰다와 처음 함께 한 작품이었다. 영화 커리어에 전도유망한 출발은 아니었다. 영화는 망했다. 잡지 타임은 "이 사진 말고는 건질 것이 없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이 영화로 폰다와의 우정이 싹텄고, 그녀는 나중에 함께 작업할 때마다 사랑에 빠지곤 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그는 어떤 것도 잘 드러내지 않는 묘한 구석이 늘 있었다. 그는 아우라를 내뿜는다"고 폰다는 말했다.
그의 메이저 연극 첫 성공은 닐 사이먼 원작의 로맨틱 코미디 '맨발 공원'에서 맡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 변호사 폴 브래터 역할이었다. 연극의 흥행에 힘입어 1967년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때 상대 역이 폰다였다.
그는 1965년 나탈리 우드와 함께 한 영화 'Inside Daisy Clover'로 골든글로브 신인상을 수상했는데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에 벤저민 브래독 역할로 캐스팅됐다가 너무 잘 생겼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자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걱정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