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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siṇa(까시나)
kasiṇa는 遍滿(一切)으로 한역하며 '어떤 대상을 온통 마음에 가득 채운다.'라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이른바 특정 대상을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kasiṇa-āyatana는 遍處로 한역하며
마음이 들어간 자리(處)가 어떤 특정 대상(여기서 말하는 '까시나')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處를 遍滿한다는 의미에서 處遍이다.
아마 세존께서 깨닫기 전 보살시절에 이미 인도 땅에 알려진 수행으로 생각된다.
보살시절 이러한 10處遍 수행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으나
kasiṇa수행의 최고 수준은 (空까시나 다음에 나타나는) 識까시나 수행으로 알려져 있고
여기서 空까시나와 識까시나는 색계 4禪을 거치지 않은 무색계 선정 수행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보살시절 세존께서는 이러한 공무변처-식무변처를 뛰어넘는
이러한 수행보다 더 수승하다고 하는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 수행을 하신 것으로 이해된다.
주지하듯이 이러한 수행에 의해서는 해탈이 불가능하다고 아시고 나서 하신 수행이 苦行이다.
이러한 고행을 어느 누구보다, 할 수 있는 최고의 상황까지 밀고 나갔지만
이 역시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아시고서 과거 수행을 다시 복기하시다가
어린 시절 부왕의 농경제 때 경험한 색계 초선을 기억을 하시고는 깨달음의 길을 찾으셨다.
그래서 그 이후 어느 정도 승가가 형성되고 나서는 까시나 수행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다.
깨달음의 길은 팔정도이고 이른바 37조도법이다.
戒가 어느 정도 익숙한 비구들에게 定學으로서 실참수행을 가르치신 것은
4念처 혹은 호흡念이다. 즉 사띠(念) 수행이다.
4부 니까야에는 논서(청정도론 등)와 달리 까시나에 대한 언급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거의 이런 것도 있다는 정도의 나열하는 수준이다.
[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 amanasikaritvā manussasaññaṃ,
amanasikaritvā araññasaññaṃ, pathavīsaññaṃ paṭicca manasi karoti ekattaṃ.
tassa pathavīsaññāya cittaṃ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adhimuccati.
아난다여, 더 나아가 비구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205)
숲이라는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땅이라는 인식 하나만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의 마음은 땅이라는 인식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확립하고 확신을 가진다.
205) “'사람이라는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amanasikartvā manussa saññaṃ)'라고 하셨다. 여기 수행자는 마을이라는 인식(gāma-saññā)을 취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마을이라는 인식을 물리치고(nivattetvā), 숲이라는 인식(arañña-saññā)으로 사람이라는 인식을, 땅이라는 인식(pathavī-saññā)으로 숲이라는 인식을, 공무변처라는 인식으로 땅이라는 인식을, …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으로 무소유처라는 인식을, 위빳사나로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을, 도로써 위빳사나를 물리치고 점차적으로(anupubbena) 구경의 공의 경지(accanta-suññata)를 보이기 위해서 이와 같이 설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숲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땅이라는 인식(pathavī-saññ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가? 숲이라는 인식으로 특별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visesa-anadhigamanato), 마치 어떤 사람이 비옥한 땅을 보고 '여기 벼 모내기를 하면 벼가 잘 자라서 풍성하게 수확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백 번이고 땅을 쳐다보아도 벼 등을 거둘 수 없겠지만 만약 그 땅에 그루터기 등 장애물을 제거하고 논을 갈아 씨를 뿌리면 수확할 수 있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숲이고, 이것은 나무이고, 이것은 산이고, 이것은 바위이고, 이것은 검푸른 빛이라고 백 번씩이나 숲이라는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더라도 근접삼매(upacāra)나 본삼매(samādhi)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땅이라는 인식으로는 항상 지녀야 할(dhuva-sevana) 명상주제인 [즉 평소 항시 지녀야 할 명상 주제(pārihāniya-kammaṭṭhāna, MAȚ.ii, 322)라는 뜻이다.] 땅의 까시나(pathavī-kasiṇa)를 익혀 준비(parikamma)를 지어 禪(jhānāni)을 얻고, 禪을 토대로 한(jhāna-padaṭṭhāna)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숲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땅이라는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한다.”(MA.iv.152~153)
seyyathāpi, ānanda, āsabhacammaṃ saṅkusatena suvihataṃ vigatavalikaṃ;
evameva kho, ānanda, bhikkhu yaṃ imissā pathaviyā ukkūlavikkūlaṃ
nadīviduggaṃ khāṇukaṇṭakaṭṭhānaṃ pabbatavisamaṃ
taṃ sabbaṃ amanasikaritvā pathavīsaññaṃ paṭicca manasi karoti ekattaṃ.
tassa pathavīsaññāya cittaṃ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adhimuccati.
아난다여, 마치 소가죽을 백 개의 막대기로 완전하게 펴면 주름이 없듯이
그와 같이 비구는 땅이 솟아오른 곳과 움푹 꺼진 곳, 강들과 골짜기, 그루터기와 가시덤불,
산과 울퉁불퉁한 곳 등 그 어떤 것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땅이라는 인식 하나만을206)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의 마음은 땅이라는 인식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확립하고 확신을 가진다.
206) “'땅이라는 인식 하나만을(paṭhavīsaññaṃ paṭicca ekattaṃ)'이라고 하셨다.[일반적인 땅이 아닌(na pakati-pathavi) - MAȚ.ii.323)] 오직 까시나인 땅(kasiṇa-pathaviyaṃ yeva)을 조건으로 생긴 하나의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이다.”(MA.iv.153)]
valika:[adj.] having folds
dvaya,(adj.-n.) [Ved.dvaya; cp.dvi B I.6] (adj.) (a) two fold
<*advaya: 겹치지 않는다.>
kasiṇa [Vedic kṛtsna] (adj.) entire,whole
{M77} [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十一切處]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dasa kasiṇāyatanāni bhāventi.
다시 우다이여, 나는 나의 제자들이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十一切處]158)를 닦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닦음을 설했다.
158)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dasa kasiṇāyatana)'를 한역 『중아함」「예경」(例經)에서는 十一切處(십일체처)로 옮겼고, 이 10가지는 地一切處(지일체처), 水一切處(수일체처) 등으로 옮겼다.
열 가지 까시나는 본경 외에도 『앙굿따라 니까야』제6권 「까시나 경」 (A10:25)과 「꼬살라 경」 1(A10:29) §4와 「깔리 경」(A10:26)에도 나타나고 『디가 니까야』제3권 「합송경」(D33) §3.3.(2)와 「십상경」 (D34) §2.3. (2) 등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 10가지 까시나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9장 §6에 명료하게 요약되어 있고 까시나를 통한 수행은 『청정도론』제4장과 제5장에서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10가지 까시나의 원어를 순서대로 적어보면, pathavī-kasiṇa, āpo-kasiṇa, tejo-kasiṇa, vāyo-kasiṇa, nīla-kasiṇa, pīta-kasiṇa, lohita-kasiṇa, odāta-kasiṇa, ākāsa-kasiṇa, viññāna-kasiṇa이다.
pathavīkasiṇameko sañjānāti uddham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159) 제한이 없는160) 땅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159) “'둘이 아니라는 것(advaya)'은 땅의 까시나 등 [여러 까시나] 가운데서 하나가 다른 상태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물에 들어간 사람에게 사방이 모두 물뿐이요 다른 것이 없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오직 땅의 까시나만 있을 뿐이지 다른 까시나가 섞이지 못한다. 이것은 다른 까시나에도 다 적용된다.”(AA.v.20)
160) “'제한이 없음(appamāṇa)'이란 그 까시나를 확장함에 제한이 없음(pharaṇa-appamāṇa)을 말한다. 마음으로 그것을 확장할 때 전체적으로(sakalaṃ) 하지 '이것은 처음이고 이것은 중간이다.'라고 한계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AA.v.20) 덧붙여 복주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음으로 확장한다(cetasā pharanta)는 것은 닦은 마음(bhāvanācitta)으로 대상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닦은 마음은 까시나가 제한적(paritta)이건 광대(vipula)하건 전체적으로(sakala) 마음에 잡도리하지, 일부분(ekadesa)만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AAȚ.iii.321)
까시나의 [닮은] 표상은 『청정도론』 IV.31 이하를, 표상의 확장은 IV.127 이하와 III.109 이하를 참조할 것.
āpokasiṇameko sañjānāti ... pe ... tejokasiṇameko sañjānāti... vāyokasiṇameko sañjānāti...
nīlakasiṇameko sañjānāti... pītakasiṇameko sañjānāti...
lohitakasiṇameko sañjānāti... odātakasiṇameko sañjānāti...
ākāsakasiṇameko sañjānāti ...
viññāṇakasiṇameko sañjānāti uddham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 물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불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바람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푸른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노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빨간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흰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 허공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15]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알음알이의 까시나161)를 인식한다.
161) “여기서 '알음알이의 까시나(viññāna-kasiṇa)'라는 것은 까시나를 제거한 (ugghāṭi) 허공(ākāsa)에 대해 생긴 알음알이이다.”(AAT.iii.321)
까시나를 제거한 허공(kasiṇ-ugghāṭi ākāsa)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X.8 이하를 참조할 것.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하여 많은 나의 제자들은 최상의 지혜의 완결과 완성을 성취하여 머문다.”162)
162) 한편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는 열 번째로 알음알이의 까시나 대신에 광명의 까시나(āloka-kasiṇa)를 들고 있다. 그러나 니까야에 나타나는 10가지 까시나에는 모두 광명의 까시나 대신에 본경처럼 알음알이의 까시나가 나타나고 있다.]
[ dasa kasiṇāyatanāni.
pathavīkasiṇameko sañjānāti, uddhaṃ 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āpokasiṇameko sañjānāti ... pe ...
tejokasiṇameko sañjānāti...
vāyokasiṇameko sañjānāti...
nīlakasiṇameko sañjānāti...
pītakasiṇameko sañjānāti...
lohitakasiṇameko sañjānāti...
odātakasiṇameko sañjānāti...
ākāsakasiṇameko sañjānāti...
viññāṇakasiṇameko sañjānāti, uddhaṃ 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2)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kasiṇāyatana)523) -
①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524) 제한이 없는525) 땅의 까시나를 인식합니다.
② … 물의 까시나를 인식합니다.
③ … 불의 까시나를 인식합니다.
④ … 바람의 까시나를 인식합니다.
⑤ … 푸른색의 까시나를 인식합니다.
⑥ … 노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합니다.
⑦ … 빨간색의 까시나를 인식합니다.
⑧ … 흰색의 까시나를 인식합니다.
⑨ … 허공의 까시나를 인식합니다.
⑩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알음알이의 까시나526)를 인식합니다.
523) “전체(sakala)라는 뜻에서 ‘까시나(kasiṇā)'라 한다. 그 [까시나]를 대상으로 가지는 법들의 토양(khetta)이나 확고하게 머무는 곳(adhiṭṭhāna)이라는 뜻에서 '장소(āyatana)'라 한다.” (DA.ii.1047)
524) “둘이 아니라는 것(advaya)은 하나가 다른 상태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물이 퍼질 때에 사방이 모두 물뿐이요 다른 것이 없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땅의 까시나에는 땅의 까시나만 있을 뿐이지 다른 까시나가 섞이지 못한다. 이것은 다른 까시나에도 다 적용된다.”(DA.iii.1048)
525) “제한이 없음(appamāṇa)'이란 그 까시나가 제한이 없이 충만함(pharaṇa-appamāṇa)을 말한다. 의도를 통해서(cetasā) 그것이 충만할 때 전체적으로(sakalaṃ) 충만하지 ‘이것은 처음이요 이것은 중간이다.'라고 제한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Ibid)
202) 여기서는 10가지 까시나(kasiṇa) 수행을 설하고 있다. 10가지 까시나 수행은 『청정도론』 IV 장과 V장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본경에 나타나는 알음알이의 까시나는 『청정도론』에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에 광명의 까시나(āloka-kasiṇa)가 나타나고 있다.
알음알이의 까시나(viññāṇakasiṇa)에 대해서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알음알이의 까시나는 뜻으로는 허공의 까시나에 대해서 생긴 알음알이를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대상으로 설하신 것이지 [본삼매인] 증득[等至]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이 알음알이를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대상으로 삼아서 공무변처의 증득을 닦기 때문에 알음알이의 까시나를 닦는다고 한다.”(AA.ii.77)
한편 본경의 열 가지 까시나는 『디가 니까야』 제3권 「합송경」(D33) §3.3(2)에도 나타나고 있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알음알이의 까시나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알음알이의 까시나'라는 것은 까시나를 제거한(ugghāṭi) 허공에 대해서 생긴 알음알이이다.” (DA.iii.1048) 까시나를 제거한 허공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X.8 이하를 참조할 것.]
[ ekadhammapāḷi soḷasamo. 17. pasādakaradhammavaggo
제20장 손가락 튀기기의 연속 품(A1:20:1~182)187) Apara-accharāsaṅghāta-vagga
187) 본 품에서는 수행에 관한 법수를 모두 182가지로 정리하고 있는데 음미해봐야 할 부분이다. PTS본에는 품의 명칭이 나타나지 않아 육차결집본을 따랐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만큼이라도
<* 수행에 관한 법수 182가지 중에서 : 十遍處>을 닦는다면 그를 일러 비구라 부른다.
그의 선(禪)은 헛되지 않으며, 위의(威儀)로써 머물고,
스승의 교법을 받들고, 교훈을 받아들이며, 백성들이 주는 보람된 공양을 먹는다.
그것을 많이 닦는 자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 알음알이의 까시나를 닦는다면 … ]
[ viññāṇakasiṇasamāpattiparamā kho, bhagini, eke samaṇabrāhmaṇā ‘attho’ti abhinibbattesuṃ .
yāvatā kho, bhagini, viññāṇakasiṇasamāpattiparamatā, tadabhiññāsi bhagavā.
tadabhiññāya bhagavā assādamaddasa ādīnavamaddasa
nissaraṇamaddasa maggāmaggañāṇadassanamaddasa.
tassa assādadassanahetu ādīnavadassanahetu nissaraṇadassanahetu
maggāmaggañāṇadassanahetu atthassa patti hadayassa santi viditā hoti.
…
알음알이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누이여, 그러나 알음알이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를
세존께서는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도와 도아님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도와 도아님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 “etadaggaṃ, bhikkhave, imesaṃ dasannaṃ kasiṇāyatanānaṃ
yadidaṃ viññāṇakasiṇaṃ eko sañjānāti uddhaṃ adho tiriyaṃ advayaṃ appamāṇaṃ.
evaṃsaññinopi kho, bhikkhave, santi sattā.
evaṃsaññīnampi kho, bhikkhave, sattānaṃ attheva aññathattaṃ atthi vipariṇāmo.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tasmimpi nibbindati.
tasmiṃ nibbindanto agge virajjati, pageva hīnasmiṃ.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 가운데 어떤 자가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알음알이의 까시나를 인식할 때 그것이 최고니,
참으로 이러한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이라.]
[ etaṃ vā panekesaṃ upātivattataṃ viññāṇakasiṇameke abhivadanti appamāṇaṃ āneñjaṃ.
[이런 견해를] 극복한 자들 중에서 어떤 자들은
무한하고 흔들림 없는 알음알이의 까시나를 [자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ahesuṃ kho, bhikkhu, tayā pubbe samaṇabrāhmaṇā lokasmiṃ
yāvatakaṃ tuyhaṃ kasiṇaṃ āyu tāvatakaṃ tesaṃ tapokammameva ahosi.
te kho evaṃ jāneyyuṃ — ‘santañca panaññaṃ uttari nissaraṇaṃ atthaññaṃ uttari nissaraṇanti,
asantaṃ vā aññaṃ uttari nissaraṇaṃ natthaññaṃ uttari nissaraṇan’ti.
비구여, 그대 이전에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이 세상에 있어
그대의 일생만큼이나 긴 세월 동안 고행을 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 있으면 있다고 알았을 것이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 없으면 없다고 알았을 것입니다.]
{M118} [ “santi, bhikkhave, bhikkhū imasmiṃ bhikkhusaṅghe
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 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
evarūpāpi, bhikkhave, santi bhikkhū imasmiṃ bhikkhusaṅghe.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는 있다.
santi, bhikkhave, bhikkhū imasmiṃ bhikkhusaṅghe
catunnaṃ sammappadhānānaṃ 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 pe ...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을 …
catunnaṃ iddhipādānaṃ...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
pañcannaṃ indriyānaṃ...
다섯 가지 기능[五根]을 …
pañcannaṃ balānaṃ...
다섯 가지 힘[五力]을 …
sattannaṃ bojjhaṅgānaṃ...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를 …
ariyassa aṭṭhaṅgikassa maggassa 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
evarūpāpi, bhikkhave, santi bhikkhū imasmiṃ bhikkhusaṅghe.
성스러운 팔정도[八聖支道]를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santi, bhikkhave, bhikkhū imasmiṃ bhikkhusaṅghe mettā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karuṇā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muditā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upekkhā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자애[慈]를 … [82] … 연민[悲]을 …
더불어 기뻐함[喜]을 … 평온[捨]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asubha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부정관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aniccasaññā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
evarūpāpi, bhikkhave, santi bhikkhū imasmiṃ bhikkhusaṅghe.
비구들이여, 무상의 인식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santi, bhikkhave, bhikkhū imasmiṃ bhikkhusaṅghe ānāpānassatibhāvanānuyogamanuyuttā viharanti.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첫댓글
예전에 한 번 정리한 내용입니다.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netti]
dasa kasiṇāyatanāni
pathavīkasiṇaṃ āpokasiṇaṃ tejokasiṇaṃ vāyokasiṇaṃ
nīlakasiṇaṃ pītakasiṇaṃ lohitakasiṇaṃ odātakasiṇaṃ ākāsakasiṇaṃ viññāṇakasiṇaṃ.
tattha yañ ca pathavīkasiṇaṃ yañ ca āpokasiṇaṃ evaṃ sabbaṃ, yañ ca odātakasiṇaṃ.
imāni aṭṭha kasiṇāni samatho. yañ ca ākāsakasiṇaṃ yañ ca viññāṇakasiṇaṃ, ayaṃ vipassanā.
열 가지 까시나의 영역(處)이 있다.
즉 땅의 까시나, 물의 까시나, 불의 까시나, 바람의 까시나,
푸른 까시나, 노란 까시나, 빨간 까시나, 하얀 까시나, 허공의 까시나, 의식의 까시나가 있다.
그 중에서 땅의 까시나, 물의 까시나와 그외 하얀 까시나까지 모두 여덟 까시나는 사마타이다.
허공의 까시나와 의식의 까시나, 이것은 위빠사나이다.
최근에 다시 <경전이해의 길>을 읽고 있는데...
ㅋ...
//허공의 까시나와 의식의 까시나, 이것은 위빠사나이다.//
여기서는 ........ 위빳사나 풍년입니다.
책을 보면 와~ 이렇네 하는 것이 많아야 하는데... ㅋ
하긴 여기서도 건진 것이 많으니...
보고 있기는 하지. ^^;;
tattha yaṃ nekkhammasitaṃ domanassaṃ kudāssu nāmāhaṃ
taṃ āyatanaṃ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ṃ
yaṃ ariyā santaṃ āyatanaṃ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ī ti
tassa uppajjati pihā, pihāpaccayā domanassaṃ,
ayaṃ taṇhā kusalā rāgavirāgā cetovimutti, tadārammaṇā kusalā
그와 관련하여 세속을 떠남에 의거한 불쾌함이 있다.
즉 “'거룩한 이들은 고요한 영역(處)을 실현하고서 도달하여 머문다.
나는 언제 그 영역을 확실하게 실현하고서 도달하여 머물 것인가?'라는
열망과 그 열망을 조건으로 불쾌함이 그에게 일어난다.
이러한 갈애는 옳은 것이다.
탐냄에 대한 탐냄의 여읨<*갈애에 의한 다른 갈애를 여읨>을 통해 마음의 해탈이 있다.
그 [갈애]는 옳은 대상을 지닌 까닭에 옳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