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과 코로나
오래 전 어떤 기회에 소록도를 다녀온 적 있다. 당시는 녹동항에서 배를 탔는데 근년에 연륙교가 놓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소외받은 곳을 추천받아 찾아간 섬이다. 오스트리아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간호사가 40년간 의료 봉사를 펼치고 할머니가 되자 폐 끼치기 않으려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소록도를 찾았을 때 한센병 환자들의 신산한 삶을 역력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릴 적 ‘문둥병’이 나은 음성나환자를 봤고 초등학교 때 미감아가 수용된 보육원 친구와 같이 다녔다.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로 동아리에서 떠난 음성나환자촌 봉사활동 취재차 동행하기도 했다. 음성나환자들은 그들만이 집단 거주시설에서 양계나 양돈으로 생계를 이어 갔는데 지금은 대부분 고령층이다.
소록도를 언급함은 그 섬 들머리 ‘수탄장(愁嘆場)’을 잊을 수 없어서다. 그냥 도로인데 당시는 그 길 한복판으로 철조망을 쳐 갈라놓았다고 했다. 한센병 환자인 부모가 감염이 되지 않은 자녀들과 격리 공간에서 살다가 한 달 한 번 그곳에서 상봉하는 장소라 했다. 서로 부둥켜안을 수가 없음은 물론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위치를 서로 바꾸어 자녀들은 바람을 등져야 한다고 했다.
천형이라고 하는 한센병은 영화 벤허에도 나온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질병의 하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새로 발병하는 환자는 적고 우리나라는 제2급 법정 감염병으로 분류되는 정도다. 소록도 수탄장은 근심 수(愁)에 탄식할 탄(嘆)이다. 근심을 탄식한 자리였다. 한센병 환자들은 2세를 두어도 자녀들이 감염이 될까 봐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한센병을 꺼내본 것은 코로나19와 환자 격리성에서 유사성이 있어서다. 한센병은 피부과 질환이고 코로나19는 호흡기 질환으로 분명하게 구별 된다. 한센병은 근래 유병율이 낮을뿐더러 장기 치료를 요하지만 생명에는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19에 걸리면 다수는 훌훌 털고 일어나도 전파력이 워낙 빠르고 고령의 기저 질환 있는 사람은 생사 갈림길에 서게 된다.
지난 연말 중앙 일간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대구의 한 장례지도사 기사를 본 적 있다. 젊은 날 건설업에 종사하다가 중년에 방광암에 걸려 수술 후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이였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창문 너머 장례식장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더란다. 그는 생존율이 비교적 낮은 방광암인데도 극적으로 기사회생 덤으로 붙은 인생 후반부는 염쟁이가 되어 자원봉사를 하며 살았다.
그 장례지도사는 지난해 봄 대구에서 코로나로 창궐해 혼란스러울 때 의료진이나 장례업자가 선뜻 나서지 않는 여러 주검을 염습해 화장장으로 보냈다고 했다. 평소는 고독사나 무연고자와 기초생활수급자 장례 전담인데 코로나 사망자는 처음 맡았다고 했다. 주검은 사후 24시간 지나 염습에 들어가는데 코로나 사망자들은 24시간 안에 화장을 먼저 끝낸 이후 장례를 지낸다고 했다.
코로나 사망자 유족은 대체로 밀접 접촉자거나 확진자여서 격리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장례지도사도 가까이 다가가기 머뭇거린 허무한 주검이었다. 빈소는 차릴 엄두도 못내 위패나 영정이 있을 리 없고 상주가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당국의 코로나 사망자 처리 매뉴얼에 따라 시신을 서둘러 비닐 팩에 이중 밀봉해 추모공원 화장장 화로로 보내면서 묵념을 올렸단다.
방학을 맞아 창원으로 복귀한지 열흘째다. 새해 벽두 북면 명촌 강가로 나가보고 안민고개로 올라가 봤다. 이후 사는 동네 근처만 뱅뱅 맴돌고 있다. 날씨도 춥지만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어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니 발이 묶여서다. 사람이 모인 곳이면 공기 중 비말로도 전파되기에 마스크 착용은 일상화가 되었다. 4일과 9일은 상남 오일장이 서는 날인데 햇살 퍼지면 나서 볼까나. 21.01.09