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세탁기가 멈추었다. 장장 23년을 쓰던 세탁기였다. 그간 이사도 여러 번 다녔는데 결혼할 때 샀던 세탁기라서 우리 가족과 늘 함께 했던 귀한 물건이다. 세탁기의 역사가 우리 가족의 역사다. 세탁기가 비록 기계에 불과하지만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온갖 정이 다 들었다. 몇 년 전에는 뚜껑이 반이나 떨어져 나가 탈수가 될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덜컹거리며 빨래를 곧잘 해냈다. 가끔 배수호수가 빠질 때면 쭈그리고 앉아 배수 호수를 끼워 넣으면서 ‘아고 이놈의 세탁기 갈아야지’ 하며 궁시렁거리기도 했다. 또 물을 공급하는 호수가 고장 나서 물이 셀 때마다 부품을 갈아 끼우며 ‘아이구!!! 이놈의 고물 세탁기’ 하며 타악탁!!! 손바닥으로 치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미워하면서 정이 든다고 나를 고생시킨 세탁기에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세탁기가 완전히 멈추자 짜증이 많이 나긴 커녕 너무 고생했단 생각이 들었다. 이주일 정도를 손빨래 하며 온 몸이 쑤시는 중에도 세탁기가 밉지 않았다.
세탁기 외관을 보니 이곳저곳 성한 데가 없다. 아래쪽은 녹슬어서 짙은 갈색의 낡고 흉한 모습이 드러나 있고, 뚜껑은 반쪽만 겨우 남았고, 세탁 물을 빼는 배수호수는 세탁기 모퉁이에 힘겹게 매달려 곧 떨어져 나갈듯하다. 23년이란 세월이 힘겨운지 통을 돌릴 수도 없나 보다. 세탁기가 사람인 마냥 내내 안쓰럽다. 23년 동안 세탁물을 돌리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니 고맙고 고마워 쓰다듬고 쓰다듬었다. 내가 마당에 있는 집에 산다면 세탁기를 폐기물 처리를 하지 않고 땅에 묻고 비석을 세워주고 싶다.
토요일날 새 세탁기가 왔다. 헌 세탁기를 철수하는데 정을 떼기가 어려워 두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집이 좁아서 너를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속으로 했다. 새 세탁기로 빨래를 몇 번 돌렸다. 헌 세탁기보다도 훨씬 편리하다. 스위치만 눌려 놓으면 내가 굳이 세탁기 곁을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빨래가 다된다. 그전 세탁기는 빨래 한번 하는데 세 네 번은 왔다 갔다 했다. 급수구의 물이 세서 급수가 끝나면 수도꼭지를 잠가야 되고 배수 호수가 빠지면 배란다에 물이 흥건해 지기 전에 배수 호수를 철사줄로 동여매야 되고 아무튼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만 그 옆에서 수시로 내가 도우미 역할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나를 고생시켰지만 옛 세탁기가 그립다. 덜덜덜 거리며 통 돌아가는 소리와 세탁 끝났다고 유난히 빼애~빽... 거리는 소리가 이젠 추억 속으로 기억될 것 같다. 수고했다.
첫댓글 가족같은 세탁기
저도 그마음 알아요.
우리집 자동차가 저희 결혼역사랑 비슷해서요. 우리아이들 하나둘씩 태어나고,성장한걸 같이 했거든요.
15년정도 된 자동차,너무 정이 들어서 새자동차 갖고싶은마음이 안생겨요. 그리고 나중에 헤어질때 너무 슬플것같아요..
우리애들한테 가끔씩 농담으로
자동차한테 형이라고 불러~라고해요^^
따뜻한 글 덕분에 저도 마음이 뭉클했네요~~~
아~ 언제나 돌배게님글은 따뜻해요.
고생시켰지만, ~~그립다!! 어떤마음일지, 느껴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